각다귀판
임두호
1,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당하는 약육강식 현장이다.
2, 신천 수중보가 낮아지자 갇혀있던 강물이 출렁출렁 춤을 춘다. 징검다리를 휘감고 돌아 너럭바위를 쓰다듬고 흘러간다. 얼마 후 강바닥이 훤하게 보일 만큼 얕아졌다. 그 속에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운 좋은 날은 천연기념물 수달도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볼거리가 되지만, 물고기는 신천을 서성이는 새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3, 기다렸다는 듯, 오리, 왜가리, 해오라기, 백로 따위들이 얕은 물가로 하나둘 모여든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산책로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 오리 한 마리가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았다. 오리는 물고기를 낚으려 하고, 물고기는 피하려는 급박한 경쟁에서 물고기가 불리했나 보다. 갑자기 당한 물고기가 오리 부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오리는 물고기를 제압하려는 듯 목을 쳐들고 좌우로 흔들어버린다. 물고기에서 떨어진 비늘인지 물방울인지 뿌옇게 포물선을 그린다. 일대일 경쟁에서 물고기가 오리 힘에 밀리는듯해 보였다.
4, 기어이 먹어야겠다는 자와 벗어나려는 자의 경쟁이 야생동물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조바심이 인다. 약한 자에게 동정이 가는 측은지심이 일었을까. 내심은 물고기 편이었다. 오리의 주린 배는 헤아리지 못하고 물고기가 위기에서 벗어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5, 오리의 기쁨도 잠시뿐, 왜가리 두 마리가 물고기를 보고 달려든다. 이미 확보한 먹잇감을 빼앗으려는 불공정한 공격의 시작이다. 오리는 빨리 삼키려는 듯 부리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목을 뒤로 젖히기를 반복한다. 물고기 크기로 보아 한 번에 삼키기가 버거워 보인다. 더욱이 몸통 중간을 물고 있어 쉽지 않아 보인다. 오리는 몸부림치는 물고기도 놓치지 않아야 하고 적들의 공격을 막아야 하니 힘겨워 보인다. 철퍼덕철퍼덕 강물을 튀기며 다투는 모습이 처절하다. 적들의 공격에 밀리는 듯 물고기를 물고 뒤뚱거리며 달아난다.
6, 물고기를 물고 달아나는 오리걸음이 빠를까. 날개를 퍼덕이며 따라가는 왜가리가 유리할까.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데, 드디어 왜가리가 물고기를 빼앗아 성큼성큼 달아난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먹이를 빼앗긴 오리는 넋 나간 모습으로 왜가리를 바라보며 체념하는 듯하다. 결국 먹이 경쟁에서 힘의 균형이 깨어지고 강한 자가 차지했다. 그것도 입에 물고 있는 먹잇감을 탈취하는 야생동물의 불공정한 행동이었다. 신천은 한동안 물고기와 오리의 약육강식에서 왜가리가 끼어들어 살기다툼이 요란했다. 다시 평온을 찾은 강물이 속삭이듯 여울물 소리를 내며 금호강으로 흘러간다.
7, 문득 초원에서 살아가는 길짐승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동물의 왕국' 방송을 관심 있게 보는 편이다. 가젤 한 마리가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그 순간은 가젤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으리라.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간들의 세계라지만 가젤에게도 예외가 아닌 듯했다. 멀리서 이를 발견한 암사자 한 마리가 자세를 낮추어 서서히 접근한다. 공격권에 들어왔다고 판단한 것인지 빠른 속도로 달려든다. 뒤늦게 위험을 느낀 가젤이 화들짝 놀라며 전속력으로 달아난다. 잠시 후 사자는 앞발로 내리찍듯이 가젤을 덮친다. 잡으려는 놈과 잡히지 않으려는 놈이 뒤엉켜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가젤의 몸부림이 조용해지더니 침묵이 흐른다. 역시 약육강식의 우위는 강한 사자의 몫이었다.
8, 길짐승 세계에서도 날짐승처럼 치열한 먹이다툼이 또 벌어진다. 사자에게 당한 가젤을 보고 들개들이 떼거리로 몰려든다. 들개 몇 마리가 가젤을 빼앗으려 달려드는데 사자가 반격을 가한다. 독불장군이 없다고 하지만, 힘의 우위에 있는 사자에게 들개들이 밀리고 있었다. 사자가 들개 한 마리를 물고 흔들어버리자 괴성을 지르며 꼼짝을 못 한다. 위험을 느낀 들개들이 공격 시늉만 하다 물러났다. 역시 승자는 힘의 우위에 있는 사자였다. 가젤을 사냥한 사자는 성공했지만, 사냥한 가젤을 빼앗으려는 들개들의 불공정한 행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같은 야생이지만 날짐승과 길짐승의 생존경쟁 성공률은 달랐다.
9,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사람에게도 동물과 같은 야성의 근성이 있을까. 나는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자랐던 농촌은, 주곡 생산 위주 농업으로 가난했으나 명절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설 명절을 보내고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은 세시 음식을 먹는 날이었다. 우리 집에서도 농경의례로 한 해의 풍농과 가족의 복을 기원하는 오곡밥을 먹었다.
10, 찹쌀, 수수, 기장, 콩, 팥으로 지은 밥에 시래기, 고사리, 도라지로 무친 묵나물 반찬을 곁들이면 맛이 일품이었으나 양은 넉넉하지 못했다. 또래는 하얀 수수깡으로 만든 보리, 콩, 팥 따위 조형물을 마당 가장자리 거름 더미에 꽂았다. 한밤중에 집마다 돌아다니며 나뭇가지로 두드리며 타작하는 흉내를 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어른들이 부르던 "홍해야 타작이야."라는 농요를 흥얼거렸다. 그 시각쯤이면 밤이 깊어 배가 출출하여 먹을 것을 찾는다,
11, 그 시절, 야식거리는 구덩이에 묻어 놓은 무와 고방에 넣어둔 고구마가 고작이었다. 그것도 겨울철 양식이나 다름없어 엄두를 못 내었다. 친구 집 구석진 방에 모여 해결 방법을 찾았다. 결론은 집마다 돌아다니며 오곡밥을 조금씩 얻기로 하였다. 양재기와 바가지 하나를 준비했다. 양재기에는 오곡밥을, 바가지에는 묵나물을 담았다. 집마다 십시일반으로 얻었으나 넉넉하지 않았다.
12, 빙~ 둘러앉아 숟가락 하나씩 들고 순서대로 한 숟갈씩 먹기로 하였다. 한두 차례 돌아가니 반으로 줄었다. 순간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체격이 크고 힘이 센 동갑 둘이서 양재기를 감싸며 다른 친구의 접근을 막는다. 뒤이어 한 놈이 양재기를 또 한 놈은 바가지를 안고 문밖으로 튀었다. 나머지는 입맛만 다시며 멍하니 문밖을 바라보았다. 얼마 후, 빈 양재기와 바가지를 들고 들어오며 배를 쓱 내민다. 나는 야생동물처럼 행동한 자를 바라보며 허탈했다.
13, 곡식 조형물은 약속대로 돌아가며 공정하게 몇 번씩 두들겼고 오곡밥도 함께 얻었다. 한 숟갈씩 돌아가며 먹기로 한 약속이 야성 행동으로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배고픔보다 배신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급기야 오리가 잡은 물고기를 빼앗은 왜가리처럼 행동한 두 놈을 경계하고 멀리 두었다. 요즘 시쳇말로 왕따를 시켰다고나 할까.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공정을 벗어난 행동이 마음에 생채기가 되어 오래 남았다. 어린아이도 먹잇감 앞에서는 야생동물과 다름없는 행동이 나왔다. 분명 야생동물과 다른 면이 있어 만물의 영장이라 하였을 터인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4, 나는 사회에 진출하면서 '공개경쟁 채용'이라는 공정한 길을 택했다. 장기근속하면서 왜가리와 들개, 또래처럼 먹이를 빼앗아 취하려는 행동과 같은 자리다툼은 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선인도 시대에 따라 살아간다."라고 하였지만, 정의롭지 않은 방법 같아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호랑이가 아무리 굶주려도 풀을 뜯지 않는다는 속담을 새기며 인내했다. 매사에 공정하게 처신하려고 무한히 애를 썼다. 희망하는 자리에는 못 올랐지만, 한 점 오점도 남기지 않고 영예롭게 은퇴하였음이 더 떳떳했다. 불공정하게 자리를 탐하는 행동이 왜가리, 들개, 또래처럼 '각다귀판'을 서성이는 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15, 은퇴 후 과거는 돌아보지 않았다. 한때 일장춘몽으로 묻어 두었다. 현재가 중요하고 지금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오직 노후에 보람 있는 활동을 탐색했다. 주말 텃밭 가꾸기와 숲 해설가 활동에 이어, 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하여 종심이 넘은 나이에 작가로 등단하여 문학인의 길을 걷고 있다.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을 한 편의 작품으로 적어가며 일상을 신선놀음인 양 즐기고 있다.
16, 늦은 오후, 오리가 물고 있는 물고기를 왜가리가 빼앗아 달아나던 신천을 바라본다. 또 어느 먹이를 빼앗을까 기웃거리는 왜가리에게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한가롭게 자맥질하는 오리와 유영하는 물고기에 마음이 쏠린다. 석양을 등진 나의 그림자가 오리와 물고기 위에 길게 누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