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일 토론작품 / 서영숙

작성자서영숙(꽃사슴)|작성시간26.06.19|조회수36 목록 댓글 0

두 대의 피아노 / 서영숙

 

1. 딸이 무대에 앉아 있다. 때마침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함께 춤을 춘다. 안단테로 시작한 선율이 때로는 비바체로 힘차게 쿵작작 왈츠를 추며 너울거린다. 나는 그 소리에 매료되어 가슴이 떨리다 못해 울림을 느낀다.

2. 백 대의 피아노가 한사람이 연주하는 것처럼 정교하다. 가녀린 여인의 속삭임 같더니 폭풍처럼 우렁찬 소리가 캄캄한 밤하늘을 뚫고 멀리 울려 퍼진다. 사문진 나루터는 1900년 미국에서 건너온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가 낙동강을 거슬러 사흘 동안 배로 옮겨온 곳이다. 달성군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음악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특별히 딸이 연주자 중에 있으니 더욱 의미가 있다. 백 명이 연주하는데 내 딸 혼자 연주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사문진 나루터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3. 피아노 소리에 취해 눈을 지그시 감아본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나 한 대쯤은 불협화음이 나지 않을까 귀를 기울인다. 엉뚱한 생각에 곡의 흐름도 놓쳐버려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다시 팸플릿에 눈을 맞춘다. 좋은 일에는 티가 존재하는 법이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찾아내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던가.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기 위해 애썼던 내 버릇이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잘해보려는 나의 진심이건만 왜곡되기 일쑤였다.

4.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 사는 우리는 두 대의 피아노이다. 불협화음 없이 잘 맞아야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는데 달랑 두 대인데 우리는 한 가지도 맞는 게 없다. 신혼 초, 타의에 의해 원하지 않았던 궁합이란 걸 보게 되었다. 자기가 지금까지 본 궁합 중 이렇게 좋게 나온 것은 몇 없다고 했다. 결론은 너무 좋아서 절대로 끊어질 수 없는 사이니 혹시 살다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헤어질 생각은 하지 말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으나 살다 보니 은근히 생각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좋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나 의심스러웠다.

5. 남편에게 우리 사이를 피아노에 견주어 딸은 한 대의 피아노를 두드리니 틀려도 모르지만, 우리는 두 대의 피아노라 생각하고 더 정교하게 소리를 맞추자고 부탁하곤 했다. 남편의 대답은 쉽고 편하게 언제나 한결같다. 그렇게 하겠노라고. 한두 번 들으면 알고 포기해야만 되는데 계속 되풀이하는 것은 고쳐나가기 위한 나의 노력이었다. 그런 자신이 한심할 때가 많다.

6. 말하고 대답할 때뿐인 남편을 바라보며 같은 말을 반복하니 자연스럽게 잔소리가 되어갔다. 완벽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뒷소리 듣지 않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특히 함께 사는 가족에게는 더욱 그렇다. 곧 좋아질 거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엄마는 남자가 폭력하고 계집질만 하지 않으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다행히 그런 것은 없다. 부잣집 칠 남매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는 부모님 밑에서 어린아이처럼 자랐다. 나를 무엇이나 받아주는 엄마나 누나로 착각하고 사는 것 같았다.

7. 이혼을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는 양팔에 두 아이를 안고 하늘로 올라간 선녀를 연상하며, 아이를 하나 더 낳으면 도망 못 갈 것 같아서 낳지 않으려 한 적도 있었다. 남매를 데리고 도망갈 보따리를 준비해 놓고 살았다. 세월이 흘러 그렇게 우리 막내하며 등을 두들겨 주던 어른들도 가셨다. 성장한 아이들이 엄마 아빠 이혼하면 자기들도 각각 제 갈 길로 가겠다고 반협박을 했다.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고 학업 중인 아이들을 두고 부모로서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 여겨져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철부지 남편을 잘 다듬어 살아보려고 애쓴 흔적은 없고, 무심하게 흐르는 세월에 우리의 육신은 늙어가고 있었다.

8. 오늘 백 대의 피아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선율이 잘 맞는데 두 대의 인생 피아노는 왜 그렇게 맞추기가 힘들었을까. ‘를 치면 자연스럽게 가 나와야 화음이 되는데 언제 그놈의 도미솔화음이 맞춰질까.

9. 늘 평행선이었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본다. 서로 다른 존재였음을 인식하지 못한 탓이었다. 내 잔소리를 침묵으로 덮어주며 언제나 내 편에 서 있는 남편도 속으로는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는가. 한 번쯤 원망하며 나를 탓하거나 비난을 할 만도 한데 그런 적이 없었다. 피아노의 끊어질 듯 말 듯 하는 선율이 다시 힘찬 음으로 이어지는 소리가 마치 우리 부부의 연이 끊어질 듯 위태하다가 가까스로 이어지는 내 인생의 곡예 같다.

10. 타인들은 유머러스하고 허물없는 성격 때문에 남편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나만 악녀가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자는 부드럽고 과묵하며 가정의 기둥으로 큰 나무처럼 우뚝 서 있어야 하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가사에 대한 책임감은 뒷전이고 혼자 자유분방하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우리 부부가 풍전등화(風前燈火) 같다며 걱정하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자존심 같은 것은 없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일곱 식구의 무게도 버거운데 내 감정의 굴레를 고스란히 끌어안은 힘겨운 사투였다.

11. 밤이 깊어가고 백 대의 피아노도 막바지 연주에 이르렀다. 백 명의 피아니스트들은 이 거대한 선율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했을까. 열광하는 관중들의 환호 소리는 저들에게 위로와 희열의 순간이었으리라.

12. 세월은 구슬을 꿰듯 흘러 자식을 결혼시키고 예쁜 새 생명이 태어나고 우리도 늙었다. 수십 년이 지나고 나니 불협화음을 내던 두 대의 피아노도 거기에 익숙해져 잠잠히 맞추어 간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나의 모든 것을 품고 기다려준 사람이다. 그렇게 좋다던 궁합이 이런 것이었나 싶어 씁쓸하다.

13. 한곳을 바라보며 남은 내 인생 여정은 잔잔한 모데라토로 살아가고 싶다. 저 관중들의 환호 소리에 희열을 느끼는 피아니스트의 마음이 되어 본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강바람이 박수를 보낸다. 막이 내리는 무대를 바라보며 내년에 또 보자고 손을 흔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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