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ṭisaṅkhā yoniso piṇḍapātaṃ paṭisevati – ‘neva davāya, na madāya, na maṇḍanāya, na vibhūsanāya, yāvadeva imassa kāyassa ṭhitiyā yāpanāya, vihiṃsūparatiyā, brahmacariyānuggahāya, iti purāṇañca vedanaṃ paṭihaṅkhāmi navañca vedanaṃ na uppādessāmi, yātrā ca me bhavissati anavajjatā ca phāsuvihāro ca’ [cāti (sī.)].
‘‘Paṭisaṅkhā yoniso piṇḍapātaṃ paṭisevati –
“또한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생각하며 음식을 수용한다. –
14.“그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음식을 수용하나니 –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깊이 숙고하고 현명하게 음식을 수용하니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공양 받은 음식에 대해 올바른 생각으로 관찰한다.
‘neva davāya, na madāya, na maṇḍanāya, na vibhūsanāya, yāvadeva imassa kāyassa ṭhitiyā yāpanāya, vihiṃsūparatiyā, brahmacariyānuggahāya,
‘향락을 위한 것이 아니고, 취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매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이 몸을 지탱하고 건강을 지키고, 상해를 방지하고, 청정한 삶을 보존하기 위해서,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취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치장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단지 이 몸을 지탱하고 유지하고, 잔인함을 쉬고, 청정범행을 잘 지키기 위해서이다.
‘맛을 즐기기 위함도 아니고, 배부르게 먹기 위함도 아니고, 몸을 살찌우기 위함도 아니고, 보기 좋게 가꾸고자 함도 아니고, 다만 이 몸을 유지하고, 건강을 지키며, 상해를 방지하고, 청정수행을 돕기 위함이니,
‘맛을 즐기기 위함도 아니고, 배부르게 먹기 위함도 아니고, 몸을 살찌우기 위함도 아니고, 보기 좋게 가꾸고자 함도 아니고, 다만 이 몸을 유지하고, 건강을 지키며, 상해를 방지하고, 청정수행을 돕기 위함이니,
iti purāṇañca vedanaṃ paṭihaṅkhāmi navañca vedanaṃ na uppādessāmi, yātrā ca me bhavissati anavajjatā ca phāsuvihāro ca’ [cāti (sī.)].
이와 같이 ‘나는 예전의 고통을 끊고 새로운 고통을 일으키지 않고, 건강하고 허물없이 안온하리라’.
‘그래서 나는 오래된 느낌을 물리치고 새로운 느낌을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잘 부양될 것이고 비난받을 일이 없고 안온하게 머물 것이다.’라고.”
이처럼 [배고픔의] 오래된 느낌만 제거하고 [배부름의] 새로운 느낌은 일으키지 않으면서, 나는 생계에서 허물없이 평온하게 머물 것이다’.
이와 같은 바른 관찰로써 배고픔의 오래된 느낌만 제거하고 배부름의 새로운 느낌은 일으키지 않으면서, 건강하고 허물없이 평온하게 머물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수행을 위해 이 공양을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