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전날...
공연 전날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되기도 하고, 자리배치가 바뀌면서 혼란이 야기되었다. 감정적으로는 파편화된 자신을 낱
낱이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업, 우리들이 감정으로 크게 흔들릴 것임에도 불구하고 더 크게 몰아치는 의도된 작업이 나에겐 아주 인상
깊게 다가왔다.
공연이라는 결과물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장치삼아 더 강도 높은 내적인 작업을 이끌어내는 것, 결과를 쫒는 삶과는 달리 앞으
로 나아가는 과정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하며, 우리가 왜 이 작업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목적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모든 고된 노력의 목적이었다.
감정적으로 압도되는 상황에서조차도 중심을 잡고 내적인 struggling 상태를 견디며, 안간힘을 쓰는 일상 또한 공연의 시작과정인 듯 했다.
나는 이번 공연춤에서 특히 기도 춤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풀라님은 Player October 21을 추는 우리들을 보며, 중요한 무언가,
춤의 토대가 약하다는 말과 함께 나를 프레민 뒤로 보냈다. 그 순간 내면에서 나 자신을 평가하며 그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얼어붙었다.
그러면서도 각도를 45도만 바꿨을 뿐인데 완전히 느낌이 다른 춤을 연출할 수 있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충격들은 나의 껍질을 볼
수 있게 해줌과 동시에 춤을 너무나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에 불을 지폈다.
이 과정에서 다시금 내가 보야할 하나의 껍질을 보게 된다. 프레민이나 하미다를 보며 둘째 동생을 투사하게 되고, 비교와 열등감 속에서 '불
필요한 존재는 버림받는다'는 어린아이의 절망감'을 느끼며 퇴행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그것이 하나의 에고임을 자각할 때마다
처음에는 흔들렸지만, 다시 집중하며 춤에 대해 고민하고 에너지를 모았다. ‘진싱’처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거나 평가하든 중요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아미타는 안다. 아미타는 무브먼트를 사랑하며,이 순간 무브먼트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춤 속에서 나는 존재한다.
● 공연 당일 ...
공연장에서 문득,“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가?”라는 내면의 질문이 일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그것은 내가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고요함이나 이완된 삶보다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처럼 긴장감이 흐르는 삶에 익숙했다. 늘 자극적인 이벤트를 찾아다니며 그 안에
서 생의 강렬함을 확인하려 했던 때가 많았다. 그러나 무브먼트를 만나고 난 후, 그 에너지는 더 이상 파괴적으로 소비되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것을 아름답고 창조적인 삶의 형태로 전환시켜 살아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우리는 대기 중이었다.
숨소리마저 긴장으로 얽혀 있던 그 순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걸까?' 이내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어차피 관객은 대부분 지인이나 가족들이고, 늘 하던 춤을 공연 형태로 올리는 것뿐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몸은 굳어 있었고, 심장은 요동쳤
다. 순간 내가 살아있다고 느꼇다. 긴장은 나를 불안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있음도 동시에 느끼게 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느낀 두근거림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가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하는 순간의 진동이었다. 그때 나는 ‘두려움
조차 나의 에너지’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앞 줄에서 춤을 췄기에 더 긴장하고 의식할 수 밖에 없었던 춤들이 아직 여운이 깊게 남는다.
● Lost Loves
첫 번째 춤이 끝나고, 가장 걱정되었던 Lost Loves의 차례가 다가왔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충분한 스트레칭을 해야 했지만, 굳은 채로 무대 위에 올라 더 긴장되었다. 긴장이 될수록 몸은 더 흔들렸다. 그럴수록
힘을 더 풀어야 했고, 의식을 몸으로 가져와 더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춤은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위에는 힘을 주되, 나머지는 힘을 빼야 한다는 삶의 균형을 가르쳐주었다.
의식적으로 이완이 되면 더 크게 확장이 되고, 더 많은 것들을 만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중심은 쉽게 흔들리고, 과도한 힘은 오히려 균형을 무너뜨린다.
힘을 주는 곳과 빼야 하는 곳이 공존해야 비로소 하나의 춤이 완성되는 것처럼, 삶도 마찬가지다.
분열된 의식을 한곳으로 모아 통합할 때,비로소 ‘살아 있는 춤’이 된다.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안정’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끊임없는 미세한 흔들림 속에서 깨어있음을 유지하는 행위인가?
춤을 추며 균형은 정지된 평형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깨어서 자신을 조율하는 의식의 움직임일 수 있음을 느꼈다.
춤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땅과 맞닿은 발바닥의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공연장 나무 바닥이 미끄러운 탓에, 발가락으로 온 힘을 다해 바닥을 꼬집듯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의식을 호흡에 두고 길게 숨을 내쉬며 카
운팅에 집중했다.의식을 지금 이 순간, 내 중심으로 데려오기 위한 시도를 계속했다.
두 번째 사이클 때는 점점 더 다리를 드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지만 하체의 영향을 받지 않은 듯, 팔과 머리를 카운팅에 맞춰서 고요히 움직
이며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작년과 달라진 점이다.
몸을 하나에서 여러개로 나눠서 인식하게 되고, 움직임을 달리 할려고 의식을 모을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나의 내면은 물론 주변의 흔들
림에도 기계적으로 바로 동요하지 않고, 실수를 하더라도 오랫동안 자책하지 않으며 다시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힘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
다.그 순간의 목표는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샨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몸을 떨며 중심을 잡으려는 그녀의 모습에서 엄청난 생
명력을 느꼈다.
삶과 죽음 앞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도 한 다리로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달마님의 말씀처럼, 절망 속에서도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 Old 21
Old 21은 다른 춤들과는 달리 한쪽 다리로 발란스를 맞추면서 동시에 느리며 섬세한 transition을 이끌어내야 하는 춤이다.
작년 공연 당시, 비슷한 춤을 추면서 한쪽 다리를 들지 못했던 충격을 경험한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그렇기에 Lost Loves와 Old 21처럼
균형 잡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춤을 출 때 맨 앞줄에 선다는 것은 나에게는 피하고 싶은 상황이자 정면으로 맞이해야 할 최고의 도전이었다.
작년 옥타브춤 보다 더 바짝 다리를 올려야 하거나, 왼쪽 다리로 계속 버티고 있어야 했기에 당연히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하지만,작년보다
두려움은 줄어들었고, '할 수 없음'의 순간들이 더이상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 강렬한 경험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 나아
가는 힘을 길러 주었다. 삶에서도 포기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계속 나아가야함을 배우게 된다.
마두라와 마주보고 나란히 춤추던 순간, 긴장 속에서도 ‘함께 한다는 것’의 깊은 울림과 든든함이 느껴졌다. 네번째 파트에서 조금 더 앞에
있던 마두라와 dragging하는 팔이 서로를 향할 때 오른쪽에 있던 내가 마두라 앞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바로 내가 마두라 뒤로
팔을 보내고 마두라도 팔을 내 앞으로 보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공명하면서 움직임이 부딛치지 않고 맞아떨어졌다. 무대 위의 그 짧은
교감 속에서, 나는 존재의 아름다운 진동을 들었다.
● Exercise of the Ol Bog Mek Brotherhood
'월링 꼴찌'였던 나는 공연 5회차만에 맨 앞줄에 서 있었다. '월링'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비틀거리며 돌고 또 돌며 고민 했는지 모른
다. 계속 돌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어지러움도 사라졌다. 이 춤은 나에게 '계속 해나가는 노력은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삶에서 열등감이나 좌절감이 올라올때마다 '될 때까지 노력하면 실패는 없다'는 말을 되뇌이곤 했다. 그 과정속에 내가 있고, 그런 나를 나는
지켜보고 있다.
바로 옆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의 춤 에너지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감동적이였다. 단순한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이 무중력속에 춤을
추듯 고요했고, 선비의 움직임처럼 기품이 있고 선녀처럼 우아함이 느껴졌다.
이 에너지는 도대체 무엇일까?
너무나 깃털처럼 가벼우면서도 정교했고, 속도감이 일정했다. 아직은 이해할 수도 따라할 수도 없었지만, 너무나 알고 싶은 열망에 올라왔
다. 특히,카운팅을 하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데 긴 상의 자락이 휘날렸던 월링의 순간, 너무 행복했고 자유로움을 느꼈다. 신나서 더 돌고 싶었지만, 6번 파일이라 짧게 끝나버렸다는 점이 오히려 아쉬웠다. 이 순간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소중히 그려넣었다.
● 공연이 끝나고...
월요일 아침, 사람들은 “주말 잘 쉬셨어요?”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러나 워크샵을 마치고 맞이하는 일상 속의 첫 날은 체력적 한계를 느끼게
되곤 한다. 특히 연휴가 길고 공연 다음 날이라 더했던 것 같다.
남들은 휴식과 여행으로 재충전할 때,우리는 주말마다 캐리어를 챙겨 집을 나섰다.
무엇이 우리들, 구르지예프 무브먼트 댄서들인 우리들을 움직여가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저 고통에서 벗어나 좀더 편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길을 나섰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계속해서 나를 알아가고 있고, 그 알아감 속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모아가고 있다.
스승 구르지예프는 말한다.
“자신을 훼방하는 여러 욕구들과 투쟁한다면, 인간은 점차 자신의 내적 세계를 변환시켜 하나의 단일한 전체로 만들어나가는 불을 창조할
수 있다.”
나는 그 불을 원한다.
한 순간이라도 온전히 깨어 있고 싶다.
한 순간이라도 온전한 나를 만나고 싶다.
단 한 순간이라도 ‘나 (I)'로서 존재하고 싶다.
이 여정, 커다란 고통 그리고 강도높은 노력을 요하는 이 길 위를 내가 뒤돌아봄 없이 계속해서 걸어가는 이유는
‘진리로 인해 자유로워지는' 존재성에 도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불, 더 이상 이 불은 나를 태워 없애는 파괴의 불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변형의 불이다.
그 불 속에서 나는 오늘도 춤을 춘다.
살아 있음의 진동 속에서,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