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모의 효능

작성자오유식목사|작성시간11.03.23|조회수928 목록 댓글 0

해약본초(海藥本草)에 보면 선모에 대하여 "기엽사모(其葉似茅), 구복경신(久服輕身)" 이라고 쓰여 있다.

 

다시 말하면 "선모의 잎사귀는 띠뿌리(茅草)와 비슷한데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진다" 는 뜻이다.

 

몸이 가벼워져 신선(神仙)과 같이 되므로 신선이라는 선(仙)자를 따서 선모라고 이름을 붙였다. 인도의 파라문 중이 당나라 현종(玄宗)에게 바쳤다는 한약이다. 그래서 일명 "파라문삼" 이라고도 부른다. 보신강장(補腎强壯)의 공효가 인삼과 비슷하기 때문에 삼(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모는 당나라 때 인기있는 한약으로 사용되었다. 서기 907 년 당나라가 멸망한 후 북방 중원(中原) 지대에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의 다섯 개 왕조가 나타났다. 이때를 오대(五代)라 칭한다. 오대는 서기 907 년 부터 서기 960 년 까지 겨우 53 년간 존재했었다.

 

오대 중 후당(後唐)의 균주(筠州) 자리(刺吏) 왕안(王顔)이 쓴 속전신방(續傳信方)에 보면 인도의 파라문 중 들이 복용하는 선모방은 보익장양의 공효를 "종유석(鐘乳石) 열 근으로도 선모 한 근의 효과에 미치지 못한다." 고 평가했다. 선모방은 인도의 파라문 중들이 개원(開元) 원년에 당명황(唐明皇)에게 진공(進貢)한 처방이다.

 

고인들은 선모를 장복하면 장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선모의 근경(根莖)을 약재로 사용하는데 성미(性味)는 신(辛), 열(熱)이며 신경(腎經)으로 들어간다. 신양(腎陽)부족과 양위(陽 痿)와 조설(早泄)을 치료하며 부녀자들의 갱년기 고혈압을 치료해 준다.

 

선모 복용 후 중독증상인 설종창(舌腫脹)이 생기면 대황(大黃)과 원명분(元明粉)으로 해독시키거나 삼황탕(三黃湯)을 사용하면 해독된다. 선모의 감미감(甘味)는 양육(養肉) 해주고 신미(辛味)는 양절(養節) 해주며 고미(苦味)는 양기(養氣) 해주고 함미(咸味)는 양골(養骨) 해주며 활성(滑性)은 양부(養膚)  해주고 산미(酸味)는 양근(養筋) 해주는데 술에 담구어 마시면 효과를 본다.

 

전설에 의하면 팽조(彭祖)가 800 살 까지 살았다는데 선모를 상복(常服)했다고 한다.

 

팽조의 선모 복용방법은 "이죽도할절(以竹刀割切), 나미감침오일나(糥 米浸五日), 거적수(去赤水), 출독후무방송(出毒後無妨損)" 인데 다시 말하면 "대나무 칼로 선모를 긁어 쪼개어 찹쌀 뜨물에 5 일간 담구어 빨간 물을 우려내고 나면 독이 없어져 인체에 해가 없다" 는 뜻이다.

 

보신장양 약물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이 터무니 없는 말을 하는데 예를 들면 선모와 선령비(仙靈脾)와 같은 한약의 공효를 두고 하는 말이다. 특히 방사(方士)들의 터무니 없는 말에 세상 사람들은 현혹되었다. 당나라 때 사람들이 종유석과 선모와 선령비를 많이 복용했는데 자살행위와 같았다. 벌을 받아 마땅했다. 보신 장양약을 잘못 복용하고 남용하여 병을 치료하려다 치사한 경우가 많았다고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모든 한약이 병을 치료할 수 있지만 인체를 상하기도 한다. 보신장양 약도 마찬가지이다. 선모는 보신장양 약이다. 성(性)이 온조(溫燥)하며 성욕을 증진시켜 준다. 음허화왕(陰虛火旺)인 사람과 무더운 여름철에 사용주의를 요한다. 만일 정욕(情欲) 만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장양약을 계속 복용한다면 자기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며 그 화는 면할 길이 없다.

 

북송(北宋)의 과학자 심괄(沈括 : 서기 1031 년 - 서기 1095 년)의 저서 몽계필담(夢溪筆談)에 선모의 공효(功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하문장공(夏文庄公)은 보통 사람과 다른 체질을 갖고 태어났다. 잠자는 모습을 보면 온 몸이 얼음장 같이 차서 죽은 사람과 같이 생겼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즉시 온 몸은 따스해 진다. 그리고 그는 행동이 아주 민첩하다. 그는 선모와 종유석과 유황을 상복한다. 괴질도 없어지고 고수(高壽)를 누리고 있다. 이웃에 살고있는 소관리(小官吏)는 살집이 없고 양(陽)이 성한 체질인데 하문장공이 복용하는 약을 남몰래 훔쳐 복용하여 보았다. 얼마 후 온 몸에 궤양이 생겨 결국  죽고 말았다." 고 기록되어 있다.

 

명나라 제 9 대 왕 효종(孝宗) 때 어떤 사람도 선모를 복용하고 그 이튿날 죽은 사례가 있었다. 그 당시 장필사(張弼寫)란 시인은 이 광경을 보고

 

"어제까지도 기운이 펄 펄 하던 사람!

오늘은 간데 없고 조객(弔客)들이 비문(碑文) 앞에서 그의 명복(冥福)을 비누나!"

 

라고 시를 읊었다. 이 시詩는 선모가 자기 체질에 맞으면 장수할 수 있지만 체질과 맞지 않으면 죽음을 재촉한다는 것을 의미해 주고 있다.

 

선모가 한약재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1200여 년 전 이다. 당나라 때 이순(李珣)의 해약본초(海藥本草)에 "선모는 풍기(風氣)를 치료하고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해주며 5 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남자들의 오로칠상(五勞七傷)을 치료해 주며 눈과 귀를 밝혀 주고 골수를 채워주며 장복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안색이 좋아진다." 고 기록되어 있다.

 

이순의 할아버지는 패르샤(Persia) 사람인데 당나라 희종(僖宗 : 서기 875 년 - 서기 888 년) 때 촉(蜀)나라에 들어와 살면서 향약방(香藥房)을 경영하였다. 그 당시 향약(香藥)은 주로 외국에서 수입해 왔기 때문에 해약(海藥)이라고도 불렀다. 서기 1935 년 이전에는 이란(Iran)을 페르시아라고 칭했다.

 

해약본초는 남송(南宋) 말년까지 전해 내려오다가 분실되었으며 증류본초(證類本草)와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일 부분이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해약본초에 수록되어 있는 약물은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되었거나 해외에서 이식하여 재배한 것들이다. 이 책중에 기록되어 있는 신라(新羅)에서 수입한 한약재는 인삼을 비롯하여 곤포(昆布)와 백부자(白附子)와 청향목(靑香木)과 빈랑(檳榔) 등이다.

 

송나라 개보(開寶) 6 년서기 973 년)에 태조 조광윤(趙匡胤)이 한림의관(翰林醫官) 유한(劉翰)과 도사(道士) 마지(馬志) 등에 명하여 편찬된 개보본초에 보면 "선모를 장기 복용하면 정신이 맑아져서 기억력이 증진되고 근골을 튼튼하게 해주며 피부에 윤기를 더해 주고 눈을 밝혀 주며 남성의 양도(陽道)를 증진시켜 준다." 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당나라와 송나라 때 보익연년(補益延年) 해주고 장양조욕(壯陽助欲) 해주는 한약을 사용하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선모는 인기있는 한약이었다.

 

그 당시 민간에서 선모를 열 번 쪄서 아홉 번 햇볕에 말린 다음 엿속에 파묻어 놓고 매일 아침 공복에 차로 끓여 마시거나 고기와 함께 쪄서 먹었다. 그 결과 정신이 맑아지고 머리카락이 검어졌다고 한다.

 

명나라 때 이시진은 본초강목에 "선모의 성(性)은 열(熱)이며 삼초(三焦)와 명문(命門)에 이로운 한약이다. 양기(陽氣)가 부족하고 체질이 약한 사람에게 이로우나 신체가 강건하고  양기가 충만한 자가 선모를 복용할 경우 체내에 화(火)가 동(動)한다." 고 간단히 기록해 놓았다.

 

귀주(貴州) 민간요법을 소개한다. 남성들의 양위(陽痿)에 선모 15 그램과 금앵자(金櫻子) 15 그램을 삶은 고기와 함께 복용한다. 노인들의 유뇨(遺尿)에 선모 500 그램을 술속에 담구어 두었다가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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