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죽(둥굴레)의 효능

작성자오유식목사|작성시간11.03.24|조회수478 목록 댓글 0

백두대간이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며 내달리다가 마지막 기를 모아 빚은 영산이 경남 양산의 천성산이다.
높이812m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막상 산속에 들어가면 겉보기와 딴판이다.
깊고 그윽하기가 어떤 고산에 못지않아 4백종이 넘는 희귀 약초가 자생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천성산을 영산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옥죽이다.
회춘의 영약으로 도가의 선인들이 주식으로 먹는다는 옥죽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에 자라지만 천성산이 옥죽의 본산이다.

신라시대 고승 원효(617 ~ 686)가 옥죽의 효능을 직접 드러내 보였다는
고사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송이, 복령 등과 마찬가지로 인공재배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온
옥죽이 인공재배가 세계 최초로 성공,
현재 이산의 기슭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효는 의상과 함께 661년 당나라로 구도의 길을 떠났으나
도중에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한다'는 깨달음을 얻어
의상과 헤어져 혼자 되돌아왔다.

천성산에 들어간 원효는 원효암을 창건하고,
옥죽을 채취해 먹으며 수도에 전념했다.
당시 원효는 도가에서 전해오는 비법대로 옥죽을 9변 찌고 9번 말리는
구증구포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높은 도의 경지에 이른 원효에 대해 소문을 들은 당나라 승려 1천명이 찾아왔다.
원효는 이들에게 주식으로 옥죽을 먹이며,
화엄경을 가르쳐 모두 성인이 되게 만들었다.
그 뒤부터 1천명의 성인이 나온 산이라는 뜻으로 천성산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봄에 흙을 뚫고 새순이 올라오는 옥죽은 마치 잘생긴 죽순과 같고,
이를 왕들이 즐겨먹었다고 해서 옥죽이라고 불린다.

서양에서도 '솔로몬증표(Seal)라며 신비스러운 약초로 여겨왔고,
중국에서는 산삼보다 뛰어난 영약으로 쳤다.
고고한 기품이 신선과 같다고 해서 신선초라는 별칭도 갖고 있고,
진황정이라고고 한다.
식물이름으로는 '둥글레'인데 약초로 다룰 때는 옥죽이라고 한다.
백합과의 다년초인 둥굴레에는 용둥골레, 왕둥굴레, 죽대 등 수십 종류가 있으나
용둥굴레의 약효가 가장 뀌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죽은 뿌리, 줄기, 잎, 열매, 꽃 등 어느 부분도 버릴 것 없이
식용 또는 약용으로 사용하는데,
특히 뿌리에 유효성분이 많다고 한다.
신선들이 밥 대신 먹었다고 해서 '신선반'으로도 일컬어지는 옥죽은
'황제내경' '한약집성방' '동의보감' 등 옛 한의서에
신비스러운 효능이 전해온다.

'백발노인도 장복하면 소년 같은 젊음을 되찾는다'
'3백일을 먹으면 귀신을 볼 수 있을 만큼 맑아지고 신선이 돼 승천한다'
'상약중의 상약으로 으뜸이 옥죽이며, 인삼은 4번째다' 등의 내용이다.

옥죽의 인공재배법을 개발, 천성산 기슭인 경남 양산군 웅상읍에서
옥죽차, 옥죽국수, 옥죽죽, 옥죽비누 등을 생산하고 있는
(주)선농원 이의상 사장(53)은 '산돼지와 노루가 험한 계곡을
지치지 않고 뛰어다니는 힘도
옥죽 뿌리를 파먹기 때문에 나온다'고 밝혔다.
예로부터 식량이 떨어졌을 때 옥죽을 구황식품의 으뜸으로 쳤던 것도
옥죽이 단순히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데 그치지 않고,
힘이 솟아나게 하는 기 식품이기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12세부터 약초공부를 시작, 한때는 승려가 돼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과 전래의 생약비법을 연구한 그는
자신이 옥죽으로 죽음직전에 살아난 경험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산속에서 알 수 없는 병으로 죽게 됐는데,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3개월 동안 옥죽을 먹었더니 씻은 듯이 낫더라는 것이다.
그가 미인을 만나 결혼하게 된 것도 옥죽 덕분이라고 한다.
산중에서 생활할 때 등산 온 청년을 우연히 만나
그의 누나가 뇌막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처녀와 옥죽으로 병을 고치면 결혼하자고 약속했다.
결국 병을 고쳤고, 그 처녀는 현재의 부인이 됐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사실이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일본, 미국 등에서 천성산 옥죽을 많이 수입해 가고 있다.
자연산이든 인공재배든 중국산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효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천성산은 이제 국내는 물론 세계의 옥죽 본산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것이다.


---  옥죽차 제조비법  ---


맥이 끊겼던 옥죽차의 제조 비법을 30여년 연구끝에 되설려낸 선농원 이의상씨는 옥죽차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고 밝혔다.
일반 약용은 뿌리를 씻은 다음 20~30분 동안 쪄서 그늘에 7~14일간 말리면 되지만, 차를 만들 때는 4~5년 자란 뿌리를 깨끗이 씻어 5시간이상 쪄야한다.
이를 식힌 뒤 1시간동안 다시 가열, 섭씨 80도로 5시간에 걸쳐 건조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9차례 되풀이하는 것이 구증9포이다.
구증구포는 쓴맛과 독성을 제거하고 식물이 가진 효능을 최대치로 높여주며 인체에 흡수가 잘 되도록 하는 전래의 방법이다.
구증구포한 옥죽을 적당한 온도에서 볶음과정과 숙성과정을 거쳐야 옥죽차가 만들어진다.

옥죽에는 인슐린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도 흡수되는 자연 중성당이 함유돼 당뇨병 환자가 옥죽차를 계속 마시면 혈댱치가 눈에 띄게 내려간다고 한다.
옥죽차를 3개월만 마시면 차멀미를 하지 않게 되고, 여드름과 기미가 사라지는 효과도 나타난다고 한다.
음주 전후에 마시면 배가 쓰리고 뒤틀리는 증상이 없어진다.
또한 옥죽술은 완전히 익으면 알코올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 피부미용제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를 바르면 거친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손발이 저리는 증상이 없어지며, 창백한 안색이 불그레하게 화색이 돈다.
최근에는 옥죽의 임상치료효과가 밝혀져 암 치료의 보조제로도 사용되고 있다. 특히 위암 환자가 어떤 물을 마셔도 토하는 경우, 옥죽차를 마시면 토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양의햑에서 신경통, 관절염, 류머티스, 습진, 협심증, 신장질환, 근육질환 등의 특효약으로 여기는 부신피질호르몬제와 유사한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부작용이 전혀  없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방에선 .....

예로부터 왕실에서는 옥죽을 불로장수 식품의 대명사로 여겼다.
여인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뜻으로 송나라 의약서 '증류본초'에는 여위(女萎)라고 기록된 옥죽의 새순은 매년 봄 임금은 물론 왕비와 대왕대비 등의 수라상에 빠짐없이 올랐다.
고종황제의 섭생담당 내시였던 李載祐 는 '왕실에서는 옥죽으로 만든 음식을 선식으로 여겨 옥죽나물 옥죽떡 옥죽술 옥죽미숫가루 옥죽차 옥죽엿 옥죽화채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고 전했다.
새순으로는 나물을 무쳤고, 꽃으로는 화채를 만들었다.
뿌리는 九蒸九포해서 차를 만들거나 솥에 쪄서 말렸다가 가루를 낸 뒤 찹쌀과 섞어 떡을 만들었다.
뿌리를 흐르는 물에 씻어 고약같이 곤 뒤 볶은 검정콩가루와 섞어 석간수와 함께 끼니마다 2술씩 먹기도 했다는 것이다.
옥죽술은 옥죽가루 5되를 찹쌀 5말로 지은 고두밥과 누룩으로 빚는다고 했다.
뿌리와 줄기를 된장이나 고추장에 박아 장아찌로도 먹었고,
옥죽엿은 별미로 쳤던 호박엿보다  훨씬 귀하게 여겼다.

'동의보감'의 저자인 許浚은 '옥죽이 오장을 편하게 하고 갈비뼈와 다리의 힘을 튼튼하게 한다'며, 직접 옥죽으로 약을 지어 왕실에 올렸다고 했다.
'의방유취'하는 한의서에는 '옥죽을 장복하면 精水(호르몬)가 보충돼 늙지 않고, 노환에 걸리지 않는다' 고 했다.
왕실에서는 이에 따라 옥죽과 구기자를 같은 분량으로 섞어 떡을 만들어 햇볕에 말린 다음 불에 조린 밤꿀로 반죽하여,
녹두알 크기의 알약으로 빚어 한번에 30~40알씩 탁주나 더운물로 먹었다고 했다. 노랑병(결핵)에 걸린 궁녀나 내시에게도 이 알약을 주어 사가로 내보내 회복시킨 뒤에 재입궁을 허락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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