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西安) 가족 여행기
1일(10월 29일)
오래만에 아들 내외와 손자 성재(省在)(초등 4년)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나라 말로 서안(西安)이고 중국어로 시안(Xi’an)인 것 같다
중국은 첫 번째 북경 만리장성 장가계 원가계 다녀온지 어년 이십년이 된것 같다 서울에서 단독 미니 전세버스로 이동하여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신고를 마쳤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20분 동안 탑승 서안에 도착하여 쉐라톤 시안 노스시티(Sheraton Xi’an North City) 호텔 혹은 서안 씨라이당따지우디엔(西安赛瑞喜来登大酒店) 28층 복층 2801호 짐을 풀었다
1384년에 설립되었다고 하니 역사가 깊은 것 같다 1582년 중수가 거듭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대식 건물이 깨끗하였다
25층에서 스카이 라운지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보니 우리나라와는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간격이 조금 좁고 구조가 다른 것 같다
야경 구경으로 영녕문(永寧門)을 관람 용마루와 처마 서까래까지 네온 조명이 한층 돋보였다 지하철역 4번째 하차 도보로 갔다 관광객도 많았다
오늘 일정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다
2일 (10월30일)
3000년의 역사를 지닌 시안은 12차례 걸쳐 나라의 수도였다 가장 번창했던 당나라 때는 장안(長安)이라 불렸는데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계획적인 성곽도시를 이루어 멀리 서방에 까지 그 이름이 알려졌다 당나라의 쇠퇴와 함께 장안도 파괴되어 쇠태하였다 산시성 위수분지에 위치하고 서역이 길목인 깐수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지다 마르코 풀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시안을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라 기술하였다 심오한 역사적 의의와 풍부한 역사 유적이 남아 있는 시안을 천연 역사 박물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관람 ( 1호. 2호, 3호 지하에 전시)
1974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다고 한다 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진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데 진시황의 명령에 의해 그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병마용 갱은 세계 제8대 불가사의 라 칭송되고 있으며 내부에서의 사진도 허용되었다 3개의 전시관으로 되어있다
입구를 기점으로 연결되어 있다 발굴이 상당 부분 끝난 1전시관과 달리 2. 3전시관의 경우 활발이 진행 중이다 삼엄하게 정복을 입은 관리인 군데 군데 경비를 하고 있었다 유명한 진시황 구리 마차는 진열관에 진열되어 있다
진시황릉(進始皇陵)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제인 진나라 시황제의 능묘로 즉위한 얼마 안되어 건조하기 시작해 천하를 통일한 후 수형자 70만 명을 동원하여 만들었으며 완공하는 데 36년이 걸렸다 현재는 발굴이 멈춘 상태이다 황릉 위에는 석류나무가 가득하고 사위에 백양나무가 이중으로 둘러져 있어 하나의 야산으로 보인다 주변의 둘레가 25km나 되는 거대한 무덤이라 한다 서틀 버스 가이드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으므로 입구까지만 보고 돌아 왔다 최초로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진사황제가 시안인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유적이 수많은 여행객을 불러모은다
길거리에 상인들이 석류즙을 믹셔로 갈아 음료수로 판매하고 있었다
화청지(華淸池)
리산(鸝山)의 산록에 있는 3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온천지역이다 역대 제왕이 행궁 별장을 세워 휴양했던 곳이며 당나라 말엽 양귀비와 현종이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오늘의 화청지는 정자와 누각 온천이 아늑한 정취를 이루어 관광객이 끊임없다 이 안에 있는 우지앤팅(五間廳)은 1936년 중국 근대사 가장 전환점인 공산당과 회견을 위해 이곳에서 머물던 장개석(蔣介石)는 자신의 보호자로 믿었던 장쉐랑(張學良)에게 체포당해 공산당과 협상을 해야만 했다
이를 통해 괴멸위기의 공산당은 기사회생하고 결국 중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지금도 수십간의 목욕 및 수영장 넓이와 온천물이 보얕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배수처리로도 잘되어 있는 것 같다
광장에 양귀비(楊貴妃) 무희로 된 동상이 군데 군데 있었다
양귀비는 중국 4대 미인 가운데서 가장 신비한 느낌을 주지만 가장 비극적인 끝을 맺은 여인이다 당나라 최고의 문화 번성기를 만든 현종의 애첩였지만 안녹산의 난 때 죽음을 강요 당했다 시안에서 60km 떨어진 싱핑현(與平縣)에 양귀비 묘는 진묘가 아니라 옷가지를 묻은 의관총이라 한다
저녁식사는 한식집 삽결살 구이로 먹고 공연장으로 버스를 타고 가며 날씨가 매우 살살하였다
장한가 공연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배경으로하는 버라이어티쇼(variety. show) 대규모 야외 뮤지컬 공연으로 화청지(호수)의 아름다운 무대로 이어졌다
난생 처음 이런 관람 처음이라 또 한번 놀랐다 숙련된 무희들 조명 인공적으로 만든 별들 조형물 뛰어난 연출자가 아닌가 싶다 가이드가 제일 잘보이는 좌석을 애매하여
2시간 공연이 끝나니 밤 10시가 넘어서 숙소로 왔다
3일(10월31일)
대안탑(大雁塔)
당 태종 때인 628년 황태자가 모후인 문덕황후를 위하여 남팔지라(南八支里)에 세운 고찰이다 이 절은 삼장범사(현장)가 머물렀던 곳으로 고종 때인 652년 삼장법사의 발원으로 7층 전탑 따엔타(大雁塔)가 건립되었다
이 탑은 기단의 각 변이 42m 높이가 54m에 이르는 서역식 불탑으로 각 층마다 사리를 봉인하였는데 그 후 삼장법사의 전기인 자은전(慈恩傳)과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및 명상(暝詳)의 대당고삼장현장법사행상(大唐故三藏玄奘法師行狀)등의 서책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당나라 말 전란으로 거대한 절은 불타고 끝머리에 있는 따엔타만 남았다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검물이 들어서고 있다 따엔타에 올라가면 시안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계단이 비좁고 해서 올라가지 못했다
서원문거리 (書院門 거리)
서울에 인사동 거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기념품 구매 인형 병마용 모형 도장 붓종류 다양하였다
아호(雅號)를 새긴 옥(玉)인장을 하나 구입할려고 망설이다 그만 두었다 아쉽다
비림 박물관(碑林 博物館)
비림(碑林)박물관 한자로 碑자가 밭전자위에 점이 하나 없다
당나라(618ㅡ907) 원나라(1271ㅡ1368 명나라(1368ㅡ1644) 청나라(1644ㅡ1912) 역대 인물들 비석을 보수 보관하고 있었다 중화민국 1912ㅡ현재 대만 통치유지 중화인민 공화국 1949ㅡ 현재의 중국
정확한 연대 짧은 지식으로 알수 없었다
당나라.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현재의 중화민국
특히 당나라. 명나라. 청나라.는 조선을 속국이라 칭하여 침략을 하여 괴롭혔다
대당부용원(大唐芙蓉園)
일층은 어원문(御苑門) 2층은 대당부용원은 당나라 황실의 정원이였다 야간 조명이 화려하고 새장에 앵무새도 여러마리가 있었다 날씨가 겨울같이 살살하고 조금 추웠다
관광객 편의를 위해 서틀버스(shuttle, bus)를 운행하여 전망대에는 승강기(elevator)
가 설치되어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광장에는 인공폭포도 관람하였다
돌아오면서 저녁은 한식소고기 불고기집에서 식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4 일(11월 1일)
모든 일정 끝나고 집으로 가는 날이다
가이드와 약속시간이 남아 호텔 뒷골목 구경을 내자와 함께 구경 갔다
식료품 상회있고 거리는 혼잡 깨긋하지는 못했다 이것 만은 배워야 한다
애완견은 보이지 않아 좋았다 교통질서 잘 되어 있지 않아 사람 따로 차량 따로인 것같다 눈여겨 보아도 현대차 기아차 한 두 대 밖에 보이지 않았다 병원과 약국도 보이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출발시간 30분전 손자 휴대폰 가방이 없어져 야단법석을 떨었다
할머니가 응접세트 뒤 등받이 속에 떨어진 것을 찾아 천만 다행였다
인천 공항 편의점에서 저녁을 먹고 잠실(蠶室)로 가면 2시간 소요 인천공항에서17:20 대구행 고속버스 이용하는 것이 시간 단축되니 공항버스를 이용하여 21:50 동대구역 터미널에 무사히 도착 찬우가 차량으로 마중나왔다
아들 내외 성재께 고마웠다
무사히 여행마치고 돌아와 하느님께 감사 묵주기도 드렸다 주님 감사합니다
2025.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