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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좋은글

칭찬 받는 자

작성자첫사랑(이경재)|작성시간08.06.14|조회수22 목록 댓글 0

칭찬 받는 자
본문 : 행 16 : 1 - 5 2008/06/15주일 낮


바울은 3차례의 선교여행을 했는데, 두 번째 선교여행 중, 루스드라라는 지역에서 정말로 귀한 젊은 사역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가 바로 바울의 평생 동역자요, 믿음으로 나은 아들 디모데입니다. 디모데가 어떤 인물인지 오늘 본문은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이 구절에 우리는 신앙의 열매이자 인생 성공의 비결이라 할 수 있는 귀중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 성공 비결은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께 칭찬 받고 사람에게 칭찬 받는 자가 되면 반드시 그 사람은 성공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칭찬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역시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실 때의 공통점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겸손한 사람을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로 택했을까요? 믿는 형제들로부터 칭찬 받는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겸손하면 칭찬을 더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칭찬을 더 받아 보겠다고 자기를 높이다 보면, 오히려 그 순간에 칭찬을 잃어버리고 자기 영혼마저 망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 오게 됩니다.

오늘날처럼 상처와 갈등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할지라도 나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존귀한 자라는 의식이 필요해요.
그러나 진지한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진지한 자기 사랑과, 자기도취와는 구분해야 합니다. 진지한 자기 사랑은 삶을 넉넉하고 풍요로운 인생으로 인도하지만, 불필요한 자기도취는 결국 자기 영혼을 죽이는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 이야기를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나르시스는 어찌나 용모가 아름답고 멋있었던지 뭇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자신의 잘생긴 외모에 도취되어 우쭐되며 자아도취의 착각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는 자기 외에는 아무도 인정하지 못하게 되었고, 마음도 열어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불행은 시작됩니다. 마음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인생의 큰 불행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남 청년 나르시스의 불행은 바로 마음을 줄 대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청년이 연못가에서 놀다가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됩니다. 그는 놀랐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까?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온 정신을 홀려 버린 나르시스는 아름다운 그 모습을 잡으려고 애를 쓰는데 잡히질 않습니다. 그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습니다. 나르시스는 눈물을 흘립니다. 나르시스의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연못에 뚝 떨어져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러자 연목 속에 있던 그 아름다운 모습이 갑자기 흔들리며 사라집니다. 너무나도 당황한 나르시스는 파문 속으로 헝클어지며 사라지는 그 모습을 잡으려고 몸을 날립니다. 결국 그는 연못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지나친 자아도취로 인해 몸과 영혼이 피폐해 져 가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전부 틀렸다고 하는 것도 일종의 나르시시즘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 문제의 원인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만 돌리는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도,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기 보다는 “그래 맞아. 저 얘기는 지금 누구한테 딱 맞는 말이야”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게 닥쳐오는 거의 모든 문제는 대게 자신에게서 먼저 비롯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나르시시즘은 ‘있는 자’에게도 있고 ‘없는 자'에게도 있습니다. 우월감 속에도 있고, 열등감 속에도 있어요. 오히려 열등감 속에 숨겨있는 나르시시즘이 더욱 무서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나르시시즘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있는 자의 교만과 특권의식은 당연히 버려야 하지만, 없는 자의 고집과 배타적인 태도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반복해서 “깨어라”고 말씀합니다. 쉽게 말해서 “꿈 깨라”는 말입니다. 그 의미는 비전을 가지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척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제 깨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꿈속을 헤매듯이 뜬 구름을 잡는 일에 소진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현실을 바로 보고, 낮아지고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정 칭찬 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둘째, 칭찬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명을 따라 책임 있는 삶을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을 따라 어려운 전도자의 길을 결단합니다. “이게 사명이다”라고 하면 인간적인 계산을 하지 않고 그 길을 갑니다. 주님 제자들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주님 만나고 주님이 부르시니까 계산도 하지 않고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그냥 주님을 따라갑니다. 이와 같이 이해타산은 좀 느리더라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칭찬 받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할 때도 칭찬 받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길이 “나의 사명이다”라고 생각하면 그 길에 매진해야 합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계산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른 길이다”라고 생각하면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샌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신분과 위치가 달라져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사명을 따라 그냥 전진해 보십시오. 계산이 없이, 그리고 속셈이 없이 좋은 일에 매진해 보십시오. 사명을 발견하고 책임 있는 삶을 살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옥수수 박사로 잘 알려진 경북대의 김순권 교수를 아시죠? 시골에서 태어나 한 여자를 짝사랑했는데 그 여자가 교회를 다닙니다. 그래서 그 여자와 사귀고 싶다는 생각으로 교회를 가게 되었는데 교회에서 여자를 사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농협시험을 치렀지만 낙방하고 맙니다. 그래서 어렵게 취직한 곳이 농업진흥청입니다. 처음 배정받은 과가 다른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옥수수과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자각했어요. 그는 인류의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만을 바라보고 열심을 다했더니 가난한 시골 출신으로 아무 것도 없던 그가 옥수수 박사가 되고,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는 식량 문제에 큰 도움을 주어 그 민족의 대부 같은 존재가 되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노벨상 후보가 되어 전 세계로부터 칭찬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유명인이 되려고 한 번도 목표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명을 가지고 소중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다 보니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따라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칭찬 받는 위치에 있게 될 것입니다. 칭찬 받으려고 일부러 노력하지 마세요. 그러면 오히려 실망하게 됩니다. 그저 사명에 충실하면 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칭찬 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셋째, 칭찬 받는 자가 되려면 먼저 칭찬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름지기 디모데는 남을 칭찬해 주는 젊은이였을 것입니다. 내가 먼저 칭찬해 주면 나 역시 칭찬 받는 자가 되고, 칭찬 받는 자가 되면 사람의 마음을 얻기 때문에 인생도 보람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칭찬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활력소가 되는지 모릅니다. 칭찬은 생활의 활력소입니다. 칭찬하는 사람도 기분이 좋고 칭찬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칭찬하면 생각지도 못한 덤이 생기고 행복합니다.
칭찬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일을 보면 감동도 하고, 그 좋은 것을 마음껏 표현해야 합니다. 좋은 대접을 받았으면서도 내색도 안하고, 좋으면서도 괜히 무게 잡고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같이 어울리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성도는 칭찬과 감사에 인색해서는 안돼요. 마음껏 웃어주고 마음껏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안데르센 동화를 보면 농부와 칭찬을 잘하는 아내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농부가 자기 아내에게 제안을 합니다. “오늘 말을 가지고 나가서 좋은 것으로 바꿔 올게” 그러자 아내가 말합니다. “잘 생각했어요. 좋은 것으로 바꿔 오세요.” 그래서 이 농부가 말을 가지고 나갑니다. 가는 길에 소를 가진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소가 좋다고 하니까 이 농부가 그 사람의 말만 듣고 말을 소와 바꿨습니다. 그리고 다시 소를 데리고 가는데 가다가 양을 가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양 자랑을 하니까 이 농부가 소를 양과 바꿨습니다. 그래서 양을 데리고 가는데 가다가 거위를 가진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이 거위가 좋다고 하니까 이 농부가 자기 양을 거위와 바꿨습니다. 그래서 거위를 가지고 가는데 가는 길에 암탉을 가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암탉 주인은 암탉이 알도 잘 낳고 수입도 엄청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는 거위를 암탉과 바꿨습니다. 그래서 암탉을 가지고 길을 가는데 가다가 썩은 사과 한 봉지를 가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사과가 맛있다고 하니까 그 썩은 사과 한 봉지와 암탉을 바꿉니다. 그리고 썩은 사과 한 봉지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돌아오는 길에 몸이 피곤해서 잠시 주막에 들려 한숨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주막에서 쉬고 있었던 한 귀족이 이 어리석은 농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오늘 있었던 농부의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그 귀족이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아마 오늘 당신이 집에 들어가면 당신 아내는 틀림없이 화를 많이 낼 겁니다.” 그러자 농부가 말합니다. “아니에요. 제 아내는 틀림없이 ‘잘했어요. 훌륭해요’라고 할 걸요.”
그러자 귀족이 대꾸합니다. “에이 여보시오. 그런 여자가 어디 있단 말이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주머니의 금화를 당신에게 다 주겠소.”
그래서 이 어리석은 농부는 귀족과 함께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에게 하루 동안에 벌어졌던 일들을 죽 설명했습니다. 아내가 그 말을 다 듣더니만 정말로 “여보, 참 잘했어요. 당신은 역시 훌륭해요”라고 말합니다.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귀족이 말합니다.
“이런 가정이라면 내 돈을 다 줘도 아깝지 않소.”라고 하며 약속한 금화 돈주머니를 그 집에 내려놓고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따뜻하게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실수해도, 그 동기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연약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잘했어요. 훌륭해요.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격려와 칭찬을 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칭찬이 넘치는 가정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가정이라면 내가 복을 주어도 좋겠다.” 말씀하실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간에 칭찬과 격려가 넘치고 웃음이 만발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런 교회를 복주지 않으면 안 되지!” 하시면서 하늘의 신령한 것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입술에 칭찬이 넘쳐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직장을 정말 아름다운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칭찬 받는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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