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근심,걱정을 여의다<삽바사바-경>
마지마-니까야Majjia-nikaya(中部), No.2
삽바사바-경Sabbasava-sutta
한역아함 대응경전: {漏盡經}(中阿含10),
{一切流攝守因經}(安世高옮김, 大正藏1.813),
{淨諸漏}(增一阿含40.6)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사위성) 근교의 "젯따왕자의 숲, 아나타삔디까의 절"(기수급고독원)에 계셨었다. 비구들을 부르시매, '비구들이여'라고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존경하는 선생님'이라고 화답하였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너희에게 모든 근심,걱정(asava,漏)[주1]을 자제하는 방법을 설하겠노라. 잘 듣고 새기도록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라.' '예, 선생님'이라고 세존께 화답하여 말하였다.
그래서 당신께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근심,걱정의 파괴(제거)는 알고, 보는 이에게나 가능하고, 알지 못하며 보지 못하는 이에겐 가능치 않다고 말한다. 근심걱정을 파괴(제거)하려면 무엇을 알고 보아야 하는가?
슬기로운 생각과 슬기롭지 않은 생각이 있다. 슬기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에겐 여태껏 일지 않았던 근심, 걱정이 일어난다. 그리고(더군다나) 이미 일어난 것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슬기롭게 생각하는 이에겐 여태껏 일지 않았던 근심, 걱정은 일지 않는다. (게다가)이미 일어난 것도 사라진다.'
'비구들이여, (1) 통찰하여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 있다.
(2) 자제하여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 있다.
(3) 무언가를 이용하여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 있다.
(4) 참아서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 있다.
(5) 피하여서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 있다.
(6) 흩어 버려서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 있다.
(7) 수련하여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 있다.'
[주1] 이 경에서의 아사바(漏)라는 용어는 '유입', '유출', '더러움', '지저분함'같은 일반적인 심리학적, 윤리학적 의미보다 넓은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는 비유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심리적 고민과 육체적 고통을 모두 포괄하여서, 또한 다음 내용에서 보게 되는 곤경까지 포함해서 쓰이고 있다.
(1)'비구들이여, 통찰하여서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성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성인의 가르침이 낯선 사람, 성인의 가르침으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 어진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어진 이의 가르침이 낯선 사람, 어진 이의 가르침으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
그런 배운바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은 생각해야될 것이 무언지, 생각지 말아야할 것이 무언지를 모른다. 생각해야될 것이 무언지 모르고, 생각지 말아야할 것이 무언지를 몰라서, 생각지 말 것을 생각하고, 생각해야될 것을 생각지 않는다.'
'자아, 비구들이여, 생각지 말아야 하지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어느 사람이 어떤 것을 생각하는데 여태껏 일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더러움이 생긴다고 하자. 그리고 (게다가) 이미 일어난 감각적 쾌락의 더러움이 더 크게 자라났다고 하자. 존재하려하고 생성하려는〔즉, 윤회에 얽매인〕(욕망의) 더러움이 일어난다 하자. ........
여태껏 일지 않은 무명의 더러움이 생긴다고 하자. 그리고 (게다가) 이미 일어난 무명의 더러움이 더 크게 자라난다고 하자. 바로 이러한 것들이 생각지 말아야하는 것, 그러나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다.'
'비구들이여, 생각해야 하지만 생각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만약에 어느 사람이 어떤 것을 생각하는데 여태껏 일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더러움이 일지 않았다고 하자. 그리고 (게다가) 이미 일어난 감각적 쾌락의 더러움이 사라졌다고 하자. 존재하려하고 생성하려는 (욕망의) 더러움이 ........
여태껏 일지 않은 무명의 더러움이 일지 않았다고 하자. 그리고 (게다가) 이미 일어난 무명의 더러움이 사라졌다고 하자. 바로 이런 것들이 생각해야 하지만, 그러나 생각지 않는 것들이다.'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하고 생각하여야할 것을 생각지 않아서, 지금까지 일지 않은 더러움이 일고, 이미 일어난 더러움이 더 크게 자라난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현명치 못하게 (쓸데없이) 생각한다.
1. 나는 과거에 존재하였는가?
2. 나는 과거에 존재치 않았는가?
3.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나?
4. 나는 과거에 어떻게 존재하였나?
5. 나는 과거에 무엇으로 화化하여 존재하였던가?
6. 나는 미래에 존재할 것인가?
7. 나는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
8. 나는 미래에 무엇으로 존재할 것인가?
9. 나는 미래에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10. 나는 미래에 무엇으로 화化하여 존재할 것인가? 또는 현재의 자기자신에 대하여 의심한다.
11. 나는 있는가?
12. 나는 없는가?
13. 나는 무엇인가?
14. 나는 어떻게 해서 있는 것일까?
15. 이 사람〔나〕은 어디서 왔는가?
16. 그〔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런 식으로 현명치 못하게 생각하면 여섯 개의 거짓된 견해 중에 하나가 일어난다.
1. 나는 '자아'를 가졌다. : 이 견해는 마치 진실되고 사실인양 일어난다.
2. 나는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 이 견해는 마치 진실되고 사실인양 일어난다.
3. '자아'로 '자아'를 지각한다. : 이 견해는 마치 진실되고 사실인양 일어난다.
4. '자아'로 자아가 없음을 지각한다. : 이 견해는 마치 진실되고 사실인양 일어난다.
5. 자아 없이 '자아'를 지각한다. : 이 견해는 마치 진실되고 사실인양 일어난다.
6. 또는 다음과 같이 그릇된 견해가 일어난다. 나의 이 '자아'는 말하고 느끼며 여기저기서 좋고 나쁜 행위의 과보를 경험한다. 이 '자아'는 영원하고, 견고한 것이며, 늘 그러한 것이고, 변하지 않으며,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견해에 있어서 그물에 걸리게 하는 것이라 부른다. 그것은 견해들의 정글이다. 견해들의 황무지이다. 견해들이 쌈박질하는 것이다. 견해들이 동요하는(투쟁하는) 것이다. 그것은 견해의 족쇄이다.
비구들이여, 배운바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은 견해들의 족쇄가 채워져서 태어나고 나이 먹고 죽는 데에서 해방되지 못한다. 슬픔과 비애, 아픔, 통한, 절망에서 해방되지 못한다. 나는 그가 둑카dukkha(苦)[주1]에서 해방되지 못한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배운바 있는 거룩한 제자는 성인을 알아보는 이, 성인의 가르침에 익숙한 이, 성인의 가르침으로 잘 훈련된 이다. 그리고 어진 이를 알아보는 이, 어진 이의 가르침에 익숙한 이, 어진 이의 가르침으로 잘 훈련된 이다.
그런 제자는 생각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생각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여야 할 것을 생각한다.'
'자아 비구들이여,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서, 그 제자가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어느 사람이 어떤 것을 생각하는 데에 여태껏 일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더러움이 생긴다고 하자. 그리고 (게다가) 이미 일어난 감각적 쾌락의 더러움이 더 크게 자라난다고 하자. 여태껏 일지 않은 존재하려하고 생성하려는 (욕망의) 더러움이 일어난다고 하자. ........
무명의 더러움이 생긴다고 하자. 그리고 이미 일어난 무명의 더러움이 더 크게 자라난다고 하자. 바로 이러한 것들이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이라서 그가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다.'
'비구들이여, 생각해야되는 것이라서, 그 제자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에 어느 사람이 어떤 것을 생각하는 데 여태껏 일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더러움이 일지 않았다고 하자. 그리고 (게다가) 이미 일어난 감각적 쾌락의 더러움이 사라졌다고 하자. 여태껏 일지 않은 존재하려하고 생성하려는 (욕망의) 더러움이........
무명의 더러움이 일지 않았다고 하자. 그리고 (게다가) 이미 일어난 무명의 더러움이 사라졌다고 하자. 바로 이러한 것들이 생각해야되는 것이라서 그가 생각하는 것들이다.'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지 않고 생각하여야 될 것을 생각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일지 않은 더러움이 일어나지 않으며, 그리고 (게다가) 이미 일어난 더러움이 사라진다.
그래서 그는 "이것은 둑카(苦)이다"라고 슬기롭게 생각한다. "이것은 둑카(苦)의 일어남(원인)이다"라고 슬기롭게 생각한다. "이것은 둑카(苦)의 그침이다"라고 슬기롭게 생각한다. "이것은 둑카(苦)가 그치도록 이끌어주는 길이다"라고 슬기롭게 생각한다.
이렇게 슬기롭게 생각하면 세개의 "족쇄"―자아에 대한 잘못된 관념과, 회의적인 의심, 의례와 제사에 대한 집착―가 떨어져나간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통찰로 제거하는 근심(더러움, 족쇄)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주1] 둑카dukkha는 단순히 '괴로움'이라고 옮겨질 수 없는 말이다. 그것이 괴로움으로 옮겨지기 때문에 사성제의 첫째를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라고 옮기는 등, 불교를 염세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둑카는 일반적인 의미의 괴로움(苦苦) 뿐만이 아니라, 늘 그러하지 않고 변화하는 것(壞苦)과 조건에 구애되는 모든 상태(行苦)를 포함한다. 심지어는 선정禪靜과 삼매三昧까지도 둑카에 포함된다. 선정과 삼매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이다. 그것이 둑카인 까닭은 괴롭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조건에 구애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중생이 바라보는 모든 것이 다 둑카이다. 즉, 열반의 세계가 아닌 것은 모두 둑카로서, 극복해야 할 것이다.
(2) '비구들이여, 절제하여서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어느 비구는 지혜롭게 생각하여 눈을 절제하면서 산다. 자아, 만약 눈을 절제하면서 살지 않아서 어떤 걱정과 고통, 애태움이 생긴다하자. 그럴 때 이런 식으로 눈을 절제하면 그런 근심, 고통, 애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지혜롭게 생각하여 그 비구는 귀를 절제하면서 산다. .... 코를 절제하면서 .... 혀를 절제하면서 .... 몸을 절제하면서 .... 마음을 절제하면서 산다.
자아, 만약 마음을 절제하면서 살지 않아서 어떤 걱정과 고통, 애태움이 생긴다하자. 그럴 때 이런 식으로 마음을 절제하면 그런 근심, 고통, 애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것들이 절제하여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3) '비구들이여, 무언가를 이용하여서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어느 비구는 지혜롭게 생각하여 가사架裟(승복)를 잘 이용한다. 다만 추위를 막기 위해서, 더위를 막기 위해서, 등에와 모기, 바람과 햇볕, 그리고 기어다니는 생물들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예의상 가리기 위해서 가사를 이용할 따름이다.[주1]
그이는 지혜롭게 생각하여 음식을 잘 이용한다. 식도락을 위해서도 무절제를 위해서(취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미용을 위해서도 멋내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아픔(쇠약)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거룩한 생명을 양육하기 위해서 먹을 따름이다.
그이는 "나는 이런 방법으로 이미 존재하는 (괴로움과 주림의)느낌을 떨쳐버렸다. 그리고 새로 그런 느낌이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내 생명은 욕되지 않게(해롭지 않게), 그리고 편리하게 유지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이는 지혜롭게 생각하여 움막을 이용한다. 다만 추위를 막기 위해서, 더위를 막기 위해서, 등에와 모기, 바람과 햇볕, 기어다니는 동물들을 막기 위해서, 계절적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은둔을 즐기기 위해서 움막을 이용할 따름이다.
그이는 지혜롭게 생각하여 약을 쓰고 의학적 치료법을 이용한다. 다만 통증과 병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약을 쓰고 의학적 치료법을 이용할 뿐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을(이러한 것들을) 이용하지 않아서 어떤 근심과 고통, 애태움이 있다고 하자. 그럴 땐 이런 식으로 (그것들을) 이용하면 근심과 고통과 애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것들이 이용하여서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라 부른다.'
(4) '비구들이여, 참아서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어느 비구는 지혜롭게 생각하여 추위와 더위, 주림과 목마름을 견디고 등에, 모기, 바람, 햇볕과 기어다니는 생물 그리고 악담과 모욕을 견디어낸다. 고통스럽고, 날카롭고, 신랄하고, 혹독하고, 불쾌하고, 혐오스럽고, 죽을 것 같은 몸의 느낌을 참아내는데 익숙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만약에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이런 것들을) 참아내지 못하여 어떤 근심과 고통과 애태움이 생긴다고 하자. 그럴 때에 이런 식으로 그것들을 참아내는 이는 그런 근심과 걱정과 애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것이 인내하여 제거하는 근심,걱정이라 부른다.'
(5) '비구들이여, 피하여서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어느 비구는 지혜롭게 생각하여 사나운 코끼리와, 사나운 말, 사나운 황소, 사나운 개를 피한다. 뱀과,〔걸려 넘어지기 쉬운 나무의〕밑둥, 가시울타리, 구덩이, 벼랑, 오물웅덩이와 더러운 연못을 피한다.
지혜롭게 생각하여 그는 또한 적당치 않은 곳에 앉는 것을 피한다. 그리고 옳지 않은 유흥장에 드나드는 것을 피한다. 그리고 친구들 가운데 거룩하게 생활하는 사려 깊은 이를 결과적으로 탈선케 하는 그런 나쁜 친구와 사귀는 것을 피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일들(이러한 일들)을 피하지 않아서 어떤 근심과 고통, 번민이 생겼다고 하자. 그럴 때에 이런 식으로 그것들을 피하면 그런 근심과 고통, 번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피하여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라고 부른다.'
(6) '흩어버려서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어느 비구는 지혜롭게 생각하여 이미 일어난 감각적 쾌락의 생각을 허용치 않고, 버리고, 부수어 버리고, 고갈시켜 버린다. 심술부리는 마음을 허용치 않고, ... 폭력적인 마음을 허용치 않고, .... 이미 일어난 해롭고 건전치 못한 생각을 허용치 않고, 버리고, 부수어 버리고, 고갈시켜 버린다.
비구들이여, 어떤 일들(이러한 일들)을 흩어버리지 않아서 어떤 근심과 고통, 번민이 생겼다고 하자. 그럴 때에 이런 식으로 그것들을 흩어버리면 그런 근심과 고통, 번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것들이 흩어버려서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라고 부른다.'
(7) '비구들이여, 수련(修)하여서 없애 버리는 근심, 걱정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어느 비구는 지혜롭게 생각하여 마음을 깨어있게 하는 수련을 한다. 그것은 탈속과 무욕과 그침에 관련되어 자제력을 성숙시키는 깨달음의 한 요소이다. 지혜롭게 생각하여 법을 연구하는 수련을 한다.
그것은 깨달음의 한 요소이다. .... 기운을 돋운다. 그것은 깨달음의 한 요소이다. ... 즐거움을 배양한다. 그것은 깨달음의 한 요소이다. .... 고요함(긴장풀기)을 닦는다. 그것은 깨달음의 한 요소이다. .... 집중력을 기른다. 그것은 깨달음의 한 요소이다. ... 평온함을 기른다.
그것은 탈속과 무욕과 그침에 관련되어 자제력을 성숙시키는 깨달음의 한 요소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일들(이러한 일들)을 수련치 않아서 어떤 근심과 고통, 번민이 생겼다고 하자. 그럴 때에 이런 식으로 그것들을 수련하면 그런 근심과 고통, 번민이 없어질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것들이 수련하여서 제거하는 근심, 걱정이라고 부른다.'
'비구들이여, 어느 비구가 통찰하여서 없애는 근심 걱정을 없앤다면, 절제하여서 없애는 근심 걱정을 없앤다면, 이용하여서 없애는 근심 걱정을 없앤다면, 인내하여서 업에는 근심 걱정을 없앤다면, 피하여서 없애는 근심 걱정을 없앤다면, 흩어버려서 없애는 근심 걱정을 없앤다면, 수양하여서 없애는 근심 걱정을 없앤다면,
비구들이여, 이 비구가 바로 모든 근심, 걱정을 자제하는 이라 불려지는 비구이다. 그이는 갈망을 끊어버리고, 족쇄를 부수어 버리며, 거짓된 자존심을 알아차려서, 고통을 끝장낸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에 즐거워하였다.
[주2] 인도에는 나체의 수행자가 아주 옛날부터 존재했으며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나체의 철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자이나 Jaina교의 승려들은 무소유無所有에 철저하여 한 오라기의 실도 걸치지 않고 모기나 파리, 햇볕 등에 몸을 드러내고 수행하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흰옷을 걸치는 일파가 나타났는데 이를 백의파白衣派라고 하며, 계속 옷을 거부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을 공의파空衣派라고 한다. 니간타 나타뿟따Nigantha Nataputta(마하비라Mahavira)의 입상立像은 벌거숭이이다. 오늘날에도 보수적인 자이나교의 승려들은 알몸으로 수행을 하고 순례를 다닌다. [中村元, 《佛敎의 本質》, 34-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