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초려-유비가 제갈량을 만나기 위해 제갈량을 세번 찾았다는 고사
제갈량을 찾은 유비 삼형제와 제갈량이 잠에서 께기를 기다리는 유비
국력에 전진하는 손권과 손권에게 강하를 빼앗긴 유표, 유비 제갈량과 의논하여 강하로 내려간 유기
한편 사마휘도 유비를 찾아와 제갈량을 천거한다. 유비는 제갈량을 찾아가지만 만나지 못하고 다시 신야성으로 돌아간다. 그이후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어 제갈량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눈폭풍을 맞으며 가지만 또 만나지 못한다. 봄이 되자 유비는 다시 제갈량을 찾아간다. 제갈량은 낮잠을 자고 있었고 유비는 깰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다. 나중에 제갈량이 일어나 유비와 마주하며 솥을 바치고 있는 삼발이를 예로 들으며 유비를 가늠한다. 그리고는 동생 제갈균에게 집을 맡기고 유비와 같이 떠난다.
그럴즈음 동오의 손권은 인재를 등용하여 감택 엄준 설총 점병 주환 장온 능통 오찬 여몽 육손 서성 반장 정봉등을 발탁하자 조조는 손권을 견제하기 위해 기주의 호수에서 수군훈련을 열심히 한다. 그리고 손권의 아들을 입조시키라 명을 한다. 하지만 주유를 비롯한 동오의 중신들은 모두 반대를 한다.
한편 단양태수 손익은 손권의 동생으로 성격이 급하고 술을 좋아했다. 한번은 손익이 술에취해 위람과 대원에게 심한 주사를 부리자 둘은 꾹꾹 참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연회가 펼쳐지고 위람과 대원은 연회가 끝난후 집으로 가는 손익과 손익을 경호하던 변흥을 살해하고는 변흥에게 죄를 뒤집어씌운후 손익의 서씨부인을 취하려다 손고와 부영에게 살해되고 만다. 손권은 이를 알고난 후 서씨부인을 강동에서 살게 해주었고 손고와 부영에게 단양의 아문장이란 벼슬을 내린다.
주유는 손권과 의논하여 조조의 침공을 막기위해 예상 침공로인 형주의 강하(하구)를 취하기로 하고, 감녕을 출정시켜 강하의 황조군을 무찔러 예전에 황조에게 살해되었던 아버지 손견의 원수도 갚고 강하도 차지하게 된다. 한편 형주자사 유표는 크게 놀라 유비를 찾고는 형주를 다스려 주길 바라지만 유비는 거절을 한다. 그날 유표의 장남 유기가 유비를 찾아와 계모 채씨가 자신을 치려 한다며 하소연하자 이를 듣던 제갈량이 강하의 자리가 공석이므로 강하에 가 있으라 하자 유기는 그말을 듣고 강하로 내려간다. 유비도 신야로 돌아가고 제갈량은 3천의 민병을 모집해 훈련을 시킨다.
박망파전투-형주의 박망파에서 유비의 3천군대와 조조의 30만 군대가 싸운 전투로 제갈공명이 처음 참전한다.
천투에 처음 참여한 제갈량과 주요장수 그리고 박망파전투에서 조조군의 주요장수인 하후돈과 우금
조조는 유비가 모사로 제갈량을 발탁하고 3천의 군사를 훈련시킨다는 보고를 받고 하후돈에게 10만의 군사로 신야를 공격하게 한다.
이에 유비는 제갈량을 사령관으로 삼고 제갈량은 관우에게 병사 1천명과 박망파 부근 예산에 매복하라 명하고 장비에게 1천의 병사를 주고 안림에서 매복해 있다가 박망성으로 출동하라 했으며 유비의 양자 유봉과 관우의 양자 관평에게는 군사 5백을 주어 박망파에서 매복하라 명한다. 조자룡에게는 선발을 맞기고 제갈량은 미축 미방 그리고 군사 5백과 함께 신야성을 지킨다 하자, 관우 장비등이 심하게 반발한다.
한편 하후돈은 군사를 둘로 나누어 5만은 친위대로 삼고 나머지 5만은 군량과 마초를 호위하며 전진하게 한다. 박망파에 이르러 조자룡과 하후돈이 대결하지만 50합이 넘도록 승패가 나지않자 조자룡은 후퇴하며 유인하기 시작하였고 하후돈은 군사들과 함께 추격을 한다. 날이 저물지만 하후돈은 쉬지않고 전진하는 도중 갈대가 무성한 박망파 계곡에 당도하자 제갈량은 하후돈 부대 뒷편에서 나타나 화공을 전개한다. 그리고 후퇴하던 조자룡이 말을 돌려 하후돈을 급습하고, 후미에서는 관우가 1천명의 군사와 함께 나타나 박망성으로 도망가는 이전부터 공격하기 시작하였으며, 장비도 1천의 군사와 함께 나타나 군량을 보호하려는 하후란과 한호에게 집중 공격을 하니 장비와 맞붙은 하후란은 죽고 한호는 도망을 친다. 결국 우금도 그대로 도주하였고, 다음날 하후돈은 남은 군병을 추스려 허창으로 돌아간다.
이즈음 형주의 유표는 늙고 병이 깊어 형주를 큰아들 유기에게 물려준다고 유언을 하고는 승하한다. 채부인은 형주를 유종으로 물려준다는 내용으로 유서를 바꾸고 강하에서 달려온 유기를 성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
유종-유표의 차남. 채씨부인-유종의 친모. 유표의 유서를 바꿔친 채모
조조의 명을 듣고 형주를 침략하는 조인 조홍 장료 장합 이전 허저...
조조는 하후돈이 박망파에서 완패를 하자 직접 30만 군대를 이끌고 형주로 출정을 한다. 조조군의 기세에 놀란 유종은 조조에게 항복하여 형주의 여섯고을 광대한 땅을 조조에게 바친다. 조조는 형주로 입성하기 전 유비를 치기 위해 박망파로 진군한다. 급보를 들은 제갈량이 관우에게 1천의 군사와 백하 상류로 가서 둑을 막은후 다음날 둑을 터트리라 명을 하고 장비는 나루터에 매복하고 있다가 조조군과 싸움을 하라 명한다. 그리고 조자룡에게는 3천의 군사와 함께 화약을 준비하고 신야성 밖에서 매복하고 있으라 명한다. 늦은밤 조조진영에서 허저가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야습을 감행하고 이를 보고받은 조자룡은 신야성 밖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성 주위에 불을 지른다. 순식간의 화공에 놀란 허저군은 갈팡질팡대며 가기들끼리 밟혀 죽기 시작한다. 허저는 백하로 철수하라 명하여 병사들이 백하에 도달하자 관우가 둑을 터트려 수공으로 공격한다. 또한 주위에 매복하고 있던 장비군이 나타나 허저의 남은 병사들을 공격하니 허저는 10만의 군사들을 모조리 잃고 조조군의 진영으로 도망을 친다. 이를 보고받은 조조는 불같이 노하며 수공을 못하게끔 백하를 메워버린다. 그리고 유염과 의논하여 서서를 유비에게 보내어 항복을 받아내라 하지만 오히려 서서는 유비에게 조조의 총공격에 대비하라 일러주고는 조조에게로 돌아간다. 유비는 군사들과 의논한후 백성들을 이끌고 번성에서 양양으로, 또다시 강릉으로 피난을 간다.
조조는 유비가 백성을 이끌고 피난을 간다는 말을 듣고 형주에 입성한다. 조조는 유종을 청주자사로 임명하여 청주로 보낸후 하후돈을 시켜 유종과 채부인을 살해한다. 그리고 우금에게도 와룡강으로 보내어 제갈량의 식구들의 목을 가져오라 명을 내린다. 우금은 제갈량의 집에 가보지만 사람의 흔적은 있고 아무도 없기에 주변에 있는 노인에게 물어봤더니 새벽일찍 사람이 와서는 식솔들을 모시고 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쪽패를 하나 주었는데 거기에는 "조조의 자객이 당도할테니 자리를 옮기라"고 써 있었다. 우금은 어쩔수 없이 조조에게 돌아가 그대로 보고를 하게되고 조조는 제갈량의 실력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조조는 다시 군사를 보내어 유비군을 쫓기 시작하고, 유비는 제갈량과 관우를 강하의 유기에게 보내 지원군을 요청하고, 자신은 백성과 함께 피난을 한다. 제갈공명은 유비에게 몇번이나 백성을 버리라며 직언하였지만 유비는 백성들과 함께 피난하는 것을 끝까지 고수하고, 제갈량은 하는수 없이 유비의 명대로 유기에게 간다. 이틀이 지난후 유비일행은 엄청난 규모의 조조군을 발견하고 도망치게 된다. 유비또한 정신없이 도망치던중 미방이 활을 맞은채로 달려오며 조자룡이 조조군에게 투항했다고 보고를 한다. 장비는 그말을 듣고는 군사를 이끌고 조조군에게로 달려가다 장판교에 이른다. 미방의 말이 헛소문으로 밝혀지자 장비는 조자룡을 돕기위해 위장술로 군사들에게 말의 꼬리에 나뭇가지를 엮어서 뛰어다니게 하니 먼지가 뿌옇게 일어난다.
장판교 전투-조자룡 헌칼쓰듯한다와 단기돌파(單騎突破)의 유래, 그리고 장비의 호령으로 조조군을 섬멸시킨 전투
유비를 따라 피난하는 백성들. 3만의 적진에 홀로 들어간 조자룡은 하후은의 청홍검을 거둠
우물에 몸을 던지는 미부인 아두를 품에안은 조자룡과 장판교에 홀로 선 장비 그리고 장비에 대적하다 한칼에 죽음을 당한 하후패
조자룡은 감부인과 미부인 아두의 호위를 맡은 상태에서 조조군과 싸우다 호위를 맡은 유비의 가족들이 생각나 홀로 조조의 대군 속에 뛰어든 것이다. 조자룡은 감부인을 찾아 구출하고는 장판교의 장비에게 맞기고 미부인과 아두를 찾기위해 다시 조조군 속으로 달려간다. 결국 아두와 미부인을 발견하고 구출하려 했으나 다리를 다친 미부인은 모두가 위험할수 있을거라 판단하고 우물에 뛰어들어 죽음으로써 아두만 구할수 있게 한다. 슬퍼할 틈도 없이 조운은 아두를 갑옷에 숨기고 적진을 향해 창을 휘두르며 전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조조의 대군에 겹겹이 포위되고 신기에 가까운 창놀림과 수없이 많은 칼들을 쓰고 버리며 적진을 휘저은 조운은 적진의 큰 깃발을 두개 쓰러트리고, 명검을 세개 빼앗았으며 부장장수들을 수도없이 처치한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조조는 조운의 실력에 감탄하며 활을 쏘지 말고 생포하라 명한다. 조자룡에게도 화살은 두려운 무기였는데 조조군이 활을 쏘지 않았던것은 실로 천운이 아닐수 없었다. 그리하여 광야로 나온 조운은 마지막으로 종진 종신 형제를 처치하고는 장판교 앞의 장비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후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도착하자 이제는 장비가 홀로 나선다. 조조는 한눈에 장비를 알아보고 관우가 했던 말이 생각나 우물쭈물거리고 있는데 장비가 "나는 장비 익덕이다. 나에게 대적할 자가 있는가?" 하며 호령을 치고, 조조군에서는 쉽게 나서는 자가 없었다. 그러자 하후걸이 출세하고픈 마음에 장비에게 돌진을 하지만 한칼에 낙마하여 처단되고 조조는 말을 돌려 후퇴하자 전군이 도망치기 시작해 서로 밟고 밟혀 사망자가 무수히 생긴다. 장비는 조조군을 쫓지 않고 장판교를 부순후 유비에게로 돌아간다. 조자룡은 유비에게 당도하여 그간의 사정을 전하고 아두를 유비 품으로 돌려주지만 유비는 조자룡이 위험할뻔 했다며 아두를 집어던진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아두는 훗날 바보가 되었다고 한다. 장비도 유비에게 도착하여 장판교를 부수고 왔다고 자랑을 하지만 유비는 괜한 짓을 했다며 장비를 나무란다.
조조는 장비가 장판교를 부쉈다는 말에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유비군을 쫓기 시작한다. 유비군이 강하에 이르러 조조군에게 잡히기 직전, 북소리가 나며 관우가 1만의 군사와 함께 배를 타고 도착을 한다. 관우를 본 조조는 결국 철수를 하고, 좀 더 있다가 유기가 3만의 군사와 함께 수백척의 배를 이끌고 온다. 이후 제갈량 또한 수백척의 배를 이끌고 유비와 해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