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발터 벤야민과 빌렘 플루서의 문제의식 분석 사례(1)
Bliss
궁금한 초록은 호흡(呼吸)이고 일렁이는 무논은 흡(吸)이듯
내 놀던 뒷동산 꽃과 나비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호이고 흡이듯
봄날은 돌멩이도 숨 쉬는 봄날이어서 질문과 대답은 간절한 생명이어서
<Bliss>는 물이 가득 찬 논에 갓 심어진 모종들이 일렁이는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된 벤야민의 문학적 기술과 플루서의 비평적 읽기의 몰락이라는 화두를 가장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주는 사례이다.
[분석]
벤야민: 생산관계 속의 기술적 일치
벤야민은 작가가 단순히 시대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생산 기술을 얼마나 혁신적으로 사용하는가를 중요하게 본다.
지각의 확장과 기술(Technik): <Bliss>는 논바닥의 모종과 물결이라는 평범한 풍경을 스마트폰의 줌(Zoom)과 프레임 포착이라는 기술을 통해 호흡과 생명의 리듬으로 변주한다.
생산자와 수용자의 경계 붕괴: 벤야민은 독자가 생산자로 변화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긍정한다. 이 작품은 시적 영감이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니, 우리 주변의 무논이라는 생산 현장 속에서 스마트폰이라는 일상적 도구를 통해 즉각적으로 예술화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소외된 생산물: 'Bliss'의 일시적 소비
디카시는 찰나의 이미지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벤야민이 말한 예술의 전시가치를 극대화한다.
소모되는 예술: <Bliss>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이 주는 시각적 평온함은 디지털 네트워크상에서 아주 빠르게 소비된다.
소외의 위험: 이미지의 아름다움에만 매몰될 경우, '궁금한 초록은 호흡이고'라는 텍스트가 가진 깊은 생명 철학적 성찰은 간과된 채, 그저 눈을 즐겁게 하는 예쁜 배경 화면 정도의 생산물로 전락(소외)할 위험이 있다.
플루서는 우리가 글쓰기의 종말과 함께 무비판적 순응자가 될 것을 우려한다. <Bliss>는 이 우려에 대한 정면 승부와 같다.
이미지 코드의 해독: 사진 속의 일렁이는 물결은 플루서가 말한 지각모델이다. 우리는 이를 단순히 물결로 수용할 수도 있지만(무비판적 수용), 텍스트를 통해 그것을 '질문과 대답이라는 생명의 역동성'으로 읽어내야 한다.
로봇화를 거부하는 사유: 만약 우리가 이 디카시를 보면서 단순히 보기 좋다 라고만 느낀다면 플루서가 말한 로봇(단순 수용자)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왜 돌멩이도 숨을 쉬는 봄날인가? 이미지 이면을 상상한다면, 그것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비평적 읽기의 실천이 된다.
❖ <Bliss>와 같은 디카시가 지금 이 시대에 유효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현대적인 기술(사진)을 통해 가장 원초적인 생명의 가치(시)의 복원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정보가 범람하여 긴 글을 읽지 않는 시대에,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한 압축적 형식으로, 인간의 감각이 기계적 메시지에 순응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각의 모델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이다.
인쇄된 사진이 흑백이라서 제가 찍은 참고 사진 같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