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앰뷸런스에 실려간 옆집 노인은
끝내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노인이 심은 호박도 넓게 넝쿨을 뻗지 못하고 시들었다
다만, 멀리서 소식 없는 한 점 혈육 같은,
담장에 매달린 호박 한 덩이만 애호박에서 늙은 호박으로
― 송찬호, 「늙은 호박」
이 작품의 화자도 청자도 모두 숨어 있다. 화자는 지난 여름 앰뷸런스에 실려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노인의 얘기를 들려준다. 화자 자신의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화자의 정보가 조금은 노출된다. 화자는 노인의 옆집에 사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뿐이다.화자는 관찰자이다. 노인이 심은 호박도 넓게 넝쿨을 뻗지 못하고 시들어버렸는데, 담장에 그나마 호박 한 덩이가 애호박에서 늙은 호박으로 역시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그 호박을 화자는 멀리서 소식 없는 한 점 혈육 같다고 말한다.
같은 통화체계지만 임동확의 「주목나무」가 압축적 진술을 하면서 화자의 정서 표출이 느껴지는 것에 비해, 「늙은 호박」은 요약적 서사로 더 객관적 진술을 보인다.
화자는 노인이 갑자기 죽음에 이르고, 그 노인의 상관물인 늙은 호박마저 같은 이미저리로 초점화함으로써 생의 덧없음을 환기한다. 이 노인은 “멀리서 소식 없는 한 점 혈육 같은” 비유를 통해서 짐작컨대, 아마 독거노인이었을 것이다. 이 독거노인의 최후를 지켜보는 화자의 쓸쓸한 정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늙은 호박이 언뜻 보기에는 독거노인을 표상하는 듯해도 비유를 통해 노인의 혈육으로 드러나고, 그것이도 애호박에서 늙은 호박으로 덩그랗게 매달려 있는 포즈다. 생로병사는 노인에게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고 노인의 혈육에게도, 또 그것을 지켜보는 화자에게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독거노인의 비극적 정황은 그것을 지켜보는 화자에게도 언젠가 직면할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의 드라이한 목소리로 객관적 거리를 두고 무심한 듯 언술하는 것이다.
이런 통화체계는 야콥슨의 언어 전달 활동을 구성하는 여섯 가지 요소에서 관련 상황을 지향하는 것으로 지시적 기능이 우세하다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객관적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객관적 보고자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통화체계에서도 화자의 정서적 개입이 표출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그것은 그만큼 디카시가 일반 문자시에 비해서 극순간의 양식으로 서정시 본질에 더 가까이 닿아 있는 양식적 특질에 기인한다고 봐도 좋다.
송찬호의 「늙은 호박」은 사건을 다루는 요약적 서사로 서술적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디카시가 극순간의 양식이지만 송찬호의 경우처럼 요약적 서사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디카시가 이야기시처럼 마냥 길어져서는 바람직하지는 않다.
산이 산의 얼굴을
나무가 나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안녕, 인사 건넨다
― 이문연, 「명경」
숨은 화자-숨은 청자 통화체계로서 이런 작품은 큰 긴장 없이 관찰자로서만 보여준다. 이런 류의 디카시도 흥미롭다. 그냥 표면만 읽는 듯하지만, 거울의 이미지로 사물의 자아를 투영한다. 일상인들이 잘 보지 못하는 자연이나 사물의 의미를 담담한 관찰만으로 새롭게 보여준다. 이상의 시 「거울」은 현실 속의 나와 내면 속의 자아가 화해하지 못하고 갈등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비해서 이 디카시에서는 현실공간의 산과 나무는 물속에 비치는 무의식의 자아와 ‘안녕’ 하며 인사를 건네는 것에서 낯설어하지 않는 친밀도를 보인다. 이것은 화자는 평화로운 내면세계의 표출이라 해도 좋다.
숨은 화자-숨은 통화체계는 대체로 시적 맥락인 콘텍스트를 전경화하여 모방론적 관점에서 파악될 수도 있지만, 「명경」에서 보이듯 간접 화법이긴 하지만 표현론적 관점에도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또한 「명경」은 산이나 나무가 자연 그대로의 표상이 아닌 자아의 상징적 표상으로도 읽을 수 있어 존재론적 관점에서도 파악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특정 통화체계가 특정 시적 관점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숨은 화자-숨은 청자 통화체계는 자연이나 사물의 존재 의미나 의의, 이데아를 객관적 거리를 두고 해석하거나 관찰하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