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운 길에서 자동차 바퀴가 잠기지 않고 잘 멈춰 서도록 돕는 ABS는 1950년대 항공기 관련 기술로 개발되어 80년대부터 승용차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미끄러운 길에서 쉽게 출발할 수 있는 TCS는 ABS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현재 국내 ABS 기술 수준은 4채널 4센서 타입의 EBD ABS를 국산화한 정도. 지금은 ABS 개발을 바탕으로지난 90년대 중반 실용화된 전자제어 주행안정장치의 막바지 개발을 한창 진행중이다 글·박지훈 기자(mannong@carvision.co.kr)
ABS(Anti-lock Break System)는 에어백과 함께 운전자들이 차를 살 때 선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안전장비이다. 요즘 나오는 승용차들은 ABS와 에어백을 옵션이나 기본장비로 갖추지 않은 차가 한 대도 없을 정도. 운전석 에어백은 경차에도 기본으로 달리고 있고 ABS는 대부분 중형차 이하에 옵션, 이상에 기본으로 준비된다. ABS와 에어백은 같은 안전장비이지만 상황에 따라 서로 하는 역할이 다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닭과 계란의 논란처럼 잘라 말하기 힘들다. ABS는 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 있는 적극적인 안전장비이고 에어백은 충돌사고 때 운전자를 보호하는 소극적인 장비라는 차이가 있다.
항공기 기술로 출발해 80년대 보급
ABS는 원래 자동차가 아니라 항공기에 먼저 썼던 장비다. 1952년 던롭은 항공기용 기계식 ABS를 개발했지만 당시에는 마모나 내구성, 값 등이 문제되어 승용차에 얹기 힘들었다. 이후 포드가 1960년대 말 아날로그 회로를 바탕으로 한 ABS를 옵션으로 내놓았지만 비싼 값과 장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역시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벤츠는 1964년부터 ABS의 기본원리에 관한 연구를 시작해 1970년대 초반 전자제어 ABS를 얹은 시험차를 언론에 공개했다. 70년대 후반에는 ABS 상용화에 성공해 1981년 세계 최초로 트럭에 ABS를 달았다. BMW는 74년 3.0 CLS에 ABS을 처음 얹고 1988년에는 세계 최초로 모터사이클에 ABS을 달기도 했다. 볼보는 지난 84년 ABS와 TCS를 단 760 터보를 첫선 보였다.
국내에서는 89년 대우 임페리얼이 보쉬 ABS를 처음 얹었고 92년 뉴 그랜저가 ABS와 TCS를 함께 달았다. 소형차로는 94년 현대 엑센트에, 그리고 현대적인 개념의 4채널 4센서 타입 ABS는 96년 현대 다이너스티에 처음 얹혔다.
ABS의 원리는 간단하다. 빙판이나 미끄러운 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바퀴만 잠기고 타이어가 미끄러지며 차는 관성에 의해 앞으로 나아간다. 이 상황에서는 차를 조종하는 일이 불가능하고 제동거리도 훨씬 길어진다. 물론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다가 미끄러지기 시작할 때 떼고 다시 밟는 등의 더블(펌핑) 브레이크를 쓰면 조금씩 구동력을 살리면서 멈출 수 있지만, 듬성듬성 밟는 브레이크는 오히려 차를 미끄러뜨릴 수 있고 제아무리 빨라야 1초에 한두 번 이상 연속해서 밟기 힘들다.
ABS는 이런 동작을 기계가 대신해주는 장치로, 보통 유압을 조절해 1초에 6∼7번 정도 브레이크를 밟고 떼어 바퀴가 잠기지 않고 멈출 수 있게 해준다. ABS가 없는 차는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바퀴가 잠기며 미끄러져 스티어링 휠을 돌려도 차가 방향을 바꾸지 않지만 ABS가 있으면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은 상태에서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센서로 읽고 ECU로 판단해 HCU가 제어
ABS는 크게 휠스피드 센서, ECU(Electronic Control Unit), HCU(Hydraulic Control Unit) 등으로 구성된다. 휠스피드 센서는 바퀴의 회전속도를 감지해 ECU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내부가 자석과 코일로 된 작은 발전기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센서는 바퀴의 회전수에 따라 생기는 전압과 진폭의 정도로 회전속도를 파악한다. 보통 센서가 몇 개 달렸는지가 ABS를 분류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며 네 바퀴 각각에 달린 것을 4센서 타입이라고 한다.
ECU는 센서에서 입력되는 휠의 회전속도를 기초로 브레이크 압력의 제어여부를 결정하는 ABS의 두뇌다. ECU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휠이 헛도는지를 판단하는 것. 휠의 스핀 유무는 차의 실제속도와 휠의 회전속도 차이에 의한 슬립률로 파악한다. 슬립률이 크면 바퀴의 회전과 실제속도의 차이가 큰 것으로 정지상태에서는 0%, 달리다가 바퀴가 완전히 잠긴 경우에는 100%가 된다. 보통 고무로 된 타이어는 슬립이 전혀 없을 때보다 약간(10∼30%) 있을 때 접지력이 가장 뛰어나고 ECU는 급제동할 때 슬립률이 이 범위에 들어가도록 제어한다.
HCU는 마스터 실린더에서 생긴 유압을 ECU 제어로 조절해 휠 실린더로 보내는 역할을 하고 실제 제동력의 조절은 HCU의 솔레노이드 밸브가 한다. 전선이 동그란 모양으로 여러 번 감겨 있는 솔레노이드는 전류에 의해 자기장이 생기는 원리로 유로를 막거나 열어준다. HCU는 휠 실린더로 뻗어나가는 브레이크 파이프가 몇 개인가에 따라 3채널과 4채널로 분류된다. 3채널은 네 바퀴 중 두 바퀴에 브레이크 파이프를 하나만 연결하기 때문에 네 바퀴를 독립적으로 제어하는 4채널이 더 효과적이다.
이밖에 ECU는 시동을 걸고 차의 속도가 설정값(보통 시속 10km)에 도달하기 전에 스피드 센서의 이상유무를 스스로 진단한다. ABS를 단 차가 처음 출발할 때 아주 낮은 속도에서 ‘윙’하고 들리는 소리가 바로 자가진단을 하는 소리다. 또한 ECU는 시스템에 이상이 있으면 ABS의 작동을 정지시키고 내장된 진단코드로 시스템의 이상 부위를 진단한다. ABS가 고장나더라도 기본적인 브레이크 성능에는 이상이 없다.
EBD ABS와 TCS 바탕으로 ESP 개발
최근 국산차에 달리는 대부분의 ABS는 EBD(Electronic Brake force Distribution) 기능을 갖춘 4채널 4센서 ABS다. EBD 시스템은 상황에 따라 앞뒤 바퀴에 적절히 제동력을 분배하는 장치. 급제동을 하면 관성 탓에 차가 앞으로 쏠리며 하중이 이동하기 때문에 모든 바퀴에 똑같은 제동력을 나눠주다 보면 뒷바퀴가 잠기기 쉽다. 또 사람이나 짐을 많이 실었을 때에도 제동력을 똑같이 분배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EBD 시스템이 나오기 전에는 서스펜션이 낮아진 정도를 측정해 브레이크 압력을 달리 조절하는 ‘로드센싱 프로포셔닝 밸브’가 쓰이기도 했다. EBD는 ABS의 유압 시스템을 그대로 이용하기 때문에 약간의 제어 로직만 더하면 어렵지 않게 ABS 시스템에 추가할 수 있다.
ABS 시스템은 기본적인 제어가 비슷한 TCS(Traction Control System)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 TCS는 구동력 제어장치로 미끄러운 곳에서 가속할 때 바퀴가 미끄러지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다. 즉 급제동할 때 타이어가 잠기는 것을 막는 ABS와는 반대로 액셀 페달을 지나치게 밟았을 때 구동바퀴가 헛도는 것을 막아준다.
ABS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어 같은 궤로 발전해온 TCS는 초창기 주로 엔진을 제어해 출력을 낮추는 방법을 썼다. 드로틀에 흡입되는 공기의 양을 줄이거나 연료분사량을 줄이고 점화시기를 늦춰 엔진의 출력을 떨어뜨림으로써 바퀴의 접지력을 되살리는 원리다. 그러나 최근에는 엔진은 물론 브레이크나 디퍼렌셜 등을 종합적으로 제어해 코너링 중에도 접지력을 높여주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미끄러지는 바퀴에만 브레이크를 걸어주거나(브레이크 제어방식) 그 바퀴의 구동력을 반대쪽 바퀴로 옮기는(디퍼렌셜 제어방식) 등의 방법으로 타이어의 접지력을 살리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TCS는 자갈길 같은 곳에서는 바퀴가 헛돌더라도 강한 구동력을 전해 차를 탈출시키고, 코너를 돌 때는 스티어링 휠의 각도와 뒷바퀴의 속도 차이로 선회반경을 파악하고 액셀 페달을 얼마만큼 밟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TCS를 작동시키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브레이크 관련 제어기술은 ABS와 TCS를 기본으로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각 바퀴 브레이크를 제어해 달리는 차의 주행안정성을 높이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메이커에 따라 ESP(Electronic Stability Program), VDC(Vehicle Dynamics Control System) 등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기본원리는 비슷하다. 국내에서는 ABS와 TCS 기술을 최근에 국산화하고 지금은 주행안정장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는 브레이크 관련 제어기술은 다음 호에서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ABS vs Non ABS & TCS
1st Round-frozen road
먼저 겨울철 갑자기 도로에서 나타날 수 있는 빙판에서의 제동력을 테스트했다. ABS가 없는 현대 아반떼 XD로 시속 60km를 달리다 빙판 위에서 조심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바퀴가 잠기지 않도록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이내 바퀴가 잠기고 차는 직선으로 쭉 밀리다가 불규칙한 노면을 만나자 한 방향으로 심하게 돌아버렸다. 다시 같은 코스를 달리며 펌핑 브레이크를 시도해보았지만 처음에 잠깐 자세를 다잡는다 싶더니 노면이 불규칙한 곳에서는 어김없이 차가 돌았다. 특히 코너를 가정해 완만하게 커브를 그리며 빙판에 들어섰을 때는 미처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기 전부터 차가 돌기 시작했다. TCS는 물론 ABS조차 없는 아반떼 XD는 출발할 때도 액셀 페달을 밟으면 어김없이 헛바퀴가 돌았다.
반면에 ABS가 달린 르노삼성 SM3은 ‘우두둑둑’ 하는 작동음과 함께 상당히 긴 제동거리를 두고 정확하게 멈췄다. 노면이 불규칙한 곳에서는 조금씩 앞머리가 틀어졌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에는 긴급히 장애물을 피한다는 가정 아래 스티어링 휠을 힘차게 돌렸다. 방향을 바꿀 수는 있었지만 돌아가는 속도가 완만해 예상 장애물 코앞에서야 슬쩍 비켜갈 수 있었다. ABS만 달린 SM3은 출발할 때 헛바퀴가 돌았고 액셀을 깊이 밟으면 여지없이 한쪽으로 턴했다.
2nd Round-off road
이번에는 흙과 얼음이 적당히 깔린 비포장도로에서 대우 라세티 한 대로 ABS가 작동할 때와 작동하지 않을 때(ABS 퓨즈를 떼어냈다)를 테스트했다. 몇 번의 테스트 결과 ABS가 작동하지 않을 때의 제동거리가 정상으로 작동할 때보다 더 짧았다. 노면상태에 따라서는 ABS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 제동거리 단축에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ABS 퓨즈를 떼어내면 당연히 TCS도 작동하지 않는데, 출발가속은 TCS가 작동할 때가 훨씬 빨랐다.
3rd Round-two wheels on a frozen road
빙판을 약간 비켜서서 한 방향의 앞뒤 바퀴만 미끄러운 곳을 지나게 하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ABS가 없는 차는 마른 노면 쪽으로 심하게 돌았고 얼음 위의 바퀴가 마른 노면에 닿자 갑자기 제동력이 생기면서 다시 한번 휘청거렸다. 예전에 취재했던 어느 ABS 전문 테스트 드라이버의 말에 따르면 이같은 상황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차가 전복할 수도 있다고 한다. 반면에 ABS를 단 차는 빙판이 조금 거친 곳에서 방향이 약간 흐트러질 뿐 비교적 안정적으로 멈춰설 수 있었다. 4채널 4센서 ABS 덕분이다.
TCS가 없는 차로 같은 조건에서 액셀 페달을 밟으니 한쪽 바퀴만 헛돌며 차가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TCS가 없더라도 차동제한장치(LSD)가 달렸다면 마른 노면 위의 바퀴에 구동력이 걸려 출발할 수 있겠지만 보통 승용차에는 LSD가 달려 있지 않다. 한편 TCS가 달린 차는 그 길을 별 어려움 없이 출발할 수 있었다.
국내 ABS 기술 어디까지 왔나
ABS는 보쉬와 콘티-테베스가 한 해 800만 대 분 이상을 생산하면서 세계 ABS 시장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그 뒤를 델파이와 TRW(예전의 루카스)가 따르고 있고 그 밖의 몇몇 일본 업체들도 생산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ABS를 모두 수입에 의존하다가 지난 99년 만도가 국내 최초(독일,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번째)로 독자개발한 ABS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부터는 TCS도 국산화되었다. 만도는 매년 겨울 스웨덴의 아르예플로그에서 시험차 30여 대로 4개월간 혹한기 테스트를 실시하고 여름에는 뉴질랜드 퀸즈타운 북북 지역에서 2개월간 테스트를 하는 등 강행군을 계속해 2004년에는 주행안정장치 ESP를 국산화할 계획이다. 만도는 2002년 모두 70만 대 분의 ABS를 생산해 현대 쏘나타, 기아 카니발 등 국내 10여 개 차에 얹었고 최근에는 중국 수출도 시작했다. 한편 후발주자인 현대모비스는 독일 보쉬와 손잡고 역시 2004년을 목표로 ABS와 TCS, ESP를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