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나무 꽃 南降/심현재 여름이 오면 자귀나무 꽃이 핀다 분홍빛 웃음 몇 송이 가지마다 걸어 놓은 듯 바람이 스치면 수줍은 듯 흔들리고 노을이 물들면 볼까지 붉어진다 젊은 날에는 첫사랑의 두근거림인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것은 함께 늙어가는 부부의 미소였다 말이 없어도 좋고 손을 꼭 잡지 않아도 좋고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바람을 맞으며 나란히 서 있는 것 자귀나무 꽃은 오늘도 조용히 피어 사랑은 설렘만이 아니라 곁에 있어 주는 것이라고 분홍빛으로 말해 준다 2026, 6, 16 그림자의 눈물 南降/심현재 해 질 무렵 감나무 그림자가 마당을 건너왔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저녁이 되어서야 제 모습을 길게 펼쳤다 장독대 곁에 머물던 그림자 빈 평상 위에 누운 그림자 닫힌 방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그림자 바람이 불 때마다 검은 빛이 흔들렸다 마치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처럼 담장 너머로 햇살이 하나둘 거두어지자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다 울음은 소리가 없고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밤이 되자 마당의 그림자들은 모두 사라졌는데 아침이 되자 감나무 아래만 유난히 젖어 있었다 2026, 6,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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