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부터 9월까지는 신림동에서 헌법, 한국사 등의 기본 강의를 들었다. 이 때는 남들이 많이 본다는 책으로 기본서를 정하여 공부를 시작했는데 헌법은 김학성의 객관식 문제집, 한국사는 김윤수의 탐구한국사, 국제법은 정영진의 객관식 문제집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어공부는 매일 2시간 정도씩 투자했다.
1차 공부는 정말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아무리 외우고 외워도 일주일만 지나면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3월 19일 시험 당일 날까지 계속 외우는 것을 반복하며 시험장에 들어갔다. 1차 공부할 때 가장 힘들었던 괌고은 한국사였는데 34회 합격후 점수를 확인해 보니 한국사 점수가 67.5점이었다. 정말 마지막가지 한군사는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다.
1차는 마지막까지도 불안함 속에서 시험을 치렀다. 시험이 끝나고 1차 시험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2차 공부할 것이 걱정되었고 차라리 1차를 떨어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에 다시 복학하여 밀린 수업을 따라가느라 토익 시험을 신청하느라 정신없던 차에 1차 시험에 합격했음을 알았다. 그 때 내 점수는 83.00으로 커트라인에서 불과 0.5점차. 한 문제 차이로 붙은 것이었다. 아찔하기도 했고, 1차도 힘들게 붙었는데 내가 과연 2차 시험은 잘 준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정말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할 때 1차 합격의 기쁨보다는 2차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5. 35회 2차 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2차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너무 막막했고 답답했다. 남들은 2차 때 스터디를 한다고 하는데 주위에 함게 공부하는 사람도 없어서 한동안 불안햏ㅅ다. 특히나 34회 1차에 불합격할 경우를 대비하여 휴학한 것을 조기졸업으로 만회하기 위해 전공만 21학점을 신청하였는데 1차 시험이 19일이어서 3월 20일부터 학교에 출석하였더니 출석문제와 밀린진도, 리포트 등으로 너무 정신이 없고 하루하루가 힘이 들엇다. 정말 1학기 때는 학교 공부를 하느라 고시 공부는 전혀 하지 못했다. 너무 불안하고 힘이 들었고 같이 공부하는 사람도 찾기가 어려워 정신적으로 가장 괴로웠던 때가 1차 시험에 합격한 1학기였다.
어느덧 7월이 되자 학교를 1년 휴학하기로 결정하고 안정된 공부 장소를 찾기 위해 다시 신림동 독서실로 갔다. 7월에는 각 대학마다 특강이 시작되었고 국제경제학, 국제경제법 등의 특강을 들었지만 마음만 급하고 제대로 공부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때쯤 우연히 스터디 멤버를 구하게 되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4명이 만나 스터디를 시작했는데 함게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 정신적으로 큰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7월까지는 특강을 듣고 8월부터 본격적인 2차 공부를 시작했다. 그 동안의 시간이 너무 아쉬웠고 8월이 될 때까지 해 놓은 것이 없어 너무 불안했지만 차근차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8월에 미시 경제학부터 시작했는데 예전에 학교 수업을 들어서였는지 다행스럽게도 쉽게 진도를 나갈 수가 있었다. 1차 공부하면서 미시와 거시 수업을 들은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아마 8월부터 경제학을 처음시작하려고 했다면 마음만 급하여 제대로 공부는 하지 못하고 좌절감만 커졌을 것 같다. 그러나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책을 느리게 보며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이해가 될 때까지 시간잉 걸리더라도 곰꼼히 보는 편인데 경제학 역시 그렇게 공부했다. 미시는 이준구 교수의 책을 구석구석 읽고 혼자 식도 만들어보며 탄탄히 공부햇고 거시는 정운찬 교수의 책을 꼼꼼히 보았다. 미시와 거시를 보니 어느덧 9월이 되었다. 상당히 책을 느리게 본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일회독을 했어도 경제학은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9월에 되어서는 국제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또 8월부터는 선택과목인 독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남들에 비해 제2외국어는 상당히 늦게 시작한 편이엇다. 보통 제2외국어는 1차 시험 공부를 할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1차 공부할 때도 보지 않았고 2차 시험 공부하던 중 8월이 되어서야 공부를 시작했으니 상당히 불안한 출발이었다.
1차 공부는 정말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아무리 외우고 외워도 일주일만 지나면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3월 19일 시험 당일 날까지 계속 외우는 것을 반복하며 시험장에 들어갔다. 1차 공부할 때 가장 힘들었던 괌고은 한국사였는데 34회 합격후 점수를 확인해 보니 한국사 점수가 67.5점이었다. 정말 마지막가지 한군사는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다.
1차는 마지막까지도 불안함 속에서 시험을 치렀다. 시험이 끝나고 1차 시험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2차 공부할 것이 걱정되었고 차라리 1차를 떨어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에 다시 복학하여 밀린 수업을 따라가느라 토익 시험을 신청하느라 정신없던 차에 1차 시험에 합격했음을 알았다. 그 때 내 점수는 83.00으로 커트라인에서 불과 0.5점차. 한 문제 차이로 붙은 것이었다. 아찔하기도 했고, 1차도 힘들게 붙었는데 내가 과연 2차 시험은 잘 준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정말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할 때 1차 합격의 기쁨보다는 2차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5. 35회 2차 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2차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너무 막막했고 답답했다. 남들은 2차 때 스터디를 한다고 하는데 주위에 함게 공부하는 사람도 없어서 한동안 불안햏ㅅ다. 특히나 34회 1차에 불합격할 경우를 대비하여 휴학한 것을 조기졸업으로 만회하기 위해 전공만 21학점을 신청하였는데 1차 시험이 19일이어서 3월 20일부터 학교에 출석하였더니 출석문제와 밀린진도, 리포트 등으로 너무 정신이 없고 하루하루가 힘이 들엇다. 정말 1학기 때는 학교 공부를 하느라 고시 공부는 전혀 하지 못했다. 너무 불안하고 힘이 들었고 같이 공부하는 사람도 찾기가 어려워 정신적으로 가장 괴로웠던 때가 1차 시험에 합격한 1학기였다.
어느덧 7월이 되자 학교를 1년 휴학하기로 결정하고 안정된 공부 장소를 찾기 위해 다시 신림동 독서실로 갔다. 7월에는 각 대학마다 특강이 시작되었고 국제경제학, 국제경제법 등의 특강을 들었지만 마음만 급하고 제대로 공부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때쯤 우연히 스터디 멤버를 구하게 되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4명이 만나 스터디를 시작했는데 함게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 정신적으로 큰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7월까지는 특강을 듣고 8월부터 본격적인 2차 공부를 시작했다. 그 동안의 시간이 너무 아쉬웠고 8월이 될 때까지 해 놓은 것이 없어 너무 불안했지만 차근차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8월에 미시 경제학부터 시작했는데 예전에 학교 수업을 들어서였는지 다행스럽게도 쉽게 진도를 나갈 수가 있었다. 1차 공부하면서 미시와 거시 수업을 들은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아마 8월부터 경제학을 처음시작하려고 했다면 마음만 급하여 제대로 공부는 하지 못하고 좌절감만 커졌을 것 같다. 그러나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책을 느리게 보며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이해가 될 때까지 시간잉 걸리더라도 곰꼼히 보는 편인데 경제학 역시 그렇게 공부했다. 미시는 이준구 교수의 책을 구석구석 읽고 혼자 식도 만들어보며 탄탄히 공부햇고 거시는 정운찬 교수의 책을 꼼꼼히 보았다. 미시와 거시를 보니 어느덧 9월이 되었다. 상당히 책을 느리게 본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일회독을 했어도 경제학은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9월에 되어서는 국제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또 8월부터는 선택과목인 독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남들에 비해 제2외국어는 상당히 늦게 시작한 편이엇다. 보통 제2외국어는 1차 시험 공부를 할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1차 공부할 때도 보지 않았고 2차 시험 공부하던 중 8월이 되어서야 공부를 시작했으니 상당히 불안한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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