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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전직 사제들의 증언

작성자호심경|작성시간12.09.10|조회수93 목록 댓글 0

 

※ 아래 내용은 여러 자료를 취합한 것입니다.

 

1) 미사도중 구원받다 - 프랑코 마기오토

 

나는 십대 때부터 가톨릭 교회에 다녔다. 당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나는 가톨릭 교회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지는 못했다. 그 모든 일들이 내 마음 속에 있는 죄의식을 없애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그 모든 일들이 무용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절망했다.

 

나는 이탈리아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안은 부자였고 나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인간의 능력으로 소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한 인간이 진정한 삶을 누리기 위해 가져야 하는 것은 갖지 못했다.

 

나는 주교에게 가서 이 모든 일들에 대해 얘기했다. 주교는 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그분의 권위를 베드로와 교황과 사도들의 손에 위탁하셨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고 죄에 대한 모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교회는 성사들을 통해 혼을 정결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 준다. 성사들을 통해 혼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확실한 길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즉시로 가톨릭 교회 내에서 가장 힘든 길인 은둔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로마에서 가까운 산에 있는 수도원으로 갔다. 나는 머리를 깎았다. 옷은 모직으로 된 긴 통옷을 입었는데 여름, 겨울을 가리지 않고 같은 옷을 입었다. 여름에 그 더위란 말할 수 없었고 겨울에는 너무나 추웠다. 그 모든 일들을 육신의 힘으로, 인간의 의지로 나의 죄를 없애기 위한 깊은 열망으로 행했다. 그때 내 몸은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었다.

 

거의 1년이 되었을까, 결국 의사는 내가 그 곳을 떠나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할 수 없이 나는 후에 다시 돌아오리라 마음먹고 수도원을 떠났다. 그리고 신학원에 가서 신학을 공부했고, 사제가 되었다.

 

내가 임명된 교구는 큰 교구였는데, 거기서 80세가 넘은 사제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나는 그를 대신해서 모든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열심히 사람들을 섬겼다. 마음 깊은 곳에는 슬픔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사람들은 나를 무척이나 따랐다. 나는 신부로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하면서도 나는 행복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한마디로 나에게는 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누가복음의 한 구절이 나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너희 말을 듣는 사람은 내 말을 듣는 것이고, 너희를 멸시하는 사람은 나를 멸시하는 것이며 나를 보내신 이를 멸시하는 것이다."

 

이 구절을 로마 가톨릭은 교회의 절대적인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사용했다. 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모든 권세를 우리 사제들에게 넘기셨다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과 같고, 예수님을 멸시하면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 때문에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갈급함에 못 이겨 나와 몇몇 청년들은 신약 헬라어 원문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흥미로웠다. 그러나 계속해서 나갈수록 우리는 가톨릭 신앙과 성경 사이에는 간격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가장 큰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려 하셨고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신 반면 가톨릭 교회는 인간을 교회로 데려오려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마태복음 번역을 끝냈을 때 나와 함께 일하던 신부는 너무나 화가 나 있었다. 그는 내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우리가 아는 것을 신자들도 안다면 그들은 더 이상 교회에 오지 않을 걸세."

 

그래도 우리는 계속했고 마태복음 28장 끝부분에 와서는 무언가 분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너희 말을 듣는 자는 내 말을 듣는 것이고 너희를 멸시하는 자는 나를 멸시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분은 사도들에게 너희가 원하는 대로 가르치라든지, 사람들에게 사제 자신을 신뢰하도록 가르치라든지, 땅에 있는 교회를 크게 만들기 위해 가르치고서 그 말을 듣지 않으면 그것이 곧 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 즉 그분께서 이미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가르치라고 하셨다. 그리고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한 모든 것에 덧붙이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사도들의 말을 듣지 않거든 그들은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만일 차이가 존재한다면 더욱 자세히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열심히 성경을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차이는 분명해졌다.

 

일요일 아침 강론 시간에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의 권위를 세우지 않았고, 그 반대로 성경 자체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강론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여섯시 아침 미사를 맡았다. 아침 일찍 오는 신자들은 묵주 기도를 드리는 몇 명의 여신도들뿐이었다. 거기서 나는 마음껏 외칠 수 있었다. 몇 주 후, 여섯시 미사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주교는 나를 불렀다. 그는 내게 화가 나 있었고, 나를 다른 교구로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55,000명의 신자가 있는 임페리아라고 하는 큰 교구로 옮겨졌다. 그 교회는 새로 세워진 교회였으며 나는 내 아래 한 명의 신부도 두게 되었다.

 

거기서 젊은 사제인 나는 나이에 비해 대단히 높은 지위에 있게 되었다. 한 교구의 최고 사제가 된 것이다. 나는 다른 많은 사제들을 거느리며 사역하는 것을 즐겼고, 사람들이 나에 대해 칭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를 뒤돌아보면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쨌든 내 마음 속에는 행복이 없었다. 나는 강해설교를 하기도 했다. 성경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나에게 모여들었다. 특히 젊은이들이 내게 말씀을 가르쳐 줄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공부했다.

 

나는 갈라디아서 1장을 읽었다. 8절에 왔을 때 나는 계속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이 구절은 내게 충격이었다.

 

자기 목숨보다 성도들을 더 사랑하던 사도 바울이 여기서 "내가 당신들에게 어떤 다른 복음을 전했다면 나를 배척해도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들 중에 누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들을 배척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사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신자들에게 가르치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주교는 대단히 영리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나를 멈추게 할 수 있는지를 알았던 것이다. 그는 말했다. "자네는 너무 교만해.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자네는 나보다 성경을 더 잘 알고 교황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나?" 주교가 나에게 교만하다고 말했을 때, 나는 내가 교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게 주어진 지위를 내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어디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지 또한 알았다. 그것은 진리였다. 나는 내가 비참한 사람임을 알았고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도 알았다. 언제나 내 앞에 있는 죄가 나를 파멸시키려 하고 있었다.

 

나는 구약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사제(priests, 제사장)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해석할 권한을 위임하신 적이 있는지를 찾아보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해석하는 권위를 누군가에게 일임하신 것을 말씀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신약으로 가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성경을 해석하는 권위를 어떤 인간에게도 위임하신 적이 없었다. 그분은 사도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해석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때 요한복음 14:26 말씀이 너무나 분명하게 내게 다가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시리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교황이나 주교나 베드로의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사제의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였다. 그분 자신이 해석자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권위를 누군가에게 넘겨주신 적이 없으셨다. 이것을 깨달은 나는 큰 용기를 얻었다. 물론 내게 닥친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말씀을 전파했다.

 

그러나 죄 때문에 내 마음에는 거의 언제나 참된 기쁨이 없었다. 이제 나는 어디서 진리를 찾아야 할지를 알았지만, 내 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 혼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밤이면 나는 제단 앞에 꿇어 엎드렸으며 때로는 밤새도록 무릎 꿇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에 관리인이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주님께서는 나를 불쌍히 여기셨으며, 내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바로 그 때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일요일 정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제단 앞에서 있던 나는 이렇게 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은 잔인하십니다. 여기서 나를 죽여주십시오. 내 생을 끝내 주십시오."

 

그리고 제단 앞에서 손을 씻었을 때 옆에 있던 사제가 히브리서 10:10을 낭독했다. 그 말씀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 뜻에 따라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나는 너무나 놀랐다. "이 어리석은 자야, 너는 내가 내 생명을 헛되이 내놓았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를 값없이 구원한 것을 모르느냐? 이 어리석은 자야, 어째서 알지 못하느냐? 내가 너를 구원한 것은 내가 너를 구원하기 원했기 때문이고,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나는 옆에 있던 사제들에게 말했다. "그분의 음성이 들리지 않나? 그분 말씀이 들리지 않나?" 나는 그들을 보았고 그들은 의심어린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여기 기록된 걸 보게. 그분께서 모든 일을 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구." 그리고 나는 커다란 교회 안을 둘러보았다.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신음하며 울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분께서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셨고 우리의 죄들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나는 울었고 또 웃었다. 드디어 나는 내 마음에 분명한 답을 얻었다. 죄 짐을 벗은 것이다. 단번에 영원히, 단번에 영원히, 그분께서 모든 것을 이루신 것이다.

 

그들은 내가 아프다고 했다. 나 같은 젊은 신부에게 이 모든 책임감은 너무나 무거웠던 거라고 말했다. 어쨌든 나는 기뻤다. 나는 나를 보러 온 주교에게 이 사실을 말해 주려고 했다. 그들은 내가 사임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미사를 집전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죄를 위해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저녁에 사람들은 내게 고해성사를 하러 왔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왜 여기 오셨습니까?" "죄를 고해하려고 왔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네" "왜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그분께서 내 죄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만일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께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왜 나에게 와서 죄를 자백하십니까? 내가 당신의 죄를 어떻게 해 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 고해성사는 신속히 진행되었다. 그런데 수녀들이 주교에게 가서 이 사실을 고했고 마침내 나는 그들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로마 가톨릭 교회를 영원히 떠났다.

 

현재 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으며 많은 사제들과도 접촉하고 있다. 2년 전 로마에서는 3000명의 신부들 앞에서 설교한 적도 있다. 나는 더 많은 로마 가톨릭 신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를 간절히 원하며,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교황까지도 개심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2) 나는 종교를 통해 하나님을 찾지 못했습니다 - 헤르만 헤거

 

어려서부터 나는 영원한 지옥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길이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으며 그 말대로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수도원 생활은 강한 의지력을 기르고 모든 열정과 욕망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내가 들어간 수도원에서는 그러한 의지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종류의 육체적 고문도 동원하였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여러 차례 스스로 매듭이 달린 채찍으로 벗은 몸을 채찍질하곤 했습니다. 비록 채찍질이 아프긴 하지만 평온하게 참아 내면 관능적이고도 성적인 욕구들을 다 물리칠 힘을 얻게 된다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채찍질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범한 죄들을 속할 수 있고 따라서 장차 연옥에서 받을 형벌도 줄일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는 허리와 허벅지와 팔에 못이 박힌 참회의 사슬을 둘러서 그 못들이 살을 파고 들어와 고통을 주게 했습니다. 이외에도 몸을 다스리는 여러 종류의 단련법이 있었습니다.

 

이같이 자기 스스로에게 벌을 가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의 교만과 허영을 없애기 위해 고안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 중 하나는 사제가 복도 옆의 마룻바닥에 엎드리면 다른 사제들이 거기를 지나면서 그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할 때마다 나는 마치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벌레가 된 것처럼 느꼈지만 이러한 자발적인 겸손의 행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일 중에서 가장 심하게 굴욕을 일으키는 방법은 마룻바닥의 일부를 혀로 핥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동안 나는 마치 짐승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돼지가 진창에서 뒹구는 것이나 개가 빙빙 돌면서 코로 냄새를 맡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때때로 나는 먼지 속에서 기어 다니는 곤충 같은 느낌을 갖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내 자신을 벌하고 스스로 굴욕감을 느끼게 만들지라도 내 인격이나 태도에 어떠한 변화도 없었으며 그런 것들이 나아진다는 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단지 나의 약하고 죄악된 본성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혀로 마룻바닥을 깨끗하게 핥고 난 바로 그 순간에 내 안에서는 허영심과 자부심이 아주 강렬하게 일어났습니다. “넌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의지력이 대단한데! 다른 사람은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너는 해 냈구나. 너 스스로 이런 고통을 부과하고 잘 참아 냈으니 정말 홀륭한데!”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나는 이런 부조리한 일들을 통해 나 스스로 교만을 부축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도원 생활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장엄한 노력으로 이루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사제나 수도사가 그런 곳의 독방에 들어갈 때에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제로서 7년을 사역한 뒤 나는 브라질에 있는 로마 카톨릭 신학교에서 철학 교수로 임명을 받아 승진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의심들이 이미 내 안에서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차례 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속한 천주교회가 정말로 이 책에 부합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재자이시며 그분께서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다 짊어지셨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속한 천주교회는 중재자가 여럿이며 그 중에서도 마리아가 ‘모든 은혜의 중재자’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나는 하나님께서 교황에게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권위와 권세 즉 무오류한 권능을 주셨다는 것과 크리스천은 다 교황의 견해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를 지닌 자라는 것에 대해서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교황이 성경의 분명한 말씀들을 뒤엎고 다시 진술할 수 있는 절대권을 가진다는 게 맞는 것일까?”

 

마음에 이런 의심들을 품은 상태로 나는 더 이상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제로 남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수도원 생활은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허울과 그림자의 생활을 버리고 마침내 나는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멋있는 실제 세계로 나갔습니다.

 

나는 교수직을 사임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를 떠났습니다. 브라질의 열대 지방에서 쉽게 햇볕을 받아 달궈지는 사제복을 벗어버리고 반소매 셔츠 차림으로 경쾌하고도 자유롭게 걸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죄책감을 가지고 나가야했습니다. 겉으로는 자유로웠으나 마음속에는 안식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복음주의 교회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는데 이 교회 회중들은 오직 성경의 가르침만을 믿음의 토대로 삼았습니다. 이들이 베푼 사랑이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이들은 돈이 없던 내게 옷을 사 입으라고 돈을 주었고 음식과 거처도 주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그들을 늘 감사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그 교회 목사의 설교였습니다. 성경을 그렇게 설명하는 것은 듣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과연 내가 어떻게 비 로마 카톨릭 설교자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신학교 시절에 그리고 사제로 사역하던 시절에 나는 그런 교회들이 그릇된 것들을 가르친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실제로 그 교회들이 가르치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나는 그 목사로부터 사람은 철저히 길을 잃었고 소망이 없는 존재이므로 자기 힘으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으며 자기의 어떤 노력으로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설교에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 역시 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그리할 수 없음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기울이고 온갖 고행을 다 했지만 나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완전한 용서와 새 생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이런 회심의 경험을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얻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히 자신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이 풍성한 선물을 주신다고 그는 선포했습니다.

 

처음에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동화책의 이야기처럼 너무나 좋은 것이어서 믿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자신을 내어놓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지만 동시에 너무나 쉽고 값싼 것으로 보였습니다.

 

로마 카톨릭 신자였던 나는 구원이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으며 그것은 곧 투쟁해서 하나님의 호의를 얻어내는 그런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성경의 참된 가르침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로서 하나님의 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에 완전히 순종해야 다시 말해서 완전히 무죄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또 우리를 대신해서 그 법의 모든 요구 조건을 만족시킨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인생의 전환기가 내게 발생했습니다. 내 영혼이 온전히 신뢰하는 중에 그리스도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때에 나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음을 밝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나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셨습니다. 눈부신 빛이 쓰레기 더미 같은 내 과거 생활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이제 내 영혼은 폭격을 당한 시가지처럼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내 속에 파고 들어온 죄를 보면서 나는 고통으로 가득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쓰레기 더미에서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해 주셨으며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만들어 주셨음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참된 크리스천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노라. 아버지께서 나를 알 듯이 내가 아버지를 아노니 나는 양들을 위해 내 생명을 버리노라”(요10:14-15).

 

그때부터 나는 로마 카톨릭 사제로 지낼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바 하나님과의 친근한 교제가 무엇인지 깨달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죽은 율법주의는 뒤로 내버린 채 나는 크고 놀라우신 우리 하나님과 살아 있는 인격적 관계를 지속하면서 앞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죄로 인한 무거운 짐을 느끼는 사람은 결코 고해소에서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내가 고해소에서 그들의 사정을 들을 때 저는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여인이 아이를 원치 않아서 유산을 시켰습니다. 그 여자는 분명히 이것이 살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아주 진지하게 슬픈 심령으로 이것을 고백했으나 그녀의 양심은 계속해서 “너는 살인자다. 너는 네 아이를 죽였다”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인은 매주 내게 나아와 같은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여인에게 천주교의 가르침에 따라 이제 더 이상 그 죄를 고백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그녀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제가 그녀에게 이런 일이 생각날 때마다 “존경하는 마리아여”라는 기도를 드리라고 말했지만 그것 역시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것 말고 더 큰 형벌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여러분의 죄는 다 더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우리의 생활 자체가 다 더럽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범죄가 가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앞에서 우리 죄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움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려 죄들을 회개하고 그 이후에 그분께서 주시는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향해 “네 죄들이 용서되었으니 평안히 네 길을 가라.”고 말씀하실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누구든지 진리로 인한 자유함을 얻으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3) 나는 100명을 고문했습니다 - 진 브렙산트

 

내가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 해 전의 일이며 이제는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나는 파리에서 리용으로 가는 열차 속에 있었으며 내 앞에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일하던 프랑스 장교가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내가 입은 사제복을 보고 용기를 얻은 그는 내게 다가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종교를 대하는 것은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태도와 같았으며 사실 그것은 로마의 큰딸인 프랑스 천주교인들의 태도였습니다.

 

이렇게 사제에게 나오는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직접 만나는 것을 거의 모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양심의 문제를 들고 와서 사제를 만납니다. 그 장교가 내게 고백한 것은 실로 고통으로 시달리는 마음을 털어놓은 것입니다.

 

“내가 고문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를 고문합니다. 나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정보 장교로 일하면서 100명이 넘는 베트남 사람들을 고문했습니다. 그 중에서 10여 명이 내 손에 죽었습니다. 나는 오래 전에 이미 고해성사를 했으며 용서를 받았으나 여전히 화평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실 지금 고문당하는 장본인은 바로 납니다. 매일 밤 나는 무서운 꿈을 꿉니다. 내가 희생시킨 사람들이 나타나서 나를 고소하고 나를 미워합니다. 그들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고문한 거처럼 우리도 당신을 고문할 것이다.’ 이렇게 고문당하는 것만 해도 괜찮은데 이 외에도 다른 것이 있습니다. ‘사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음을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범한 죄는 너무나 큽니다. 나는 내가 큰 정죄를 받을 것을 압니다.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해성사는 실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과연 내가 이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했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화평을 줄 수 있습니다. 사제로서 고해성사를 들으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 자기의 양심을 괴롭히는 중대한 죄들을 고백한다고 해서 그가 그런 죄들이 용서받았음을 확신할 수 없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화평을 얻기 위해 평생토록 고행을 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 줍니다. 그래서 죄수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트라피스트회에 속한 가장 엄격한 수도원에 들어가서 고행을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진정으로 죄들의 용서를 받을 수 없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의 용서가 실제로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장교의 고백을 들었을 때 나는 어디서 화평과 죄 용서를 찾아야 할지 몰랐으며 그래서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 삶을 살면서 나는 사람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예수님께로 가십시오!”라고 말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로마 카톨릭 교인들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회개하면서 당신 자신을 완전히 주님께 내어 드리고 그분을 신뢰하면 죄들의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신의 죄와 형벌을 다 담당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 장교가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한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수백 번 십자가를 긋는 일이나 혹은 “내가 네 죄를 용서한다.”고 말하는 사제의 사죄 선언이 결코 자기의 죄를 없애지 못함을 마음속으로 느꼈습니다.

 

물론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사람의 죄가 용서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고해성사와 그에 따른 의식들은 결국 사제라고 하는 중재자 즉 인간 중재자를 들여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해성사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찾는 이들에게 방해물이 되며 그 결과 그들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자기 자신을 내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종교 의식만을 바라보게 되고 결국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의 의미를 즉 더 이상 다른 중재자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다 놓치고 맙니다.

 

참으로 죄들의 용서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나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평안과 죄들의 용서를 줄 수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 직접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분께서 당신이 원하는 마음의 화평을 풍성히 주실 것입니다.

 

4) 의심을 억누르지 마십시오 - 토픽 쿠리

 

나는 레바논에서 태어났으며 그 당시 시리아 천주교의 전통을 따라 세 번 물에 잠기는 의식을 통해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 살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므로 나는 예루살렘에서 긍휼의 자매들이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저메인이라는 이름의 수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나더러 사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 열세 살이 되어서 나는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사제 서품을 받은 뒤에 나는 많은 것을 의심했으나 상급자들은 이런 것을 다 ‘천사의 미덕’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은 누군가가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믿음에 대해 어려움이 있다 해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수호성인인 성 빈센트가 했던 대로 모방하십시오. 성 빈센트는 종이에 신조를 기록한 뒤 그것을 말아 두었다가 마음에 의심의 공격이 찾아오면 그 종이에 입을 맞추고 그것을 가슴에 껴안으면서 ‘주님, 저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런 조언을 따랐고 잠시 동안은 평안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오랫동안 지속될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신학교 강사로 임명받았는데 이 자리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사들을 통해서 이러한 능력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성사들은 내게 도움이 되질 못했으며 그래서 성사들의 가치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사제직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의 고해 사제 즉 프란체스코파 사제로 나이가 들어서 겟세마네 수도원에서 살고 있는 사제를 찾아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사랑하는 젊은이, 저 위대한 성인들도 자기들의 믿음에 반대되는 유혹들을 받으며 씨름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제직을 사임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평안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하기 바랍니다.”

 

그로부터 5년 뒤에 나는 베이루트 교구의 사제로 임명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가까이 접하면서 그들의 고난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알게 되었고 어떤 영적인 것으로 그들을 도와주려 했지만 내 영혼에 안식이 없었으므로 무기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나는 교황의 대리인을 찾아가서 사제직을 그만두겠다고 했으나 이번에는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는 내가 지쳐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약 20 파운드의 돈을 주면서 용기를 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지갑은 두둑해졌지만 내 영혼은 점점 더 공허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무 불평도 논쟁도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사제직을 그만두려 했으나 내가 속한 교회는 내가 조용히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가 끔찍한 체제의 노예가 되었구나. 교회의 간부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여전히 로마 카톨릭 신앙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말없이 교회를 나와 사제직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오직 로마 카톨릭 교회만이 구원을 줄 수 있으며 여기를 벗어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또 나는 로마 교회를 배반한 사제는 큰 탄핵을 받는다고 배웠습니다. 사실 그들은 교만으로 가득한 존재들이며 짐승과 같은 본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양심이 더 이상 로마 교회의 가르침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로마 교회를 떠난 사제들이 많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어느 날 나는 교구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제단을 치면서 “주님, 만일 주님께서 정말로 지금 이곳에 계신다면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뒤 나의 카톨릭 믿음에 대해 회의를 품은 채 나는 다른 종교들에 관한 책을 구하려고 베이루트에 있는 성경 서점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서점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종교들에 관한 책을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그들은 나를 환대했으며 단순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만 말했고 「확신을 얻기 위해」(Towards Assurance)라는 소책자를 주었습니다.

 

나는 이 소책자를 가지고 돌아와 매일 읽었습니다. 이 책과 함께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크리스천 복음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랍어, 라틴어, 아람어, 프랑스어로 된 성경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그것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전까지 나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느껴 본 적이 없었으나 그 이후에는 배고픈 상태로 그것을 꼭 붙들고 있습니다.

 

마침내 나는 성경의 지시에 따라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내 자신을 완전히 맡겨 버렸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 예수님, 주님만이 저의 구원자이십니다. 주님의 이름은 곧 구원자입니다. 나는 나의 구원자이신 주님에게 내 자신을 맡기오며 이제부터는 주님 외에 다른 것 위에 제 인생을 세우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내가 그토록 원하던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이렇게 내 안에 새 생명이 생기자 드디어 로마 교회를 떠날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아픔을 주지 않고 나는 주교를 찾아가 로마 카톨릭 교회를 떠나겠다고 말했습니다. 주교와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에 마침내 주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이상한 사상을 가졌습니다”. “아닙니다. 주교님. 이것들은 이상한 사상이 아니라 복음에 있는 것들입니다.”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프로테스탄트들이 주장하는 오류입니다. 왜 당신은 더 이상 고해 성사를 들어 주려 하지 않습니까?”

 

이에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들을 용서할 권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바로 그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리들을 조금이라도 침해할 수 없습니다.”

 

내 주교는 내 생각을 돌리기 위해 나보고 예수회 사제를 만나서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베이루트에 있는 신학교 교수에게 나를 보냈습니다. 그 교수는 나의 영적 생활에 대해 물었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기도란 내 영혼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당신은 성 빈센트에게 기도하십니까?

“아닙니다. 사제님, 전혀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십니까?”

“아닙니다. 저는 예수님께만 기도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성모 마리아를 믿지 않습니까?”

“물론 저는 그분을 존경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리를 취해 마리아에게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보니 당신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에 너무 깊이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당신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침내 나는 로마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 대 일로 주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마음의 화평을 누린 채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크리스천이란 사실 이처럼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전혀 알지 못했던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을 얻은 사람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자기의 노력을 포기할 때 생깁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일만을 신뢰하며 그분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실 것을 구하는 순간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 삶의 목적이 되시고 우리의 친구가 되십니다.

 

5) 성경이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 베니그노 주니가

 

나는 쉰 살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 철저히 영적 어둠 속에서 살았습니다. 오랫동안 사제 생활을 했지만 그리스도께 대한 내 지식은 아주 제한적이고 왜곡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내게는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그리스도가 복잡한 종교적 가르침이라는 담요 밑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나는 로마 카톨릭 교회 밖에서는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으며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대표자로 활동하는 교황이 무오류하다고 믿었습니다. 교황에 대한 내 충성심은 매우 컸으므로 교황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예수회 사제들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열여섯 살에 예수회의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페루, 에콰도르, 스페인, 벨기에 등에서 공부했고 나중에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 뒤 나는 여러 해 동안 카톨릭 학교들에서 가르쳤고 신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했고 내 교구의 교회 법정에서 부법관으로 활동했으며 군대에서 군목 사제직을 수행했고 내 조국의 두 교구에서 사제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교구 사제로 지내던 때에 나는 내 지역에 사는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을 적대시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이단으로 취급했고 우리 교인들에게는 그들이 도덕적으로 가장 천한 자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계속해서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기에 나는 성경의 빛으로 그들의 오류들을 밝히 보여 주기 위해 책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3년 간 성경을 한 장씩 공부하면서 나는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내가 오류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로 이것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이단들을 논박하기는커녕 나 스스로가 로마 카톨릭 성경에 의해 논박 당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동안 내가 믿어 온 로마 카톨릭 믿음들이 성경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동안 내가 하나님의 가르침보다 사람의 생각에 복종해서 그것을 추종했음을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한 장씩 공부하면서 얻게 된 것은 양심이 내 속에서 되살아난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나는 나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제로서 성결의 이미지를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실제로 나는 온갖 죄에 굴복했고 완전히 세상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내가 입은 검은 색의 사제복은 내 마음의 어둠을 상징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성사를 드리고 성인들에게 기도하며 참회하고 성수를 받고 사람에게 고백 성사를 해도 내 영혼이 갈구하기 시작한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쉰 살이 넘었고 또 카톨릭 교회의 사제였지만 나는 마침내 내 마음을 하나님께 처음으로 내놓았습니다.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게 실제적으로 살아 계신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슬픔에 싸여 내가 악한 삶과 지독한 죄들로 그리스도께 상처를 입힌 것을 회개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자 그리스도께서 내 삶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영적 어둠의 무덤에서 불러내시고 자기를 알고 느끼게 인도하셨습니다. 참된 영적 승리의 비결은 진실하고 생동감 있는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일 대 일로 개인적으로 만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영적인 복들도 확신할 수 있습니다.

 

6) 의식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 셀소 무니즈

 

어릴 때부터 나는 끊임없이 실존과 확실성을 얻고자 노력했습니다. 젊었을 때 나는 사제가 되는 것이 진리를 경험하고 영혼 구원을 얻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사제가 멸망하는 것은 돌멩이가 물에 뜨는 것보다 더 어렵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나는 12년 과정의 신학교에 들어가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규율에 따라 완전히 내 삶을 바쳤습니다. 거기서 나는 여러 형태의 금욕을 실천했고 나중에 스페인의 오비에도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신학교에서 학장으로 또 ‘금욕주의 및 신비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을 때에는 금욕주의를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금욕주의란 자기 자신을 정복하고 극도로 엄격한 자기 훈련과 절제와 혹은 육체에 가하는 징벌로 사람의 모든 열정과 욕구와 정욕을 제어하는 기술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추구하라고 가르친 자기 통제와 마음의 평정과 확실성 등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속에서 생긴 불안과 더불어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성경과 비교해 볼 때 생긴 실망감 등으로 인해 나는 매일 갈등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영적 싸움을 하던 시절에 해외에서 송신된 프로테스탄트 라디오 방송을 주의 깊게 듣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나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갈망하게 되었고 결국 성경을 내 영혼의 빛과 음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고 싶었기에 나는 오직 성경만을 믿음의 유일한 인도 기준으로 삼는 교회로 알려진 교회와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그 교회 교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나는 그분이야말로 오직 믿음을 통해 개인적으로 직접 만나야 하는 완전하신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계속해서 연구하면 할수록 나는 로마 카톨릭 주의의 오류들을 점점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었으며 결국 성경이 가르치는 회심을 나 스스로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속한 교회에 꽁꽁 묶여 있었으므로 나는 로마 카톨릭 주의를 버리지 않은 채 그러한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스스로 만든 잘못된 가르침들과 고도로 복잡한 교회 조직을 통해 그리스도를 옆으로 치워놓았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내게 무척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나는 회심하던 날 밤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주님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피난처로 삼고자 하던 날 드디어 내면의 갈등을 겪던 것이 모두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 날 나는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 날 밤 사실 나는 기도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에서 기도가 솟아 나왔고 나는 기도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죄 짐이 매우 무거움을 느꼈습니다. 나는 정말로 내 자신이 죄성으로 가득한 존재임을 느꼈습니다. 이처럼 아무 소망도 없이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요,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이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임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나는 성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자기에게 나오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셨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나는 그분께서 내가 받을 수 없는 용서와 평안을 거저 주시면서 나를 이끄시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죄들로 인한 형벌을 기꺼이 받으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다 버리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 내 자신을 맡겼습니다. “주 예수님, 내게로 오시옵소서. 이제 나는 주님만을 나의 유일한 구원자로 맞아들이며 주님께 나를 다 드립니다.”

 

그 몇 시간은 마치 몇 분처럼 빨리 지나갔습니다. 나는 주 하나님과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되었음을 느꼈으며 사실 이것은 그전에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오 주여,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영원토록 나는 주님의 소유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나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리저리 흔들리고 의심하고 방황하던 것이 다 사라졌으며 그때 얻은 행복감은 완전했습니다. 이제 나는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택할 것인가, 로마 카톨릭 교회를 택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으나 나는 그 결과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내 영혼을 자신에게 맡긴 것을 보고 내 삶을 책임져 주시면서 내가 자신과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단순히 이 길로 가면 된다고 길만 보여 주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길 자체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단지 진리를 가르치는 분이 아니라 바로 그 진리 되시는 분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인간적인 목적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린 영웅이 아니라 자기에게 돌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생명이 되어 주시는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금욕주의 신학 교수로서 무니즈는 자아를 제어하는 방법과 사람의 열망을 통제하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연구를 통해 불교의 승려들이 사용하는 기법들도 조사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는 거룩한 삶을 창출하기 위해 사람이 고안한 방법들을 잘 아는 전문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전문가가 사람의 본성은 무기력해서 자아를 향상시킬 수도 없고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무니즈 교수는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듭니다.

 

내 자신의 죄성으로 가득한 본성이 완전히 부패한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마치 파선해서 멀리 떨어진 해안을 바라보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는 헤엄을 쳐서 그 해안에 다다르기만 하면 안전을 얻을 것입니다. 그 해안은 멀리 떨어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해안은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단지 바닷물로 인해 가깝게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 그는 헤엄을 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잘 나가는 것 같은데 해안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갑자기 해류가 밀려와 그를 다시 바다 한가운데로 밀어 넣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헤엄을 칩니다. 이 해류를 극복하고 해안에 닿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자꾸 반복을 하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자연의 법칙이 자기를 밀어내어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한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제 절망한 상태로 그는 죽음을 기다립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자기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함을 깨닫습니다.

 

그 영원의 해안에는 거룩한 하나님이 거주하시며 그분은 자신의 명령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거룩함을 유지합니다. 이 명령들은 바로 그 영원한 해안의 앞에 있는 큰 파도와 해류입니다. 사람은 결코 자신의 힘으로 그것들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본질상 너무 약하고 죄성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을 좀 더 확대해 보기 위해 해안에서 헬리콥터가 이륙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조종사가 물에 빠진 이 사람을 볼 수 있을까요? 드디어 헬리콥터는 이 외로운 사람이 아무 소망 없이 파도를 이기려고 허우적대는 그 지점으로 가서 그의 머리 위로 밧줄을 내립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그 밧줄만 붙들면 헬리콥터는 그를 물에서 건져서 파도 위를 지나 안전한 해안으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것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그분께서는 영원한 곳에서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아버지 편에서 우리 쪽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죄의 형벌을 당하시면서 하나님의 진노의 파도 속에 친히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나와 여러분처럼 파선 당한 사람들을 구조하십니다.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율법의 파도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구원의 손을 내미십니다.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정죄의 바다에서 구출되어 새 생명을 얻습니다.

 

이제 다시 물에 빠진 사람을 보도록 합시다. 만일 그가 밧줄을 무시하고 자기 힘을 어떻게 하든지 해안에 다다라야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분명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반쯤만 신뢰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가 한 손으로는 밧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헤엄을 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는 양쪽 모두 실패할 것이고 결국 익사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신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사와 면죄부와 선행과 성인들의 공로를 신뢰한다면 결코 주님이 주시는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참된 구원은 우리가 100%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에 우리에게 거저 주어집니다.

 

7) 20년간 나는 내 믿음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 레나토 로렌조

 

내가 로마 카톨릭 교회를 떠난다는 것은 결코 믿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더더욱 사제직을 버린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만일 누가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더라도 나는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열다섯 살에 살레지오파 수도원에 들어갔고 적절한 때가 되어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나는 주로 청년들과 함께 일했으며 사실 그 일을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이렇게 10년을 사제로 사역하던 중에 수도원장이 내게 징계를 내리면서 로마로 가서 한 달 동안 영성 훈련을 쌓고 오라고 했습니다.

 

내가 징계를 받은 이유는 한 젊은 여자에게 사랑을 느꼈다고 그에게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 여자와 관계를 끊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정말로 그 여자를 사랑하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며 또한 이미 내 인생을 하나님께 바쳤으므로 내가 하는 일을 다시 살펴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결정 속에는 교만과 이기심도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제의 소명에 신실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사실 내게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수도원장에게 다른 수도원으로 가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내게 아버지처럼 따뜻한 훈계를 주지 않고 대신에 징계를 하겠다고 알려 왔습니다. 그때 나는 이제 내 인생에서 이것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힐 것이며 또 윗사람들로부터 이로 인해 항상 의심받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로마에서 한 달을 지내는 동안 나는 좌절감을 느끼고 참담한 생각만 하게 되었습니다. 종종 오디로든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나폴리에서 일하는 것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때 깊은 좌절의 순간들을 보냈습니다. 주님께 기도했지만 내 주변의 일들은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마치 감옥에서 지내는 것처럼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 끊임없이 고통을 받고 나 자신의 결백을 확증하곤 했습니다.

 

그 수도원은 구 로마 시가지 근처의 셀리에 산에 자리 잡고 있었으므로 로마 시가지와 콜로세움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서 나는 내 밑으로 흘러가는 일상생활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사귐을 즐기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정말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인지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섞이고 싶었습니다. 나는 검은색 수사복과 사제복을 벗어 던지고 다른 사람들처럼 진정한 의미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사실 이런 옷들은 나 자신을 실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연로한 사제에게 이야기하면서 내 감정을 그대로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 수도원장에게 과거의 사역지로 돌아가도록 허락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냈더니 수도원장은 내 죄와 범법으로 인한 대가로 이런 불쾌한 경험을 갖는 것을 고행으로 알고 이겨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날은 외출해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수도원장은 내가 순례자의 자세로 로마를 걸어 다닐 것을 원했지만 나는 여행객처럼 로마를 관광했습니다. 그 날 나는 저속한 신문과 잡지를 사서 보았지만 만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기회를 이용해서 나는 여러 사제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들의 논조는 항상 한 가지로 귀결되었습니다. 내 문제를 절대로 수도원장에게 말해서는 안 되며 나만의 비밀로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 수도원장은 교회의 법을 아주 엄격한 방법으로 해석했으며 있는 그대로 그것을 내게 적용했습니다.

 

나는 나폴리로 되돌아갔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서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님께 돌아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로마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순종하며 지내온 날들을 되살펴 보고 성경의 가르침과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로마 교회의 가르침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로마 교회는 자기의 가르침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을 그릇되게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오직 로마 교회를 통해서만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으므로 로마 카톨릭 교회를 믿고 추종해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은 곧 땅에서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 즉 교황에게 복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징계를 받는 독방에서 복음서를 읽으면서 나는 이 가르침이 복음서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로마에서 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주소를 알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자주 뒤적거렸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프로테스탄트들과 접촉하고자 했던 유일한 이유는 로마 교회를 떠나 새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도움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는 그들이 내 믿음의 갈등에 도움을 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나폴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프로테스탄트들을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고 혹시 그들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나는 사제로서의 모든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지만 일곱 달 동안 미사를 겨우 스무 번밖에 집례 하지 않았고 고해성사는 그보다 더 적게 했으며 설교는 아예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일요일에 나는 미사를 드리지 않고 밖으로 나가 무작정 걸었습니다. 걷는 도중에 나는 어느 건물에서 성경과 관련된 서적들을 진열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복음주의 교회의 입구였습니다. 당시에 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제복을 입고 있었으므로 혹시 이런 복장으로 들어가면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 교회 목사에게 전화를 걸고 개인적으로 그를 만나 내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내게 전직 로마 카톨릭 사제들을 소개해 주었으며 그들은 내게 큰 도움을 주었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내 교회를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조금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제로서 그리고 젊은이들의 영적 지도자로서 내 임무를 다시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종교적인 일들을 많이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그린 일들에 대한 혐오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미사를 믿지 않았고 사제로서 고해성사를 듣는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새로 온 수도원장과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는 내가 프로테스탄트 신앙 쪽으로 표류해 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는 나더러 마리아에게 잃어버린 신앙을 되찾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이제 드디어 나는 불가피하게 사제직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나는 나폴리를 떠나 전직 사제들의 유명한 피난처가 있는 곳 즉 네덜란드의 벨프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께 죄들의 용서와 도움을 간구한 결과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나는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탄생에는 수고와 고통이 있게 마련입니다. 20년간의 수도원 생활과 로마 카톨릭 신학교에서의 신학 훈련 그리고 고집이 센 내 성격이 더해져서 내가 하나님을 구하고 발견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어린아이 같은 자세로 주님께 내 자신을 드리고 “주님, 제가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기쁨과 슬픔을 통해서 내 믿음을 강하게 해 주셨고 자신을 살아 계시고 개인적인 친구와 구원자로 내게 알려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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