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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걷는다

경성편람 (1929)에 수록된 '우정총국(郵政總局, 견지동 39번지)' 옛 건물 모습

작성자제자리|작성시간11.01.01|조회수457 목록 댓글 0

경성편람 (1929)에 수록된 '우정총국(郵政總局, 견지동 39번지)' 옛 건물 모습

  

▲ <경성편람> 1929년에 수록된 '우정국 구사'의 모습이다.

 

36. 우정국 구사(郵政局 舊舍)

본사의 위치는 전 전동(前典洞) 현 견지동(現堅志洞) 39번지 (일본인 택포(澤浦, 사와우라) 소유로 대가(貸家)가 되었다.) 이전 전의감(典醫監)기지이다. 고종 21년 갑신 당시 조선의 정계는 2파에 분하엿으니, 일은 사대당(수구당)이라, 청국에 의뢰하여 정권을 전횡하던 명성후(明成后)를 중심으로 민태호, 민영익 급 기타 대관 등이오, 일은 개화당(독립당)이라, 일본과 화친하고 내정을 개혁하여 조선의 독립을 공고케 하자던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서광범 등 제씨였다. ...... 고종 21년에 우정국을 건설하고 동년 12월 4일 개국축연에 우정국 총판 홍영식씨를 명의로 각국공사 급 정부, 대관 등을 초대할 새, 연수한 중에 돌연히 인가(隣家)에 방화하여 소란을 일으키고 일변 자객으로 민영익을 자상한 후 김옥균, 박영효 등이 직시 궁내에 입주하되 청병이 작란하여 민씨를 살해한다 칭하고, 고종을 모시어 경우궁(景祐宮)에 파천케하고, 구병으로 호위한 후 구파에 속한 정부대관 등을 죽이고 일대 정변을 꾀하다가 형세가 돌변하여 청병과 조선병이 합공함으로 박영교, 홍영식 양씨는 북문으로 도방하다가 청병에게 살육되고 (북묘(北廟) 자리에서) 김옥균, 박영효 양씨는 일본으로 망명하였으니, 이것이 조선근대사상의 일대혁명이라 할만한 유명한 갑신정변(甲申政變)이며, 이 정변의 발단처가 우정국 구사이다.

 

▲ <조선중앙일보> 1932년 12월 26일자, "대경성 시중의 건물로맨스(9) 견지동 우정국 자리의 유래"

 

"......그러므로 전일 본란에 말한 우정국 사변은 다 이 집에서 났었다. 지금도 그 집 대문에 민영익을 후려치는 칼자욱이 그저 뚜렷이 남아 있다. 그 난리가 없었더면 그 집이 우정국으로 오래되어 한참 큰 구실을 하였을는지 모를 것인데 ...... 사역원 집에서 한어조가지만 가르치는 학교로 되었으니 그것도 무슨 인연이라고 할까. 한선의 일이 더욱 창황하게 되지 한어학교도 그만 없어지고 말았으며 다시 중동학교(中東學校)가 그 집에서 되어 수없는 학생 손자본 학생까지 드나들었다. 경술년에 합병이 되자 그런 각아문 자리가 모조리 총독부로 넘어가게 되며 그집도 따라서 새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새주인 만난 후에는 그집이 아주 소용없어 불하(拂下)하는 대우를 받아 지금은 어느 일본인 개인의 소유로 되었다. 헐리기도 하고 남은 것도 아주 퇴락하여 예전에 그런 중대한 관계를 가졌던 듯도 싶지 않지마는 남은 한채의 모양만 보아도 삼간통 대청량에 놉직한 장대들이 제법 ...재가 많이 들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갑신난 정변을 일으키던 사람도 아직 살아있는 이가 많고 그 정변으로 죽은 사람의 자손도 많은데 그네들이 그집으로 지나면 다른 사람보다 ...... "

 

 

▲ <별건곤> 제23호 (1929년 9월)

 

벽해상전 같이 격변한 서울의 옛날집과 지금집

<별건곤> 제23호 (1929년 9월)

<> 우정국(郵政局)과 일본인 택포가(澤浦家, 사와우라 집)

견지동 39번지에 있는 일본인 택포(澤浦)의 소유인 고색창연한 조선식 가옥은 원래 전의감(典醫監) 고지(故址, 옛터)로 이태왕(고종) 갑신시대에 우정국이 되었는데 그 낙성식일에 김옥균 일파가 그 부근에 화(火)를 방(放)하고 민영익 등 대관을 저격한 후 인(因)하여 갑신정변(甲申定變)을 일으킨 곳이다.

 

고건물순례 (12) 갑신정변 발단된 우정국 (호암 문일평) 

<조선일보> 1935년 7월 25일자

...... 그 정변이 주동되었던 제인(諸人)도 거의 다 가버렸고 또 그 무대되었던 제궁(諸宮)도 이미 다 헐리고 말았는데 오직 최후로 우정국 구사(郵政局 舊舍) 하나이 잔존할 뿐이다. 그 위치는 전전동 현 견지동 39번지이며 오늘날은 일본인 택포(澤浦, 사와우라)의 소유로 대가가 되어있다. 그 정원에 큰 고목(古木)이 한 그루 서서 있는 것도 회구의 감을 더욱 깊게 한다. 근대사상 유명한 갑신정변이 발단된 이 우정국은 그리 오랜 건물이 아니나 유서깊은 곳이다.

  

▲ <조광> 제7권 제11호 (1941년 11월호)에 수록된 '우정총국'의 모습이다. "우정국 - 지금도 견지정(견지동)에 남아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키쿠치 겐죠(菊池謙讓), "동양의 선각자 김옥균 : 갑신정변과 김옥균"]

 

▲ 우정총국 중수기념비 (1972년 제작)

 

우정총국 중수기념비, 사적 제213호

이 사적은 우리 나라 근대우편사업의 발상지이다. 이곳에 1884년 4월 22일(고종 21년 음 3월 27일) 칙명으로 우정총국(郵政總局)이 설치되고 초대 총판 홍영식이 임명되어 그해 11월 18일(음 10월 1일)부터 업무를 개시하였다. 그러나 동년 12월 4일(음 10월 17일) 우정총국 개설연(開設宴)이 계기가 되어 갑신정변이 일어나 총국 업무는 중단되었다. 또한 이 사적은 우정총국 개설 전에는 조선왕조 초기부터 전의감(典醫監)으로 사용되었으며 갑신정변 이후에는 일시 교육기관으로 쓰인 적도 있다. 그 후 1956년부터 체신부에서 관리하여 오던 중 1970년 10월 22일 문화재 사적 제213호로 지정되었으며 1972년 9월에 경내구역을 확장정비하여 건물을 전면 중수하는 한편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로 유실된 우정총국 현판을 복원하고 준공함에 이르러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비를 세워 유래를 밝히려 한다.

서기 1972년 11월 18일

체신부 장관 신상철(申尙澈) 세움.

 

(정리 : 이순우, 2011.1.1, http://cafe.daum.net/distorted)

 

[관련자료연결]

======> (김옥균전 수록 '우정총국' 사진)

 

http://cafe.daum.net/_c21_/cafe_nsread?grpid=sAoB&mgrpid=&fldid=c5L&contentval=0009Z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593&page=1&query=우정총국&item=subject&jobcode=1&dataidlist=593,209,39,486,29,67,&fldidlist=c5L,2xbP,2xbP,c5L,at5,2xbP,&cpage=0&totcnt=6&sorttype=&from=total&list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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