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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걷는다

옛 동적전 자리를 차지했던 원잠종제조소(原蠶種製造所)와 잠령공양탑(蠶靈供養塔)

작성자제자리|작성시간12.11.11|조회수573 목록 댓글 1

옛 동적전 자리를 차지했던 원잠종제조소(原蠶種製造所)와 잠령공양탑(蠶靈供養塔)

 

▲ 1936년에 제작된 대경성정도에 나타난 신설동 및 용두동 일대의 배치현황이다. 오른쪽에 붉은 동그라미 표시가 '잠종제조소 앞' 전차정류소 표시이다. 이곳은 옛 선농단의 입구에 해당하는 지역이자 '잠종제조소' 로 변한 동적전(東籍田) 구역의 외곽경계지점에 해당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지도의 상단부에 활 모양처럼 휘어진 길은 청량리로 이어지는 옛 전찻길(안감교를 경유)이지만 1933년에 남쪽으로 직선도로(신설교 경유)가 개설되면서 마치 이면도로인 양 위상이 떨어진 도로이다. 현재 이 도로에는 '한빛로'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역사적인 의미나 내력을 되살리자면 '옛 (청량리) 전찻길'이거나 '청량리 옛길'이라거나 하는 식의 도로명을 붙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도의 아랫쪽에 보이는 운동장 트랙 같은 모양의 표식이 남은 구역은 '옛 신설동 경마장'(신설동 로타리 남쪽 구역으로 현재 동대문우체국과 서울풍물시장 일대가 모두 이곳에 포함)이다.

  

청량리 전차선로의 경우, 동대문을 벗어나면 창신동―동묘전―신설동(돈암리입구)―경마장전―안암정(신설리)―잠종제조소전[용두정]―용두교[성동역]―[제기정]―청량리―역전의 순서로 전차정류장이 이어진다. 여기에 나오는 ‘잠종제조소’의 정식명칭은 ‘원잠종제조소(原蠶種製造所)’로 양잠(養蠶) 즉 누에치기를 위한 누에씨를 생산하는 기관을 말한다.

 

이 원잠종제조소는 각도별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경기도의 경우 1916년 봄 처음 금곡(金谷)에다 이를 가설치하였다가 그해 12월에 동대문밖 동적전(東籍田) 자리(용두동 138번지 일대; 옛 서울대 사범대학 구역과 중복)에다 새 공장을 지어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와 아울러 1919년 5월 조선잠업령(朝鮮蠶業令)의 실시와 더불어 설치된 잠업취체소(잠업취제소)도 1929년 8월에 원잠종제조소와 바로 서쪽으로 이웃하는 구역(용두리 140번지)에 이전하여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다가 1938년 원잠종제조소는 경기도 농사시험장과 더불어 경기도 부천군 소사면 벌응절리로 이전하게 되었고, 그 자리는 경성여자사범학교(京城女子師範學校; 해방 이후 경성사범학교와 통합하여 서울대 사범대학으로 전환) 건립부지로 전환되어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원잠종제조소와 관련하여 한 가지 특이한 유물 하나를 소개하자면, 1926년 11월에 건립된 ‘잠령공양탑(蠶靈供養塔)’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 원잠종제조소장이던 농학박사 우메타니 요사부로(梅谷與三郞)의 발기로 건립되었으며, 전면에 새겨진 것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1858~1936)의 글씨이다.

 

이 탑은 당초 용두리에 있는 원잠종제조소 안에 세워졌으나 이 기관이 부천 소사로 일괄 이전이 이뤄짐에 따라 1939년 4월에 뒤따라 그곳으로 함께 옮겨졌다. 그 이후 어찌 된 영문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재 이 공양탑은 인천시립박물관 뜰에 수습되어 진열전시되고 있다.

  

▲ 1926년 11월에 잠령공양탑이 건립될 당시의 신문자료와 보도사진이다. 당초의 건립 장소는 서울 용두동 옛 동적전 구역안 '잠종제조소(정식명칭은 경기도 원잠종제조소)'이다. 사람을 위해 번데기의 신세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이 누에들의 운명이므로, 이들의 혼령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위령탑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1922년에 옛 총독부의원이었던 서울대병원 구내에 건립된 '실험동물공양탑'이 있고, 여러 도수장(도축장)에도 희생동물들을 위한 위령비가 건립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 1938년 잠종제조소가 경기도 농사시험장과 더불어 경기도 부천 소사로 옮겨갈 때 잠령공양탑도 그 이듬해에 함께 옮겨갔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 탑은 기단부는 사라진 채 인천 송도에 자리한 '인천시립박물관' 뜰에 옮겨져 그곳에 진열전시되고 있다.

 

▲ 이 탑의 존재에 대해 자세히 신경를 쓰는 사람도 없는 듯하지만, 이 탑의 글씨는 쓴 사람은 바로 최장기 조선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이다. 비석 전면의 아래에 '고수(皐水)'라는 작은 글씨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이 곧 사이토 총독의 호(號)이다.

  

▲ 『경성부사』 제3권(1941)에는 잠령공양탑의 건립경위와 탑비의 기재내용이 대한 설명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은 현재 인천시립박물관 야외전시구역에 남아 있는 비석 후면의 모습으로,  '경성부사' 자료에 서술된 내용이 일치하는 구절이 남아 있음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차제에 잠령공양탑에 대한 제작주체 및 동기와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수습되기까지의 경위 등에 대해 현장 설명문이 좀 더 보완될 필요가 있을 않을까 하는 생각을 덧붙여 본다.)

 

(정리 : 이순우, 2012.11.10, http://cafe.daum.net/disto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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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립옹 | 작성시간 14.01.06 좋은 자료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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