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근정전의 일장기 사진은 1910년 경술국치 때가 아닌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당시의 장면
경술국치 100년과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에 관한 여러 다큐멘터리나 사진전, 뉴스보도에 '자주' 등장하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경복궁 근정전에 일장기가 버젓이 걸린 사진..... 그야말로 국권피탈의 현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사진은 매우 빈번하게 소개된 것과는 달리 '경술국치' 당시의 사진이 아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국가기록원이 주관하는 전시회에도 이 사진이 1910년 경술국치와 동시에 경복궁에 내걸린 것이라는 설명도 있는 모양이다. 이건 모두 잘못된 설명이다.
너무도 많은 곳에서, 너무도 자주 이러한 오류가 반복되고 있기에, 이 사진의 정확한 출처와 사진촬영시점에 대해 아래와 같이 명확하게 적어두고자 한다. 아무쪼록 잘못된 설명은 서둘러 바로 정정될 수 있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 지난 2007년 정초에 나온 어느 기사에 보면 국가기록원에서도 이 사진자료가 확보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나, 위의 설명문안에 보이듯이 "한일합방조약이 공포된 후 경복궁 근정전에 일장기를 걸어두고 국권찬탈을 철저히 상징화했다"는 설명문을 붙여 두고 있다. 근정전에 일장기가 걸린 것은 분명 그러한 측면을 내포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으되, 적어도 이 사진이 내걸린 동기는 이른바 '한일병합조약'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 경술국치 당일 문화방송의 뉴스보도에도 자료화면으로 이 사진이 이용된 적이 있다. 이곳 역시 "일장기 걸린 경복궁 근정전, 1910년 8월 29일"이라는 자막이 걸려 있다.
▲ <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 1> (동아일보사, 1978)에 수록된 사진자료이다. 자주 경술국치의 상징 사진으로 등장하는 오류의 근원이 이 사진자료인 듯도 하다. 여기에는 "근정전에 걸린 일본기 : 합방이 되자 일인들은 재빨리 경복궁 근정전에 그들의 국기를 내걸고 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근정전 위를 날고 있는 것은 일군 비행기 삼중호(三重號)다."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이러한 설명 때문에 이 자료가 그대로 인용되면서 마치 1910년 강제병합 당시의 상징처럼 이 사진이 여기저기 인용되고 있는 듯하다. 올해 제작된 경술국치 관련 다큐멘터리에도 이 사진이 매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아 시진의 전부를 다 화면에 담아내지 않고, '붉은 표시'가 된 근정전 부분만을 근접촬영하여 프로그램에 내보내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이 경우 이 사진의 촬영시기를 판독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 하나가 누락되게 된다. 바로 그 위쪽에 보이는 '비행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비행기의 정체는 '설명문안 그 자체에 이미 포함'되어 있듯이 '삼중호(三重號, 미에호)'이다. 이 땅의 일본비행기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13년의 일이다. 따라서 비행기가 등장하는 사진은 적어도 1913년 이전에는 촬영될 수 없기에, 1910년 당시의 사진은 아니라는 결론이 저절도 도출된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언제, 어떠한 경위로 촬영된 것일까?
▲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당시에 촬영된 사진자료로, 앞서 경술국치 당시의 것으로 자주 '오인'되곤 하던 그것과 동일한 것이다. 여기에는 "근정전 상공의 비행기 삼중호"라고 되어 있다. <사진으로 보는 근대한국 1>의 설명문에, '삼중호'라는 비행기 이름이 그대로 표시되어 있는 걸로 보아, 그 사진의 원출처가 바로 이것임이 드러난다.
▲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당시의 사진자료에 포함된 또다른 사진으로, 근정전 앞에 일장기가 걸려있고 이곳에서 '공진회 개회식'이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 소개되어 있다. 이 공진회 개회식이 벌어진 때는 '1915년 10월 1일'이었다. 그러니까 비행기가 보이는 근정전 일장기 사진은 바로 그날 촬영된 것이 재차 확인된다.
▲ 경복궁 근정전 위를 나르는 비행기는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의 교섭에 따라 일본의 제국비행협회가 조선물산공진회를 축하하기 위해 보낸 '삼중호(三重號)'라는 것이었다. 용산연병장에서 날아올라 수십분간 또는 한시간 가량 하늘에 떠올라 공진회장 상공을 날아다니는 것이 비행목적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비행기는 '70마력짜리 모리스 파만(Morris Farman)형 비행기'로 조종사는 오자키 유키데루(尾崎行輝, 1888~1964)였다. 그는 그달 17일까지 모두 9회에 걸쳐 공진회장 상공을 선회하는 비행을 선보였다.
(정리 : 이순우, 2010.9.19, http://cafe.daum.net/distorted)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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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eoulite-Henry 작성시간 10.09.21 근대사의 CSI~
역사는 "증거" 자료 위에 세워진 것~ -
작성자구름 작성시간 10.09.22 글 하나를 읽을 때마다 귀한 보물을 얻는 느낌입니다. 직접 찾아서 만드는 분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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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석지훈 (tjr010) 작성시간 10.09.27 왜 여지껏 저 사진을 보면서 지붕 위의 비행기를 보지 못했을까요......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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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들 풀 작성시간 10.10.07 저는 '고증'이라는 것에 작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지 위의 기사에 한정된 의견이 아니지만.. 역사기록이 과연 있는 그대로만을 담고 있을까 하는 점에서, 특히나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명확한 역사 사실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장악한다고. 대체로 지배세력(계급)이 장악(?)한 많은 역사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때때로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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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도곡 작성시간 13.05.24 앗~ 그림이 안보이는군요.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