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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적폐청산…국가 깊은 곳까지 파고든 북한 지령

작성자하충렬|작성시간21.08.24|조회수10 목록 댓글 0

‘청주 간첩단’으로 본 대공수사

북한 지령을 받아 간첩 활동을 한 혐의를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들이 2017년 5월 대통령선거 직전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주의 ‘행복한 국수집’은 서울에서 멀지 않았다. KTX를 타고 50분. 오송역에 내려 택시로 30분쯤 더 갔다.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알려준 뒤 “여기가 북한 간첩에 포섭된 사람들이 운영한 식당인데 김일성 주체사상 학습도 했다고 하네요. 같은 동네에 간첩이 암약하고 있었다니 무섭지 않으세요”라고 넌지시 물었다. 화들짝 놀라겠거니 하는 기대와 달리 기사의 대답은 무심하기만 했다. “방송에서나 봤쥬. 에휴, 관심 없유. 코로나19로 손님 떨어져 먹고 살기도 힘든데. 머선… ”

간첩의 발각이 뭐 새삼 놀랄 일이냐는 투였다. 그러더니 “아, 여기 저기 내놓고 간첩하고 비슷한 짓하는 사람들, 시민단체들 투성인데 간첩이 그들보다 더 위험한 짓 한 거 있유. 북한에서 공작금 받고 충성 맹세한 것 빼면 도진개진 아녀유?” 한다. 해가 지고 어슴푸레해질 때 멀리서 보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그 시간을 맞고 있는지 모른다.

이석기 사건 이후 지역 거점 조직

간첩과 지역 활동가 분간 어려워

법원, 체포영장 3번 기각 수사 난항

국정원장, 직권남용 우려 승인했나

문이 굳게 닫힌 ‘행복한 국수집’

충북동지회 위원장 손모씨가 2년간 운영했던 '행복한 국수집' 자리. 문은 닫혀 있었고 인근 음식점 주인은 "1년여 전 다른 곳으로 이사갔다"고 기억했다. 조강수 기자

지난 1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국수집 사무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가정보원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위원장 손모(47·영장 기각)씨가 2017년부터 2019년 말까지 운영했던 곳이다. 손씨는 이 곳에서 최근 구속된 충북동지회 고문 박모(57)씨, 부위원장 윤모(50·여)씨, 연락 담당 박모(50·박고문의 아내)씨와 함께 북한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기인 F-35A 도입 반대 운동, 통일밤묘목 100만 그루 보내기 운동 등을 전개했다고 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에 기재돼 있다. 손씨의 아내 김모씨도 조직원이라고 하니 ‘부부 간첩단’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다.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보니 방치된 지 오래됐는지 집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행복한 국수집엔 행복도, 국수도 더는 없었다. 맞은 편 지척에 생명공학연구원과 테크노파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근 상인은 “가게에 손님이 별로 없었다”며 “임차인이 1년여 전 건물주와 다툰뒤 폐점하고 이사갔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간부 출신인 손씨가 대표인 1인 인터넷 매체(충북청년신문)의 등록 주소지가 국수집 주소와 같았다. 또 5개 지국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이거나 경북 안동시의 키즈카페, 포항시의 부동산사무소로 확인됐다. 무늬만 언론사라는 것이다.

“이들은 반(反)보수 투쟁과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해체 투쟁, 사법개혁·검찰개혁 투쟁을 전개하라는 북한 지령을 받고 보수재집권 기도를 분쇄하고 반보수 투쟁을 내밀기 위한 ‘사법적폐 청산, 검찰개혁 시민연대’를 (2020년) 1월 중순까지 결성키로 북한에 보고했다.”(박씨 등의 구속영장)

‘조국 수호’를 외치는 시민단체들이 검찰 개혁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건 그렇다 치자. 공작금과 충성 맹세를 한 자생 간첩이 검찰개혁이라니. 그러나 대검 공안부장 재직 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끌어낸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의 목표는 대한민국 체제의 와해”라며 “통진당 목표에도 검찰을 없애자는 게 들어가 있었으니 검찰 개혁 테마는 대남공작의 지령이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투쟁 지령이 웬 말?

검찰개혁은 어느 한 정부에서 관철시키기 어려운 국가 정책적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민정수석은 불과 2년 만에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1차 수사권을 넘겨주고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도 2024년까지 경찰로 이관하기로 했다. 그 틈새를 청주 간첩단이 들어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려 했다는 것이다. 인천지검장을 지낸 이정회 변호사(법무법인 솔루스 대표)는 “북한은 체제 수호에 걸림돌인 국정원과 국보법 철폐를 강력히 주장해왔다”며 “1차 수사기관인 검찰 공안부와 국정원 대공수사국을 해체 또는 약화하는 것은 북한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국정원이 수사했던 일심회 사건과 이석기 사건 개요 [인터넷 캡처]

과거 국정원이 수사해 전모를 밝힌 간첩 사건으로는 일심회(2006년 10월), 왕재산(2011년 7월), 이석기(2013년 8월)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청주 간첩단은 지역 조직이면서 국내 정치권 침투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이중 왕재산 간첩단과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정 의원은 “왕재산 역시 인천 지역을 전략적 거점으로 활동했다”며 “당시 2012년 총선에서 통진당을 지원하라는 북한 지령도 적발돼 2년 뒤 헌법재판소에서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일심회·이석기 사건은 중앙 정치 무대까지 진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청주 간첩단의 대응은 한결같다. “문재인 대통령의 9·19 평양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정당한 NGO활동” “국정원의 조작 수사”라고 반박했다. 묵비권도 행사한다. 이정회 변호사는 “직파 간첩들은 남한 사회를 직접 보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선지 자백을 많이 하는데 자생 간첩들은 절대 안 한다”며 “어찌 보면 자생 간첩의 사상성이 더 투철한 것 같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황교안 전 대표가 지난 18일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청주간첩단의 21대 총선 부정선거 개입 의혹' 특검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논설위원이 간다

 

통상 간첩사건에서는 압수수색영장과 함께 체포영장을 집행해 신병을 확보하는 게 상식이다. 수사 보안과 증거 인멸 방지를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에 청주지법은 지난 5월 초와 중순에 청구한 압수수색영장과 체포영장을 두 차례나 통기각했다. 세 번째 신청 때도 체포영장은 기각하고 압수수색영장만 발부했다. 그나마 5월 27일 연루자 4명의 집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수사팀은 윤씨 집 이불 속에 있던 4겹 밀봉 USB를 확보했다. 여기엔 4년간 오간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 등 84건이 들어 있었다. 포섭 대상자만 60명에 달했다.

하지만 체포를 면한 손씨는 압수수색·소환조사 직후 잇따라 ‘국정원이 사건을 날조했다’ ‘국보법을 폐지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국정원 수사상황은 물론, 북한 공작원의 실명을 적시해 도피 신호를 보냈다. 결국 7월 말 구속영장 신청 때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제4조(목적수행 간첩죄) 혐의까지 공개하며 영장 발부 필요성을 적극 설명해야 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그동안 증거가 있는 국보법 위반 사건에서 체포영장은 거의 발부됐었는데 정부가 바뀌어선지, 판사가 대공사건의 특수성을 몰라서였는지 이번엔 달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충북동지회 사건 수사를 승인·공개한 이유를 두고는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먼저 대공수사팀이 증거를 확보한 간첩 사건에 대해 중단 지시를 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박 원장은 이른바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고, 이 정부 들어 고위 공직자들이 직권 남용 혐의로 사법처리되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수사를 못 하게 하면 언젠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왜 지금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와 상반되게 간첩 사건을 수사하느냐”는 청와대 내 질책에 부닥쳤을 가능성이 크다. 한때 국정원장 사표설이 돌았던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청주 간첩단 사건 수사를 승인한 배경을 두고 관측이 무성하다. 박 원장이 지난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를 맞아 국립서울현충원 묘역 참배 후 이동하는 모습.[국회사진기자단]

국정원장, 못 말렸나 안 말렸나

또 다른 해석은 “내년 대선을 목전에 두고 수사 상황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간첩 수사가 정권의 압력으로 사장됐다’고 폭로했을 때의 충격파보다는 미리 공개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논리로 청와대를 설득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일심회’ 사건 수사를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이 청와대 인사들의 반대에도 밀어붙였던 상황과 유사하다. 수사 도중 김 전 원장은 교체됐지만 간첩단은 법적 단죄를 받았다.

헌법재판소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 비해 국가안보보다 북한 눈치보기에 급급하는 지금이 간첩들에게는 최적의 활동 공간일 것”이라며 “청주 간첩단 같은 조직은 다른 지역에서도 지역 활동가의 옷을 입고 버젓이 활동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회 변호사는 “암약하는 간첩들은 정부가 바뀌고 국민의 생각이 바뀌어야 세상 밖으로 내놓을 수 있는 ‘어둠의 자식들’ 아닐까 싶다”며 “북한이 검찰개혁 등 국가 정책의 깊숙한 부분까지 파고드는 경향이 강해지는 게 특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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