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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마당

[김백겸] 성찰과 실험사이

작성자대전작가회의|작성시간13.01.22|조회수27 목록 댓글 0

성찰과 실험사이

  글쓴이 : 김백겸     날짜 : 09-01-02 15:30     조회 : 1463    

서평

울기 좋은 곳을 안다(이명수, 『시로 여는 세상』 발간)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김영찬, 『황금알』 발간)


1.시와 사진의 긴장
 이명수 시인이 시집 『울기 좋은 곳을 안다』을 간행했다. 그동안 『공한지』,『흔들리는 도시에 밤이 내리고』, 『등을 돌리면 그리운 날들』, 『왕촌일기』, 시선집 『백수광인에게 길을 묻다』등의 시집을 냈다. 1975년에 대뷰한 이래 시력 33년의 세월을 비하면 시선집을 제외하면 5권 째니 요즘 추세에서는 시집을 많이 낸 편은 아니다.
 이명수 시인은 사진에 조예가 깊다. 본인은 취미라 그러지만 프로에 가까운 솜씨이다. 문인들과 같이하는 자리에서 찍은 스냅사진은 나같이 사진발이 잘 안받는 사람도 표정을 가진 인물로 나온다. 그만 큼 상황과 정서를 포착하는 눈을 가졌다는 증거가 되겠다. 이번 시집에서도 시의 상황을 반영한 사진들이 들어가 있다. 19컷의 사진과 55편의시가 실려있는데 시인의 말을 빌리면 “시로 쓸 수 없는 것을 사진에 담는다, 그리고 사진에 담을 수 없는 것을 시로 쓴다. 시에게 진실한 것은 사진을 통해서 본 세계에서도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사물을 ‘올바르게 보는 눈’을 가지기 위해 카메라를 메고 여행을 가거나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이명수 시인은 무엇을 보고자 하는 것일까. 사람의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을 카메라가 포착해서 더 잘 보여주는 마법기능이 사진에 있는 것일까. 렌즈는 현장의 빛과 어둠에 물든 사물을 제한된 각도에서 클로즈업하거나 광시야각으로 보여주지만 작가의 눈이 풍경을 선택한다. 나는 사진에 문외한이나 카메라가 아닌 작가의 눈이 작품을 결정한다고 믿고 싶다. 카메라 렌즈가 보지 못하는 풍경은 현실세계에 없는 작가의 상상력이 보는 풍경이다
사진이 보여주지 못하는 풍경으로서의 시를 드러낸 작품을 시집에서 하나 들여다보자

종3유민鍾三遺民

관흉국貫胸國이란 나라가 있다. 신화나라 먼 변방, 가슴 한복판에 구멍이 뻥 뚫린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구멍 난 가슴을 장대에 꿰어 앞뒷사람이 어깨에 메고 간다. 세 사람이 번갈아 가슴을 꿰어 함께 먼 길을 간다.

종로에서 관흉국 사람들을 만났다. 탑골공원에서 종묘공원에 이르는 길, 등 굽은 사람들이 간다. 줄줄이 밥판을 들고 간다. 한 끼 밥을 먹어도 뚫린 가슴을 메울 수 없는 사람들, 지팡이로 제 그림자를 꿰어 어깨에 메고 혼자 간다. 찌그러진 밥판처럼 어둠 속 종로 밤바다에 떠간다. 아주 먼 변방 관흉국 신화나라로 떠간다.

이 시와 함께 실린 사진에서는 겨울 찬바람이 부는 공원에서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헷빛을
쪼이고 있는 모습이 실려있다. 두터운 오리털 파카를 입은 모습으로 보아 대단히 추운 날씨라 짐작된다. 현실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노인들의 가슴이 아픈 상황과 표정을 카메라가 잡아냈지만 시인의 상상력은 노인들의 가슴이 뚫려있다는 상상을 했다. 『산해경』이 설명하는 관흉국은 “성해의 동쪽에 있는데 사람들의 가슴에 구멍이 나있다. 존귀한 이는 옷을 벗고 비천한 것들로 하여금 대나무로 가슴을 꿰어 돌아다니게 한다”라고 하는 신화의 나라이다. 시인은 노인들이 “지팡이로 제 그림자를 꿰어 어깨에 메고 혼자 간다”라는 착상으로 노인들이 관흉국사람임을 암시하고 독자로 하여금 현실과 신화의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장치를 만들어냈다. 시인의 상상력이고 카메라가 보지 못하는 풍경을 시가 그려냈다.
시를 하나 더 들여다보자

약사여래의 꿈

인사동 저잣거리에 난장이 섰다
늙은 땡추가 길바닥에 고물전을 폈다
어디서 이 많은 부처를 모셔 왔을까
티베트, 네팔, 부탄,
멀리 서역 삼만 리에서 팔려온 부처들이
가을비를 맞고 있다
왜 거기 그렇게 등 돌리고 계십니까
저희 집으로 가시죠

상호相好 좋은 약사여래 골라
값을 치르고 수건으로 감싸 안았다
멀리 우루무치 모래 알갱이가
빗속에서 흘러내린다

부처님 목욕시키고 꿈을 꾸었다
―네 몸이 법당이요, 마음이 부처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
약사여래의 고향을 다녀왔다
개 밥그릇
잠자리 한 마리 개 밥그릇에 빠졌다
젖은 날개 파득이며 필사적이다
생사가 가을비 한 모금에 있구나
조심스럽게 꺼내 풀섶에 놓아주었다
한참을 더 들여다보았다
텅 빈 개 밥그릇에 가을 하늘이 가득하다
가을이 개 밥그릇 안에 있구나

이 시와 같이 있는 사진에서는 인사동 거리에 좌판을 벌려놓은 노점상이 있고 기념품 부처들이 길거리에 늘어서 있다. 부처가 ‘聖의 시간’이 아닌 ‘俗의 시간’에 위치한 풍경을 카메라가(작가의 눈) 잡아냈다. 그러나 ‘속의 시간‘에서 ’성의 시간‘을 보는 것은 시인의 눈이다. 시인은 “부처님 목욕시키고 꿈을 꾸었다/―네 몸이 법당이요, 마음이 부처다―/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약사여래의 고향을 다녀왔다”라는 언술로 이러한 눈을 드러냈다

2. 이명수 시인의 시론
사진을 하는 시인의 눈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을 향한다. 다시 이명수 시인의 시론을 살펴보자. 그는 자전 시론에서 에반스 사진집에 실린 “윌트 휘트번”의 글을 인용한다 “내 의심치 않으니. 아, 세계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은 이 세계의 극히 미세한 무엇인가에 숨어 있으니..... 내 의심치 않으니. 시시한 것, 곤충, 야비한 사람, 노예, 난쟁이, 잡초, 거부당하는 온갖 무가치한 것에도 내 상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존재하리니.” 실제로 상상이란 사물하나에서 삼라만상의 모든 관계를 끌어 낼 수 있다(시인의 상상력의 폭과 깊이에 달린 문제이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수학과 과학자도 상상을 한다. 상상이란 사물 속에 들어잇다고 믿는 관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다음 시도 인사동에서 산 “옹기 피리새”를 가지고 시인이 상상력을 불어넣은 경우이다.

옹기 피리새

백수광인에게
새 한 마리를 샀다
흙을 빚어 불에 구워낸 새
입으로 후, 불면 피리 소리를 냈다
차 없는 인사동 토요일 오후
아이도 어른도 피리새를 목에 걸고
날아간다

태초에 흙으로 사람을 빚은
여신 여와女처럼
사람들은 옹기 피리새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숨이 차다
숨이 가득 차 몸이 부풀어 오르면
비로소 새가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제 알았다
보라
옹기 피리새가 된 사람들이
손잡고 밤하늘로 떠가는 것을

“흙을 빚어 불에 구워낸 새”인 옹기피리새는 인간의 피조물이며 인간은 “태초에 흙으로 사람을 빚은/ 여신 여와”가 만든 피조물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옹기피리새와 인간의 운명을 숨결에 의한 창조관계가 성립한 비유로  드러냈다.

3. 상속과 숙명의 풍경을 이야기하다
이번 시집에는 풍경과 시를 병치하는 시들과 현실의 삶을 드러내고 성찰하는 시들로 나누어져 있다. 내 개인입장에서는 “모노드라마”의 연작과 “상속” “강아지와 휴대폰”등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시들이 관심이 간다. 사람의 육체적 죽음과 사회적관계의 죽음은 세대순환속에 있다. 다음 시는 아버지의 유품정리와 상속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사회적관계의 죽음을 인식하는 화자의 페이소스를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 열리지 않는 금고 하나 남겨놓고 가셨다.
방구석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
논 가운데 바윗덩이다.
어쩔 거나, 어머니도 떠나시고 웬만한 것들 정리하고
이사를 가야겠는데,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래도 열어는 봐야겠지.
궁리 끝에 청계천에 나가 기술자를 불러왔다.
한나절 드릴과 전기톱과 쇠망치로 뚫고, 자르고, 두드리고,
톱밥 같은 쇳가루가 방안 가득 쏟아져 내렸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안쪽 구석에 덩그렇게 놓여 있는 그 무엇,
꽁꽁 묶어놓은 두루마리 족보였다.
전주 이씨 밀성군파 18대손, 곰팡이 핀 그 맨 끝줄에
내 이름이 간신히 매달려 있다.

나는 그렇게 호주를 승계받았다.
생전의 빚도 사후엔 승계된다기에
아버지 보증 빚은 상속포기로 청산했는데,
호주승계만은 피할 수가 없구나.

방안 가득 반짝이는 쇳가루가 살 속으로 파고든다.
손바닥에 박힌 쇳가루가 뿜어내는 핏발을 붕대로
가만히 싸매 묶으며 포기할 수 있는 상속과
승계할 수밖에 없는 상속에 관해, 삼줄보다 질긴
핏줄에 관해 생각해 본다.
(“상속”, 전문)

금고에는 귀중품이나 재산이 없고 “전주 이씨 밀성군파 18대손”인 화자의 이름이 적힌 두루마리 족보가 있다. 고인의 무의식에는 재산보다 족보로 이어지는 혈연관계가 더 중요했다. “한 나절 드릴과 전기톱과 쇠망치로 뚫고, 자르고, 두드리고” 의 작업 후에 열린 금고는
“호주승계”의 상징인 족보만 달랑하다. 화자의 당혹감은 “승계할 수밖에 없는 상속에 관해, 삼줄보다 질긴 /핏줄에 관해 생각해 본다”는 언술로 나타난다. 개인은 무인도의 살지 않는 한 사회적 관계는 피할 수 없다. 혈연관계가 사회적관계에 의해 강화되는 현실을 잘 드러낸 시다. 죽음과 삶의 승계가 이루어지는 현실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이 없다. 한 세대의 교체가 이루어지는 숙명을 이야기한 상기시와는 달리 다음시는 숙명을 노래했다.

S#1
길을 가다 어둑어둑 개와 늑대의 시간을 만나면 집을 찾아 들어가야지
그래, 길은 어디나 낯익은데 집은 왠지 낯이 설어
가숙假宿이란 말이 있지, 사전에는 없는 단어야. 가假 자는 일시적인, 시험적인, 참된 것이 아닌 가짜, 그런 뜻을 지닌 접두어여서 숙宿 자와 붙어야 비로소 낱말이 될 수 있지
그런데 나는 사람이 지상에 잠깐 붙어사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가숙이란 말을 즐겨 썼던 것 같아. 앞자 가假만 보고 가짜로 산 거지
들여다보면 󰡐잔다󰡑는 글자 숙宿은 달라. 오래된, 오래 전부터, 날 때부터 타고난, 피할 수 없는, 이렇게 많은 뜻이 숨어 있어. 심오한 뜻은 늘 뒤에 숨어 있거든
그래서 길 찾아 이리저리 떠돌다가도 잠자리만은 신중히 정하게 됐어
잠자리는 하룻밤 지나치는 우연이 아니라 늘 필연적이어서 돌아와 숙명宿命을 낳거든. 길 가는 도중에도 난 한 번 잤던 곳을 찾아가 잠을 청하는 버릇이 있지. 사람의 하룻밤은 만리성이 되고 또 그렇게 숙명도 태어나는 거지

S#2
피할 수 없는 뜻이 명命이 되는 것이니 명命은 무서운 화두야
그래서 언제부턴가 객지 잠을 잘 때는 조심스럽게 신발 들여놓고, 벗은 옷은 가지런히 곁에 뉘어놓고 자기 시작했어. 벽에 걸린 옷이 어깻죽지 축 늘어뜨린 것 참 측은해 보여
둘이서 잘 때도 마찬가지로 벗은 옷은 곁에 뉘어놓고 함께 자야 해. 언젠가 겉옷을 함께 벽에 걸어놓았는데, 내가 잠들자 몸만 챙겨 떠난 사람이 있었지. 가숙의 가假 자만 알고 숙명의 숙宿과 명命 자는 모른 거지.
그리고 한 가지 잊지 마. 잠들기 전에는 문고리 걸고, 머리맡에 남은 술병들은 발치에 모아놓는 거야
술병은 취해 쓰러져 잠든 나를 지켜보다 같이 잠들지만, 사람은 잠들기 전에 떠날 수가 있어
그래서 객지 잠을 잘 때는 혼자든 둘이든 벗은 옷을 곁에 뉘어놓고 함께 자라는 거야
무엇이든 동숙同宿해야 숙명宿命이 되는 거야
―그래, 그런데, 그래서…… 이젠 도망 안 갈 테니 그만 하고 잠 좀 자자―
(“모노드라마 숙명宿命” 전문)

시인은 인간이란 홀로가는 길의 여행객이고 假宿하는 존재로 파악한다. 宿이란 글자의 드러난 의미는 ‘잠잔다’라는 행위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의지가 아닌 자연의 힘이란 의미가 있다. 인간은 신분과 성별 국적에 상관없이 잠의 행위를 피할 수 없다. 시인은 同宿하는 남녀의 일과 가족관계가 숙명이듯이  잠자리의 장소와 器物도 숙명이므로 인연을 소중히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宿의 의미를 “잠자리”를 에워싼 에피소드로 드러냈지만 속셈은 삶의 숙명이다. 숙명을 받아들이는 일이 인간의 지혜다. “―그래, 그런데, 그래서…… 이젠 도망 안 갈 테니 그만 하고 잠 좀 자자―”라는 언술도 이런 체념의 지혜를 드러낸다.

4. 패기만만한 문학청년인 김영찬시인

김영찬 시집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의 약력에는 다음과 같은 이력이 적혀 있다.
‘충남 연기군에서 출생. 한국외국어대학 프랑스어과를 졸업했다. 패기만만한 문학청년이었으나 졸업 후 입사한 재벌회사(종합무역상사)의 해외지사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및 이집트의 카이로 등지에서 1977년부터 1984년까지 근무했다. 2002년 계간 『문학마당』과 2003년 격월간『정신과표현』에 시가 있는 수필을 각각 게재, 연재한 것을 계기로 작품 활동 시작. 1991년부터 현재까지 카펫 수출 전문회사인 <이젠무역>을 운영하며 시를 쓰고 있다.’

이중에서 '패기만만한 문학청년‘이라는 표현에 눈이간다. 미사여구가 아니라 실제로
김영찬 시인은 청소년 시절 대전지역의 유망주였다. 중학교 때부터 시에 재능을 나타냈고 대전지역 고등학교문학서클인 “돌샘”에서 공부하면서 백일장의 장원을 여러차례 수상하였고 외국어대학 시절에도 김정란 시인등과 문학동아리 활동을 한 것으로 안다. 그는 졸업후 무역회사에 입사해 아프리카에 근무하면서 사업에 눈을 떴고 개인사업으로 시를 접었다가 다시 시를 잡은 케이스다. 권투선수가 링에서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가 어렵다고 한다. 대전이 없으면 스파링이라도 계속해야 하는데 시의 공백기간동안 그는 미학과 미술등의 예술관련쪽에 관심을 가지고 스파링을 계속했다. 이번 시집은 옛날의 시와는 다르다. 김영찬시인은 프랑스어를 전공해서 그런지 유럽의 아방가르드 문학에 심취해 있다. 논란이 많았던 “미래파”시인들의 시에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술자리에서는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한 시인이 청소년기에 감동을 받은 시인은 그의 시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영찬 시인은 조 향의 시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미지를 초현실주의 기법에 의한 자동연상과 환상으로 그려냈던 조 향의 시는 서정일색이었던 우리시단에 특이한 시풍이다. 심층심리에서 건져낸 이미지들을 비약과 충돌로 전개하는 그의 시들은 일단 이미지의 상상훈련이 되지 않은 일반독자들은 따라가기가 어렵다. 김영찬 시인의 이번 시집도 이런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다.   

생각해봐요, 우우~ 생각을, 생각 좀 해봐요 시간의
양쪽 끝을 너무 팽팽하게 잡아당기면
끈이란 끈은 모두 끊어져 못쓰게 되잖아요

( (( ((( (( ( 우우 )))
(우/우/우) ) )) ))) )) ) )) )))

감긴 실이 끊어지면 양철 지붕 흙벽에 기대어
까만 눈을 깜박이던 첫사랑 소녀가 울음 터트릴 수밖에,
우우~
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눈물은 봇물로 터져 갈피 못 잡아 헤매겠죠, 우우우~

빨간 지붕 흙담은 무너져 내리고 갈 곳 없는
소녀는 멀리~ 아주 멀리 기억에서 너무 빨리 사라져
다시 올 수 없겠죠, 우우우~ 우우

>>> 생각해봐요~ 우우~, 생각을, 생각 좀 해봐요 <<<
시간의 양쪽 끝을 잡아당길 땐 언제나 문밖에 선 추억을
생각해야죠!
(‘추억의 문 밖에 선 등불’, 전문)

조향의 “바다의 층계”를 연상시키는 이 시는 상상력과 리듬과 회화적이미지를 데뻬이즈망 수법으로 표현한다(사물의 합리적인 현실관계를 박탈해버리고 새로운 창조관계를 만들어 내는 수법으로 초현실주의에서는 轉位라고 말한다). 의미를 중요시하게 여기지 않으므로 독자는 여기서 의미를 추구하기보다는 기호와 이미지와 리듬이
부딪히는 연쇄놀이를 즐겨야한다. 데뻬이즈의 시각에서 바라본 사물과 그 사물을 지시하는 기호는 “오브제”인데 합리적인 관점에서 해방시켜버린 특수한 개체이다. 조향이 그의 시론에서 언급한 입체파화가 브라끄(Bracque)는 “아름다운 레뗄이 붙은 통조림통이 아직 부엌에 있는 동안은 그 의미는 지니고 있으나, 일단 쓰레기통에 내버려져서 그 의미와 효용성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비로소 그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통조림이 부엌의 의미와 질서에 갇혀 있는 상태는 모더니즘이라 한다면 쓰레기통에 버려져 사회질서로부터 용도폐기되어 해방된 깡통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이 아닐까. 장황하게 얇은 지식을 동원했지만 김영찬 시인의 시는 이러한 미학위에 서 있다. 내 개인적으로도 이 시는 아름답게 보인다. 제목도 아름다운데 언뜻보면 감상적인 표현이나 “추억의 문”자체가 상상의 문이므로 등불도 상상의 현실이 아닌 상상의 등불이다. 현실에서 탈출한 이미지이며 이 시론에서는 현실의 윤습으로부터 벗어나 이런 추상이미지들이 순수하다고 말한다. 이런 시들과 이론을 대할 때 마다 나는 수학기호나 방정식의 순수함을 생각한다. 사물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으나 기호자체는 결코 사물이 아니며 사물의 구체적인 힘의 자장으로부터 멀어져 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하다.( 구상이 아닌 추상에서 수학자들이 세계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시적 아름다움과 상통한 측면이 있다.) 

두 시간 전에 갑자기 봄이 왔다
두 시간 저쪽에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두 시간 전에 그녀는
천천히
안개비 속으로 들어왔다

두 시간 전에 만나
두 시간 후에 떠나야 하는
우리는
영영 되돌아오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두 시간 저쪽 꽃바람 속에서
늘어지게 한가한 봄
두 시간 후엔
안개비 속에 머물다 흩어질 물방울들아

어느 행성에선 갑자기 성운이 일고
두 시간 건너편 그녀는
내게 수선화 노란 꽃을 건넨다

두 시간 전에 멈춰선 봄 

두 시간 저쪽으로 거세게 부는 바람
(“두 시간 저쪽”, 전문)


 역시 두시간 전의 세계이므로 시인의 마음은 현실이 아닌 추상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현실과 경험에서 끌어내는 시라 하더라도 시작은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살리는 일이므로 다 추상이다. 여기서는 “두 시간”이라는 거리를 설정하였으므로 시인의 마음은 시속에서도 또 추상의 유리창을 통해 의도적안 풍경을 보고 있다고 이해하자. 사물을 현재의 입장에서 해방시키면 사물은 정말로 현실과 상관 없는 사물자체의 고유한 속성을 드러내는 것일까? 사물에 고유한 속성이라는게 정말 존재하나? 여기서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이 충돌한다. 서양전통철학과 미학은 존재론의 기반위에 서있다. 반면에 동양은 관계론으로 사물과 세계를 설명한다. 존재론은 인간의 인식에 비친 현상너머에 사물의 근본과 본질이 있다는 입장이고 관계론은 사물의 실체는 없고 사물은 관계로서만 존재한다는 입장이니(불교의 연기설이 대표적이다) 사물자체의 순수함을 이야기 할 때 진실이 무엇이냐에 따라 한 쪽은 허방을 잡는 미학이 되고 만다.

5.김영찬 시인의 예술관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언어를 마음(精動과 욕망과 인식이 어우러져 있는 장소)의 뜻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보느냐. 언어를 사물과 인간의 마음사이에 있는 독립된 실재인 기호로 보느냐에 따라 예술관이 달라진다. 김영찬 시인은 기호론의 입장에서 시란 언어의 유희이며 놀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를 인간의 의미에서 해방시켜 언어자체의 자유로움과 상상력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한다. 그의 예술관을 들여다보자. “난해한 현대시를 끝까지 탐독할 수 있는 사람은 봄밤을 지새우는 몽유병자라야 할까. 언어와 언어가 연대하여 밀고 나가는 조화로운 세계. 시 안의 술어가 역동적인 힘으로 주어를 밀어주는 동력, 그 활동(活動) 에너지가 시 전체에 고루 퍼져나가는 느낌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시의 행과 행은 살아있는 생물체, 한 파충류가 섬세한 예비동작을 통해 독자의 호흡 속에 파고들어와 행보를 같이 하는 느낌을 나는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잖은가? 시가 의미를 넘어 지향하는 저편의 세계, 곳곳에 편재한 음악적 요소, 의미를 따지기 이전에 자유로이 펼쳐지는 신비한 음색(nuance)들. 그리고 거기에서 뜻하지 않게 도출되는 다의적인 모호성은 또 다른 전율의 세계로 나를 안내한다. 그때 시어들은 오히려 명료해지고 의미는 무한대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밑줄친 부분을 주목해보면 그는 언어의 의미보다는 음색(nuance)을 중요시 한다. 음색이란 기호로 표출되기전의 심상, 포에지와도 상통하는 말인데 시의 의미보다는 이미지를 통해서 의미의 발산을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 김 시인의 시관을 드러내는 시를 한편 더 살펴보자. 


오후 세 시에 바람이 찾아와서 물었지요
 “모자는 마음에 드니?”
 “누군가에게 모자를 선물한다는 건 하여간 슬픈 일이야”

오후 세 시에 그 바람이 찾아와서 다시 물었지요
 “모자 아래 가려진 너의 안녕은 정말 안녕하니?”

나는 정중히 모자를 벗어 오후 세 시
정각에 만나기로 한 벗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오후 세 시가 흘러가면 머리카락 냄새 풀풀 날리게 될
모자 위의 시간 

나로부터 나에게서 멀리 멀어져 정처없을 
오후 세 시의 고요
( ‘오후 세 시에 부는 바람’, 전문) 

“오후 세시”란 시인이 의도적으로 설정한 “오브제”라고 볼 수 있겠다. 많은 사믈증에서 “오브제”란 예술가가 심상의 정동과 인식에너지로 선택한 사물이다. 이 경우 사물은 단순한 객체가 아니며 시인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사물이다. 독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오후 세시”가 아닌 시인이 해석한 “오후 세시”를 따라가야 한다. 이 시에서 ”바람“은 의인화 되어있고 ”나로부터 나에게서 멀리 멀어져 정처없을 / 오후 세 시의 고요“라는 문맥을 따라가면 ”오후 세시“도 나의 외로움과 대화하고 있는 의인화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물의 의인화는 시에서 ”오브제“를 드러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리라. 사물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며 시인의 인격과 대등한 존재로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이므로.

이런 방법론의 시를 쓴다는 일은 기존의 문법과 의미를 해체하므로 독자로부터는 저항이 있을 수 있다. 작가는 이미지를 통해 지금현실에서 초현실로 나아가는 새로움과 자유로움의 통로를 열고 있다고 주장한다. 독자는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두려움반 호기심반의 마음을 가지고 시를 바라본다. 예문의 이 시들은 과격하지 않다. 기존 문법으로도 층분히 따라갈 수 있으며 독자는 조금만 새로운
시각에로의 안내를 기꺼이 따라가는 열의를 가지면 된다.  달리 얘기하면 김영찬 시인이 좋아하는“미래파”시인들의 과격한 상상력과 기존 문법사이의 중간쯤 되는 상상력인데 나에게는 이정도의
실험이 좋아보인다.

6.불멸을 힐끗 쳐다보는 불면의 밤들

김영찬 시인이 시들이 새로운 방법론을 지향하고 있지만 이시집에서 모든 시들이 그렇지는 않다. 서정시 즉 낭만주의자의 입장에서 쓴 시 한편을 소개해보자

오늘도 안녕하시다 측백나무는

잎사귀는 오늘도
축제일 같이
푸르고 무성하시다

내가 그 곁으로 걸어가면
싱싱한 기운 내뿜어 나를 유혹한다

측백나무 열매는 밤마다
푸르른 별
별들은 측백나무 가지에 놀러와 깊은 밤의
포로가 된다 

측백나무는 그래서 사철 푸르고,
젊다
 
나는
측백나무 곁에 한참 머물다 간다
측백나무 이파리에 스스로 인질로 잡혀
사철 푸른 꿈속에 포로로 살고 싶어서…
측백나무는 오늘도 안녕하시다, 나는
그 향기에 취한 나그네

무성한 그 그늘에 지치도록
오래 쉰다
 
내 그늘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측백나무, 별’, 전문)

기존 문법과 상상력으로 쓴 이시와 앞의 예문으로 든 두편의 시에서 독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일반독자들은 “측백나무, 별”을, 시인들은 “오후 세시에 부는 바람”을 선택할까? 지금 정답을 내릴 수는 없다.  2편의 시중 세월이지나 어느 시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독자의 마음(인간일반의 마음과 예술을 즐기고자 하는 문화인으로서의 마음을 다 고려해야 한다)은 변덕과 욕심이 많은 마음들이므로 작가는 독자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다시 김영찬 시인의 ‘시작노트’를 빌려 이 시인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본다.  “시가 시를 쓰는 가운데 풍요가 이루어지고 그 풍요 속에서 언어는 자유와 호사를 누리며 우리에게 쥬이쌍스를 싣고 다가온다. 참으로 시는 언어이기를 거부하는 자세로 언어를 넘어선 곳에서 언어가 아닌 다른 존재로 환치되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불면의 밤을 넘나들며 내 곁을 맴도는 것이다”.  김영찬 시인이 고민하는 바가 잘 드러나 있다. 일상의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시의 그 종착점은 초월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찬시인의 세계관은 낭만주의자이다.  밑줄친 부분의 언술대로 그는 불면의 밤을 넘나들며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의 시집 제목의 정신을 구현하려고 하다. “불멸”이란 우리의 심층의식아래 인간의 삶 저너머의 다른 차원에 있다. 시인은 무한정신과 창조의 에너지가 있는 저 편의 세계를 힐 끗 쳐다보는 해커이며 그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는 임무를 가진 자이다. 소개하지는 않았으나 이 시집들의 많은 실험시들은 그런 일단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영찬 시인은 시관이 뚜렷한 시인이다.  다음 시집에서는 더 원숙한 시들이 선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 시인이 지향하는 바를 가장 잘 드러낸 다음 짦은 시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벚꽃이 지는 속도는
초속 1mm

내 사랑 아이스크림이 혀를 녹이는 기간은
영겁에의 억류

무한대 󰁀에 닿아
불멸不滅을 스칠 수 있겠다 
(‘아이스크림에 거는 희망’, 전문)




.김백겸
.1953. 대전생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로 등단.
.시집으로 “『비를 주제로한 서정별곡』『가슴에 앉힌 산 하나』『북소리』『비밀 방』『비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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