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름다운 창조에 대하여
김성윤: 예정 진화론에 이어서 오늘은 창조론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노우호: 예,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는데
창조가 신비로운 일이지만
가장 신비로운 것은 우주만물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과 인간까지 다 만드신 다음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칸트(1724-1804)라는 사람이 이었는데
이 사람은 철학을 하면서 독신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분은 자신이 가장 경이롭고 두렵기 까지 한 것이 2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밤하늘에 반짝이 별들과
자신의 마음 양심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도덕률이
경이롭고 두려운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시골의 깊어가는 밤하늘을 쳐다보면
무한의 세계가 우리에게 뭔가 속삭이듯이 별들의 반짝임을 볼 수 있죠
그 별들이 반짝이고 있으면서 계속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너무 크고 방대한 밤하늘의 별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경이롭고 두려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도덕률이 아주 경이롭다는 거죠
양심(도덕)은 후천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고
어려서부터 선천적으로 조금만 잘못하게 되면
도덕률이 반짝거리면서 자신이 양심으로 일깨우는데
이것이 신비하고
또 누군가 이것을 사람의 마음에 심어 놓은 분이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경이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분이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인간세상의 학문이 2가지 방향으로 결정이 된 것 같아요
하나는 인문과학 세계에서 가장 내면으로 들어가는 심리학이고
인간 내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학문과
2번째 인간의 바깥쪽으로 끝까지 뻗어나가면 천문학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의 세계와
마음속에서 반짝이는 도덕률의 세계를 보게 되었는데
결국은 오늘날 학문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으로 나눠져 있죠.
인문과학의 가장 깊은 학문이 심리학이 되겠고
자연과학의 가장 끝에 천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를 보면
첫째가 우주가 참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땅에 사는 우리를 향하여서 밤마다 속삭이듯이 손짓하는 우주는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별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별들이
땅에 사는 여러분!
그 땅에 사는 일상의 삶이 끝이 아닙니다.
위를 향하여 눈을 크게 뜨시고
넓고도 크고 아름다운 이 우주를 좀 바라보세요.” 하고
별들이 아마 그렇게 손짓하는 것 같아요
우리들은 때때로 우주의 질서를 믿지 못하여서
천문학자들 까지도 혜성이 지구를 향하여 돌진해 오고 있다고
이것이 지구에 접근하다가 충돌 할 것이 아닌가?
많이 염려를 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질서는 한 번도 실수 하지 않았습니다
인류역사에 어떤 혜성이 자기의 궤도를 이탈하여
지구와 충돌한 일은 없었습니다
광대무변한 우주가 아직도 무한인지 유한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는지 수축하고 있는지 아니면 고정되어 있는지
이것도 사실은 정확히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별들이 타서 없어지는가 하면 또 새로운 별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천문학자들의 연구로는 그 별들의 수가
2×1022 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김성윤: 너무 큰 숫자라 예측 할 수 없군요
노우호: 그 수는 지구의 50억 인구되는 사람에게 나눠준다면
한 사람당 아마 400경개 정도 돌아갈 것입니다.
김성윤: 별들이 타서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 탄생되기도 하는 군요
노우호: 그렇습니다.
밤하늘의 별똥별을 보게 되면
아주 먼데서 빛으로만 비쳐 오는 것이 있겠고
지구 가까이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타는 것도 있습니다.
아주 먼데서 타서 없어지면서 빛으로만 비쳐 오는 빛은
지구에 도달하기 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도 많습니다.
창세기에 별들의 창조가 나오는데
구약성경 267페이지 신명기 4장 19절에 보면
별들을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들에게 나눠주시려고 분정하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리석게 그런 일월성신에게 경배하거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 하노라(신4:19)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창조 하셨고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전도서3장 1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이 우주는 우리가 살필 수 없으니까
우리 눈에 보이는 만물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성윤: 지금 여러 가지 꽃들이 만발하면서 지구상에 만물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잖아요?
노우호: 예, 지구상의 만물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예술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술성은 만드신 만물 속에 찬란하게 빛이 나고 있습니다.
그 웅장함에 대하여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섬세함과 정밀함에 대하여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운동력과 함께 안정성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운동을 하게 되면 서로 충돌할까봐 염려가 되는데
우리 눈으로 궤도가 보이지 않지만
지구는 자기 궤도를 가고 있고
모든 우주가 질서 있게 조화롭고 아름답게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변화가 아름다움을 연출 하면서도
내구성이 뛰어나서
한번 만드신 것이 오래 쓸 수 있도록 하신 것도 경이롭죠.
그래서 하나님의 예술성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파란 하늘이라든지 높은 산과 넓은 들
솟아나는 샘물 흐르는 강물 잔잔한 호수 쪽빛 바다 철석이고 부서지는 파도
하얀 백사장과 큰 바윗돌 매끄러운 조약돌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죠?
위대한 예술품들입니다.
울창한 숲이며 불타는 단풍 순백의 눈, 나뭇가지에 피우는 설화라든지
대 만물의 향연이고 아름다움의 일대 파노라마죠
갖가지 꽃들과 아름다움을 다투어 발산하는 향기들과
분분히 나는 벌과 나비들
짝을 부르는 새들의 노래 소리들
이름모를 풀벌레 소리의 밤의 향연
풀잎에 맺히는 영롱한 이슬
대지에 쏟아지는 찬란한 햇빛
배꽃이 피어나는 밤의 달빛
어느 것 하나 이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정성과 사랑과 예술성이 깃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철따라 무르익은 풍성한 오곡백과들과
과체와 소체들이며
바다의 어류와 심산유곡의 약초들이 모두다 하나님의 작품들입니다
높은 창공을 유감없이 나는 각종 새들과
깊은 바다 속에서 태산 같은 파도에도
유유자적하는 해물들이 모두 하나님의 솜씨죠
1/10000mm밖에 되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서부터
큰 코끼리나 수염고래 까지
또 바다 속의 산호초로부터 히말리야의 고산 식물까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유용하게 창조하셨고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창조물을 느끼고 볼 수 있도록 빛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 아름답게 창조한 창조물이 왜 아름다운가 하면
거기 생명이 있을 때 더 아름답다고 합니다.
만물이 아름다운 것은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아름다움은 생명 안에 있으며 생명과 함께 있고
또 생명을 위해서 있을 때 참으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무리 아름답던 사람이라도 생명이 떠나고 나면
금방 부패하고 냄새가 나는 송장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생명이 떠나고 나면 파묻어 버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생명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향기롭게 꽃향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꽃들도
생명이 끊어지고 나면 시들고 썩어서 악취를 풍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배워야 됩니다.
생명의 찬가를 불러야 되겠고
생명의 창조주를 찬양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인 것입니다
창세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죠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못하는 시인은 참된 시인이라 할 수 없답니다
생명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예술가가 아닙니다
생명의 근원을 캐지 못하고 생명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철학자가 아닙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내지 못하는 정치가는 정치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위하지 않는 학문은 학문이 아니죠
생명을 구원하지 못하는 종교는 종교의 가치가 없습니다
생명을 창조하지 않은 신은 신도 아니며 하나님도 아닙니다
생명은 최고의 가치라고 할 수 있겠죠
생명은 생명으로서만 보상 할 수 있는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진, 선, 미’에서 선이라는 것은
생명을 위하는 행위는 모두 선이 되겠고
생명을 해하는 것은 모두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 바로 친절이죠
생명을 위해서 도와주는 것이 봉사가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존중은 윤리와 도덕의 뿌리가 되는 것이고
진정한 휴머니즘의 줄기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생명주의의 도덕관과 세계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창세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리죠
그래서 기독교의 계명은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은 곧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의 숨결이고 하나님의 솜씨고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입니다
만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게 되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기도 하죠.
또 이 모든 아름다움 중에서
아름다운 우주 만물이 모두 조화를 이루는 것이 사람으로
사람 속에 있는 아름다움이 최고의 아름다움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면류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미의 극치요 미의 원형입니다
인간은 아름다운 우주속에 있는 소우주라고 말합니다
만물 속에 있는 최고의 질서이고
생명 중에 가장 예술적인 생명이 바로 인간입니다
생명은 젊을수록 더욱 아름답죠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모든 순수함의 표본이 될 것이고
어머니 품속에서 젖을 넉넉하게 먹고 만족한 아기의 모습은
하나님의 최고 미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미움도 욕심도 없을 때의 아기 눈동자는
아름다움의 극치가 될 것입니다
이런 모든 아름다움이
하나님의 창조물 속에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김성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장 11절 말씀입니다
생명의 창조주를 찬양하는 것이
생명 있는 인간의 본분이겠죠.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8. 아름다운 인간창조
김성윤: 정말 하나님은 위대한 작품들을 많이 만드셨어요.
생명있는 우주, 자연, 생명, 그리고 인간까지 만드셨는데요..
노우호: 예, 우리 김성윤 아나운서가 볼 때에
하나님은 무엇을 제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까?
김성윤: 예 인간이요
노우호: 하나님은 정말 인간을 너무 너무 사랑하시고
그래서 자기 형상대로 만드시고 그렇습니다.
우주가 참 아름답고 만드시고 생명있는 대자연이 다 아름답지만
모든 아름다움이 총집대성 된 그런 결정체가 있다면
인간일 겁니다.
또 인간은 남자들에게는 남성미가 있지만
여자들에게는 더 섬세하게 정성을 다 해서
하나님이 만든 흔적이 거기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어린아이다운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고
청년들은 젊은이다운 싱그러움이 또 있습니다.
또 원숙해 가면 거기에 또 아름다움이 있는 거지요..
그래서 사람의 생명은 질서 중에 최고의 질서요
정밀한 것 중에 가장 정밀한 것이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명 중에서 가장 예술적인 생명이 인간생명인데
인간생명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형상에 따라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그러지요.
김성윤: 미의 극치라고 볼 수 있지요
노우호: 예 특히 거 어린아이들 갓난아이가 점점 자라 3개월 막 자라날 때
천진난만한 모습 속에 그 순수 무고함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욕심도 없는
어린아이의 해맑은 눈동자라던지
보드라운 살갗이라던지
그 새빨간 입술이라던지
미소 그 작고 깨끗한 아직도 죄를 짓지 않은
그 작은 손가락 등을 보세요
얼마나 작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섬세한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이라든지..
아름다운 것들 중에 아름다운 것이요 맑은 것들 중에 맑은 것이고
소중한 것들 중에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신비한 것 중에서 가장 신비한 것이 생명이지요
그래서 청정과 순결과 평화의 상징이요 표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복중에서 가장 큰 복이 새생명이 태어나는 거지요
말라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악한 사람들에 대해서
저주가 임하는데 그중에 내가 너의 복을 저주하겠다. 했는데
그 복을 저주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자녀 어린아이들의 생명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큰 형벌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반대로 하나님이 주는 가장 큰 복은
역시 자녀손들이 아름답게 태어나는 것
자녀들이 착하게 자라나는 것. 들이 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선미의 극치요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거기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아름다움이 성장하는 소녀들의 아름다움으로 발전하는 것이지요..
정말 착하고 아름답고 씩씩하고 늠름하게 슬기롭고 순수하게 자라나는 소년소녀들의
젊음은 자체로도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화장하기도 민망하지요..
나뭇가지에서 새로 움트는 새순같은 소년소녀들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과연 하나님은 미의 천재지요..
무슨 그런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김성윤: 네....
노우호: 하나님의 최후의 미작은 놀랍게도 여자였습니다.
여자였을뿐만 아니라 처녀였지요.
그래서 그 여성들에게는 온갖 아름다운 것을 모두 포함시켜서 창조하셨습니다.
김성윤: 네 목사님 남자보다 여자를 후에 만드셨잖아요?
그래서 신제품은 모두 다 좋은 거잖아요?
노우호: 과학세계도 그렇지요.
물질문명세계도 나중에 나온 것이 더 발전 된 모습이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도 남성은 남성미가 있지만
여성들의 아름다움은 모든 남성들이 사모하게 하셨지요.
하나님께서 온갖 아름다운 요소들을 다 여성에게 주셨는데요
그런 여성을 남성에게 주신 거에요.
그 여성을 이끌어서 아담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을 사모하는 마음과 그 아름다움과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면서
그 부부가 한 몸을 이루게 하신 그 신비한 것
그리고 또 거기에 생명을 또 번성하게 되는데
그 생육하고 번성하는 법칙들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는데
그것도 남자가 남자를 낳고 여자를 여자가 낳고 하면 될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남자와 여자가 가장 사랑하는 한 순간에
나를 열고 하나 되는 아름다움의 극치 속에서 탄생하도록
그 사랑의 열매로서 생명이 탄생하도록 이렇게 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인류가 남이라고 할 수 없도록
우리가 거슬러 올라 가며는 남남이 없지요
한 할아버지의 자손이고 그래서 우리가 창세기를 믿을 때에는
원수가 없어져버리고 남이 없어지고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가 때로는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뿌리로 올라가면 한 뿌리에서 났기 때문에 그것은 다 우리의 형제요 자매요
사랑의 대상이고 그렇습니다.
우리를 아무도 남이라고 할 수 없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거지요.
아마도 천사를 만드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여러 수천천만 수억의 천사를
동시에 창조하신 것 같에요
왜냐하면 천사는 결혼하거나 뭐 천사의 애기를 낳거나 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천사의 세계에서는 무더기로 반역을 일으키고 타락을 하고 이렇게 했는데
인간은 오직 한 혈통으로만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한 영을 짓지 아니하셨느냐?
하고 되묻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에덴동산에 흙도 많이 있었고 하나님의 생기도 많이 있었는데
그 여러 가지로 만들지 않고 하나 안에 또 만들어 나오게 하고
또 여자는 여자를 낳고 남자는 남자를 낳고 한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합하여 하나를 또다시 만들어 서로 남이 아니게
서로서 피로써 묶어 매는 이런 방식으로 창조하신 거지요.
그래서 저는 성경을 읽다가 아무도 남남이 없다.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고 중국을 미워하고 오랑캐를 미워하고 하지마는
우리가 성경을 보면 아무도 미워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인간이 소중한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입니다.
우래서 우리가 국민학교 교정에 가면
이순장군의 동상과 세종대왕의 동상이든지
신사임당과 같은 동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순신장군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 형상에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종대왕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 세종대왕의 형상에도 돌멩이를 던진다든지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공경한다고 하며는
하나님의 작품이자 형상인 인간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거지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같이 하찮은 인간이라도
사진이나 내 형상을 누가 함부로 취급하면 내가 매우 언잖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람에게 함부로 하거나 다치거나 죽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모독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 되지요.
그래서 인간에게 악을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악을 행하는 것이다 라는 것이고
인간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내 형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는 것이
우리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친 계명이기도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계명을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며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되 생명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인간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사랑하고 아끼고 도와주고 소중하게 여기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인간을 해롭게 하는 것 괴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아름다운 것을 잘 보존하도록 해야 겠는데
우리가 보기에 외모가 썩 마음에 들지 않게 생긴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본래적인 것은 아니고 환경이 나빠지고 영양상태가 안좋아서 그렇지
언젠가 우리가 부활하게 될 때에는 각 사람에게 주었던 원래 그 형상,
각 사람에게 주었던 설계도대로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미스코리아나 미스유니버스 처럼 그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자들도 최고의 극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활하게 될거예요
지금은 아무도 본래의 그 형상을 다 갖고 있지 못하고
정신적 형상 뿐만 아니라 육체적 형상도
많이 위축되고 또 많이 부족하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언젠가 주님께서 오시는 날 부활하게 될 때에는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활될 거예요
예수님도 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외모가 그렇게 출중하지 못했다고 그래요
고운 모양도 없었고 풍채도 없었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는데
예수님이 부활했을 때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거의 알아보지 못할 만큼
그렇게 변모하셨다고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성윤: 목사님! 하나님의 작품인 자연이나 인간이나 우주를 사랑하는 것이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이지요?
노우호: 맞습니다. 우리가 어떤 작가를 존경하면서
작품도 존경하게 되고 소중히 여기고 또 작품을 소중히 다루는 것은
그 작가에 대한 공경심이 있을 때에 그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을 다 소중하게 여기고
그 피조물 중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자기 형상대로 지은 그 인간을 도와주고 사랑하는 것은 마침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된다는 것입니다.
김성윤: 또 이것이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구요..
노우호: 사랑은 그 사랑함으로 사랑 받게 되고
사랑의 향기를 풍기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사랑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사랑을 받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들을 사랑하는 것 언젠가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제 6계명에 살인하지 말지니라라고 되어있습니다 만은
원어를 보면 그 살인은 사람을 죽이는 것 뿐만 아니라 원래 그 문자대로 하며는
로티르챠크라는 말은 살생하지 말지니라
어떤 생명있는 것도 죽이지 말지니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생명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삶의 허가를 하나님께 받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삶을 잘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9. 인류의 타락
김성윤: 하나님께서 최초로 지으신 사람 아담이
하와의 유혹으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 한 것이죠?
노우호: 예, 그 타락이라는 주제가 되겠는데
성경에서 신학적으로 성경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것이 이간의 타락 장면입니다.
일반적으로 타락이라고 하면 술이나 먹고 흥청망청 하고 생활에 규모가 없는
이런 사람을 타락이라 생각하는데 물론 이런 사람도 타락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것은 타락의 결과 이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타락이라는 것은 이것과 다른 문제죠
히브리어로 타락이라 것은 히브리어로 수버라는 말인데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등지는 것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
하나님께 무관심 하는 것
이런 것이 타락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무관심 하면 기분이 안 좋지요
그리고 나에게 등을 돌리고 돌아서버린다든지
얼굴을 돌려 버린다든지 이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이 말을 흔하게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신약에서는 이 말을 빗나갔다 혹은 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타락이라고 하는 것은 깨어지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진선미를 가지고 창조하신 세상에서
진실이 깨지는 것
그리고 선이 깨지는 것
선은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선인데 생명 사랑하는 것이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가 깨진다는 것인데 그렇게 아름답게 창조한 아름다움이 깨져 가는 겁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관계가 깨지는 것입니다
관계가 파괴 되는 것
우리가 부부사이도 마지막 파탄으로 가는 것은 관계가 깨지면서
이혼이 되고 별거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믿음을 갖지 않고 진실을 지키지 않고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물으실 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네가 선을 행하지 못하여 내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6-7)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4:8)
이렇게 선이 깨진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생명을 해쳐서 죽이는 장면을 볼 수 있죠
그러면서 거기는 아름다움이 깨지고
관계가 깨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부자지간의 관계가 깨지고
형제간의 관계가 깨지는
이것이 바로 타락이죠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그 결과 나타는 것이 타락이라는 것인데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라는 것은
그 이전 어떤 영적인 실체의 타락에서 기인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천사였다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사탄이 되고
이 사탄이 하와와 아담을 유혹하면서
그들이 그 사탄의 충고와 제안을 따라
사탄 쪽을 믿게 되고 그쪽으로 기울어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지은 최초의 인간 이었는데요
아담은 삶에 대하여 실제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성경은 상세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사람이었기에
어머니가 없는 분이었어요
어머니가 없다는 것은 참 문제가 있습니다
아담 하나만 어머니가 없고 나머지 모든 분은 어머니가 있죠
그래서 우리는 이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어머니 없이 자란다는 것은 아담이라 할지라도 참 위험한 일입니다
어머니 품에서 자란다는 것은 어머니 교훈을 듣고 자란다는 것인데
이것은 참 소중한 것입니다
고아가 불행하다는 것은
어머니 품이 없었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어린 시절이 없었어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와는 좀 다르죠
그리고 흙으로 지음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신 후에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개혁 성경에는 생령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네페시하야’라는 말은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번역했으면 더 바른 표현이 되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기록된 기사 읽을 때
하나님께서 마치 흙장난을 한 것처럼 생각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육체부분을 먼저 만드셨다는 의미고
우리 영혼보다 우리 몸을 먼저 만드셨다 것인데
아담아 하는 그 말은 흙, 먼지를 다 포함하는 의미인데
다시 말하면 물질적인 것을 가지고 육체 부분을 만드셨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보면 반대로 되죠
아담과 하와가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역사가 한 페이지도 없었습니다 물론 성경도 없었고요
경험도 없었는데 역사도 없으니까
아무런 삶에 대한 정보도 없이 출발 하게 된 것죠
경험과 역사도 없이 출발하는 것은 불안한 출발이죠
우리가 자신의 경험과 역사와 상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8-9)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동산 중앙에 무슨 나무가 있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 알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생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두 나무가 나란히 동산 중앙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하나는 먹지 말라고 한 것이고
생명나무는 먹는 것이 허락된 나무죠
그러나 선택은 인간이 하는데
어떤 선택에 따라서 자신의 삶이 결정이 되도록 한 것이죠
기계처럼 만들어 버리면 인간은 선택의 여지가 없죠
우리 인간을 기계로 만들지 않고 인격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만드신 것입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자유가 있다는 것은 책임도 따른 다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을 했으니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되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단 하나만 제약을 주셨죠. 제한이 딱 하나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그 하나만은 먹지 말도록
그 하나 외엔 아무 제약이 없고 자유스러우면서도 풍성하고 충만하고 부족한 것이 도무지 없는 그런 세상을 주셨는데 아담은 이 말씀을 들었을때 어떻게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도 해요
왜냐하면 경험과 역사와 상식이 전혀 없으니까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했지만
죽는다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도무지 몰랐을 거예요
아담은 죽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의문은 지금까지도 잘 모르잖아요
간접적인 죽음은 알지만 내가 직접 안 죽어 봤기 때문에 저도 잘 몰라요
저는 임종의 순간을 많이 지켜봤지만
그러나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것을 내가 보는 것밖에 되지 않는 간접 경험이죠
김성윤: 아담이 여쭤봤으면 좋았을 것인데요
노우호: 그러니까 질문이 필요하고 상담이 필요한 것입니다
죽는 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물어 봤으면 참 좋았겠어요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님들이
궁금한 것을 가지고도 묻지 않고 아는 척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죠
몰라서 애를 태우는데
이단자가 와서 너 그런 것 아느냐 물어보면
모르니까
‘그 봐 당신이 다니는 교회는 잘못된 교회라고’
이단자들이 알게 해 주겠다고 하면서 유혹하게 되죠
바로 인간이 애매하게 잘 알지 못하는 이 문제를 가지고
사탄이 접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김성윤: 방송을 듣는 성도님들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진리 안에 거하시게 되니까요
노우호: 말씀을 배워서 진리 안에 거하시게 되면
어떤 이단이나 사이비가 와서 유혹하고 흔들어도 흔들이지 않는
내가 진리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으면 흔들릴 이유가 없죠
그래서 죽는 다는 것은 어떻게 된다는 것이고
죽음 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질문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아담은 알지 못하면서도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성윤: 질문을 했더라면 우리가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
노우호: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아담 안에서 돕는 배필인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그리워하고 가까워지려고 하고
서로 끌리게 하신 거죠
하와는 처음부터 아담과 다른 아름다움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와를 아담에게 이끌어 소개를 하자
아담의 입에서 아주 놀라운 말이 나옵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표현이 아주 시적인 표현이죠
너는 내 소유다 이렇게 말 하지 않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담에게 말씀하셨고 아직 하와에게는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하와는 잘 모르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아담이 자기 아내에게 이야기 하기는 했는가 봅니다
이것도 아담이 하와에게 교육을 철저히 했으면 좋았겠는데
하와의 행동을 보면 철저한 교육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아담도 하와도 이 문제를 그렇게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처럼 보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게 되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아담과 하와는 아무 경험이 없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역사가 없으니까 전례도 없었어요
뱀이 누구인지 어떠한 존재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인들도 거의 대부분은
창세기에 나오는 뱀이나 사탄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그러한 사람은 여전히 사탄에게 속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뱀을 사탄으로 해석하면
비약적인 해석인 것으로 알고 의아스러워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신화나 설화정도로 보고
이 사실성을 믿지 않으려고 해요
만물의 법칙을 뛰어 넘는 사건이기 때문에 알기를 원하지 않고 대충 넘어 가는데
뱀이 사탄인 이 사실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이것은 신구약 성경을 바르게 깨닫는 핵심이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이 문제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 악에 관한 것과 사탄에 관한 것에 대하여
좀더 살펴볼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김성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자유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10. 악의 기원에 대하여
노우호: 성경을 보면 창세기에 뱀이란 말이 나오죠?
뱀이 나오니까 이게 동화책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신학적인 표현으로서 반드시 뱀이라고 표현 해야만 맞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이라는 말을 하면 아직은 이해 할 수 없는
그리고 사탄이라고 말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사탄을 말하되 반드시 뱀이라고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때만 아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뱀이 동물학적이나 생물학적인 뱀이 와서 말 한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사탄이 자기를 형상화 할 때
언제나 자기를 뱀 혹은 용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의식이나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뱀이나 용이 나타나서
우리에게 이상한 일을 한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려고
그게 바로 사탄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만 보고 말하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요한계시록까지 살펴보면
이게 바로 옛 뱀이요 용이고 사탄이라고도 하고 마귀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 확실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12:9)
김성윤: 창세기의 뱀이 뭔지 사탄이 뭔지 정체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되겠네요
노우호: 예,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른 종교나
다른 신을 섬기는 어떤 세계를 보면
놀랍게도 거기에 뱀이 있고 용이 있습니다
형상화 되어 있는데
이것은 권력의 세계에도 있고 종교의 세계에도 있는데요
어떤 큰 제각이나 제실 혹은 고색찬연한 전통가옥의 대들보를 보면 용이 있죠
비석에도 용트림을 하고 있고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권력에도 반드시 용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임금의 앉는 의자를 용상
임금의 얼굴을 용안
임금이 입는 옷을 용포
임금의 수염을 용수
임금의 죽음을 용어
김성윤: 사극에 보면 왕자를 잉태할 때 반드시 용꿈을 꾼다고 하잖아요.
노우호: 예, 용꿈을 꾼다는 말은 앞으로 세상에서 움켜잡을
세자나 왕자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악령이 거기 역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성윤: 용은 사탄의 형상이군요
노우호: 이세상의 권세 잡은 자
권력 가까이에 있는 자
세상에서 권력이나 금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억압하고 이용하는 거죠
임금의 부채를 용선이라 하고
임금의 눈물을 용누
임금의 수레를 용화
전부 용입니다
그러니까 종교세계와 정치세계
옛날에는 종교와 정치가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가 되어서 결국은 사람을 억압합니다
제정일치시대는 제사문제 즉, 종교문제와 정치문제가 하나의 세력으로 있어서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탄압하는 그 배후에는 언제나 사탄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용이라고 하니까 우리가 알게 된 것이죠
그리고 꿈에 뱀이 나타나면 세상 사람들은 길몽이라고 하지만
신학적으로 볼 때는 뱀꿈은 사탄이 역사하는 나쁜 꿈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용이나 뱀의 꿈을 꾸었을 때 기분 좋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역사임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이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김성윤: 그런데 용의 몸을 보면 머리 몸통 다리 꼬리가 여러 짐승의 모양이죠?
노우호: 그렇습니다.
몸은 뱀의 몸 머리는 돼지 머리(입과 나발코) 뿔은 사슴 뿔 발은 봉황 발
이렇게 조합되어 이상하게 만들어진 형상인데
이 용이 성경에도 나오지만
그리스에도 있고요 드라콘이라고
영어에도 드레곤이라고 하잖아요
생물학적으로는 없는 짐승인데
놀랍게도 이 용이 없는 데가 없습니다
온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사탄이 용을 자기의 형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알게 하시려고 성경에 계시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뱀이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사탄인지 전혀 몰랐겠죠.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고요
용은 사탄의 형상이죠
용은 사람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아주 좋아 합니다
왜 사람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좋아하느냐 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니까
사람이 자기 앞에 무릎을 꿇어 절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이니까
아주 흐뭇해하면서 절 받기를 좋아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에게도 절을 받으려고
내게 경배하면 이 천하를 네게 주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눅4:5-7)
이렇게 교만하고 악하고 추한 사탄은
제사를 좋아해서
하나님이 받아야 할 제사를 자기가 받으려고 노력을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뱀이나 용에게 절하는 것은 삼가 해야 합니다
자신의 개인적으로는 누구에게 절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알고 보면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그 앞에 절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죠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창세기 1장 26절 28절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뱀이 어떻게 사람이 하와와 말이 통할 수 있었죠?
예, 사람도 영적인 존재인데 타락하면서 영성이 없어져
성경에 보면 육체가 됐다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창세기 6장에서 보면 사람이 하나의 고깃덩어리처럼
육체가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같이 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주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과 대화가 직접 가능하고
사탄의 세계와도 직접 대화가 가능한 그런 존재로 지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제가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오는 동안에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떤 여자에게 악령이 들어가 있었는데
그런데 그 여인은 딸을 5명 낳고 아들이 없어서
어디로 다니면서 빌고빌어 아들을 낳았는데
사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아들을 주셨는데
빌고하는 동안에 여자에게 악령이 들어가 있었어요
제가 그 집에 전도 하러 갔었는데
그 여자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서 인지
아주 쌀쌀맞게 대하고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딸들이 교회 나오고 있었기에
그 모친에게 교회 나오도록 전도하러 갔었는데
문전박대를 하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박대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비인격적이죠.
그래도 자기 집을 처음 방문한 손님인데 그런 태도였습니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왔는데
3일후 그 집의 딸이 교회로 뛰어와서
다급하게 우리 어머니가 말문을 닫았다고 연락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영문인지 물어 보니까
다녀가신 후에 말을 하지 못하고 누워서 눈만 껌벅거린다는 것입니다
가서 보니까 눈은 뜨고 있었는데 정말로 말은 못해요.
그래서 그 여인에게 ‘낫고 싶으면 교회로 나오세요’ 하고 그 집을 나왔는데
나올 것이라고 예상 못했는데 교회를 나왔더라구요
그의 남편이 부추겨서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있는 그대로 이것은 악령의 장난이라 생각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들아 나가라 명하면서
네가 누구냐 하였더니
여러 명의 성도들이 있는 곳에서 또렷하게 대답을 해요
사촌동서라고 하면서
내가 나가라고 하니까
나가겠다고 그래요
이렇게 귀신이 나가고 난 뒤에 여인은 정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정을 물었더니
내가 전도하러 갔을 때 이상하게 보였을 뿐 아니라
내가 대문 밖을 나가고 난 뒤 자신이 방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아직 잠이 든 것도 아닌데 비몽사몽간에
큰 뱀이 문을 열고 들어 와서는 발목부터 목까지 감고는
너 교회 나가면 머리통을 부숴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더랍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교회를 가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한 것이 아니고
교회를 나가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는 순간 이 뱀이 나머지를 가지고 목을 감아 죄었는데
말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나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라 했을 때
뱀은 풀어져 버렸고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이 여자가 집에를 안 가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집은 깨끗하게 새로 지은 새집이고
교회 건물은 오래된 허술한 집인데도 교회 있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왜 안 갈려고 하는지 그 이유가
집에 가면 또 뱀이 자신을 그렇게 할까봐 겁이 나서 안가겠다는 것을
이제는 당신이 예수를 믿기 때문에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 집으로 보냈습니다.
이것은 그 여인이 그동안 섬겼던 악령이 그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 혹시
밤에 뱀이 보이거나 용이 보이는 꿈을 꾸게 되면
빨리 교회로 나가셔야 됩니다
만약에 그 악령이 완전히 그 사람을 억압해 버리면
교회에 나 갈수 있는 자유도 갖지 못하게 되는
그런 무서운 세계가 바로 악령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이 대게 우리를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위협합니다
점쟁이를 통해서든지 교회 나가면 큰 탈이 나게 만들겠다는
그런 속임수를 가지고 우리를 기만하고 미혹케 하는
처음부터 거짓말하고 속이는 존재들이죠.
이런 실체가 곧 악령인 사탄이기 때문에
뱀으로 나타나든지 용으로 나타나든지 혹은 어떤 짐승으로 나타날 때
이것은 하나님이 준 꿈이 아니고 마귀 사탄이 주는 꿈이기 때문에
그럴 때는 빨리 털고 일어나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라 믿습니다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11. 사탄이 인간을 유혹하다
김성윤: 지난시간에 사탄의 형상인 뱀과 용에 대하여 알아 봤습니다
노우호: 예, 이 뱀이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질문을 하는데
질문을 좀 이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의 실과를 임의로 먹으라고 하셨고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과 2나무 중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 먹지 말라고 하면서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이렇게 묻지 않고
여자에게 접근해서는 질문을 요상하게 혼란스럽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
그러니까 질문을 정확하게 하지 않으니까
하와의 대답도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이상 합니다
‘동산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이렇게 말합니다
먹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고 임의로 먹으라고 한 것이죠
또 동산에 있는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고...
하나님께서 만지지 말라 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말을 더 보태서 하고 있죠
그리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먹는 날에는 죽을까 하노라’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니까
사탄이 다음 공격을 하게 되면서
사탄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결코 죽지 않으리라
먹는 날에는 너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처럼 되는 것을
하나님이 알기 때문에(하나님을 무시하지도 않는 것처럼)
하나님이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지 못하게 한거라고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3:2-5)
김성윤: 하와의 갈등이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군요
노우호: 그렇습니다
어느 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어차피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모르죠
먹으면 정녕 죽는 것인지(죽는다는 말도 사실은 잘 모르겠죠)
먹으면 정말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지
어느 경우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죠
여자가 나무를 보니까
사탄이 유혹하기 전에는 예사로 봤는데
그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호기심을 자극하니까
여자의 눈에도 볼수록 보암직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해서
저것을 먹으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꼭 주의 할 것은
우리가 말을 하지 않으면 사탄도 우리를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있는가 봐요
그래서 반드시 우리에게 말을 하게 합니다
우리의 하는 말을 듣고 사탄이 우리를 분석하는가 봐요
말도 참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때 하와가 호기심에 끌려 가까이 가서 그 열매를 보니까
정말 보암직도 먹음직도 해서 이젠 갈등을 하게 되죠
어느 한편은 틀림없이 거짓말이죠.
그러므로 어차피 한쪽에는 속아 넘어 가게 됩니다
문제는 먹어보고 속느냐 안 먹어보고 속느냐 이런 현실에 놓인 거죠
에라 모르겠다 속을 때 속더라도 먹어보고 속자
여자가 이렇게 결론을 내린 것 같습니다
안 먹어 봤으면 계속 그것을 먹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을 거예요
이것이 인간의 약점이죠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인간으로서는 경험을 안 해봤으면
꼭 그 길을 한번 가 봤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늘 미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시인의 글에
‘숲 속에 있는 두길’
한쪽 밖에는 못가니까
그 길을 가다가 어려움이 오게 되면 언제나
만약 다른 한쪽 길을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늘 생각을 했던 것처럼
하와도 이런 갈등이 있습니다
결국 선악과를 하나 따서
속을 때 속더라도 먹어보고 속자는 생각에서인지 따서 먹었습니다
이왕 땄으니까 이제 먹어야죠
먹었는데 그 순간에 그만 죽었으면 문제가 달라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안 죽었다 말이죠!
김성윤: 죽었으면 역사가 달라졌을 거예요 목사님,
노우호: 그래요, 그런데 죽지 않으니까
하나님 말은 틀렸고 뱀의 말이 맞잖아 이렇게 생각 했을 거예요
그리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면서
그 봐요
뱀이 우리에게 귀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완전히 속을 뻔 했다면서
당신도 먹어 봐요
아담이 보니까 선악과를 먹은 아내가 안 죽었거든
먹고도 생생하게 살아 있으니까
남자도 그것을 받아 먹었습니다
남자도 안 죽었죠?
두 번이나 체험적으로 경험이 된 것입니다
또 사람의 감정이
먹지 마라! 고 하면?
김성윤: 더 먹고 싶죠
노우호: 그리고 기분도 나쁘죠.
먹지 말라고 하는 것과 먹으라고 하는 것 중에
먹으라고 하는 것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기분이나 감정을 따라 가면 안돼요
뱀의 말은 언제나 달콤하고 기분도 좋은데
하나님 말은 하지 말라고 하니까
부정적이기도 하고
먹지 못할 것 처음부터 만들지 말 것이지
이렇게 생각 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될 수 있습니다
기분도 그렇고
죽기도 안 죽었으니까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 상당히 사탄쪽으로 기울게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시 성경 기록을 보면
눈이 밝아 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눈이 밝아져 벗은 줄 안지라
아니 이거 갈수록 뱀의 말이 맞잖아요
기분도 뱀 쪽이 훨씬 다정하게 다가와서
먹으라고 해서 먹었더니 안 죽었고 눈도 밝아 졌고
그동안 벗은 것을 몰랐는데 이제 벗은 줄 알게 되어
서로 부끄러워하면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3:7)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3:8)
서늘한 어느날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부르셨습니다
이때 아담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숨었으면 대답도 하지 말고 가만히 숨어 있어야지
두려움이나 부끄러운 마음이 생긴 것은 바로 죄의식입니다
죄를 지으면서 사람은 부끄러워하게 되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 행위가 있은 후에 그들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책임을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먹지 말라고 한 나무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에게 이렇게 물었을 때
아담이 잘못했다고 한다든지 죄송하다고 한다든지 하지 않고
김성윤: 책임을 해피했죠
노우호: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가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대답의 의미를 분석해 보면
하나님도 책임이 있고 그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고
마치 자기는 책임이 없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김성윤: 책임의 해피뿐만 아니라 전가 까지 하군요
노우호: 예, 책임을 해피하고 전가하고 하나님께 뒤집어씌우기 까지 하는
하나님이 만들어주어 나와 함께한 그 여자가 주었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김성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이 이렇게까지 나오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노우호: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도 할 말이 없어가지고
하와에게
여자야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하였느냐 하고
여자에게 추궁을 하였는데
여자도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렇게 나와요
아니 꾀는 줄 알았으면 먹지 말아야지
뱀이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전혀 잘못 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기서
결정을 내립니다
뱀에게는 묻지 않습니다
넉넉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로
이미 타락한 악의 사신으로 왔으니까
뱀에게 저주를 내리고
여자에게도 해산고통을 크게 더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농촌에 살면서 가축들이 새끼는 낳는 것을 많이 봤거든요
그런데 소나 돼지나 별 고통 없이 새끼를 잘 낳습니다
사람들이 약간 도와주는 것도 있지만
도와주지 않아도 잘 낳습니다
야생동물들은 모두 새끼를 잘 낳아 기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통 중에 고통이 해산고통으로
하나님이 여자에게 해산고통을 크게 하셨고
남자에게는 즐겁게 동산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힘써서 일을 해야 될 것이고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서
이마에 땀을 흘러야 먹을 식물을 얻게 될 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들어보면
이 사람들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중 하나 같이 되었다
그렇게 말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에 뱀의 말이 먹으라고 하니까 기분도 좋고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했으니까 기분도 안 좋고
또 먹고 난후
정녕 죽으리라고 했던 하나님 말씀대로 죽지도 않고
뱀의 말대로 죽지도 않고 눈도 밝아졌으니까
뱀의 말이 옳은 것으로 착각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또
선악을 아는 일에는 우리중 하나같이 되었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처럼 된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나중에 보면
창세기 5장부터 아담도 죽고 하와도 죽도 모두 죽습니다
그러니까 당장 먹자마자 즉사하지는 않고 그때는 죽지 않았지만
뱀인 사탄의 말은 처음에 상당히 그럴듯하게 맞습니다
사탄의 말이 70-80% 맞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90% 맞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따라 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진리고 교훈입니다
그러나 결국 끝에 가서 보면 하나님 말씀이 맞습니다
결국은 아담과 하와는 죽음을 맛보게 되었고
성경은 그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죽음은
둘째 사망
즉, 그 영혼이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까지 들어가게 된다는 죽음까지
이 둘째사망은 죽음의 결론도 성경의 계시록까지 가서 보면
확실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구약성경만 가지고는 죽음이 무엇인지 완전히 알 수 없고
뱀이 무엇인지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12. 타락이 가져온 결과
김성윤: 구약에서 예정과 창조와 진화론을 잠깐 소개하였고
이어서 인간의 타락과 홍수심판을
노우호: 그렇습니다
타락의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데
제일 먼저 형제간의 불화죠
가인과 아벨이 친 형제 사이인데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이는 끔찍한 일이 발생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라는 것이 사람 마음속에 오염되면서
죄의 요소가 폭발적으로 증폭됩니다
가인 사건에 대하여 사람들이 많이 질문을 하는데
동생을 죽인 후
가인의 마음에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나를 죽이겠다는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두려워한다는 것이 죄의식이죠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 얼굴을 들지 못하고
이게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자주하는 질문이
왜, 가인이 드린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가?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가인과 그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과 그 제사는 받으셨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창4:3-5)
즉, 하나님께서 제물만 받는 것이 아니라 우선 사람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착한사람, 정직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 선을 행하는 사람일 때
제사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려고 하다가 부지중에 실수로 죄를 범한 것은 제사로서 용서가 되지만
고의로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는 악한 사람의 제물은 그 어떤 제물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제물뿐만 아니라 사람도 받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최초의 살인이 가인으로부터 해하여 졌는데
그때까지 아담이나 하와, 아벨, 가인 모두는
죽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죽음을 보게 된 거죠
가인은 아벨이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입니다
아벨이 미워서 감정이 시키는 대로 돌로 쳤는데
쓰러진 아벨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잠자는가 보다 생각 했겠죠
그러나 끝내 일어나지 않았고 코에서 생기가 없고
시간이 지나 부패 한다면 구더기가 나오고 썩은 냄새가 나기도 하니까
아! 이것이 죽음이구나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김성윤: 최초의 살인이구요
노우호: 끔찍한 체험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사건 이후 가인의 후손인 라멕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라멕이 두 아내를 취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지나가면서 창세기 5장에는 사람들이 죽은 기록이 이어집니다
사탄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지만
모두 죽습니다
자세히 보면
아담이 930세를 향수 하고 죽었더라
그런데 그냥 930년을 향수 하였더라 해도 됩니다
그런데 꼭 그렇게 기록하지 않고 930세를 향수 하고 죽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결국 뱀의 말이 틀리고 하나님 말이 맞은 것인데
천사도 모르고 뱀도 몰랐던 것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기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지 않으신 분들은
아담과 하와가 가인, 아벨, 셋 이렇게 3사람만 낳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5장을 자세히 보면
아담이 셋을 낳은 후에 800년을 지내면서 자녀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을 130년에 낳았는데 그 후 800년 지나면서 자녀를 낳았다는 말은
돌아가실 때 까지 아기를 낳다가 돌아가신 것 같아요
그 후 아담의 자손들이 점점 타락하게 되었는데
타락하게 되는 결정적이 동기가
창세기 6장에 보면
그 당시 남자들의 외모가 키가 크고 몸집도 큰 장부들 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네피림이라고 기록하고 있죠
힘 있는 굉장한 장골이었는데
그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자들이 힘만 있으면 예쁘게 보이고 맘에 드는 여자는
모두 아내를 삼는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가인의 후손 중에 라멕은 2아내를 취한 최초의 사람인데
그때부터 이것이 유행처럼 남자들이 여러 아내를 취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타락이 심해지죠
인간은 관계속에 살아 가는데
1차적인 관계가 남녀의 관계죠
그런데 이런 1차적인 관계가 깨지면 자녀들도 정직한 자녀가 아니고
괴악한 자녀가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죄가 폭발적으로 불어나고 퍼지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실 때도
좋아하는 모든 자를 아내로 삼는 이런 악한일이 퍼지면서
인간의 죄악이 목에 까지 가득 차 버립니다
죄악이 관영하게 되어
교육으로도 도저히 감당 할 수 없는 이런 상태에 가니까
홍수의 심판을 초래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성적인 불러 오는 것은
성적인 타락 그 자체도 불행이지만
그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자녀들이 비정상의 괴악한 자녀가 태어나고
부모들이 올바르지 못하면
그 자녀들을 교육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악이 관영한 세상이 되어서 교육도 기대할 수 없고
하나님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현실이 됩니다
그 당시 모든 사람이 타락을 했지만
오직 한사람! 노아라는 의로운 사람이 있었죠
이 노아는 가인의 후손이 아니고 셋의 후손이죠
셋의 후손이면서 그 이름의 의미가 후식을 준다 혹은 안식 입니다
그는 당대의 완전한 사람이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어떤 말이든지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령을 하셨는데
방주를 만들되 상중하 3층으로 만들고
길이가 135m 정도 되도록 하고
축구경기장 보다도 조금 더 길게 큰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이 방주라는 것은 배와는 조금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배는 돛이나 노를 젓거나 하는 추진력이 있는데
방주는 오로지 떠 있는 기능밖엔 없습니다
모세를 강물에 띄웠던 광주리와 어원이 같은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좀 더 큰 광주리죠
성경에서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광주리는 같은 어원입니다
아무 추진력도 방향타도 없이 물결치는 대로 떠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노아는 600세 되는 해에 홍수가 났고
그는 자녀를 아주 늦게 낳았는데요
500세 되던 이후에 셈, 함, 아벳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비하여 노아는 늦게 자녀를 두었습니다
500세에 자녀를 낳았다고 하면 오늘날 우리에게 깜짝 놀랄 일이죠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로 있는 세상과 홍수 이전의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세한 것은 다음시간에 다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노아의 큰 아들 셈의 나이가 100세 정도 되었을 때 홍수가 나게 된 것이죠
김성윤: 방주에 그때 들어가게 된 것이군요
노우호: 그렇죠, 노아는 600세 되던 해 2월에 방주에 들어갔고
방주에 들어간 후 40주야에 걸쳐 비가 내리게 되었는데
40일이 아니고 40주야?
요즘 같으면 같은 말이죠 40일이 곧 40주야죠
그러니까 모든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자세히 보면 비만 온 것이 아니라
깊음의 샘이 터져 땅속에서도 물이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표현이 간단하게 되어 있어서 상세하게 알 수 없지만
비가 오는 것이 오늘날 비의 정도가 아니고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궁창위의 물과 궁창 아래 물로 나누이게 하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궁창위의 물과 아래물이 어느 쪽이 많았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가 지구본을 이렇게 놓고 돌려보면
육지는 조금 뿐이고 온통 바다뿐인 것을 볼 수 있죠
적어도 육지가 절반정도는 되어야 되는데
육지가 30%정도이고 바다가 70% 정도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홍수 이전에는 육지가 많았는데
홍수가 나면서 궁창위의 물이 쏟아지면서 육지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에 되었고
특별히 노아 홍수사건 때 산들도 솟아 난 것으로 보여 집니다
노아 홍수와 함께 큰 지진과 융기와 침강이 일어나고
큰 조산운동이 일어나면서 산들이 새로 솟아난 것으로 여겨집니다
히말리야 산의 정상 바로 밑에서도 바다생물들의 화석이 나온다고 하니까
예전에는 그 곳이 바다 속에 잠겨 있었던 곳인데
육지는 바다 밑이 되고 바다 밑은 높은 산이 되는
큰 지각변동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601세 되던 해 정월달이 되니까 지면에 물이 걷히기 시작하면서
7주 후인 2월 27일이 되니까 마른 땅에 발을 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장소가 정확하지는 모르지만 지리학적으로 현장답사를 해 보았는데
터키의 동부의 반이라는 크기가 경상남도 정도 되는
터키 최대의 호수가 있습니다
그 호수 근처에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 첫발이 닿은 곳으로 추측이 됩니다
노아는 결국 홍수 이후의 새로운 세상을 여는 시조가 되는 것이죠
물론 셈과 함과 야벳과 그들의 아내와 함께 8명이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된 것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