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를 통한 "忠孝禮" 정신을 배양하는 일본인
필자는 한때 세계식민지 민정사(民政史)를 연구한 적이 있다.
특히 맥아더의 일본 통치와 아놀드의 일본식민지 전략. 필린핀과 인도네세아, 조선반도 특히 히틀러의 러시아 식민통치, 스페인 프랑코 총통의 통치 등등의 민정사를 연구한 바 있다. 사물을 봄에 그 표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사상적 , 역사적, 전통, 풍속, 어문, 정치체제와 구조, 의식주,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생활 속에 얼거수일투족을 관찰하여 그 본질을 파악하여 가장 이상적인 홍인인긴 체제를 연구하려 하였다.
이번 3박4일 동안 일본의 분재단지를 시찰하면서 일본인의 ‘충효예“ 사상에 대하여 유심히 관찰해봤다.
한마디로 그들은 입으로는 ’충효예‘를 말하지 않았으나 무언의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필자와 젬바야시 사장
일본 鹿沼市 南上野町에 가면 Green玉田屋 善林 進 대표가 있다.
鹿沼市는 일본에서 철쭉단지가 조성된 시이며 南上野町 마을의 Green玉田屋에는 수많은 철쭉분재가 있고 그 가운데 350년 된 철쭉 1그루가 있다.

350년된 철쭉
善林 進 대표는 6대조 조상부터 정성을 들어온 철쭉이라고 하면서 1억 원을 준다 해도 팔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 이 철쭉나무는 6대조 조상대부터 정성을 들여왔고 나는 현재의 관리자지만 내 뒤를 이어 후손들도 조상들과 같이 호흡을 같이 하면서 자라야 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을 한다.
우리는 부모가 죽으면 그 유골을 산소에 모시고 1년에 한식과 백중, 추석, 제사 때 조상을 묘소를 찾지만 일본인의 조상 모시는 법은 납골탑, 집안 신주, 조상의 얼이 담긴 분재를 통하여 정신을 이어받고 있었다.
먼저 납골탑을 통한 효도이다. 일본인 92%가 문중 납골탑으로 모신다. 우리나라는 천주교묘다, 문중요다, 화장이다, 매장이다 하여 죽으면 묘소가 흩어지는 일이 많다. 묘소가 흩어지면 친인척 형제라도 거리가 멀어진다. 그러나 일본인의 가계 묘는 1,300년부터 거의 대부분 가계의 남골당으로 안장이 된다. 물론 그들은 長子孫으로 家統이 이지어지만 次子라도 장사손 옆에 납골탑이 세워지므로 가계는 흩어지지 않고 바로 납골탑을 통하여 문중이 단결이 된다.
둘째는 집집마다 조상을 모시는 신방과 신주가 있다. 아침저녁으로 가계의 조상에게 문안 인사들이면서 조상의 유훈을 이어받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 가정마다 조상의 신주를 모신 시방이 있으며 위패를 모시는 곳이 있던가? 부처님과 예수님 사진은 걸려있어도 조상사진이 걸려있지 않은 집을 많이 볼 수 있다.
셋째는 바로 분재를 통하여 조상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 사람의 눈에는 분재는 분재로만 보이지만 사실 이 분재를 통하여 조상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는 놀라운 實事求是 충효예 사상이다.
일본인은 집집마다 분재를 볼 수 있으며 보통 수령이 100년, 200년, 300년, 400년은 물론 1300년 된 분재를 가꾸고 있는 가계도 있다. 그들은 묵묵히 아침이면 물을 주고, 풀을 뽑고, 또 비료를 주고, 수형을 다듬는 일을 한다. 바로 그러한 행동이 조상이 심은 나무를 통하여 호흡과 손끝을 같이 하면서 아름답게 造形되어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충효예’ 사상이 바로 분재를 가꾸는데 길러지고 있었다.

" 그들은 ‘충효예’를 무언의 생활 속에 실천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