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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형수술이 하느님께 죄가 되지는 않을까요?

작성자이진섭(프란치스코)|작성시간17.02.23|조회수112 목록 댓글 0



성형수술이 하느님께 죄가 되지는 않을까요?


취직을 앞둔 딸이 성형 수술을 원합니다. 세상풍조에 굴복하는 것 같지만,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세상이라 반대하기 어렵습니다. 성형수술이 하느님께 죄가 되지는 않을까요?




“못생겼으면서 성형수술도 안하는 여자”가 제일 ‘간 큰 여자’라는 우스개를 들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물려준 얼굴이니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발칙한 생각으로 당당하게 A/S(?)를 요구하는 세상이라고도 하더군요. 형제님의 고민을 이해하게 됩니다.

온갖 메스미디어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세상은 ‘고치면’ 달라질 것이라 유혹하고 ‘고쳐서라도’ 예뻐져야 한다고 충동질합니다. 과연 달라지고 고쳐서 무엇을 얻으려는지요? 때문에 성형이 죄인지 아닌지를 묻기 전에 얼굴을 고쳐서라도 꼭 취직을 해야 하는 목적을 생각하고 가려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형을 통해서 얻으려는 ‘그 일’이 진정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바라는 것인지를 물어야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얼굴 모양을 갖춘 후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그 직장’이 그토록 절대적인 것인지, 하느님의 것인지를 다시 생각할 것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혹여 그를 통해서 얻어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 그 기대하는 ‘무엇’이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하는 길은 아닐까요? 더 나은 직장을 얻는 일이야말로 인생을 편하고 넉넉하게 보장받는 길이라 믿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인류의 첫 죄는 하느님의 생각과 달랐던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대신 ‘보이는 그것’을 숭배한 일이 죄의 처음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느라 유혹 당하는 일, 주어진 것에 불만하는 마음이 곧 죄임을 일깨워줍니다. 때문에 ‘하느님의 솜씨가 모자란다’고 여기는 일도 죄에서 비켜가기는 어렵겠군요.

인간의 욕망은 영혼이 아니라 몸을 생각하는 모든 원의에서 생깁니다. 죄는 교만의 소치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비하시키는 일에서 허다히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인간의 낮은 자존감은 하느님을 향한 시선을 가리고 외면하기에 늘 세상 것에 머물게 합니다. 세상의 것들은 우리네 관심을 오직 외향적인 것에 쏠려 탐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의 희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을 사랑하되 하느님의 것으로 하느님의 방법으로 이기기를 바라십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고 세상의 소유로 쏠려있는 마음을 추스려 돌아서라 이르십니다. 소멸할 것들에 집착하는 일은 모조리 잘라내라 하십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영으로 지음 받은 인간임에도 일개 “살덩어리”로 전락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경고합니다.

그리고 “타락한 길을” 걸을 때 멸망하리라는 사실을 밝힙니다(창세 6,12 참조). 뿐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4)라고 일러 줍니다.

세상은 늘 진리에 목말라합니다. 참과 선과 진실이 월등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세상에도 진선미라는 수순이 밝혀져 있는 것은 참되고 선한 것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그럼에도 눈앞의 이익을 위해 눈을 감고 영혼을 팔아넘기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모자랄 것 없이, 모두 다 채워주실 수 있으십니다. 이를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차별화된 삶을 살아갈 것을 신신당부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풍조에 휩쓸려 그분의 가치관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켜주시기 원하며 하늘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신 까닭이라 믿습니다(요한 17장 참조).

우리에게는 자아 실현의 과제가 주어져 있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인품의 완성 위에서 가능합니다. 이는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에 늘 마음과 생각을 살펴야 합니다. 승리는 하느님께서 주실 때에 값지고 참됩니다. 무엇보다 성형으로 달라진 외모를 이용해서 하느님의 뜻을 더 잘 살 것처럼 위장하는 어리석음을 깨어 부수기 바랍니다.

의술행위를 선물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오용하고 악용하려 든다면, 그분께 꾸중을 들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지은 죄의 허물을 가려주시려 손수 가죽 옷을 지어 입혀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겠지요(창세 3,21 참조).

세상 안에서 살아가되 자신의 생각을 하느님께 투신하는 일을 통해 얻는 결과가 훨씬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하느님의 솜씨를 믿어드리세요!

- 장재봉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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