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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복음생각]]2월 6일 월요일(홍)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작성자빈배|작성시간06.02.06|조회수10 목록 댓글 0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 매일미사
바오로 미키 성인은 1564년에서 1565년 사이에 일본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1580년 예수회원이 된 성인은 복음을 선포하여 큰 성과를 이루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톨릭 박해 때 25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1862년 성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성인들의 영이 하늘에서 기뻐하는도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랐으며, 그분을 사랑하여 피를 흘렸으니, 그리스도 함께 끝없이 기뻐 뛰는도다.

순교자들의 힘이신 하느님, 성 바오로 미키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에게 십자가의 순교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그들의 전구로써, 저희가 세례로 고백한 신앙을 죽기까지 증언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솔로몬이 마침내 성전을 완성하여 그 성전 안에 계약의 궤를 모십니다. 성전은 바야흐로 하느님께서 머무르실 곳이 됩니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호수 건너편 겐네사렛 땅에까지 가셔서 병자들을 고쳐 주십니다(복음).

<계약 궤를 지성소 안에 들여다 놓았다. 그리고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8,1-7.9-13
그 무렵 1 솔로몬은 주님의 계약 궤를 시온, 곧 다윗 성에서 모시고 올라오려고,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각 가문 대표인 지파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자기 앞에 소집하였다. 2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에타님 달, 곧 일곱째 달의 축제 때에 솔로몬 임금 앞으로 모였다. 3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가 도착하자 사제들이 궤를 메었다.
4 그들은 주님의 궤뿐 아니라 만남의 천막과 그 천막 안에 있는 거룩한 기물들도 모두 가지고 올라갔는데, 사제와 레위인들이 그것들을 가지고 올라갔다.
5 솔로몬 임금과 그 앞에 모여든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함께 궤 앞에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양과 황소를 잡아 바쳤다. 6 그러고 나서 사제들이 주님의 계약 궤를 제자리에, 곧 집의 안쪽 성소인 지성소 안 커룹들의 날개 아래에 들여다 놓았다. 7 커룹들은 궤가 있는 자리 위에 날개를 펼쳐 궤와 채를 덮었다. 9 궤 안에는 두 개의 돌 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돌 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주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 둔 것이다.
10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11 사제들은 그 구름 때문에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던 것이다.
12 그때 솔로몬이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3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132(131),6-7.8-10(◎ 8ㄱ)
◎ 주님, 일어나시어 주님의 안식처로 드소서.
○ 보라, 우리는 에프라타에서 계약의 궤에 관해 듣고, 야아르의 들에서 그것을 찾았노라. 우리 주님 거처로 들어가, 주님의 발판 앞에 엎드리세. ◎
○ 주님, 일어나시어 주님의 안식처로 드소서. 주님께서, 주님 권능의 궤와 함께 드소서. 주님의 사제들은 의로움으로 옷 입고, 주님께 충실한 이들은 환호하게 하소서. 주님의 종 다윗을 보시어,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소서. ◎

마태 4,23 참조
◎ 알렐루야.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도다.
◎ 알렐루야.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3-56
그때에 53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님, 거룩한 순교자들을 기억하여 드리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주님의 종인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이름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루카 22,28-30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여러 시련을 겪는 동안 나와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니, 나는 너희에게 나라를 주노라.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리라.”

성전은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 있는 성전이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병자들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질책하신 사건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해야겠습니다.

하느님, 거룩한 순교자들을 통하여 십자가의 오묘한 신비를 밝혀 주셨으니, 저희가 이 제사로 힘을 얻어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며, 세상 구원을 위하여 형제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게 하소서. 우리 주…….



강론 : 서울대교구 잠실7동 이기양 신부

<2월 6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을 보여준 사람들


오늘은 일본인 순교자 성 바오로 미키와 25명의 동료 순교자들의 기념일입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이냐시오 로욜라(1491-1556)를 도와 예수회를 창립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에 의해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지 450년 이상 되었지만 수백 년의 모진 박해 때문인지 신자 수는 50만 명 정도에 불과한 실정입니다(2001년). 일본에는 우리나라보다 235년 이상 먼저 천주교회가 전래되었지요.
일본 천주교회의 시작은 1549년 8월 15일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께서 말라카에서 만나 고아에서 세례 받은 󰡐안지로󰡑의 안내를 받아 가고시마에 입국한 때부터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때부터 그리스도교를 믿는 신자는 물론 교회에 관한 모든 것을 포르투갈어의 발음에 따라 󰡐기리시 땅󰡑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일본에 2년 반(1549-1551)정도 머무르면서 선교에 힘썼습니다.

처음 일본인들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일행을 인도에서 온 스님들로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일본인들을 위해 불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교리를 알아듣기 쉽게 가르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이 신앙과 함께 가져온 서양 문물은 전란에 시달리는 일본 사회에 큰 희망을 안겨주었고 차차 영주를 포함하여 무사들과 백성이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렇듯 일본인 심성에 맞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선교는 꽃을 피워갔지만 중국 선교를 위해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를 이어 예수회 장상인 톨레스(Torres)가 입국 선교하면서 유력한 영주인 오오무라, 다까야나, 고니시(小西行長), 아리마 등이 개종합니다. 전란이 진정되면서 일본의 집권자인 오다 노부나가의 보호 아래 교세는 거듭 발전하여 1580년에는 신자수가 10만 명에 달하기도 합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불교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기리시 땅󰡑을 지원하기로 하였고 그 결과 급격한 성장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1579년 예수회의 동양 순찰사 발리냐(Valignano)의 입국은 일본 선교의 새로운 계기를 가져옵니다. 그는 1580년 영주로부터 나가사키를 이양 받아 예수회의 근거지로 만들고 교세를 크게 성장시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얼마 동안 무역의 이득을 위해 기리시 땅의 보호책을 썼으나 1587년부터는 태도를 돌변하여 선교사 추방령을 내립니다. 규우슈우 정벌을 위해 출병하였을 때 보게 된 나가사키의 교회 땅과 많은 기리시 땅 영주, 또 많은 천주교 신자에 놀라 장차 그들이 큰 세력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까닭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박해의 돌풍이 전국을 휘돌았는데 1858년 일본이 프랑스와 우호통상조약을 맺을 때까지 신앙을 뿌리 채 뽑으려는 박해는 수백 년 간 지속되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7년 2월 5일 프란치스코회 수사 6명을 비롯하여 세 명의 예수회 수사와 바오로 미키 등 일본인 17명을 나가사키의 니시까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합니다. 이들이 1862년 성인 반열에 오른 󰡐일본 26성인󰡑입니다. 오늘 기념일로 지내는 이들은 일본인 최초의 그리스도교 순교 성인들입니다.
바오로 미키는 1564년 일본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후 1580년에 예수회원이 되었는데, 특히 설교에 능했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치하에 25명의 다른 신자와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은 후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으며 죽으면서 까지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박해시대 때 어느 저자가 쓴 순교사기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못 박혀 있던 십자가들이 땅위에 세워졌을 때 놀라웁게도 모든 이들은 파시오 신부와 로드리게스 신부가 준 격려의 말에 응하여 견고한 자세를 취했다. 원장 신부는 거의 부동 자세로 시선을 하늘에다 못박아 놓고 있었다. 마르티노 수사는 시편을 노래하면서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주여,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라는 시편을 외웠다. 프란치스코 블랑코 수사도 낭랑한 목소리로 하느님께 감사 드렸고 한편 곤살보 수사는 목소리를 높여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낭송했다. 우리 형제인 바오로 미키는 자신이 이제까지 서 보았던 강단 중에서 가장 영예로운 강론대 위에 서 있다고 느끼고서 우선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자기는 일본인이자 예수회원이라고 밝히고, 자기는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죽는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자신이 받은 그 위대한 특전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강론을 마쳤다.
󰡒이제 이 순간을 맞아 내가 진리를 배반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여러분 중에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의 길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이 길이 나의 원수들과 내게 폭력을 가한 모든 이들을 용서하라고 나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국왕을 용서하고 나에게 사형을 집행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기꺼이 용서하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으라고 간청하는 바입니다.󰡓』

오늘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을 지내며 바오로 사도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로마5,3-4)
복음을 삶으로 살아낸 이런 초기 순교자들이 있었기에 일본에서의 천주교 신앙은 모진 박해와 전통 종교의 반발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생명의 열매를 간직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은 1627년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2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을 보여준 성인들의 이름은 세상 끝 날까지 영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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