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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心外無法(심외무법)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나니 ...

작성자長樂山人 이종인|작성시간14.07.19|조회수269 목록 댓글 0

心外無法(심외무법)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나니 ...

 

心生則種種法生 (심생칙종종법생)

心滅則髑髏不二 (심멸칙촉루불이)

三界唯心萬法唯識 (삼계유심만법유식)

心外無法胡用別求 (심외무법호용별구)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의 물과 깨끗한 물이 둘이 아닌 법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인식임을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으니 어찌 따로 진리를 구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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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元曉大師) 이야기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대사의 법명은 원효(元曉), 법호는 화정(和靜), 속성은 설씨(薛氏), 초명은 서당(誓撞)이다.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압량군 불지촌(押梁郡 佛地村)에서 금내말(襟乃末)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사의 모친이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잉태하였으며, 대사를 낳을 때는 오색구름이 집을 덮었다 한다.

 

대사는 10세 때 출가 하였다.

대사는 남달리 총명하여 불법의 오의(墺義)를 깨달음에 있어서 특정한 스승에 의존하지 않았다 한다. 대사는 경전 뿐 아니라 유학에 있어서도 당대 최고의 선지식 이었다.

또한 대사는 고구려 고승으로서 백제 땅 전주 고대산에 주석(駐錫)하고 계시던 보덕화상(普德和尙)의 강하(講下)에서 열반경과 유마경 등을 수학하고, 영취산 혁목암(靈鷲山 赫木庵)의 낭지화상(郞智和尙)에게서도 사사하였으며, 당대 최고의 신승이신 혜공화상(蕙空和尙)에게도 사사하였다.

 

36세 때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의 현장법사(玄奬法師)와 규기화상(窺基和尙)에게 유식학(唯識學)을 배우려고 요동까지 갔지만, 그곳 순라군에 붙들려 첩자로 몰려 여러 날 옥에 같혀 있다가 겨우 풀려나 신라로 되 돌아왔다.

 

10년 후인 45세때 두 번째로 의상과 함께 이번에는 바다로 해서 당나라로 가기 위해 백제국 항구로 가는 도중 비 오는 밤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겨우 땅막(토굴)을 찾아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잠결에 몹시 갈증이 나서 물을 찾다가 물이 잠겨져 있는 그릇을 발견하였다.그래서 고여 있는 물을 떠 마시자 물맛이 매우 달고 시원하였다. 아침에 깨어 보니 그곳은 땅막이 아니고 오래된 공동묘지의 무덤이였으며, 물을 떠 마시던 그릇은 바로 해골이였다.

 

또한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거기서 하룻밤을 더 지내게 되었는데, 이에 밤중에 홀연히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

 

다음날 “이미 도를 구하였으니 당에까지 가서 법을 구할 것이 없다”라고 하며 의상대사와 헤어졌다. 신라로 돌아온 원효는 세상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하며 대중교화에 나섰다.

 

 

광운자행(狂雲子行)으로서, 또한 거지 행세를 하면서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민중 포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 속에서도 화엄경을 주석 하셨다.

 

대사께서 지어 불렀던 노래는 이런 것이었다.

 

誰許沒柯斧 수허몰가부

爲斫支天柱 위작지천주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줄 건가

하늘 받칠 기둥을 깍으려 하네

 

상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사의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무열왕은 그 노래를 듣고 그 뜻을 알았다. 이 노래는 귀부인을 얻어 휼륭한 인재를 낳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알아차린 무열왕은 대사를 요석궁으로 들게 하였다. 때마침 요석궁에는 홀로 된 요석공주가 있었 던 것이다.

 

이후 대사는 설총(薛聰)을 낳은 후 실계(失戒)하였다 하여 속인의 옷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칭하였다.이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 어린아이까지도 부처님 이름을 알고 염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사의 일생은 화쟁(和諍)의 교법(敎法)에 의하여 자리(自利)를 구하고, 대중교화를 통하여 이타(利他)를 행함으로써 부처님 이후 상구보리 화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으로 일관하셨다.

 

대사는 인간의 청정한 마음이 현실에 훈습(薰習)되어 불각심(不覺心)이 일어난 무명업상(無明業相)을 미오(迷悟)한 현실행활인 속(俗)에서 깨닳음의 세계로 끊임없이 추구하고 수행함에 의하여 완성된 인격(眞)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데 전생을 바쳤다.

 

대사께서는 신문왕 6년(686)에 세수(世壽)70, 법랍(法臘)60세로 홀연히 입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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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生則種種法生 (심생칙종종법생)

心滅則髑髏不二 (심멸칙촉루불이)

三界唯心萬法唯識 (삼계유심만법유식)

心外無法胡用別求 (심외무법호용별구)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의 물과 깨끗한 물이 둘이 아닌 법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인식임을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으니 어찌 따로 진리를 구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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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세상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하며,  

불쌍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믿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저자거리를 떠돌며 노래와 춤으로 중생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었는데 이는 중생을 위한 무애(無碍)행이었으며 자비를 실천한 보살행이었다.

 

대사는 존경받던 고승이요 세계적 저술가로서 80여부 200여권의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현재 20부 22권이 남아있다.)

 

또한 불교계의 여러 편견으로 비롯되는 논쟁들을 서로 화합하여 회통시키는 화쟁사상을 주장했던 위대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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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다송원(茶松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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