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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선의토요단상

토요단상(土曜斷想) (2026.06.20.) {제 241회} _윤여선

작성자이영훈|작성시간26.06.20|조회수20 목록 댓글 1

토요단상(土曜斷想) (2026.06.20.) {제 241회} _윤여선


오래전 가입되어 있는 어느 단체 대화방에서 회원들 사이에 작은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논란의 주제는,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이었던 정지상(鄭知常)의 시 《송인(送人)》에 관한 것이었지요.

"비 개인 긴 둑에 풀빛 짙어가는데,
남포에서 그대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물 언제 다 마르리.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이 시는 이별의 정한(情恨)을 노래한 작품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손꼽히는 명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인 「別淚年年添綠波(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진다)」는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인용되어 온 명구(名句)입니다.

그런데 당시 회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은 둘째 구절인 ‘송군남포(送君南浦)’의 해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이를 ‘남포에서 그대와 이별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였고, 반면에 다른 이는 이를 남포라는 곳으로 그대를 떠나보낸다’는 뜻이라고 주장했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서의 남포는 목적지가 아니라 이별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정지상의 《송인》에 나오는 ‘남포(南浦)’의 연원은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이 지은 《구가(九歌)》 가운데 「하백(河伯)」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백」의 시구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대와 손을 맞잡고 동쪽으로 갔다가,
남포에서 아름다운 이를 보내네.
(子交手兮東行
送美人兮南浦)"

따라서 정지상의 시 역시 “남포에서 그대를 전송하니 슬픈 노래가 절로 나온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당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은 오랫동안 한학을 연구해 온 한 회원의 다음과 같은 해설이었습니다.


“한시에서 남포는 굴원의 초사(楚辭)에 나오는 ‘아름다운 사람을 남포에서 전송하네(送美人兮南浦)’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후 당시(唐詩)에 이르러서는 물길을 따라 떠나는 모든 이별의 대명사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지요. 정지상 역시 이러한 당시의 격조 높은 전통을 가져와 대동강이라는 우리 고유의 배경 속에 녹여 냄으로써 《송인》이라는 절창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정지상의 시에 등장하는 남포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대동강 하구의 도시 남포가 아니라, 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곳은 실제 지도 위의 지명이라기보다 이별의 정한이 깃든 문학적 공간에 가깝습니다.

굴원의 시 이후 남포는 특정한 지명이기 이전에 이별을 상징하는 시어(詩語)로 쓰여 왔고,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서 남포는 거의 관용어처럼 사용되었습니다. 시인들은 친구를 떠나보낼 때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도, 고향을 떠날 때도 ‘남포’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지요. 그리하여 남포는 단순한 나루터를 넘어 ‘헤어짐의 장소’, ‘그리움이 시작되는 곳’을 상징하는 추상적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나루터를 만나면, 그곳이 어디든 마음속으로 ‘남포’라 불렀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쯤의 남포를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던 기차역, 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던 버스정류장,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과 헤어진 어느 날의 풍경도 어쩌면 저마다의 가슴에 품고 있는 남포일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동안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 이별의 자리들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가, 문득 삶이 고요해지는 순간이면 오래전 떠나간 사람들과 지나가 버린 기억들을 다시 불러내곤 합니다. 남포란 지도 위에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떠나보낸 사람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마음속의 한 장소인 것입니다.

이제까지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숱한 남포를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남포에서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어떤 이는 먼 길을 향해 떠났고, 어떤 이는 세월 속으로 사라졌으며, 또 어떤 이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떠나간 사람들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과 헤어졌던 '남포'의 풍경만은 마음속 깊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새로운 만남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남포를 하나씩 늘려 가는 여정인지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도 존경하던 한 분을 남포에서 전송해 드렸습니다. 하느님의 충실한 일꾼으로서, 단 한 마리의 양에게라도 하느님의 말씀의 꼴을 더 먹여 주기 위해 신자들을 열정적으로 이끌어 주셨던 분입니다.

박정배 베네딕토 신부님.

짧지 않은 신앙생활 동안 가장 많이 배우며본받고 싶었던 분이셨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여선(다니엘) / 관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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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영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0 '남포'라는 공간을 통해 만남과 이별의 인생 여정을 깊이 있게 성찰한 절창(絶唱)입니다. 박정배 베네딕토 신부님을 향한 그리움과 존경의 고백은, 우리 역시 가슴속에 품고 있는 저마다의 '남포'를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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