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1일
본문: 고전11:17-26
제목: 신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고린도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편지를 두 번(고린도전·후서)이나 보낼 정도로 자기 손으로 개척한 고린도교회를 향한 그의 사랑은 실로 컸습니다.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별히 교회를 세우는 일은 성령님께서 하시는 사역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예수님을 모르는 죄인을 그분께 인도하여 그분의 제자로 세워 공동체를 이루고 그분의 몸의 지체로 온전히 성장해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하지만 사실 그렇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하나님 앞에서 은혜와 믿음으로 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이나 성과 중심으로 일하고 있는 현실을 부끄럽게 고백합니다. 여기서부터 사람의 계산법과 하나님의 계산법이 공존하게 되는데 이것은 죄를 사랑하는 인간의 솔직한 한계라 생각합니다. 믿음을 이야기하지만 상황을 의식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교회를 섬기려 하지만 모여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살피면서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람들을 많이 모으기 위해 신앙이 아닌 사람의 생각과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하나님의 뜻은 흐려지고 모이는 사람의 수나 경제적인 안정을 중시하여 결국 교회는 물질 중심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주인이 되어 그 속에 숨어있는 사탄 마귀의 장난이 결국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경우를 참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우리에게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이 없는, 영적으로 타락한 교회라고 말합니다. 신자인데 예수님의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말씀은 알고 있는데 능력과 생명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강해야 할 십자가의 군사들이 패전병처럼 영적 전쟁을 두려워하고 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 영명교회는 안전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바로 잡고 회개합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참된 회복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바울의 개척 교회 사역은 참으로 단순했습니다. 그는 늘 기도했으며,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놓지 않았습니다. 주님 또한 바울과의 교통을 대단히 좋아하셨다는 것을 성경을 읽을 때마다 전율이 차오를 정도로 강하게 느낍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바울을 너무나 사랑하셨던 주님께서 나도 그렇게 사랑하실까'라고 제 자신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오늘 본문에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믿음으로 말씀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믿음으로 바로 서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먼저 고린도전서의 배경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로마의 속국이었으며 지금의 그리스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아가야의 수도였던 고린도는 활발한 무역활동으로 상업이 크게 발전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달렸던 도시였습니다. 고린도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도착한 그는 오랫동안(약 1년 6개월) 그곳에 머물며 사역했습니다. 그곳에 교회를 세우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위해 바울은 자급자족하는 귀한 일꾼의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삶의 이유와 기도의 슬로건을 가지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사역에 매진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복음으로 삶을 살아내는 귀한 사역이 비단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나 교단이 달라도 우리는 성도로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을 받는 믿음의 형제자매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에게 주님께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동역자를 붙여주셔서 하나님의 큰일, 즉 교회를 세우고 선교하는 일을 함께 감당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에 교회를 세운 후 성령님의 이끄심을 따라 에베소에 가서 열심히 일하던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당면한 시험들이 교회 밖으로 드러나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는 뼈아픈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교회로서 온전한 회복과 세움의 은혜가 임하길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가르침은 탁월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흔히 문제가 많고 다루기 어려운 교회를 이야기할 때 고린도교회를 언급합니다. 그만큼 총체적 난국이었다는 뜻입니다. 훌륭한 신앙교육을 받아도 인격과 사상이 어긋나있으면 교회는 어그러지고 뒤틀어져서 결국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맙니다. 그들은 세상의 풍조에 물들어 하나님의 교회를 오히려 후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고린도교회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었을까요? 간단히 살펴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몇 가지만 함께 보겠습니다. 먼저 교인들 간의 분쟁입니다. 자기들만 영적이라고 고집하며 싸웠습니다. 형제가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이 무색할 정도로 내가 더 훌륭한 교사에게 배웠다고 자랑하면서 파를 나누어 다퉜습니다. 성적인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지 않는 근친상간을 저지르며 이혼과 결혼의 문제로 법적 소송까지 가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등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음란의 죄가 심각했습니다. 또한 우상 제물 때문에 교회가 시끄러웠으며, 공적인 예배, 부활에 관한 해석,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 등에 대해 서로 각자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저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보여주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보입니다. 기름지고 풍요로운 우상숭배의 제물 가운데 사는 수많은 창기들은 영적 음란으로 교회를 공격하고 믿음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세상의 철학, 지혜, 불완전, 불공평, 불합리에 빠져 힘과 길을 잃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바울은 고린도전·후서를 썼습니다. 교회 안에서 발생한 계급이 교인들을 나누고, 나중에는 배고픈 자와 배부른 자, 더 나아가 취하는 자까지 구별하여 주님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사교 공동체로 전락한 모습에 바울은 비통하며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결코 교회를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는 그가 아닌 하나님께서 개척하시고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정화하시고 믿음으로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사랑과 공의로 그들을 철저하게 가르치고 양육했습니다. 그의 모습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신앙의 정도(正道)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교회 안에 권력이 형성되고 계급이 나뉘는 것을 ‘절대 악’으로 간주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바울의 신앙을 우리 모두는 본받아야 합니다. 그는 세상 논리로 교회 안의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비웃는 교만한 자들의 모습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즉 주님의 성찬을 이야기하며 다시 사랑으로 그들을 교육했습니다. 고전11: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계급, 권력, 교만을 버리고, 제자들에게 몸을 나누어주신 생명의 예수님을 기념하며 그 은혜를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고전 11:25-26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어두운 세상, 즉 음란, 폭력, 세상의 철학과 이념으로 타락한 도시에 그리스도의 생명과 은혜로 주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잊지 말고 그런 교회로 살아내라고 바울은 가르쳤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이렇게 타락한 이유는 말씀이 없어서도, 교사인 바울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고린도의 고질적인 영적 타락이나 교회를 향한 마귀의 장난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타락은 세상에 무기력하게 무너진 영적 장님이었던 신자 한 사람, 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교만하기만 할 뿐 주님의 마음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우리 또한 이렇게 추락하지 않도록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세상의 하수인이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서 예수님을 찾아볼 수 없다면 비참하고 비굴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라면 성도답게 사십시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신앙을 제발 갖고 사십시오. 성찬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주님을 잊는 순간 세상은 그들의 논리와 정당성으로 우리의 신앙을 망가뜨리려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의 눈과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는 그분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도 가고 나도 가고 오직 예수님만 남는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만이 진리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충만하여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그분의 은혜와 영광을 드러내며 그분의 뜻대로 세상을 살리는 우리 영명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