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례/아득한 첫 장날의 회상-2013년 가을호

작성자해처럼달처럼|작성시간13.11.06|조회수109 목록 댓글 0

아득한 첫 장날의 회상

 

 새벽 눈풍지 사이로 찬바람 코끝을 시려올 때 새벽 다섯 시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부엌 아궁이에 군불을 피워내고 새벽부터 솥뚜껑 여닫히는 달그락 소리에 온 식구들 눈을 여는 아침,  방안에 온기로 따뜻해 질 무렵 상을 차리고 먼 길 돌아 학교 갈길 준비하는 네 남매. 각자의 도시락을 챙겨들고 코끝이 찡하도록 매서운 찬바람을 이겨 보려고 저마다 목도리에 털모자 털장갑 끼고 교복안에 까만 스타킹 두껍게 입고서 솔바람 산길을 따라 학교를 간다. 산을 넘고 내를 건너 둑길을 따라 강바람에 얼어붙은 손끝 호호 불며 읍내를 지날 때 어느 상가 분식점엔 아침부터 오뎅국 삶는 냄새가 배고픈 아이들의 코를 더욱 씰룩거리게 만든다.

 

 내 고향 언덕길과 산들과 강둑들은 강산이 두 번 바뀔 때 까지 여전히 있을련 지 오늘도 내 영혼이 쉬어갈 곳 내 고향 소꿉친구들 그리며 잊지 못할 내 생애 첫 장날, 그 아득한 향수에 젖어본다.

 

 어느 장날이었다. 나는 엄마를 따라 장터를 갔다. 가을걷이도 끝나고 들판이 휑하니 비어있었고 추수끝에 날씨도 쌀쌀하여 흐린 하늘은 금방 진눈깨비라도 내릴 태세였다 아침엔 살 얼음이 살짝 장독에 서려있어 김치독을 열려니 여간 손이 시려운 게 아니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깊이 쑤셔넣고 목도리 장갑 골고루 갖추고 눈만 빼꼼히 내놓은 채로 어머니를 따라 장터를 갔다. 대나무 숲을 지나 좁은 동네길을 따라 산을 오르니 쭉쭉 뻗은 소나무에선 산 바람에 어디선가 구슬픈 메아리가 곡처럼 들려오고 산길을 따라 으슥한 소나무 길을 오르려니 군데군데 봉우리로 솟아있는 무덤에서는 금방 무언가가 툭 튀어나올 것 같아 엄마 옆에 꼭 붙어서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걸어가니 어느새 주머니에 깊숙히 넣었던 손은 땀에 젖어 흥건해 져 있었다.

 

 칼바람이 무색한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산을 넘고 둑길을 한참 걸어서 읍내 장터 입구에 도착하면 장터 입구에서부터 뻥튀기 아저씨가 기계를 돌리느라 연기를 내 뿜으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냄새가 온 시장을 장악하고 읍내 깊숙히 들어가면 장터가 서 있는데 정말 먹거리가 한판 늘어져 있는데 내 눈이 완전 휘둥그래졌다. 장날은 그 때가 첫 경험이었다. 왁자지껄 사람들의 시끄러운 말 소리와 뻥튀기기 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떡 방앗간의 기계소리 장터 중앙에 천막에 마련되어있는 막걸리집에서 술 취하신 어른의 술 주정소리...노래소리.. 푸념소리.. 그 장단에 가끔씩 울음 터트리는 아낙네의 하소연... 어디선가 한켠에는 소 시장이 열리는지 팔려가는 송아지와 따라나온 어미소의 안타까운 이별곡이 정신없이 들려오고 강아지들도 컹컹 ..멍멍...닭들도 꼬꼬댁 꼬꼬 ...어느 새 나는 눈 돌리기에 바빠서 자꾸만 발걸음이 뒤로 쳐졌다. 가끔씩 불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고 엄마를 쳐다보고 확인을 하곤 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엄마를 놓칠세라 치마를 꼬옥잡고 종종걸음으로 뒤따라 다녔는데 갑자기 낮선 아주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어머...꼬마야 내 치마 놔라! 왜 자꾸 치마를 잡아당기고 그래? 헉! 나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갑자기 어쩔줄을  몰랐다.  빨리 주변을 어보았다. 어디에도 엄마는 없었다. 그  아주머니는 정신없는 꼬마를 보더니 어머! 너 엄마 잃었구나? 어쩌니? 어디에서 왔어? 내가 니 엄만줄알고 치마를 꼭 붙잡고 있었구나? 정신없는 꼬마에게 연속으로 질문을 던져대니 나는 더 정신이없어 뭐라고 할말을 잃고 그냥 눈에 눈물이 고이고 금방 울음이 터질것 같은 얼굴에 새파랗게 질려서 꼼짝을 안고 길 한복판에서 서 있었다

 

 아주머니가 자꾸만 길을 비키란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지나다니는 길 중앙이고 자전거도 지나가고 리어카도 지나가니 한쪽 옆으로 비켜서란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고집을 부린다. 엄마의 목소리가 환청이 되어 들리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그랬다. 혹시라도 엄마를 잊어버리면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으라고 ..절대로 다른데로 찿아 다니지도 말고 누가 엄마 찿아 준다고 따라오라 해도 절대로 따라가지 말라고 ...그런 사람 따라가면 팔아먹는다고....

 

 무시무시한 그 다짐이 생각 나 엄마를 찿아주겠다던 아줌마 말도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모두다 술에 취한 눈빛과 몸짓과 흐는적거리는 몸놀림이 이상하게 도적떼처럼 보였고 무서워서 한 발자욱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그 자리에 그대로 소리도 못내고 서서 있었다. 길을 비키라고 아우성치는 못된 사람도 있었고 툭 치고 지나가는 건달들도 있었고 자전거가 지나가는데 길 안 비키고 뭐하냐고 고함치며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그냥 미아가 된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엄마가 입고 오셨던 그 핑크빛 블라우스만 찿고 있었다. 한참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서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부르며 달려들더니 내 손을 확! 낚아챈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엄마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사람들이 볼까봐 챙피해 하면서 엄마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꺼이꺼이 목놓아 울면서 어디 갔다왔냐는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치마를 잡고 잘 따라 오길래 안심하시고 가시던 길을 바삐 가셨단다. 한참 장을 보다가 꼬마를 깜빡하셨단다. 그때부터 오신 길을 따라 순서대로 내려오시는 길이었는데 그 시간은 불과 20여분도 지나지 않았다고...그런데 그 많은 인파들 속에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 안한 내가 어른들 속에 묻혀서 있으니 키가 작아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을 헤메다 찿으셨는데 내가 얼마나 긴장을 했든지 엄마가 앞에서 불러도 소리를 듣지 못하더란다. 나는 온통 엄마의 옷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우는 나를 달래느라고 손을 잡고 가서 장터에서 파는 커다란 빵떡을 사 주셨다. 삼각형으로 생긴 그 빵은  살짝 노랗게 색깔을 입혀 이스트로 부풀려서 찐 풀빵이었는데 지금도 그 맛은 잊지 못한다. 장터에서 처음 먹어본 빵이기도 했지만 추위에 떨며 울고 또 긴장이 풀리니 그때서야 배가 무지막지하게 고팠다는 사실이 깨달아진 것이다. 따뜻한 빵으로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장터의  첫 경험을 뒤로하고 엄마를 따라 다니며 장 보기를 끝낸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신기했다. 갈 때의 그 설레임은 다 사라지고 집으로 오는 내내 가슴에 평안함이 밀려왔다. 둑을 따라 걷고 또 산을 넘어 산 중턱에 다다라서 쉼을 가지고 다시 걸어서 산 꼭대기에 도착하여 동네가 보이니 거기서 내려다본 동네는 얼마나 평화롭고 아늑한지....이제 막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연기를 뿜어내며 소 여물을 끓이고 어떤 집은 이른 저녁을 짓느라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었다. 출발할 때 싸늘했던 그 한기는 온데 간데 없고 이마는 산을 넘느라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숨이 차서 가슴은 콩닥거렸고 코끝은 한기 때문에 새빨개져 있었다. 아~~~ 이 냄새 ...이게 무엇일까? 내 시골집 냄새가 난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시골집에 냄새가 있다는 것을... 지금껏 엄마 냄새만 있는 줄 알았던 나에게 그날 처음 산을 넘어 장터를 갔다오면서 시골마을에 냄새가 있음을 산 꼭대기에서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엄마의 젖가슴에 파묻히면 나는 그 땀 냄새가 그리도 좋았는데... 엄마의 냄새가 아닌 또 다른 고향의 향기가 있다는 것을 그 냄새가 그리도 좋았다는 것을.. 그 냄새는 엄마의 냄새와는 또 다른 냄새였음을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날 밤 나는 꿈에 악몽을 꾸었다. 아침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 눈을 떴는데 아뿔사! 너무 급했나보다. 벌써 늦었다. 요에 볼일을 보고 말았다. 새벽에 굼불을 지피려고 일어나시던 엄마는 발끝이 축축한걸 보시고 벌떡 일어나 앉으시더니 얼른 요 호청을 뜯어내고는 바깥에 내 놓으신다.그날 나는 아침 일찍 머리에 쌀켜를 뒤집어쓰고 뒷집 아줌마에게 가서 소금을 얻어와야 했다. 나는 그날의 악몽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먼 기억 저편에 고스란히 묻혀있는 추억의 한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향의 그 냄새는 지금도 그대로일까? 참 궁금해지는 저녁이다. 수억 만리 이녘 창공 아래 사는 내게 눈만 감으면 풍겨오는 고향 냄새, 내 생애 첫 장날의 아득한 추억의 길을 다시 한 번 찾아가고 싶다.

 

이미례 프로필

재미 플로리다 거주, 현재 팟 케스터 방송 미디어협동조합 생명방송 LIFETV 라디오 코너에 선교 리포터로 활동 중이며 전문 의류매장 edgelook에서 메니저로 일하고 있음. 방송작가를 소망하는 신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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