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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하나뿐인 딸,손주와 잠실올림픽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20년간 함께한 정당을 떠납니다.
긴글이지만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나의 10대는 연희동에서 흘러갔다.
1991년,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그해 봄, 명지대생 강경대 군의 사망 이후 대학가는 거대한 분노에 휩싸였다. 학생운동은 전국으로 번져 나갔고,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연세대학교에도 수만 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그날의 광경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도로 위로 화염병이 날아다녔고, 최루탄 연기는 하늘을 뒤덮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을 만큼 매캐한 냄새가 골목까지 스며들었다.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는 모습은 어린 내 눈에 전쟁과 다를 바 없었다.
시위가 격화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었다. 방패와 곤봉 사이로 끌려가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채 질질 끌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의 나에게 그들은 나라를 걱정하는 형과 누나들이었지, 범죄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군 장성 출신이었다.
엄격하고 원칙적이었던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내게 말했다.
"저 사람들은 빨갱이다. 너는 대학 가서 절대 저런 짓 하지 마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렇게 맞고 끌려가는 사람들이 왜 빨갱이란 말인가. 왜 아버지는 저들을 동정하기는커녕 비난하는 것일까.
어린 나는 아버지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몇 년 뒤 대학에 진학한 나는 학생운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배들의 권유로 여러 사회과학 서적을 접하게 되었다. 『자본론』, 『무엇을 할 것인가』, 『모순론』 같은 책들이었다.
그 책들은 젊은 나에게 세상을 설명해 주는 지도처럼 보였다.
불평등의 원인도, 가난한 사람이 계속 가난한 이유도,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이유도 모두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이 나라는 부자와 기득권만을 위한 나라라고.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학생들은 잘못된 사람들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나는 수십 년을 살아왔다.
한 번도 내가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나에게는 하나뿐인 딸이 있다.
어릴 적 내 품에 안겨 잠들던 아이는 어느새 성인이 되었고, 자신의 생각을 가진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2년 전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이유는 정치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이상을 품는 법이고,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딸의 생각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오히려 딸은 내가 오랫동안 믿어왔던 것들에 의문을 던졌다.
"아빠는 왜 그렇게 생각해?"
"그 정책이 정말 성공했다고 생각해?"
"아빠가 믿는 사람들은 왜 책임을 지지 않아?"
처음에는 화가 났다.
평생 정치에 관심도 없던 아이가 세상을 얼마나 안다고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딸은 인터넷으로 세상을 배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주 언성을 높였다.
어떤 날은 식사 자리에서 싸웠고, 어떤 날은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딸은 감정적으로 화를 내기보다 계속 질문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들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예전 같으면 확신에 차서 말했을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왜 실패한 정책은 반복되었는지.
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늘 책임지지 않았는지.
왜 내가 비판했던 모습들이 내가 지지했던 사람들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나는지.
딸과의 대화가 늘어날수록 나는 딸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달라질 거야."
"원래 개혁은 시간이 걸리는 거야."
"그래도 저쪽보다는 낫잖아."
그 말들은 딸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어쩌면 수십 년 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되뇌어 온 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딸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내 신념과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혹시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할 만큼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외쳤다. 독재에 반대했고, 약자를 위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의문이 생겼다. 왜 그들이 읽는 책은 늘 마르크스와 레닌이었을까. 왜 자유를 말하면서도 다른 의견은 적으로 취급했을까. 왜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체제 자체를 부정했을까.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사상이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은 구호가 아니라 그들의 뿌리였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 나이가 든 나는 그들의 책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믿었던 것은 민주주의였지만, 그들이 말하던 세상의 끝은 내가 생각했던 민주주의와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한때 내가 믿었던 정당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내가 싫어했던 정당들은 기득권이었다. 그들은 권력과 부를 독점한 채 서민과 청년의 고통에는 무관심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맞서 싸운다는 사람들을 지지했다. 그들이야말로 약자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상한 장면들을 보게 되었다.
내가 비판했던 사람들이 기득권이었던 것처럼, 내가 지지했던 사람들 역시 권력을 쥐자 또 다른 기득권이 되어갔다. 서민을 위한다던 정책은 반복해서 실패했고, 청년을 위한다던 약속은 번번이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실망했고, 또 실망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스스로를 설득했다.
"이것은 과정일 뿐이다."
"옳은 길로 가기 위한 진통일 뿐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달라질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 고집에 가까웠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젊음을 바쳐 믿어온 가치와 신념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보이는 것마저 외면했다.
사실을 부정했고, 의문을 억눌렀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나는 진실을 속인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던 분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에 대한 반감,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억울함.
그 감정들은 나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현실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를 현실에 끼워 맞추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는다. 기득권을 비판하던 사람도 기득권이 될 수 있고, 정의를 외치던 사람도 권력 앞에서 변할 수 있다.
내가 젊은 시절 그렇게 쉽게 믿었던 이유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였지만, 이제는 안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스스로의 착각을 인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식과 손주를 생각하는 나이가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결과를 본다.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남겼는지를 본다.
내가 살아온 나라보다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가 믿어온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묻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진실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는 문재인 정부를 겪으며 많은 실망을 했다.
그럼에도 쉽게 돌아서지 못했다.
어쩌면 이재명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며 버텨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을 좋아했고, 중국 공산당 체제를 경계했다.
돌이켜보면 내 안에는 늘 모순이 있었다.
그들이 대북 정책을 추진할 때도 나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도 같은 민족 아닌가."
"북한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의문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의심보다 믿음을 선택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애써 외면하던 질문들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내가 믿었던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치와 실제 행동은 왜 다른가.
내가 지지했던 세력이 비판하던 모습들을 왜 스스로 반복하는가.
왜 나는 그 모순을 보면서도 계속 눈을 감고 있었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진실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믿고 싶은 신념을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것은 신념이라기보다 집착에 가까웠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내가 살아온 수십 년의 시간도 함께 부정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외면한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고, 딸과 토론을 하고, 손주를 생각하게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정치를 이념이 아닌 미래의 문제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내가 걱정하는 것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다.
내 자식과 손주들이 어떤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인가이다.
젊은 시절의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깨닫는다.
잘못된 믿음은 좋은 의도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라는 것을.
만약 내가 살아온 세월 속에서 잘못된 판단을 했고, 그것이 다음 세대에게 부담이 되었다면,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이제라도 눈을 뜨려 한다. 적어도 내 아이들과 손주들에게는 내가 걸어온 길을 무조건 따르라고 말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나라를 남겨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