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선인장 꽃과 멕시코긴코박쥐
그런데 박쥐의 멸종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런 엄청난 계획을 반대하는 것일까? 우리는 박쥐가 열대지방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 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같다. 열대지방의 많은 다양한 식물들은 그들의 꽃을 꽃가루받이하고 씨를 퍼뜨리는 것을 박쥐에 의존하고 있다.
오르간파이프 선인장 (Stenocereus thurberi)
우리가 미국 서부 영화를 볼 때 자주 등장하는 커다란 기둥모양의 선인장들도 그러하다. 이들 선인장은 미국 아리조나 남서부와 멕시코 소노라 사막에서 자라는 오르간파이프 선인장(Stenocereus thurberi)과 사와로 선인장(Carnegiea gigantea)이다. 오르간파이프 선인장(Organ Pipe Cactus)은 대왕각이라고도 하는데 오르간의 파이프와 비슷한 수직 줄기 기둥들이 빽빽하게 군생으로 자라며 줄기 지름 20cm, 높이 8m까지 크게 자란다. 수명이 150년인 이 선인장은 35년생 정도 되면 4~8cm의 하얗고 튼튼한 꽃을 피운다. 꽃은 사막의 강렬한 열기를 피해 밤에만 핀다. 5~7월, 개화기에는 최대 100개까지 꽃봉오리가 달리고 많으면 하룻밤에 20개의 꽃이 벌어진다. 이때 사막의 밤은 톡 쏘는 듯한 사향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며 이주성 박쥐인 멕시코긴코박쥐(Leptonycteris curasoae) 떼를 부른다. 이 박쥐들은 해가 지자마자 따뜻한 동굴을 나와 선인장을 찾아 1800km 이상의 기나긴 이주에 나선다. 꽃이 핀 오르간파이프 선인장들이 무리지어 자라는 곳을 찾으면, 꽃 위를 날면서 뾰족한 머리를 꽃 속으로 들이밀어서 솔처럼 생긴 긴 혀로 꿀을 핥아먹으며, 그 과정에서 꽃가루를 흠뻑 뒤집어쓴다. 그들은 매일 밤 5시간 동안 약 100km 거리를 돌아다니며 꽃의 꿀을 핥아먹으면서 엄청나게 먼 거리까지 꽃가루를 옮긴다. 이윽고 해가 뜨고 사막이 더워지면 이 선인장 꽃은 말라붙지 않도록 닫히고 박쥐들은 임시 거주지로 사라진다. 이렇게 개화와 섭식이 여러 주에 걸쳐 매일 밤 되풀이 되고, 이주가 끝날 무렵이면 박쥐 한 마리는 임신한 암컷의 새끼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꿀을 제공받은 보답으로 수천 송이의 꽃에 꽃가루를 옮기게 되는 것이다. 박쥐가 갓 태어난 새끼를 돌보는 동안, 수정에 성공한 선인장은 야구공만한 가시로 뒤덮인 붉은 과육질의 열매를 맺는다. 그러면 늦여름과 초가을에 박쥐는 새끼를 데리고 다시 이곳을 찾아와 달콤한 선인장 열매를 먹는다. 그리고 넓은 지역에 씨를 배설하면서 퍼뜨린다.
사와로 선인장
사와로 선인장 역시 박쥐가 꽃가루받이를 하고 씨앗을 퍼뜨린다. 박쥐 외에도 흰날개산비둘기가 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와로 선인장 꽃도 흰색이며 5월달에 3주 동안 밤에만 개화한다. 꽃은 선인장 꼭대기에 하루 10송이씩 약 200송이 정도 피며 꽃향기도 대단히 강렬하다. 박쥐는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는 흰 꽃잎에서 반사되는 달빛을 이용하여 꽃의 위치를 찾아내지만, 후각이 잘 발달되어 멀리서도 선인장을 향해 날아온다. 사실 박쥐는 색깔을 거의 식별하지 못하고 명암만 보기 때문에 이들 오르간파이프 선인장이나 사와로 선인장의 꽃 역시 화려할 필요가 없다.
사와로 선인장은 미국 아리조나 주의 상징식물로 그곳의 사와로 선인장 국립공원은 많은 관광객들이 'OK 목장의 결투'와 같은 서부 영화 공연과 사와로 선인장의 풍경을 보기위해 몰려든다. 사와로 선인장은 지름 30~75cm의 굵기로 15m까지 자라는데, 성장이 무척 느려 1m 가량 자라는데 30년 이상, 10m 정도 자라는데 거의 100년이 걸린다. 30년생 정도 되어야 꽃이 피고, 75년 정도 되면 원기둥 모양의 줄기에서 가지가 하나 나온다. 수명은 150년 정도이다. 다 자란 사와로 선인장은 무게가 7~10톤 정도 나가며, 그 속에 몇 톤의 물도 저장할 수 있다. 줄기 내부에는 콘크리트 속 철근 역할을 하는 원통형 그물같은 목질 조직이 있어, 물을 함유하고 있는 거대한 조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키 큰 선인장의 줄기는 세로로 홈과 이랑이 교대로 나타나는 주름잡힌 형태를 띠며, 가뭄으로 물이 고갈되어 줄기가 수축할 때 가장 잘 드러난다. 물의 공급이 늘어나면 이 주름은 엄청나게 팽창한다. 사와로 선인장의 열매 역시 붉은 색으로 다육질의 과육이 있어 오르간파이프 선인장처럼 박쥐나 새의 먹이가 되고, 그들의 배설물로 넓은 지역에 씨앗이 퍼뜨려진다. 그 결과 멕시코 소노라 사막의 피나카테 화산지역에 있는 거대한 엘레칸테 분화구 안에도 사와로 선인장들이 자라고 있다.
예로부터 사와로 선인장은 소노라 사막 푼타추에카의 세레부족 같은 원주민들에게는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식수가 부족할 때는 선인장을 잘라 선인장 즙 속의 물로 갈증을 해소하며, 염증이나 타박상의 치료약으로도 요긴하게 사용한다. 죽은 사와로 선인장으로, 집을 지을 때 지붕이나 건축 재료로 사용하며 울타리와 땔감으로도 사용한다. 인간만이 아니라 딱따구리 같은 새들도 사와로 선인장에 구멍을 내어 살고, 그들이 가버리면 올빼미가 들어와 둥지를 튼다.
우리나라 선인장 온실에도 사와로 선인장은 '변경주'라는 이름으로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과거 서울 남산식물원에 있던 아름다운 사와로 선인장의 모습이 내 눈 앞에 지금도 선하다.
콧수염 선인장
선인장의 가시들은 몸을 보호하는 일 외에도 식물의 온도와 수분 함량을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미국 아리조나 주와 소노라 사막에서 자라는 콧수염 선인장(Whisker Cactus)이라고도 불리는 상제각(Pachycereus schottii) 같은 기둥선인장에서는, 가시들이 빽빽하게 모여 자라서 줄기에 그늘을 드리우면서 단열 매트를 형성하고, 식물 가까이에 수분을 가둠으로써 증산작용을 통한 물 손실을 줄인다.
또한 브라질 동북부 원산의 기둥선인장인 필로소세레우스 파키클라두스(Pilosocereus pachycladus)는 몸 전체를 햇빛 차단제 역할을 하는 가루로 뒤덮어 희뿌연 초록색을 띠며 3~10m 이상으로 자란다. 가시가 반투명하고 황금색으로 아름답다.
Pilosocereus pachycladus
북아메리카에는 잘 알려진 열대사막 세 곳이 있다. 모하비 사막과 치와와 사막 그리고 소노라 사막이다. 소노라 사막은 고도가 가장 낮으며 캘리포니아 최남단과 아리조나 남부의 북위 34°부터 멕시코의 북회귀선(북위 23°27')까지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많은 기둥선인장 종류들이 자라고 있다. 소노라 사막은 다른 두 사막 사이에 부분적으로 걸쳐 있어서 여름에는 멕시코 만에서 비를 얻고, 겨울에는 태평양 편서풍에서 비를 얻게 된다. 소노라 사막은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의 좁은 반도에 있는 태평양 연안까지 이른다. 연안의 한류는 종종 안개를 생성하고, 응결된 안개는 수분을 추가로 공급해 주지만,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이나 남아프리카 서부 나미브 사막 연안에서 발생하는 양보다는 적다. 소노라 사막은 일년 중 건기가 산재하여 짧게 한 차례씩 나타나며 두 번의 우기가 있다. 선인장은 북아메리카 세 곳 사막들 중에서 가장 따뜻한 소노라 사막에서 제일 다양하고 많다. 때로 그곳에서 큰 기둥선인장들이 소관목류의 근처에서 자라는 것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이들 선인장이 어릴 때 소관목들이 그늘을 제공하고 서리로부터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무륜주 (Pachycereus pringlei)
남산식물원의 대봉룡(Neobuxbaumia polylopha)
소노라 주의 해안선 일대와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에 자생하는 기둥선인장으로 무륜주(Pachycereus pringlei)가 있는데 이 선인장도 높이 11m까지 자라는 큰 선인장이다.
또한 멕시코의 이다르고 주 등에는 사와로 선인장과 비슷한 대봉룡(Neobuxbaumia polylopha) 선인장이 자생하고 있다. 높이 13m, 지름 50cm 가량의 크기로 자라며 발아 또는 성장 과정이 사와로 선인장과 비슷하다. 꽃은 좁은 깔때기 모양으로 진홍색으로 핀다. 가시가 유연하고 노란색이다.
귀면각(Cereus peruvianus)
나는 우리집 온실 한 쪽 화단에 귀면각(Cereus peruvianus) 선인장 세 그루를 심어 두었는데, 참으로 귀면각의 생명력은 대단했다. 온실은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는데 외기온도가 영하 10°C 정도로 떨어지면, 온실 내부 온도는 영하 3°C까지 떨어진다. 그런데 귀면각은 꺼떡 없다. 또한 잘 자라 온실 천장에 닿기 때문에 가끔씩 줄기를 잘라 그늘에 말려 두었다가 그냥 심어면 쉽게 뿌리가 내리고 성장한다. 한번은 잘라놓은 줄기에서 길고 흰 꽃이 핀 적도 있다. 귀면각은 높이 3m 정도 자라 분지되어 나무처럼 되며, 백분이 덮여있는 녹색 줄기를 갖는다. 페루에서 자생한다.
암석사자(Cereus peruvianus cv. monstrosus)
이 귀면각의 원예변종으로 암석사자(Cereus peruvianus cv. monstrosus)가 있는데, 이것은 줄기가 짧고 마디가 석화하여 기이한 형상으로 자라 선인장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종이다.
산페드로 선인장(Echinopsis pachanoi)
또한 페루와 에콰도르의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와 해안 저지대까지 광범위한 기온대에 자라는 산페드로 선인장(Echinopsis pachanoi)은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메스칼린(mescaline)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선인장으로 유명하다. 이 선인장은 귀면각 선인장과 모양이 아주 비슷한 기둥선인장으로 고대 안데스 문명의 종교 의식과 삶 속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BC1000년~BC300년경 페루 북부 해발 3185m의 고원지역에서 번성한 고대 안데스 문명인 차빈의 부조에서, 주술사가 산페드로 선인장(San Pedro Cactus)을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했던 여러가지 물건에도 조각되어져 있다. 그들은 이 선인장을 성스럽게 여겼으며 거기에서 나오는 수액을 그들의 제의에 사용했다. 태양신을 모시는 고대 안데스 문명의 종교 의식은 산페드로 선인장으로부터 추출된 용액 또는 가루를 마시면서 시작이 된다고 한다. 그들은 굉장한 의식을 거행하는 동안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데, 그로인해 신의 존재를 느끼며 환각을 본다고 한다. 산페드로 선인장의 꽃은 귀면각 선인장의 꽃과 비슷하며, 꽃이 줄기 정상 부근에 달리고 길이 20cm, 지름 20cm 정도의 크기로 여름철 밤에 흰꽃으로 핀다.
기둥선인장은 아메리카 대륙의 건조한 열대기후 지역 전체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이들은 마른 대지에 우뚝 솟아 긴 세월을 살아가며 인디오들이 살아있음을, 그리고 그 수난의 역사를 온 몸으로 얘기해 주고 있다. 우리는 그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출처: http://tpkisuk.tistory.com/entry/기둥선인장-이야기?category=553337 [열대식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