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문양
전통 문양은 이상적인 삶에 대한 현실적 기원을 의탁하는 일종의 주술적 대상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우리 전통 문양은 우리 민족의 집단적인 가치 감정이 통념에 의해 고정되고 표상된 제2의 자연 또는 상징적 기호에 의해 표현된 미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문양은 생활 미술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기원을 담은 주술적 대상으로 또는 그런 정서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매개체 구실을 하고 있는 상징적 조형물이다.[1] [1]한국의 전통문양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와 신령스러운 정감이 깃들어 있고, 이상 세계에의 동경, 행복의 기구, 애정의 충만, 길상의 축원 등이 담겨 있다.[2] 우리 나라 문양은 삼국시대 이래 대체로 불교적 요소가 많지만, 그와 더불어 유교·도교적인 요소도 포용하고 있다. 곧, 공예미술에 특징적으로 쓰인 길상적인 문양은 다복(多福)·다수(多壽) 및 다남(多男)·다손(多孫) 등 자손 번영을 상징하는 소재가 많이 나타나 있다.[3]
활용
한국전통문양은 건축, 문화재, 생활소품 등에 이용되었다. 혹은 불교의 사상을 나타내기 위해 사찰 등에 사용되었다. 무늬는 장식이 1차적 목적이었으며, 혹은 유물의 보존을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단청에서 한국 무늬 특유의 색이 잘 나타난다. 단청은 청·적·황·백·흑색의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사용하여 목조 건축물에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말한다. 단청을 하는 이유는 우선 목재 표면이 갈라지거나 비, 바람 등 자연현상으로 인한 부식과 충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4]
또한 궁중에서는 무늬를 통해 신분과 직위를 알 수 있었다. 왕의 옷(곤룡포)에만 용이 그려져 있었다. 신하들의 직책과 하는 일에 따라 다른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었다. 학은 문관을 나타내고 호랑이는 무관을 나타냈다. 또한 갯수가 많을 수록 높은 직책을 의미했다.[5] 한편 능이나 궁궐의 벽화에 그려져 위엄을 드러냈다. 소품의 경우 보자기, 베갯모, 떡살 등 다양하다. 서민들이 사용하는 용품에 새겨진 무늬의 경우, 길상을 염원하는 문자문이 많았다. 떡살의 무늬는 일반적으로 가문에 따라 독특한 문양이 정해져 있었다. 그 문양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집안에 빌려 주지도 않았다.[6]
시대 별 문양의 특징
삼국시대
문양에 한국적인 특징이 나타나는 시기는 삼국시대부터이다. 이 시기에는 중국문화권과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삼국시대에 속하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유물은 같은 문화권 안에 있기에 유사한 특징을 나타내면서도 무늬의 소재나 표현방법에 있어 차이점을 보인다. 우선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사신도를 비롯하여 일(日)·월(月) 성숙도 등은 신라미술에서는 토기에 주로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밖에 신라의 천마총 출토 ‘천마도(天馬圖)’ 역시 고구려 고분벽화에 똑같은 모양으로 묘사되고 있다.[1]
통일신라시대
7세기 중엽, 삼국 통일을 이룩한 신라는 고구려, 백제가 지닌 문화적 특성과 언어, 습속 등을 본래 지니고 있는 신라 고유문화 속에 흡수하여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출할 수 있었다. 이 시기는 특히 불교가 가장 흥했던 시기였다. 또한 서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양식과 공예기법을 도입하였다. 예로는 보상화무늬를 들 수 있다. 특히 임해전지 보상덩굴무늬의 덩굴 사이에는 마주보고 있는 사슴 한 쌍을 볼때, 서역계 무늬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통일신라기에 와서는 내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경향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삼각형무늬, 빗살무늬, 동그라미무늬와 같은 기하학적인 무늬와 보상화무늬,덩굴무늬 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골호의 무늬들은 극락정토를 표방하는 것이다.[1]
고려시대
고려는 건국 초부터 국교를 불교로 정하였고, 통일신라의 융성하였던 불교의 바탕 위에 귀족사회가 번영하게 되었기 때문에 불교미술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특히 고려시대에 발달한 고려청자에는 앞서 언급한 갯버들·물짐승문과 같이 자연경관을 소재로 한 무늬와 구름·학문과 같이 동물을 소재로 한 무늬, 국화문, 모란문, 덩굴문과 같은 식물무늬 등을 시문(施紋)하였다. 고려시대 나전칠기에 나타나는 무늬는 가재, 대모(玳帽), 은(銀) 또는 동선을 감입하여 나타내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였다. 그 무늬는 덩굴문, 국화문 등이 특징적으로 쓰여 졌으며, 또한 수양버들, 단풍, 갈대 등이 있는 물가 풍경과 하늘에는 물새가 날아오르고 또 물에도 쌍쌍이 헤엄치는 물새가 회화적으로 묘사되었다.[1]
조선시대
조선의 미술은 전대의 숙련된 기술의 계승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민간의 소박한 의식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조선시대의 특징적인 무늬로는 길상(吉祥)무늬를 들 수 있다. 대표적인 길상무늬인 문자(文字)무늬는 수(壽), 복(福), 강(康), 녕(寧), 부(富), 귀(貴)와 같은 문자를 원형이나 사각의 테두리 선 안에 써넣은 형태로 장식의장으로서의 성격을 더욱 강조하였다. 그리고 우주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이 되는 태극무늬나 십장생무늬같이 모든 사람이 바라는 소원을 의미하는 무늬들이 선호되었다. 조선왕조가 시작되면서 용무늬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져서 곤룡포나 궁궐 건축에 왕가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단청의 무늬로는 연꽃무늬나 덩굴무늬, 구름무늬 등을 장식하였으며 만자(卍字)무늬나 아자(亞字)무늬, 거북등무늬와 같이 기하학적으로 도안화된 무늬들도 건축물이나 공예품에 시문되었다.[1]
한국 전통문양의 분류
문양은 그 소재와 의미하는 바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용이나 봉황 등 동물을 소재로 할 수도 있으며, 연꽃이나 대나무 등 식물을 소재로 삼을 수도 있다. 혹은 만(卍)자나 수(需)자를 연속으로 나타낸 문자무늬나 기하학 무늬도 있으며, 여의두문 같이 자연소재가 아닌 인공물 속에서도 소재를 취하였다. 또는 장수를 상징하는 열개의 사물을 표현한 십장생문이나, 아들이 많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포토와 여러 아이들을 같이 나타낸 복합문도 있다. 이처럼 소재별로 분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미하는 바에 따라 장수를 기원하는 것, 입산과 출세를 기원하는 것 등 의미별로도 분류할 수 있다.[1]
인물문
인물문이란 사람의 얼굴 또는 형태를 나타내거나, 신선·부처·사천왕·도깨비 등을 표현한 무늬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처와 사천왕상·비천상 등이 불교미술에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1]
- 도깨비무늬
도깨비무늬는 삼국시대의 기와에서부터 조선시대의 은장도, 관청에서 발급하는 문서의 바탕 무늬로도 보이고 있다. 도깨비무늬는 중국의 도철 무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중국의 도철 무늬는 매우 험상궂고 용맹한 형상을 띠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 도깨비는 매우 인간적이고 해학적인모습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도깨비 무늬의 시원은 우리나라 특유의 도깨비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런 도깨비 무늬는 지붕이나 다리, 창호 등에 새겨져 벽사(사악한 것을 물리침)와 수호의 역할을 담당하였다.[1]
동물문
동물문은 단순히 그들의 형태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의식 속에서 만들어낸 상징적 의미도 갖고 있다.[1]
- 용
용은 모든 실재하는 동물과 상상 속 동물들의 능력과 장점을 모아 만들어 낸 신비한 동물이다. 용의 형상은 중국 명(明)나라의 약학서인「본초강목」 (本草綱目)에 머리는 뱀의 모양을, 뿔은 사슴, 눈은 귀신, 귀는 소, 목은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메, 발바닥은 호랑이를 닮았다고 적혀있다. 용은 모든 동물의 우두머리로 인식되었다. 용은 모든 동물의 우두머리로서 능력이 무궁하여서 사람들이 가히 알 수 없는 능력과 힘을 지닌 동물로 인식하였다.[1]
용은 종류에 따라 다양한 성질과 형태를 갖고 있다. 비늘이 있는 교룡(蛟龍), 날개를 가진 응용(應龍), 새끼용인 규룡 등이다. 이들은 각기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는데 어떤 것은 불을 좋아하고, 어떤 용은 멀리 볼 수 있으며, 어떤 용은 물속에 있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용은 모든 자연현상을 주재하는 동물로도 나타난다. 홍수와 가뭄을 주재하기도 하며, 항해와 조업을 주재하는 해신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는 능력을 지닌다.[1]
- 봉황
고대 중국에서 신성시했던 상상의 새로 기린·거북·용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 여겼다.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는데 그 생김새는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상서롭고 아름다운 상상의 새로 인식된 것만은 확실하다. 봉황은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서 사해(四海)의 밖을 날아 곤륜산(崑崙山)을 지나 지주(砥柱)의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 깃을 씻고 저녁에 풍혈(風穴)에 자는데, 이 새가 세상에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다고 한다.[7]
- 물고기
어문은 어로생활을 통한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가 생활 주변에 어문을 그려넣기 시작한 것은 석기시대부터라고 짐작되는데, 이러한 습관은 당시의 어로생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에서 발견된 자갈에서 선각한 최초의 어문을 볼 수 있다. 또, 청동기시대에는 암벽에 선각한 물고기 그림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울산 울주군의 반구대암각화가 그 좋은 예이다.[8]
- 호랑이
호랑이는 십이지의 세 번째 동물이다. 용맹하고 위엄이 있으며,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반면 병을 막아주고 복의 기운을 상징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조선시대에는 매년 정초가 되면 호랑이 그림을 그려 용 그림과 함께 대문이나 중문에 붙여 잡귀를 쫓는 풍습이 있었는데 벽사의 기능을 했다. 무인의 용맹과 무(武)를 상징한다.[1]
- 해태
해태는 해치라고도 하며 상상의 동물이다. 뿔을 하나 가진 동물로서 양을 닮았으며 영물로 인식되었다. 사람의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재주가 있어 성군을 도와 현명한 일을 많이 하였다. 만일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 뿔로 덤벼 받아넘기는 정의의 동물로 생각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사헌의 흉배에 쓰이기도 했으며 여성들의 노리개나 주머니 장식으로 사용했다.[1]
- 학
학은 신비스럽고 영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십장생 무늬의 하나로 청초함과 장수를 상징하며, 속세를 벗어난 풍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잉어
잉어는 관직등용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잉어는 그림의 소재뿐 아니라 건축물 장식에도 등장하는데,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부용지의 축대에 새긴 잉어문양이 그 예이다. 부용지 주변은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을 치르던 곳으로, 선비들의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상징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잉어문양은 유교 덕목의 하나인 효와 직결되는 상징성을 지닌다.
식물문
식물 중에서도 문양에서 특히 주요한 소재가 된 것은 꽃이였다. 굳이 별다른 상징성이 없더라도 꽃은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것이다. 때문에 특정한 꽃이 아닌 일반적인 형태의 꽃을 표현하여 아름답게 장식한 경우가 많다. 식물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소재는 연꽃과 덩굴이다. 연꽃은 여러 사상이나 종교에서 중요한 식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덩굴문은 장수와 좋은 일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연면(連綿)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다른 무늬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로 인해서 자주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덩굴문은 연꽃, 국화, 모란, 보상화(寶相華, 연꽃의변형체로 좀 더 화려한 느낌을 준다. 천상을 대표하는 꽃이었다.) 등과 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1]
- 연꽃
연꽃은 불교를 대표하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더러운 습지에서 자라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아 청결과 순결의 상징물로 여겨졌다. 또한, 연꽃은 불교에서 불법을 깨달은 것 즉 초탈, 보리, 정화 등을 나타낸다. 여성과 관련된 물품들에 새겨진 연꽃은 생명의 창조와 생식 번영의 상징이다. 연꽃을 나타낸 문양에는 종종 연꽃을 쪼고 있는 물새가 같이 나타나는데, 이는 생명의 씨앗을 획득한다는 것으로 곧 잉태를 의미하고 또한 득남(得男)을 뜻하는 것이다. 선비들이 사용하는 물건에 연꽃과 물새가 같이 나타날 때는 과거 급제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연꽃과 물고기가 같이 나타나는 문양은 생활의 여유로움을 의미하기도 한다.[1]
- 국화문
국화는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된 꽃이며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귀하게 여겨왔다. 국화는 맑은 아취와 높은 절개를 상징하는 꽃이다.
인공물문
인공물을 문양으로 사용할 때는 문양의 형태 보다는 의미를 중요시했다.
- 칠보문
칠보문이란 생활에 이롭거나 길상 의미의 물건들을 말한다. 칠보는 일곱 가지 보물이라는 뜻으로 동전, 물소 뿔, 방승, 책, 약쑥, 거울, 특경(악기의 일종)이다. 동전은 복을 상징하고 물소 뿔은 다복을 의미한다. 방승보는 마름모꼴 형태로 경사스러운 일에 쓰이는 보자기의 네 귀나 끝에 다는 금종이로 만든 장식인데,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나타난 문양이다. 화보는 화첩과 책의 모양을 도안화시킨 것으로 복록(福祿)을 의미하며 순탄한 관직생활을 나타내는 무늬이다. 약쑥의 잎사귀는 한약재로 쓰이는데 이 쑥은 불을 붙이는데 썼다고 한다. 때문에 더욱 귀중하게 여겼고, 장수 등 길상을 뜻한다. 거울은 임금이나 권력층의 상징으로 여겼고, 다복을 의미한다. 특경은 고대 악기의 하나로, 옥이나 돌로 만든 것이다. 인(人)자 모양으로 생겼으며, 그 소리를 귀하게 여겼다.[1]
자연산수문
자연산수문이란 동물이나 식물을 제외한 자연을 소재로 한 무늬를 말한다. 하늘의 해나 달, 구름, 별이 소재가 된 것이다. 이외에도 산수화를 보는 듯한 산수문이나 바위를 그린 괴석문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개 장수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늘에 존재하고 그 생명이 인간보다 월등히 길기 때문이다.
- 구름무늬
자연산수문 중에서 특히 많이 나타나는 무늬는 구름무늬이다. 옛사람들은 재세 시에 덕을 쌓으면 사후에도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거나 성불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구름무늬는 다른 무늬를 돋보이게 하는 효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용이나 거북의 신령스러움을 나타내는데 구름을 배경으로 한다든가, 학이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을 나타낼 때 구름문이 배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1]
문자문
문자문이란 글자를 무늬로 넣어서 특정한 글자를 연속해서 배열한 문양을 말한다. 어떤 물건에 좋은 뜻의 문자들을 새김으로써 글자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의미였다.
- 수(壽)와 복(福)
가장 대표적인 글자무늬이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장수하는 것만큼 큰 복은 없었다. 때문에 옛사람들이 표현하는 문양에는 유난히 장수를 상징하는 것들이 많다. 장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소재인 거북이나 복숭아를 표현하기도 했지만, 수(壽) 자를 표현하여 직접적으로 장수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문자문은 옷에 수를 놓거나, 떡살이나 다식판에 특히 많이 나타난다. 항상 가까이하는 도구에서도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이외에도 수(壽 )와 복(福)자가 함께 나타낸 수복자문, 건강함을 뜻하는 강령(康寧), 자손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다남자(多男子)문 등이 있다.[1]
기하문
가로줄이나 세로줄, 사선 또는 동그라미 등이 나타난 문양을 기하문이라고 한다. 기하문은 선사시대부터 등장한 가장 원시적 형태의 문양이다. 신석기나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도구들에는 연속된 형태의 줄무늬나 동그라미 또는 동심원 등이 나타나는데, 당시 사람들은 태양이나 햇살, 비를 나타내는 의미로 이런 무늬들을 새겼다고 한다. 도형무늬 외에도 기하문으로 분류되는 것에는 태극문, 팔괘문, 귀신눈문, 거북등문이 있다.[1]
- 태극문과 팔괘문
태극문은 음양의 조화로 인한 변화의 탄생, 발전과 번영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주로 나타난 문양이다. 팔괘는 온갖 천지 만물의 현상과 형태의 기본이 되는 여덟 가지를 나타낸 일종의 기하학적 상징 부호라고 할 수 있다. 옆으로 길게 한 것을 양효(一)라 하고 가운데가 끊긴 것을 음효(--)라고 한다. 이것을 기본으로 한 개의 양효와 두 개의 음효가 짝하기도 하고, 한 개의 음효가 두 개의 양효와 짝하기도 하여 하나의 괘를 이룬다. 팔괘에는 모든 자연현상과 길흉화복이 설명되어 있다. 사람들은 천지자연과 인생의 도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으니 천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생활에 실천한다면 인간의 흥망성쇠와 길흉화복 등의 자연의 도에 합치될 수 있다고 믿었다. 각각의 괘에는 음양의 상징, 자연, 동물, 인체, 가족 사항 등의 상징이 있다.[1]
복합문
여러 소재를 복합적으로 나타낸 무늬이다. 벽사를 상징하는 용의 상서로움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서 구름과 같이 표현한다든가, 봄과 장수를 상징하는매화와 효행을 의미하는 팔가조라는 새를 같이 나타내는 문양들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의미의 무늬들을 배열하는 것과, 각각 다른 의미의 소재를 합쳐 새로운 상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십장생문이 대표적이고 후자에는 물고기·갈대문을 예로 들 수 있다. 물고기는 인생의 여유, 입신출세, 자손번성, 부부 금슬을 의미하지만, 갈대와 함께 합쳐졌을 때는 장수라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십장생문은 비슷한 의미의 소재들을 나열하여 그 의미를 강조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십장생은 해, 산, 돌, 물,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을 말한다. 각각의 소재들을 모두 독립적으로 쓰이더라도 장수를 의미하는데 열 가지를 묶음으로서 좀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특히 십(十)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1]
각주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거 너 더 러 머 버 서 송광헌, 류호현 (2012년 11월 20일). 《한국의 문양 디자인》. PCN. 18쪽. 2016년 11월 19일에 확인함.
- ↑ 허, 균 (2010년 11월 30일). 《전통문양》. 대원사. ISBN 9788936901653. 2016년 12월 5일에 확인함.
- ↑ “문양”. 《NAVER》.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16년 12월 5일에 확인함.
- ↑ “단청의 목적”. 《한국콘텐츠닷컴》. 2016년 12월 5일에 확인함.
- ↑ 김영숙 (2010년 10월 10일). 《우리 옷 이야기》. 아이세움. ISBN 9788937845901. 2016년 12월 5일에 확인함.
- ↑ “떡쌀”. 《NAVER》. 두산백과. 2016년 12월 5일에 확인함.
- ↑ “'봉황'”. 《네이버 지식백과》. 민족문화대백과.
- ↑ “어문”. 《네이버 지식백과》. 민족문화대백과.
출처 : 위키 백과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