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도립공원 ㅡ 유네스코 등재ㅡ 청량산 정상 497m 수어장대ㅡ남한산성 남문 북문 서문 ㅡ 하늘에서 만들어준 천혜의 요새ㅡ 남ㅎ
작성자경운이작성시간23.12.16조회수911 목록 댓글 0남한산성 도립공원 유네스코
청량산 정상 497m 수어장대
남한산성 남문 북문 서문
하늘에서 만들어준 천혜의 요새,
남한산성 장수의길 눈산행
남한산성 도립공원 코스
남한산성 공원 ㅡ
남한산성 남문 ㅡ
청량산 정상 수어장대 ㅡ
남한산성 서문 북문 ㅡ
오거리 종로 ㅡ
장수에길 트레킹 ㅡ
약 13.3km 약4시간 30분 소요
남한산성 도립공원
하늘에서 만들어준
천혜의 요새, 남한산성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산1
남한산성은(사적)는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 있는 청량산의 주봉우리를
중심으로 뻗어있는 봉우리의
능선을 연결한 포곡식의 대형
석축산성이다.
인조14년(1638년) 병자호란 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열어 굴욕적인 화의를
한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성은 한성백제의 온조에 의해
처음 쌓아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통일신라 때 당의 침공에 대비해
쌓은 주장성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성의 규모는 전체 둘레 11.76km
(본성 9.05km, 외성 2.71km)이다.
남한산성은 성벽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는데 반해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하고 적의 접근이 어려운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로써
단 한 번도 전투 중 함락된
적이 없는 성이다.
또한 내부 면적이 넓어 각종
시설이 들어서게 되는데,
특히 남한산성 행궁은
조선시대 20여개의 행궁 중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까지
갖춘 시설이 들어설 정도였다.
남한산성 지화문
南漢山城 至和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의
남문(南門)이다.
남한산성 서남쪽
해발 370m 지점에 있다.
선조 때 남문·동문 등을 수축(修築)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의 사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산성으로 피신할 때
이 문을 통과하였다.
정조 3년(1779년) 성곽을 개축
하면서부터 지화문이라 불렀다.
성문은 홍예문으로, 높이 4.75m·
폭 3.35m·길이 8.6m이며
홍예기석 위에 17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들었다.
인조에 의해 대대적인 수축사업이
이루어진 뒤에도 조선 후기까지
지속해서 정비가 이루어져 우리나라
산성 중 각종 시설이 잘 완비된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현재는 성벽과 여장, 행궁지,
동 · 서 · 남문루와 장대 · 돈대 ·
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남아있다.
1971년 3월 17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그 면적은 35.16㎢로 광주시
남한산성면·서부면·동부면 및
성남시 일부에 걸쳐 있다.
남한산은 준평원상(準平原狀)의
잔구(殘丘)로, 정상부는 평균
해발고도 300∼350m의
분지상(盆地狀) 지형을 이루어
최고점은 496m이고, 사방이
산지의 경사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와 같이 준평원상에 고위평탄지
(高位平坦地)를 이루는 남한산은
해가 일찍 떠서 늦게 지기 때문에
일찍이 일장산(日長山)
또는 주장산(晝長山)이라고도
불려 왔으며, 또 기온도
서울보다 항상 4∼5℃ 낮다.
한편, 남한산의 지형은 천연의
요해를 이루기 때문에 백제 초기에
그 왕도가 이곳에 자리한 바 있었고,
고려 ·조선 시대에는 성진(城鎭)을
구축하여 군사요지로 중요시해 왔다.
광주산맥의 영향 아래 있으며
주봉인 청량산(497.9m)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연주봉 (467.6m),
동쪽으로 망월봉(502m)과
벌봉(515m)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성곽 내 평균고도는 350m로
성곽외부의 가파른 경사와는
대조적으로 넓은 구릉성
분지를 이루고 있다.
1636년 청태종의 침략군 20만에
밀려 인조는 이곳 남한산성에 피신,
포진한지 40여일만에 삼전도에서
청태종 앞에 항복을 한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곳이었다.
당시의 대부분의 건물은 소실되고
남은 것은 10여채에 불과하나
교육관광 안보관광지로 역할을 한다.
청량산 497m
(일장산 日長山)
서울특별시와 하남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서,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의 옛 이름이다.
조선시대 남한산성 행궁과
수어장대 등 관방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南漢山城 守禦將臺
남한산성에서 수어청의 장수
(將帥)가 군사를 지휘하던
군사시설이다.
2021년 12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는 수어청의
장수(將帥)가 군사를 지휘하던
군사시설이다.
서장대라고도 불렸으며,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에 자리하여
성의 안쪽과 바깥쪽을 굽어볼 수
있는 관측소의 역할을 하였다.
수어장대는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개축할 때
함께 건립되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후금의
군사적 압박,
이괄의 난 등으로 국내외
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이에 조정은 왕실의 보전과
한성의 수비를 위한 보장처
(保障處: 전쟁 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장소)
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고,
한성과 가깝고 방어요새로 적합한
남한선성을 왕실의 보장처로 삼았다.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정비하고, 조선 왕실의 보장처로
갖추어야 할
여러 행정, 군사 시설을 설치
하면서 군사 지휘소인
수어장대도 함께 건립되었다.
1686년~1711년 사이에 그려진
「남한산성도」에 따르면 당시에는
남한산성의 동, 서, 남, 북 각 방면에
4개의 장대와 봉암성에 외동장대를
설치하여 5개의 장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수어장대는 지금과 달리
단층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면서
남한산성의 5개의 장대 모두
붕괴되어 터만 남게 되었고,
이기진이 왕명으로 이층누각
으로 증축하고
안쪽에는 '무망루(無忘樓)',
바깥쪽에는 '수어장대(守禦將臺)'
라는 편액을 내걸었다.
이후 1896년(고종 1)에
유수 박기수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남한산성 우익문
南漢山城 右翼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의
서문(西門)이다.
남한산성을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99)에 개축하여
우익문(右翼門)이라 부른다.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서쪽 경사면이 가파르기 때문에
물자를 이송하기는 힘들지만
서울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성벽은 잘 치석된 직사각형
석재를 이용해 쌓았으며
안정감을 주기 위해
지대석 위에 5~10cm 정도
뒤로 밀어 쌓고 그 윗부분은
수직에 가깝게 쌓았다.
특히 인조에 이어 숙종대의
성벽은 매우 가지런하고 질서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성돌과 성돌이 밀착되어 마치
종이를 잘라 붙인 듯 아주
정교한 모습이다.
각 성돌 사이에 틈이 없이 서로
결합하는 면이 넓어지도록
함으로써 성벽의 안정성을
높이는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성돌의 무게가 400~900kg
넘을 정도로 큰 성돌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전시기에 비해
돌을 다듬고 운반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 전승문
南漢山城 全勝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의
북문(北門)이다.
남한산성 북쪽 해발 365m 지점에
있는 북문으로, 이 문을 통해
세곡을 운반하였다.
인조 2년(1624)에 신축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한 후
전승문(全勝門)이라 이름 붙였다.
트레킹중 손이시려
차집에 들려 대추차 한잔에
8500원 몸을 녹이고 출발
1624년(인조 2년) 수어사
이서(李曙)가 성을 쌓을 때
서남쪽은 이회(李晦)에게,
동북쪽은 벽암(碧巖)대사에게 맡겼다.
벽암은 기한 내에 성을 쌓았으나,
이회는 성을 튼튼히 쌓느라
기한을 어겼다.
이회는 무고로 수어장대 앞에서
참형되었다. 이회가 죽기 전에
원통함을 호소하였는데,
목이 떨어진 자리에서 매 한 마리가
날아올라 근처 바위에서 슬피
울다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발톱 자국이 남았다.
뒤에 벽암이 쌓은 곳은 무너졌으나
이회가 쌓은 곳은 튼튼하여
무너지지 않았다.
나라에서는 이회를 위해 사당을
지어 억울함을 위로하였다.
이회의 부인이 남편을 대속하기
위해 영남 지방에서 돈과 곡식을
구해 오다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쌀을
버리고 통곡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송파나루 앞에 있던 쌀섬여울
[米石灘]이 이회 부인이 빠져
죽은 곳이다.
삼전도 아래 이회의 유씨와
송씨 두 부인을 모신 당집이
있어 무녀가 굿하고 부녀자가
치성하였다.
뒤에 당집이 사라지면서
두 부인은 청량당으로 모셨다.
남한산성 도립공원 (유네스코)ㅡ
청량산 정상 497m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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