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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지 32집 원고

작성자김경남|작성시간26.06.19|조회수53 목록 댓글 0

1. 설봉산 버스킹/김경남

마이웨이를 연주하는 색소폰 버스킹 앞에
발길을 멈춘다

몸의 반이 어눌한 남편
아내는 춤을 춘다
망각으로 가는 기억들을
조용히 소환하며

발끝마다 묻어오는 아련한 추억
손을 힘껏 펼쳐
나붓하게 돌 때마다
고음으로 내질렀던 한 때가
따라오고
허공으로 번지는 푸른 그리움

숨죽인 관객들 사이로
바람은 눈물을 감아올리고
그리움은 설봉산 노을빛 속으로 달려간다

한 생이
노을빛 설봉산에 물든다

2. 기억의 강/김경남

오래도록 흘러온 강은 곳곳에 상처 같은 협곡과 여울을 만들며 아버지와 내 앞에 닿았다

산 아래 沼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서려 있고
강의 초입보다 훨씬 어두워
보였다

아버지는 작살을 들고 沼의
문을 여시듯
천천히 물살을 헤치시며 들어가셨다

혼자 남은 나는 무서웠다
아버지의 다부진 어깨가 내 마음을 눌러 주었다
가슴까지 잠긴 아버지가
갑자기 물속으로 사라지자
두려움에 울음이 목까지 차 올랐다

그 순간
다시 물 위로 솟아 올라온 아버지의 손에는 파닥이는 물고기가 들려 있었다

그 강가에서 허리 굽혀 정성을 다 해 물고기탕을 끓이시던 아버지
반짝이는 물무늬 작살에
파닥이던 물고기

강변의 돌들은 따뜻했고
상처로 얼어붙은 내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강은 내 몸속에서 여울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다

3. 판교는 하늘역/김경남

Ktx이음선
물 찬 제비 같은 열차
미끄러지듯 들어와
덜컥 문 열고
다급히 조른다
문경 고향 가자고
한창 봄 맞으러 가자고

경강선 출발지 판교역
앉기 위해 뛰고
남들이 뛰니 뛰는 곳

자기만의 생각이 골똘한
긴 줄 위로 침묵의 고요가
내려앉아 있다

마당 들마루에 두고 온
감꽃목걸이
뻐꾸기 소리
아카시아 향기
사라진 번호들이
꽃잎으로 흩날려
울컥거리는 몸을
싣는다

참 다행이다
아직 그리워할
하늘이 있다니

4. 청바지 음악 농장 /김경남

비탈진 외길을 오르다 보면
유명산 자락 아래 버섯 농장이 있다

버섯 대신 음악을 키우는 한 사내
청바지 30년, 버섯 8년의 세월을 접고
이제는 자신의 숨소리로 농장을 일군다

벽면엔 해진 청바지 삼백 벌
땀과 시간으로 만든 흡음판
노동의 주름마다 젊음이 눌어붙었다

민원인들에겐 소음이던
도망친 악기들을 다시 불러 모아
그들에게 귀와 눈썹을 달아준다
별빛을 품고 싶어 하는 악기들은
그의 손끝에서 다시 노래가 된다

생의 끝자락,
세상의 내 것은 하나도 없다는 듯
빈손으로 가려는 그의 결심 위로
음악은 줄을 서고
농장은 환해지고
우주 한 귀퉁이가 밝아온다


5. 수필
밥그릇 / 김경남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15년 넘게 살고 있는 독실한 불교 신자 한 분이 계신다.
그분은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신앙처럼 여기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양이 밥그릇이 감쪽같이 사라진 일이 일어났다. 벌써 이러한 소동이 세 번이나 연속해 발생하였는데, 그분이 제사 때 쓰는 제기처럼 소중히 여기는 고양이 밥그릇이 바람에 저절로 날아간 것 같지는 않았다.
드러내 말은 안 해도 고양이 밥그릇을 없애버릴 만한 위인이 누구 일지는 충분히 짐작 가는 일이었다.
마을 어귀에 설치된 cctv를 열어보면 분명한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도 열어보지 않은 것은 분명히 범인이 한 동네 사람일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을 아무래도 미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차라리 확인해 보지 말자고 작정하였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2년쯤 되는 분이었다.
그는 유달리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인가 그는 자신의 집으로 길고양이가 함부로 못 들어오게 집 주위로 울타리를 만들어 세웠다
그리고서도 자신의 집 마당에 얼씬거리는 길고양이들을 보면 참지 못하고 삽을 들고나와 그것들을 죽일 것처럼 요란한 소동을 피웠다. 이런 그의 행위를 보면 그가 길고양이 밥그릇을 일부러 없애버린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 심증이 더욱 굳어가는 어느 날, 동네 길에 길고양이 밥그릇이 산산조각이 난 채 나뒹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정성으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던 사람과 우리는 더는 참지 못하고 cctv를 확인해 보자는데 의견이 일치되었다. 이쯤 되면 누구의 소행인지 분명히 밝혀내야 될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대반전이
우리들 눈앞에 펼쳐졌다. cctv 화면에는 들개 한 마리가 어른 가슴께 높은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와서 먹이가 담긴 밥그릇을 통째로 물고 나오다가 그만 놓쳐서 그것이 깨트려지는 장면이 찍혀있던 것이었다. cctv화면을 돌려보던 사람들은 그만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우리 마을이 잠든 사이에 이러한 의외의 밥그릇 쟁탈전이 소리 없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밥그릇 싸움이 비단 우리 마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해결이 막막한 의료대란, 또 여당과 야당의 국회에서의 싸움도 그렇고, 탄핵 반대와 찬성의 투쟁도 어찌보면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없다.
더 나아가서 요즈음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는 관세전쟁도 결국은 밥그릇 싸움 아니겠는가.
따라서 크든 작든 이러한 유형의 밥그릇 싸움은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무의식 속에 자리잡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고 지구촌 곳곳에서 소리 없이 때로는 노골적으로 일어나는 삶의 원초적 전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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