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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수필]6-4. 조병준

작성자다만|작성시간26.06.23|조회수20 목록 댓글 2

기도가 필요한 사람

 

 

어떤 말은 그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일지라도 오랫동안 메아리로 들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30대 초반, 젊은 아내와 서너 살 어린 아들들과 함께 귀농한 마을에는 수행공동체 정토수련원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곳 수행자들과 안부를 묻고 음식도 나눠 먹는 사이가 되면서 그곳에서 진행하는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웃 마을로 이사를 갔을 때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들고 찾아와 축원을 해 주기도 하고, 셋째 아들 보리가 태어났을 때도 가장 먼저 찾아와 축하와 함께 새 생명과 우리 가족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름을 뭘로 지을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하니 수행공동체에서 명상을 지도하다 직접 명상센터를 한다는 분이 명리에 밝아 작명이나 택일은 그 분 도움을 받는다고 하면서 부탁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부부와 보리의 출생 일시와 이름에 대한 바람을 알려주었습니다. 며칠 후 전화가 왔습니다. 어질다는 뜻의 인(仁)과 현(賢) 중에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부모가 상의해서 골라 쓰시면 되겠다고 하면서 하는 일과 공동체 분들과의 인연을 물었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평소에 공부에도 관심이 있어서 수행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열심히 하라면서 덧붙인 말이 처사님이 기도를 좀 열심히 하셔야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들려 잊혀 진 줄 알았습니다.

 

보리는 태어나서 4년이 지난 어느 날 너무 일찍 돌아갔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이 그때만큼 와닿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사주에 이런 조짐이 있었는지 따지기라도 해 보려고 핸드폰에서 이름을 검색해보니 번호가 남아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제 정신이 아니었으니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차분한 음성은 4년 전 그대로 였습니다. 내 얘기를 다 듣고는 몇 마디 짧은 말과 함께 통화는 끊어졌고 멍하니 핸드폰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말은 또 다시 ‘기도를 많이 하셔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로나 사과는 커녕 기도라니. 기도가 부족해 그렇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는 아무 힌트도 없었습니다. 뭐라도 부여 잡자고 손을 뻗치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당시 법륜스님은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참회기도를 권하곤 했습니다.

 백일 백팔배 기도를  여러 번 했습니다. 만배 기도를 하는 동안에도 눈물이 끝이 없을 것처럼 쏟아졌습니다. 그때마다 ‘기도를 많이 하라’는 말이 자꾸만 메아리 되어 들려왔습니다. 메아리는 멀어지게 마련인데 이 목소리는 더 또렷하게 커졌습니다. 그리고 든 생각, ‘아, 나는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구나! 전생에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지만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기도를 하다 북받치기 시작하면 눈물이 샘솟듯 했습니다. 그러다 눈물이 잦아들면 마음도 몸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보리로부터 시작된 그리고 보리를 향한 참회기도는 보리가 떠나간 후 태어난 동생이 자라면서 그리고 보리 형들이 점점 커가면서 감사와 축복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보리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슬픔과 자책, 자기 혐오에 빠져서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을 미워하며 사는 게 아닌 것은 자명했습니다. 가족에게 짜증을 부리고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보리가 보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괴로웠습니다. 보리에게 덜 미안하려면 그리고 보리를 만나러 갈 때 조금이라도 홀가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의 무게를 감당하며 10년 동안 찾아낸 답이 ‘축복’이었습니다. 일기장을 넘기다 보니 2025년 2월부터 하루, 한 주, 한 달, 한 해의 일과 중 가장 앞 자리에 ‘축복’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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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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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時習 | 작성시간 2시간 26분 전 new
    슬픔과 자책, 자기 혐오에서 축복을 발견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기도를 많이 하라는 말이 상처가 되기도 했겠지요.
    그래도 그 말을 화두로 삼아 지내니 지금은 축복,을 말하게 된 것에 읽는 사람도 안도하게 되네요.
    저도 가끔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만나기도 하는데, 지혜로운 말씀이구나 할 때가 있어요.
    수필 잘 읽었고, 긴 시간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스스로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지혜를 얻은 다만님. 고마운 일입니다.
  • 작성자時習 | 작성시간 2시간 21분 전 new 어느 절 공양간에 붙어있는 기도문을 내가 좋아하는 웝툰에서 다시 보았을 때 더 깊은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신앙은 다르지만 이 기도문에서 가끔 위로의 말을 받곤 합니다.
    그냥 문득 생각나서 덧붙여 봅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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