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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대화기술

작성자이강석|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슬기로운 대화기술

 

(전)남양주시부시장 이강석 

 

아마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시작되어 슬기로운 감옥생활, 슬기로운 탬플스테이 등 '슬기로움'을 강조하는 어휘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이야기를 시작하면 누군가가 옆에서 최초의 슬기로운 생활은 '예의범절'이라고 공격을 할지도 모릅니다.

 

사회생활을 슬기롭게 하려면 대화중에 공격성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공감성이 소중하다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3시간 이상 같은 자리에 앉아서 소주잔을 주고 받으면서 왜 그리도 상대의 말을 자르고 들어가는가는 것일까요.

 

주석에서 A가 이란과 미국이 전쟁을 해서 석유제품이 부족하므로 화성특례시의회 건물이 7월1일 개원일에 준공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 옆의 B가 A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기 전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사람아! 그게 아니구~~~!" 일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자르고 거부하고 시작합니다.

 

미상불, A의 이야기에 95% 동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는 이야기에 대해 5%이하의 견해 차이를 가지고도 '당신의 말이 틀렸다"고 전제하고 자른 후에 '석유로 만드는 건축 내장재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여 청사준공일이 2개월 정도 밀렸다'라고 자신이 뉴스에서 시청한 바를 말합니다.

 

아마도 B가 '당신의 말이 맞는데 내가 알기로는 건축물 도배용으로 쓰이는 비닐수지를 석유제품을 원재료로 하여 만들어지는데 그 원유가 부족하여 재료가 공급되지 않아서 의회청사의 준공이 늦어지고 있다'고 말하면 주석에서 진행되는 4명의 대화는 맥락을 잃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대화환경은 이처럼 참으로 척박합니다.

 

슬기로운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대화맥락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술을 마시면서 상대의 말을 자르고 들어가고 잘리고 밀려나고 다시 때를 보아 치고 들어가는데 익숙합니다. 옆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한 후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마치 슬기롭지 못한 범생이 대화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TV방송국 예능프로그램에서 진행자의 두가지 유형을 봅니다. 씨름선수 출신의 게그맨은 처음 나온 출연자에게서 프로그램에 필요한 화면, 그림, 멘트가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이야기를 꺼내고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자르고 다음 이야기를 이끌어 낸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 조연출 PD는 밤을 새워서 화면내용을 잇고 보태고 융합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 영상을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요즘 방송에서 보면 출연자의 멘트를 큰 글씨로 적절한 타이밍에 화면에 올려줍니다. 말 그대로 시청각입니다. 어떤 프로그램은 볼륨을 0으로 해도 대화의 흐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연속해서 출연자의 언행을 글로 표현해 주기 때문입니다. 뉴스특집에 나올법한 큰 자막이 요즘의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수초 단위로 반복합니다.

 

또 다른 게그맨은 프로그램 내내 출연자의 발언 기회를 챙겨줍니다. 누군가 빵터지는 멘트를 날리면 이를 ‘받아 먹도록’ 옆사람에게 마이크 기회를 줍니다. 예능 울렁증이 있던 초보 출연자는 대화의 맥락속에서 '예'하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전체 흐름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발언을 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슬기로운 사회자의 아름다운 진행이라 할 것입니다.

 

병원이든 교도소이든 학교이든 직장이든 '슬기로운 사회생활'의 기본원칙은 제대로 적용됩니다. 그러니 옆사람을 배려하고 약한 이를 보호하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필요할때 맥락에 맞는 어휘를 표출하도록 도와주는 슬기로운 사회생활이 중요합니다. 상대에게 슬기롭게 말할 기회를 열어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재치가 필요합니다.

 

슬기롭기 위해서는 대화중에 상대의 말을 자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박자를 잘 맞춰야 합니다. 마치 단체 줄넘기에 들어가듯이 하나 둘 호흡을 맞춰서 차분하게 박자를 맞춰 뛰어야 합니다. 툭하고 들어서면 줄넘기 줄이 그 사람의 발에 걸려서 전체 5명의 줄넘기는 9번째에서 마감됩니다. 99번까지 슬기롭게 잘 가려면 다른 이들과 박자를 맞추는 호흡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상대방의 말을 자르는 것은 슬기롭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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