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6일 울산의 청소년 공원에서는 또다시 단군상의 목이 잘려졌다.
종교가 있기 이전에 민족의 뿌리가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첫번째.
| 단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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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게도 명백한 역사적 인물인 국조 단군 을 둘러싼 이러한 논쟁은 아직까지도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자는 기치 아래 많은 역사적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MBC에서 개천절 특집으로 방영한 〈2004 단군 이야기〉(2부작)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총 2부작 중에서 두 번째 편의 요지를 소개한다. (이하 방송 녹취)
갈등의 시작은 한 단체가 각급 학교에 단군 상을 건립하면서부터다.
단군 상의 목이 잘리고 페인트 범벅을 뒤집어쓰는 등 일부 기독교 측의 행동은 한때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신화적인 인물을 역사적인 인물로 단정해 국조로 모시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시조 단군 . 그러나 단군 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수난은 꾸준히 계속돼 왔다.
단군 은 실제로 계셨던 분이고 단군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가 2000년 동안 계속되었어요. 이와 같은 사실이 여러 기록을 통해서 증명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단군 을 가지고 종교적으로 문제 삼고자 하는 입장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수 교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옛날 사람들은 그냥 원숭이였구나 하는 거죠.”
이미 중국이 10년 전부터 동북공정을 중심으로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포함시키기 위해 물밑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단군 이라는 우려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 단군 조선의 연장선 위에서, 그 단군 조선의 옛 강역에서 부여나 고구려나 여러 나라들이 생겨나는 역사의 일련 과정으로 설명해야 되기 때문에, 단군 의 존재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죠.” (이덕일 / 역사평론가)
여기에는 일제시대 강력하게 진행된 역사왜곡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단군 을 말살함으로써 한국의 역사를 2000년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단군 의 역사는 바로 우리 민족운동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제가 단군 을 의도적으로 말살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없애고 그리고 일본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의도 하에서 단군 조선의 역사를 없애려고 했던 것입니다.” (박성수)
『조선사천년사』2)라는 또 다른 교과서. 조선의 역사는 4000년이라고 전제하고 있으면서도 그 장구한 역사 자체가 ‘전설’에 불과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35년을 거치면서 단군 의 역사는 신화나 전설로 변조되었고, 그 역사마저 축소되었다. 그것을 일제는 2600년보다 줄이기 위해서 뿌리를 없애고 일본에 동화시키기 위해서, 말하자면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에 우리가 걸려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준환 회장 / 국사찾기협의회)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둥으로 만들라.”(사이토가 발표한 ‘교육시책’ 중에서)
1938년부터 본격화되어서 해방될 때까지 몇 년간 한 것이 전국에 퍼져서 단군 조선 2000년 역사가 전부 신화인 것처럼 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의 뿌리가 없어져버리는 위기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죠.” (고준환)
그것은 역사의식이 없는 학생들이 왜곡된 역사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어왔다.
해방 후에도 교과서는 일제 잔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단군 이 세운 고조선의 역사가 상당 부분 축소되는가 하면 여전히 신화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는 고조선의 역사,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공간을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의미는 단군 조선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공간을 축소시킨다는 의미는 고조선의 강역을 한반도 내 평안도 일대에 국한시키려는 움직임을 뜻합니다.
청동기 유적을 전부 한반도로 국한시켰는데, 우리 상고사의 본무대는 만주지역의 광활한 이쪽 지역이었지 한반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계속 우리 상고사의 무대를 좁은 한반도에 갇혀있었던 것처럼 (국사교과서 내 청동기시대) 지도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덕일) 그러나 그런 그도 지난 1986년 한 신문을 통해서 단군 의 실존에 대해 인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김산호 화백. 그는 우리 상고사의 현장인 만주를 오가며 역사 속 단군 의 모습을 복원하고 있는 중이다.
실물을 보진 못했어도 옛 기록을 통해 잃어버리고 왜곡된 역사의 복원을 붓끝으로 실천하고 있다. 단군 은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 마흔 일곱 명이다. 씩씩한 기상에 맞고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복장으로 바뀌어야 하고 그 모습도 바뀌어야 합니다.” (김산호) 화가로서 우리의 상고사가 그림으로 정리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고 한다. 오늘날 단군 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
Dawn of a New Centu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