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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학

단군조선이후

작성자신선국|작성시간06.02.04|조회수57 목록 댓글 0
* 북부여  

그때 그것을 계승해서, 구물 단군은 BC425년에 국호 이름을 대부여라고 고치게 됩니다. 그 다음에 우리나라의 네 번째 생장성이 끝나면, 천지인이라는 질서가 끝나면 이제 분열의 시대로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이 네 번째 열국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북부여가 건국이 되죠.

BC 239년에 해모수 단군께서 북부여를 건국을 하십니다.

그래서 4대 고우루 단군 때까지 BC 87년까지 진행이 되는데요 그때 한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범하죠.

BC 108년에 졸본 땅에 있었던 고두막한이라는 분이 한나라를 대항해가지고 한나라를 물리칩니다.

한나라를 물리치고 고우루 단군에게 와가지고 왕위를 내놓으라고 해요.

그래서 병이 들어가지고 고우루 단군은 죽고, 혈통이 다른 고두막한이 북부여의 다섯 번째 임금으로 등극을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후북부여라고 얘기를 하빈다.

후북부여라고 얘기하고 이것을 졸본 땅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졸본부여라고도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부여가 다섯 개가 있어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가장 미스테리 부분이 어디냐면 부여인데 사부님께서도 이 부여가 미싱 링크다, 잃어버린 고리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BC 425년에 44대 단군 구물이 대부여라고 고쳤던 적이 있구요, 그 다음에 해모수 단군이 BC 238년에 북부여를 건국을 했구요, 그 다음에 BC 108년에 고두막한, 동명왕이라고 합니다.

지금 동명왕 하면 전부 고주몽 성제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다. 고두막한이에요.

그래서 고두막한의 부여를 후국부여, 또는 졸본부여, 또는 그 호가 동명이기 때문에 동명부여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죠.

동명도 동방의 광명이란 그런 뜻을 갖고 있잖아요.
 

* 역사 속의 다양한 부여

그리고 고두막한의 아들이 <고무서 단군이> 고무서 단군이 아들이 없었어요.

소서노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서노의 사위로 들어간 사람이 고주몽 성제에요.

그래서 BC 58년에 고주몽 성제가 북부여의 일곱 번째 임금으로 등극을 하게 되는 거에요. 그리고 연호는 다물, 영토를 회복하자. 다물이라는 것은 회복하자는 뜻이잖아요? 그리고 이제 삼국사기에 BC 37년에 고구려가 건국 됐다.

국호를 고구려로 바꾼 것이 BC 37년입니다.

그때까지 수도는 졸본에 있었어요.

졸본은 지금의 연해주 유분하 지역입니다.

그러다가 BC 26년에 눌견으로 옮겨요.

장춘지방으로 옮겨요.

장춘지방으로 옮겼다가 AD 3년에 국내성으로 옮기고, 427년인가요? 그때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는데 지금의 역사학자들은 전부 고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다 이렇게 잘못 얘기하고 있고, 또 동명왕을 고주몽이라고 잘못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굉장히 많이 있죠. 고주몽은 해모수의 현손자입니다.

고주몽 성제의 고조할아버지가 해모수 단군이에요.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 고리군왕 고진이고, 고진의 손자가 옥저우 불리지라는 사람이고, 불리지의 아들이 유화부인과 불리지에서 태어난 분이 고주몽 성제입니다.

이렇게 해서 고구려는 북부여가 진행이 되는데요, 고우루의 동생이 있었어요.

해부르라는 사람이 나라는 고두막한이 침범을 해서 어찌할 수 없으니까 저 가섭원 땅으로 지금의 그 통화지역으로 옮겨서 동부여라고 얘기합니다.

가섭원 부여라고도 얘기하죠. 이렇게 해서 동부여가 쭉 진행이 되다가 AD 22년에 고구려에게 망하게 됩니다.

그때 해부루, 금하, 대소 이렇게 삼대를 내려오다가 대소의 그 종제가 고구려에 결국 항복을 해서 고구려에서는 대소의 종제를 연나부에다 부여를 해주거든요, 제후로 봉해주거든요.

그래서 연나부부여라는 것이 요녕성에 있게 됩니다.

494년에 문자열제때 연나부 부여를 복속함으로서 부여라는 것이 없어지게 되죠,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데 이렇게 부여라는 것이 굉장히 다양한 부여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 고구려 이후 역사의 정통 맥

그 다음에 고구려를 고쳐가지고 사국시대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이렇게 진행이 되는데 지금의 모든 역사학자들은 고구려의 건국을 요령성 환인현에 있는 오녀산성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우리 환단고기의 내용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고주몽 성제는 졸본에서 단군에 등극을 해서 BC 58년에 26년에 눌견으로 옮길 때까지 계속 어디에 있었냐하면 졸본에 있었어요.

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국시대가. 가야는 42년부터 대가야, 고령땅에 있었던 대가야는 562년에 망하니까요,

어쨌든 이 사국시대를 지나가지고는 남북국 시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국통이라는 것이 신라로 전개되는 것이 결코 아니죠.

대진국으로 전개가 돼야 합니다.

신라는 불교를 받아들여가지고 외래종교에 의해서 사상이 우리의 정통성이 무너져버렸어요.

대진국, 후고구려는 삼신 상제님을 신앙했고,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조석으로 송습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영토와 우리 민족의 철학을 계승한 그러한 종교를 계승한 나라는 통일신라가 아니라 대진국으로 전개가 됩니다.

그리고 대진국을 지나서 고려, 조선 그 다음에 임시정부. 조선시대 말기에 1,897년에 대한제국이라는 그런 국호로 고치게 되죠. 

그리고 지금 남북 분단까지 열 번째에 우리는 와 있고, 열한 번쩨 11성도. 9까지는 분열, 10부터는 통일을 시작하고 통일의 완성은 11에서 완성이 되는 거죠.

10에서 통일은 시작이 될 뿐이에요.

11에서 완성이 됩니다 이것을 십일성도라고 합니다.
 

* 무극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한 태극

그러면 우리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데 남북분단의 뿌리는 배달국 시대 때 웅족과 호족이 다투던 것에 뿌리를 두고 있고, 고려시대에는 고려와 요나라, 고려와 금나라, 고려와 원나라 이렇게 남북국, 원래 대진국과 통일신라가 남북국 시대 이르면서 거기에 뿌리를 두고 고려 때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로 남북국 시대 비슷하게 나가다가 조선시대까지도 청나라와 조선이 남북국 시대처럼 우리가 해석을 할 수 있는 측면이 있어요.

이것은 태극을 상징하고 있는데 남북한의 분단이라는 것은 이 태극은 앞으로 무극으로 통일되어가지고 나아갈 것을 또한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천 태극의 시대에서 후천 무극의 시대로 들어가게 되게 되죠.

그래서 하나의 환국에서 시작해서 하나의 나라로서 이제는 통일이 되게 됩니다.

*  9천 년 역사를 열매 맺는  큰 일꾼 됩시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보면은 그 핵랑이라는 것은 배달국 시대 때 문명 개척단 3천 명, 그 다음 고조선 시대에는 삼랑, 삼시랑 이렇게 불러 왔구요, 북부여 시대에는 천황랑이니 국자랑이니 이런 표현이 있었구요,

고구려 시대에는 조의선인이 있었고, 신라시대의 화랑이 있었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은 한민족입니다.

한민족은 하나를 만드는 민족이에요.

인류를 통일하는 그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가진 민족이고, 한민족은 광명의 민족입니다. 이 지상에 광명한 세상, 후천세상을 여는 민족이 또한 우리 한민족이라고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핵랑들은 삼랑의 후예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 삼랑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원문을 한 번 보시면 삼신수호지관야다.

삼신 상제를 수호사는 관리다. 수호를 호수라고 바꿔야 되는데 호수 삼신, 삼신을 보호하고 지켜서, 이리인명, 사람의 목숨을 다스리는 자를 삼시랑이라고 하니 본래 삼신시종지랑이요,

삼랑은 본배달신이니 세습 삼신호수지관야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옛날의 삼랑이라는 우리의 선배들은 삼신 상제를 가장 잘 믿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는 국난 극복의 선구자였으며 문명을 창조할 때는 문명을 창조하는 주인공이었으며 나라가 혼란할 때는 나라를 지키는 역꾼들이 우리 민족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엘리트, 가장 선택받은 사람들이 핵랑이었습니다. 

신문명을 열어왔던 핵랑과 같은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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