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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학

단군조선시대

작성자신선국|작성시간06.02.04|조회수29 목록 댓글 0
47대 단군 조선시대

단군 조선시대로 넘어오게 되죠. 단군 할아버지는 열네 살에 부단군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단군이 있으면서 두 명의 부단군이 있어요. 흉노의 선우, 선우가 임금이죠.

임금 밑에 좌현황 우현황이라는 제도가 있듯이 우리 단군 할아버지는 천지인의 원리에 의해서 삼신의 원리에 의해서 우리의 강토를 다스렸기 때문에 하얼빈에는 직접 진한이라고 해서 단군 할아버지께서 통치를 하십니다.

그래서 초대 단군할아버지로부터 47대 고열가 단군까지 2,096년 동안 역사가 진행되죠. BC2333년부터 BC238년까지 2,096년 동안.
 

*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시대

그 다음에 마한은 하늘에 해당해요. 변한, 번한은 땅에 해당합니다.

진한이라는 것은 사람에 해당해요. 천지인에 배합을 하는데 마한은 운백다라는 사람을 초대 부단군으로 봉해가지고 35대 맹람이라는 부단군까지 35세가 진행되요.

그 다음에 번한은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로 추정이 되는데 거기에 치우천황의 후손인 치두남이라는 사람을 봉해가지고 부단군을 74대까지, 번한의 마지막 임금이 준왕이에요. BC194년에 위만이 배반하고 쳐들어올 때 배를 타고 바다로 들어갔는데 소식이 끊겼던 그 분. 그러니까 준왕이라는 분은 번조선의 마지막 임금입니다.

처음에는 삼한관경제를 썼어요. 왜 배달국 시대 때 삼백오가의 제도를 썼느냐. 삼신 상제님의 3에서 풍백, 우사, 운사의 3백이 나오고 오행의 원리에 의해서 5가 제도가 나오게 되었던 거죠.



그러니까 철학이 없기 때문에
고조선이 삼한관경을 했다는 걸 누구도 모릅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은 삼한 하면은 중삼한 연맹체를 얘기하고 있는데 단제 신채호 선생이 “삼한이라는 고조선 자체를 얘기하는 것이다.

고조선이 진한, 마한, 번한으로 통치를 했는데 그것은 삼신 상제님이 본체는 1이지만 작용은 3으로 하기 때문에 일체삼용으로 작용을 하기 때문에 고조선, 즉 삼한으로 관경통치를 했던 겁니다,

두 명의 부단군을 두고서. 그러니까 지금의 역사학자들은 아무리 연구를 해도 그 세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왜? 철학이 없기 때문에. 우리 민족 신교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에 고조선 시대가 삼한관경을 했다는 것을 전혀 알 수가 없게 돼 있죠.
 

수 도

재위 단군

기간

송화강아사달 (하얼빈)

초대단군왕검~ 21대소태

1048년(BC 2233~1286)

백악산 아사달 (장춘)

22대색불루 ~ 43대 물리

860년(BC 1285~426)

장당경 아사달

(요녕성 개원)

44대구물 ~ 47대 고열가

188년(BC 425~238)


 

또한 가장 중심이 되는 진한도 삼변성도 합니다, 세 번 바뀌죠.

초대 단군부터 21대 소태 단군 때까지 BC2,333년에서 BC1,286년까지 1048년 동안을 지금의 하얼빈에 도읍을 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송화강 아사달 시대다.

22대 색불루 단군 때 비로소 삼조선이라는 명칭을 써요.

22대 색불루 단군 때 삼조선이라는 명칭을 쓰면서 농한 장춘 지방을 옮기게 되는데 그것을 백악산 아사달이라고 얘기합니다.

백악산 아사달 시대는 22대 색불루 단군부터 43대 물리 단군 때까지 BC1,285년부터 BC425년까지 860년 동안 지속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서를 보더라도 그 증거가 되는 것이 있는데 서거정의 ‘동국통감’을 보면 단군의 수명이 1,048세였다.

이것은 송화강 아사달 시대를 얘기하는 겁니다.
 

* 기자조선은 존재하지 않은 역사

삼국유사에 단군의 수명이 1,908세로 나오게 되는데 1,908세는 송화강 아사달 시대 1,048년에다 백악산 아사달 시대 860년을 더하면 1,908년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지금 현존하는 역사서에서도 고조선의 단편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44대 구을단군께서 워낙 이제는 세상도 혼란하고 해서 다시 백악산에서 장단경 아사달로 옮기는데 지금의 요령성 계원시입니다.

거기에서 188년 동안 BC425년에서부터 BC238년까지 188년 동안 지배하는데 이때는 진한, 단군으로서의 역할이 약해져서 삼한이 똑같은 세력을 갖게 되고, 오가가 세력을 갖게 돼서 이제는 단군에게 힘이 집중되었던 것이 분산되기 시작합니다. 병권이 약해져요.
 

이렇게 해서 단군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는데 이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봉우조선이 불신야라. 기자를 조선에 봉했는데 신하로 삼지 않았다,

이런 엉터리 같은 얘기가 하나 있어가지고 우리나라에 기자조선이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기자조선이라는 건 없습니다. 평양에 기자묘가 있었어요.

고려시대, 조선시대 때 평양의 칠성루 근처에 기자의 묘소가 있었는데 북한에서는 기자를 부정합니다.

그래서 기자묘를 요새 없앴다고 그래요, 북한에서. 그건 잘 한 거죠.

기자라는 사람은 은나라의 3인 중에 하나로서 기자는 기라는 것은 나라의 이름이고 자는 자작국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은 자서여, 탕임금의 성씨가 자씨잖아요, 자서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그 도망 왔던 곳은 이 기국인데 기국이라는 것은 하남성 개봉시 서쪽 90리 되는 쪽에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 우리나라에 와서 결코 왕이 된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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