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5월 06일 부활 제6주일
★ 복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 요한 15, 9 - 17 >
† 강론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주님의 제자
-허 영업 신부-
제가 어머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돌아가신 다음날 염습을 할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반듯하게 누워
주무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입고 계신 알록달록한
몸빼바지(일본말의 ‘몬베’로, 일할 때 입는 바지)를 보자
목이 멨습니다.
평생 쉼 없이 일을 하시고 장사를 하셨던 어머니는
외출할 때를 제외하곤 늘 몸빼바지를 입으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 그런 어머니의 옷차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 어머니는 멋지게 차려입는데
저희 어머니는 늘 같은 옷에 같은 머리 스타일로
다니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엄마, 좀 다른 옷 입으면 안 돼?” 하면
어머니는 늘 “ 난 이게 편하다”며
말머리를 자르곤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정말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도 여자인데 왜 멋지고 좋은 옷을
입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평생 입고 싶은 것,
드시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사셨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 똑같을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내놓으실 분,
그분의 이름은 ‘어머니’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15,9-17)에서
예수님은 사랑에 대해 장황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랑을 이해할 때 어머니의 사랑만큼
분명한 비유가 또 어디에 있을까요?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했지만(1요한 4,8)
우리는 “어머니는 사랑”이라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이 세상에서
우리의 어머니를 통해서 보여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느님 사랑의 화신은
우리들의 어머니가 아닐까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적당히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처럼 사랑하라고 당부하십니다.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정도로 치열하게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입니까?
우리 마음에는 늘 거센 미움과 증오의 바람이
마구 이는데 사랑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주님처럼 사랑하는 것은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고 늘 억울하고 손해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사랑하라, 사랑하라”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의 가치를 의심하는 우리에게
사랑만이 승리하고 죽음까지도 이긴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시간은
사랑하는 데도 부족합니다.
우리 곁에는 사랑할 사람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야 말로
은총 속에 사는 셈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 1분 묵상 ]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 15,12 >
살아온 세월을
뒤 돌아 보면
우리의 삶은
사랑할 수 있는 시간도,
만남의 세월도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사랑할 수도 있는 시간과 기회들을
얼마나 헛되이 흘려보냈는지 모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의 때인 것입니다.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요한 15,9 >
아멘
※ PS : 매주 일요일은
신부님의 강론을 선별하여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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