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무기 성능의 열세를 기량의 우세로 역전시킨 조선군

작성자고구려|작성시간15.12.07|조회수1,084 목록 댓글 0

*자료출처: http://cafe.naver.com/flintlockmusketfan/4203


                https://www.youtube.com/watch?v=GZHA9tHvzCk



여러분 '나선정벌'이라고 아시나요?


효종 때 청나라의 요구에 따라 조선이 조총부대를 주축으로 하는 200명의 병력을 파병해 청나라와 연합군을 형성 


청나라와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던 러시아 측과 전투를 벌인 전쟁을 가리키는 우리쪽 이름 입니다.


임진왜란 초기 까지만 해도 조선군의 주력 원거리 무기는 활 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과의 7년 전쟁 후 조선군의 주력무기는 조총으로 바꼈습니다.


정묘호란, 병자호란, 청나라 와의 두차례 전쟁에선 조선군의 조총부대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참패를 겪었지만 그후 절치부심 열심히 훈련하여 조선군 조총부대가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해 승리를 거둔 전투가


바로 '나선정벌' 이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선정벌'에서 조청 연합군과 싸운 러시아측 군대는 러시아의 정규군이 아닌 


우크라이나 지역에 살고있던 호전적이고 유쾌한 성격의 기마민족인 코사크족 이었습니다. 



위 영상은 코사크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대장 부리바]의 에고편 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있는 영화 [대장 부리바]는 '율 브린너' 주연의 1962년 영화 입니다만


위 영화는 2009년에 개봉한 러시아에서 만든 영화 입니다.



'나선정벌'에서 조선군이 쓴  총은 일본 과의 7년 전쟁 때 쓰인 조총과 같은 수준의 무기인 화승총 입니다.


조총의 심지를 '화승'이라 불러 화승총이라 부른답니다.


조선군의 화승총은 위 사진과 같이 심지에 불을 붙여 화약접시에 있는 화약을 점화시켜 그 화약이 터지는 힘으로


총구로 넣은 총알을 발사 시키는 방식으로 쏘는 총포 입니다.


반면 조청 연합군과 싸운 코사크족을 비롯한 당시 러시아가 쓰던 총은 '수석식 총'이라고도 부르는 


바로 '플린트 락 머스킷' 입니다.

'수석식 총'의 장전과 발사방식은 총구로 화약과 총알을 넣는 전장식 이라는건 화승총과 같지만


심지 즉 화승을 없애고 위 사진과 같이 소위 '부싯돌 점화방식'이라 부르는 방식의 총 입니다.


화승총과 수석식 총이 다른건 심지를 없애고 부싯돌 점화방식으로 바꼈다는거 하나 뿐이지만


이 방식의 차이로 인해 수석식 총은 화승총에 비해 장전과 발사 속도에서 2, 3배나 더 빠르다고 합니다.


이렇게 코사크족이 더우수한 방식의 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군의 총격전 결과는


더 구식무기인 화승총으로 무장한 조선군의 승리 였습니다. 


그럼 조선군은 어떻게 더 구식무기로 승리를 한걸까요?


그건 앞서도 말씀드린 대로 청나라 와의 두차례의 전쟁을 통해 호되게 당한 후 절치부심 열심히 훈련을 한


덕분 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선은 인조 때 다시 없을 치욕을 당한 후 인조의 둘째아들로 의문사를 당한 형 소현세자를 대신하여 


아버지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효종은, 청나라에 복수를 하기 위해 북벌을 꿈꾸며 청나라의 감시의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와중에서도 군사력을 증강해 왔고 그런 준비의 성과물이 바로 '나선정벌'에서 실력발휘를 한


조선군 이었습니다.


나선정벌에 파병한 조선 원정군에 대한 기록을 보면 전장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청나라군과 총포의 사격연습을 여러번 했는데 사격연습 때 마다 조선과 청나라 양군의 사격실력을 비교해 보면


조선군의 실력이 월등 했다는 겁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1년 후 조선은 항왜(조선에 귀순한 왜군)들로 부터 조총 제작법을 배우게 하여 


조총의 양산을 시작했고 훈련을 시켜 조총부대를 편성해 실전에 투입하기 시작 했습니다.


명나라군도 왜란 때 조선군의 조총 사격솜씨를 보고 탄복하여 훗날 후금(청나라의 전신) 과의 전쟁 때 


조선에 조총부대의 파병을 요구 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광해군 때 시작되어 병자호란 까지 이어진 청나라 와의 전쟁에선 기병이 주력인 청나라의 팔기군에 참패한 


조선 이었습니다만, 그런 뼈아픈 참패를 겪은 후 복수를 위한 북벌을 꿈꾸던 효종의 지시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와중에서도 절치부심 정예군을 양성해 왔고 비록 복수의 대상 이었던 청나라의 요구 였지만


그동안 열심히 양성해온 정예군을 한번 시험해볼 기회라 생각한 효종은 최정예 총병 200명을 선발하여


신유 장군으로 하여금 이끌고 원정을 가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런 뼈아프고 치욕적인 과정을 거쳐 열심히 준비했던 조선군 이었기에 나선정벌에서 더 우수한 성능의 총인 


'플린트 락 머스킷'으로 무장한 코사크족을 상대로 무기 성능의 열세를 훈련의 결과물인 사격솜씨로 커버하여


승리를 거뒀던 조선군 이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