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유석/조병욱
산 허리 철쭉 붉게 타오르고
풋보리 내음 진동할 즈음
쌀독 바닥을 닥닥 긁으시던
어머니의 바가지는
한줌 겨로 죽 끓여
어린자식들 먹이시곤
당신은 돌아 앉아 물만 마셨다
밤이면 허기진 배 움켜쥐고
창호지 바람도 허기처럼 시릴 때
형은 산으로 가 칡뿌리 캐고
누나는 들로 씀바귀 냉이를 뜯었다
험한 준령은 넘어도
넘어도 넘어도 못 넘는
오천년 주린 가난
눈물 어린 보릿고개
보리는 아직 풋내음만 나는데
여름은 어찌 그리도 더딘지
동구밖 장승백이 쓰러진
사내 흐린 눈빛은 말라가고
새참 연기 오르던 집도
아기 울음 그치지않던 집도
보릿고개 길목에는
모두가 굶주린 이웃형제들
어머니 말씀이 사람은
배만 부르다고 사는것 아니라
굶주림도 이겨내야 한다고
그 한마디 말씀에
우리는 허기진 밤을 새웠다
그리고
마침내 보리이삭 누렇게 익던 날
풋보리 베어다 죽 끓여 먹고
마을 마다 집집마다
보리타작 소리 흥겨울 때
구수한 보리밥 한그릇 게눈감추면
산해진미보다 맛있는 진수성찬
요즈음
아이들 보릿고개 소리에
라면이라도 사 먹지 그랬어요
밥맛 없다고 입맛 타령
삼일만 굶어 봤어
험한 준령은 넘어도
넘어도 넘어도 못 넘는 고개
오천년 주린 가난
눈물 어린 보릿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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