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7일(주일) - 성령강림 후 제2주[평신도주일] -
율법 너머 긍휼의 문으로
( 마태복음 9:18~26 )
Ⅰ. 서론
* 선을 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규범)들이 많이 있다.
세상에는 선(Line)과 규정이 있습니다. ‘선을 넘지 말라’는 말은 사회규범과 법을 지킬 때, 공동체가 유지됨을 뜻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게 살아가는 ‘선’입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이 선을 고집했습니다. 문제는 율법의 엄격한 선 앞에서 수많은 이들이 죄인으로 정죄되어 소외되고 절망 속에 살았습니다. 율법은 엄격하지만, 자비와 긍휼은 희소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13)는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긍휼’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긍휼을 원하신다.
Ⅱ. 본론
* 예수님은 정죄하는 이가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이시다.
예수께서는 죄인을 정죄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정죄 당하는 사람, 죄인이라 불리는 사람, 부정하다는 사람을 찾아 의롭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요 3:17)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사명은 심판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받는 것이다.
첫째, 부정 넘어 긍휼의 손길을 만나야 합니다.
* 율법은 한 여인을 부정하다고 정죄했다. 부정 낙인이 찍힌 여인은 갈 집이 없었다,
본문에 등장하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온 여인은, 레위기 율법에 의하면, “유출하는 모든 날 동안은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레 15:25)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접촉할 수 없었습니다. 부정한 존재로 낙인찍혀 성전에도 갈 수 없고, 다른 사람과 접촉해서도 안 되었습니다. 율법으로 보면, 예수님을 부정하게 했다고 책망받아 마땅하지만, 주님은 화를 내거나 정죄하지 않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22)고 긍휼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부정함이 주님의 긍휼로 거룩해진 것입니다.
* 부정한 여인의 손길이 주님을 부정하게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주의 손이 그녀를 정화시켰다.
둘째, 죽음 넘어 생명의 손길을 만나야 합니다.
* 회당장 야이로(막 5:22)의 딸이 금방 죽었을 때, 야이로는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
회당장인 한 관리의 어린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유대 율법에 의하면,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민 19:11)했습니다. 아무리 방금 죽었어도 시체를 만지는 것은 율법이 금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곡을 하며 ‘이미 끝났다. 소망이 없다’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소녀의 방으로 가서 “소녀의 손을 잡으셨고”(25) 소녀는 일어나 앉았습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절망이고 끝이지만, 주님의 손길은 생명을 일으켰습니다.
* 죽음이 주님을 부정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의 손길이 소녀를 살렸다.
셋째, 율법을 넘어 긍휼의 문으로 들어갑시다.
* 12세의 소녀와 함께 12년 동안 멈추지 않는 하혈로 고통받은 여인을 치유하셨다.
마가복음에 보면 회당장 딸은 12살 소녀입니다. 그리고 치료받은 한 여인은 피를 흘리며, 사회에서 죽은 자처럼 12년 동안 고통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두 여인에게 똑같이 ‘긍휼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긍휼 앞에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롬 10:12) 주님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에는 ‘긍휼’이 가득합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마 14:14)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려고 긍휼을 올려놓았습니다.
* 예수께서는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율법 위에 긍휼(사랑)을 올려 놓으셨다.
Ⅲ. 결론
*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기보다, 우리가 죄인임을 가리킨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한다.
율법의 기능은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라 ‘정죄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너머 긍휼의 문으로] 들어가야 구원과 생명을 얻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붙잡았던 혈루증 여인처럼, 나의 연약함과 부정함을 가지고 주의 긍휼의 문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딸(아들)아, 안심하라고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그렇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주님을 가리키는 화살표’입니다.
*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를 주님은 결코 모른 체 하거나, 물리치지 않으시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