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햇살
공재동
그 많은
새싹들
다 키워내고
그 많은
꽃들
다 피워내고
지금은
우리 집
마당으로 와서
젖은 빨래를
말린다
오월 햇살.
-《동시발전소》 동시선집 『확률 상 삐딱해짐』 (2021 도서출판 일중)
귤
김금래
껍질은
손으로 살살 벗겨 주세요
속도
미리 나눠 놓았어요
난
칼이 싫거든요.
-동시집 『우주보다 큰 아이』 (2023 국민서관)
호두 엄마, 딸기 엄마
문근영
호두 엄마가 하는 일
딱딱한 껍질 속에
꼭꼭
씨앗을 숨기는 일
딸기 엄마가 하는 일
드러내 놓고
콕콕
씨앗 박아놓는 일
엄마 마음은 같은데
하나는 숨기고
다른 하나는 드러내고
-《시와소금》 (2023 봄호)
쑥
우남희
봄날
할머니를
논둑길로 끌어당기는
자석
-《대구 아동문학》 (2021 제63호)
하늘 사냥
장철호
하늘에다 그물을
촥-
펼치는 거야.
그리곤 가만히
기다리는 거야.
하얀 뭉게구름이 지나가다가, 작은 새가 날아가다가, 별들이 깜빡
깜빡 운동하다가, 가끔은 빨간 저녁놀이 걸려들기도 하지.
소나기 내리는
어둑한 날엔
어쩌면 허탕을 칠지도 몰라.
늘어진 나뭇가지마다, 전봇대 사이사이 전깃줄마다, 아파트 놀이터
가로등마다, 오래된 기와지붕 끝에도.
촥-
촥-
한가로운 거미의 하늘 사냥에
엉뚱한 생각이 그만 걸려들었어.
-《아동문학평론》 (2023 봄호)
매달린 낙서
조은희
‘인생 어떡하지?’
도서관 책상 가림막에
써놓고 간 누군가의 낙서에
댓글이 대롱대롱
⤷그러게…ㅠㅠ
⤷힘 내!
⤷할 수 있어!!!
⤷파이팅
⤷모두 힘내자
⤷결과는 노력에 비례한대
낙서에 매달린 말이
힘들게 공부하는 우리 손을
꼬옥 잡아 준다.
-동시집 『매달린 낙서』 (2021 도서출판 소야)
눈물 파는 약국
정병도
눈물 팝니다.
눈물주머니가 없어
울 줄 모르는 사람
눈물이 메말라
울지 못하는 사람
울고 싶어
눈물이 필요한 사람
마음 동네
헤아림 약국에서
눈물을 팝니다.
-《아동문예》 (2023 3·4월호)
학교 가는 김밥
채경미
머리랑 두 다리랑
꽁다리 튀어나온
돌돌돌 말아놓은
롱패딩 까만 김밥
우리는
겨울이 오면
김밥 되어 학교 간다
소풍 가는 김밥처럼
설레는 날도 있고
옆구리 터지도록
힘든 날도 있지만
오늘도 찬바람 뚫고 간다
김밥천국 학교로!
-동시조집 『학교 가는 김밥』 (2023 도서출판 소야 주니어)
수저값
최진
귀한 손님 올 때에만
상에 오르는 우리 집 은수저,
오늘은 주방 고치는
아저씨 밥상 위에 올랐다.
한사코 손사래 치며
은수저를 밀어내도
아저씨도 귀한 손님이라며
다시 올려놓는 은수저.
늦게까지 수리 마친 아저씨
수리비 드리자
손사래 치며 하는 말
저도 수저값해야지요.
-《열린아동문학》 (2023 봄호)
발이 쉬는 날
하지혜
꼿꼿하던 머리가 고개 숙여요
멀었던 가슴이 가까이 와요
떨어져 있던 손이 서로 붙잡아요
몸이 곰처럼 둥글어져요
봄볕을 끌어안고
발톱 깎는 날.
-동시집 『소리끼리 달달달』 (2023 청개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