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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23년 6월)의 좋은 동시(한국동시문학회 선정)

작성자이옥근|작성시간23.06.01|조회수85 목록 댓글 2

무선의 시대

김보람

 

 

선 없이 전화를 하고

선 없는 이어폰을 낀다

 

파란불 깜빡깜빡

곧바로 연결되는 무선의 시대

 

땅속으로 숨어 버리는 선들

불편하여 사라지는 선들

 

그래도 두 손만큼은 꼭 잡자

우리 마음 그래야 연결되지

 

하트 시그널 깜빡깜빡.

 

-동화향기·동시향기 (2021 봄호)

 

 

비밀번호 1950

김완기

 

 

우리 집 아파트

비밀번호 1950

 

시골 할머니 오실 적마다

엄마 아빠는 일터 가고

우리 남매는 학교 가고

집 비어도 걱정 없대요.

 

19506.25 피난 길

길가에서 태어났다는 할머니

 

그 날을 잊지 못한대요

비밀번호도 1950.

 

-들꽃 백화점(2022 아침마중)

 

 

통하는 사이

김은오

 

 

일 마치고도

밭둑에 오래오래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

 

운동장에서 멍 때리고 있다

학원에 늦는 내 마음

누구보다 잘 알아 준다

 

운동장이 자꾸 말을 걸지?

공이 자꾸 더 놀자 그러지?

채소들도 그래

돌아오려고 하면

뒤에서 자꾸 불러

 

-동시마중 (2023 5·6월호)

 

 

드디어 때가 됐어

김현서

 

 

우리끼리만 잘 수 있는 밤

어른들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밤

 

침대 밑에 숨겨 두었던

고릴라를 불러내 함께 노는 밤

 

눈빛만 봐도

손발이 척척 맞는 밤

 

먼지 냄새가 나도록 실컷

베개 싸움을 하며 깔깔거리는 밤

 

분명 우리밖에 없는데

하마 콧구멍처럼 까만 창문으로

흰 천을 두른 유령이 보이는 밤

 

꼭 닫아 둔 문이

딸깍하는 소리를 내며 열리는 밤

 

어른들이 나타나면

사라지는 밤

 

-동시마중 (2023 3·4월호)

 

 

내가 키우는 달

류경일

 

 

나는 달을 키우고 있다

지난 겨울밤 동장군이 난리 칠 때

학원 다녀오는 내 뒤를 따라

내 방까지 들어와 버린 초승달을

엄마 허락도 없이 몰래 키우고 있다

먹이도 목줄도 필요 없고

월월짖지도 않는다

얌전히 내 눈빛만 먹고 살아서

하늘에 풀어놓고 키워도 걱정 없다

어두운 밤길 나서면

나만 졸졸 따라 다니는 달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자라는 모습만 보아도

키우는 맛이 달달한 달

추운 오늘 밤에는 달달달달

떨고 있을 야윈 그믐달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 주었다

오래

 

-동시 먹는 달팽이 (2021 봄호)

 

 

, 비 왔다

박정식

 

텃밭 채소들과 비는

친구 사이

 

무야! , 비 왔다!

놀다 가고

배추야! , 비 왔다!

놀다 가고

하더니 요즘 안 온다.

 

상추, 고추, , 마늘이 기다려 봐도

안 온다.

 

딱했는지

물통 든 물뿌리개가

텃밭으로 들어간다.

 

얘들아! , 비 왔다!

 

-얘들아! 나 왔다(2023 오늘의 좋은 동시 푸른사상)

 

 

사진관에서

오선자

 

 

할머니 생신날

가족사진을 찍었어.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는데

 

다 됐습니다.

할머니,

주름살은 살짝 지워드릴게요.”

 

아 그대로 두세요.

주름살 만든 세월 덕분에

우리 손주들 얻었는데.”

 

-동시발전소 (2021 가을호)

 

 

행운이 올까

윤동미

​​

 

네 잎 클로버 무더기를 발견했다

정신없이

한 움큼을 뜯었다

 

그중에서

예쁜 것만 남기고 못난 건 버렸다

아깝지도 않았다

 

책갈피에 끼우며 생각했다

이렇게 쉽게 얻은 것에도

행운이 찾아올까?

 

-시와소금 (2022 겨울호)

 

 

밤 한 마리

이상교

 

 

깜깜한 한밤중이

까만 고양이 한 마리를

낳았다

 

환한 대낮에

깜깜한 밤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동시빵가게 32(2023 2)

 

 

그림자 빌려드려요

이화주

 

 

큰 나무는 큰 그림자

작은 나무는 작은 그림자

 

사자도

기린도

고양이도

그 그림자 빌려, 쉬었다 간다.

그 그림자 돌려주고 간다.

 

누군가

또 쉬었다 가라고.

 

-아동문학평론 (2023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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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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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옥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6.01 초여름, 좋은 동시와 함께 시작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유화란 | 작성시간 23.06.03 좋은 동시와 함께라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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