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읍시다. 2024년 5월 27일 |
가끔, 어느 저녁
박예분
혼자 있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올 거예요
엄마 아빠가 없을 때는
집에 있는 전등 모두 켜놓고
텔레비전 소리 크게 켜 놓아도
가끔 무서워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너무 조용해도
괴물이 슬쩍
도둑이 슬쩍
훔쳐보는 것 같아 몸을 웅크리고
눈 딱 감을 때
“엄마야, 거의 다 왔어!”
이 소리 듣자마자
캄캄했던 내 마음에
수백 개의 전등이 켜지듯 환해져요
나는 얼른 텔레비전 소리를 줄이고
쓸데없이 켜 둔 전등도 다 꺼요
이젠 혼자가 아니잖아요.
가끔은 아주 가끔은 혼자 집에 있어야 할 때가 있어요.
이제 나도 컸으니까 얼마든지 혼자 집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막상 혼자 집에 있게 되니까 갑자기 견딜 수 없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밀려오는 거예요.
벌떡 일어나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전등을 켜놓고 텔레비전 소리도 크게 틀어놓았어요.
그래도 바람이 창문을 흔드니까 혹시 ‘괴물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귀를 쫑끗 기울이게 되고요.
‘도둑이 들어온 것은 아닐까’ 하고 갖은 상상을 다 하게 되어요.
아마 엄마도 이런 내가 걱정되어 서둘러 돌아오셨을 거예요. “엄마야, 거의 다 왔어!” 이 말처럼
반가운 목소리가 또 있을까요? 어른이 되어서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엄마 목소리에 사랑이 가득
담겨있기 때문일 거예요.(전병호/시인ㆍ아동문학가)
* 박예분 시인은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솟대」가 당선되었고
2022년에 동시집 ‘발가락들이 웃는다’를 펴냈어요.
<출처> : 소년한국일보(https://www.kidshankoo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