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없어 떠돌이로 살다가
우연히 산 밑을 지나다 바위 뒤에 있는
빈집 하나를 보았네
계십니까
거기 주인 계십니까 몇 번 불렀으나
인적이 없어 들여다보니
문턱이 낡고 마루가 기울어졌지만
내가 살기엔 이를 데 없었네
이제 집이 있으니 나의 소원이 이루어졌네
마누라 얻어 자식 낳고
오순도순 살려고 생각하니 기뻤네
사는 것이 감사했네
그날 밤, 참으로 오랜만에 깊은 단잠이 들었는데
꿈인가
이상하게도 집이 들리어 하늘로 올라갔네
놀라 문밖을 내다보니
땅과 점점 멀리 떨어지고 있어
나는 드디어 승천하는구나 하고 가슴을 쳤네
그때 누군가 나를 자꾸 끄집어내려 하고
나는 자꾸 숨었으나
마침내 갈고리에 찍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네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고춧가루를 뒤집어쓰고
냄비 속에서 죽어서도 덜덜 떨었네
나는 똥이 되었네
똥이 되어 갈 곳이 없어 똥냄새를 풍겼네
고함쳐도 듣는 사람이 없었네
할 수 없이 나는 자꾸 똥냄새를 풍겼네
그림 없는 동시집 2 『눈물 많은 동화』, 이문길(지은이)/ 브로콜리숲, 2022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