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신에
황남선
수도꼭지 돌려
콸콜 쏟아져 나오는 물을 받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났어
물을 긷기 위해 먼 길 걷고 있을 너
나 대신 네가 거기 있는 게 아닐까?
다리 까딱이며 동화책 읽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났어
밤낮없이 벽돌 나르고 돌을 깨고 있을 너
나 대신 네가 거기 있는 게 아닐까?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하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났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포탄 때문에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을 너
나 대신에 네가 거기 있는 게 아닐까?
너 대신에
너희들 대신에
내가 여기 있는 게 아닐까
황남선 동시집 『밑줄 지우면 큰일 나』, 브로콜리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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