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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과 담론

[서평] 직관력 또는 서정성의 전병호 동시조 읽기

작성자이묘신|작성시간22.09.19|조회수74 목록 댓글 0

직관력 또는 서정성의 전병호 동시조 읽기

󰡔수평선 먼 섬으로 나비가 팔랑팔랑󰡕(도토리숲, 2022)

 

이정석(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전병호 시인이 동시조집 󰡔수평선 먼 섬으로 나비가 팔랑팔랑󰡕(도토리숲, 2022)을 내었다. 전병호 시인이 펴낸 지금까지 작품집을 접하면서 그에 대해 필자가 어느 글에서 ‘산문동시집, 서사동시집, 기행동시집, 동시조집 등 개성적인 성격이 뚜렷한 형태의 동시집을 펴내는 시인으로 그를 끊임없이 자신의 동시문학 영역을 새롭게 확장하는 문학혁신가, 미지의 동시문학 신천지를 탐험하고 정복하는 문학탐험가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고 평가한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이번에 출간한 작품집 󰡔수평선 먼 섬으로 나비가 팔랑팔랑󰡕은 동시조집으로 두 번째라는 것이다. 그동안 그가 추구해 왔던 다양한 실험적인 동시 탐구는 많이 줄이면서, 어쩌면 당분간 동시조를 집중적으로 창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작품집 󰡔수평선 먼 섬으로 나비가 팔랑팔랑󰡕 서문에 실린 그의 고백 일부이다.

 

《봄⋅돌장승》을 쓰고 나니까 내 몸속에 숨어있는 시조의 가락을 다 꺼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많은 동시조를 썼어요. 덜 여문 것, 부족한 것은 버리고 충실한 것만 모은 것이 이 동시조집이어요. 앞으로도 나는 내 몸속에 숨어있는 시조의 가락을 꺼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거예요. 힘들지만 즐거운 일이니까요.

-「우리 가락을 가진 동시」 시인의 말 중에서-

 

전병호 시인은 자신의 ‘몸속에 숨어있는 시조의 가락을 꺼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그가 최근 들어 한국인의 언어 가락이 살아 있고, 한국인의 정서가 질펀히 녹아든 시조 창작에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동시조집 󰡔수평선 먼 섬으로 나비가 팔랑팔랑󰡕에는 62편의 동시조가 실려 있는데, 한 수 짜리 단시조 54편, 두 수 짜리 연시조 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시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공들여 동시조 창작에 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시인의 직관력이 돋보인 작품, 웅장한 스케일의 작품, 서정성이 잘 나타난 작품 등 동시조집의 특성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세 가지 측면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돌장승 발등에 / 내려앉은 벚꽃잎. //

바람이 불 때마다 / 살금살금 간질이나? //

씩 웃고 시침 떼는 걸 / 내가 다 보았다.

-「봄⋅돌장승」 전문-

 

나뭇잎이 떨어져 / 땅에 닿는 / 그 순간 //

앞집 지붕과 담에 / 수직선을 그으며 //

더 먼저 떨어져 눕는 / 그림자 잎사귀 //

나뭇잎이 떨어질 때 / 그림자도 떨어지듯 //

나도 내 그림자도 / 그렇게 생겨났을까. //

엄마가 / 나를 낳으시고 / 몸져누운 / 이 가을에.

-「생일」 전문-

 

「봄⋅돌장승」, 「생일」 두 동시조는 시인의 직관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단시조 「봄⋅돌장승」에서는 돌장승의 미소와 시침 떼기를 순간적으로 찾아내는 직관력, 두 수 짜리 연시조 「생일」에서는 나뭇잎보다 더 먼저 떨어지는 그 나뭇잎의 그림자를 먼저 알아보는 직관력이 돋보인다. 보통 직관(直觀)은 대상이나 현상을 보고 즉각적으로 느끼는 깨달음으로 사람의 사고 능력 즉 인식의 영역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오감(五感)이라고 하고, 직감(直感)을 제6의 감각, 직관을 제7의 감각이라고 한다. 전병호 시인은 이 동시조집 서문에서 「봄⋅돌장승」 창작과정에 대하여 ‘돌장승이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발등을 옴찔옴찔 움직이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을 내가 보았어요.’라고 진술하고 있다. 과연 돌장승이 간지러움 때문에 실제로 옴찔옴찔 움직였을까. 아니다. 이 시적 상황에서 시인의 직관력이 순간적으로 돌장승의 움직임을 포착했다고 할 수 있다. 「생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순식간에 떨어지는 나뭇잎을 볼 수 있으나 함께 움직이는 그 나뭇잎의 그림자 보기가 쉽지 않다. 시인의 직관으로 포착한 나뭇잎의 그림자이다. 첫째 수에서는 나뭇잎의 그림자 찾기가 핵심이라면 둘째 수에서는 나의 존재와 그림자 삶으로 확대 적용하여 자식의 입장에서 진지한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사색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부둣가 크레인이 / 걸고리 길게 내렸다가 //

높이 끌어 올릴수록 / 붉어지는 수평선 //

마침내 하늘 바다 틈으로 / 아침 해를 꺼낸다.

-「아침 부두」 전문-

 

바위산 꼭대기에 올려놓은 저녁 해 /

새빨갛게 달구어진 커다란 쇠공 같다 /

또르르 굴러내리면 도시가 불탈 텐데……

-「저녁 해」 전문-

 

「아침 부두」, 「저녁 해」는 웅장한 스케일,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가 잘 나타난 작품이다. 「아침 부두」에서는 바다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가, 「저녁 해」에서는 바위산 꼭대기에서 지는 저녁 해가 핵심 제재이다. 작품의 성격이 쌍둥이처럼 닮아있으나 각 작품이 개성적이고 참신하다고 할 수 있다. 「아침 부두」에서는 크레인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부둣가의 평범한 아침 풍경이 전개되는 듯하지만 아침 해 꺼내기라는 놀랄만한 종장의 반전이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저녁 해」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무렵의 저녁 풍경 제시가 아니라 달구어진 쇠공으로 인해 도시가 큰 화재에 휩싸일 것이라는, 놀랍고 독창적인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종장의 충격적인 반전이 돋보인다.

 

얼음 녹은 산골짝에 / 꽃잎 동동 떠내려오니 //

먼 산마을 개울가에 / 복숭아꽃 폈나 보다. //

꽃잎을 세며 걸으며 / 그 마을에 가고 싶다.

-「산마을」 전문-

 

들녘 끝 산마을에 / 등이 반짝 켜지면 /

하늘에도 저녁 오고 / 등이 반짝 켜진다.//

밤하늘 저 높은 곳에 / 누군가 살고 있다.//

내가 너를 못 만나고 / 너도 나를 못 보지만/

밤이 오면 기다린다 / 등이 다시 켜지기를//

누군가 나의 별이듯 / 나도 그의 별이다.

-「나도 별이다」 전문-

 

「산마을」과 「나도 별이다」는 앞의 두 동시조와 대조적으로 마음을 잔잔하게 적시는 서정성이 진한 작품이다. 단시조 「산마을」은 복숭아꽃이 핀 산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두 수 짜리 연시조 「나도 별이다」는 하늘의 별과 땅 위의 별인 시적화자의 따뜻한 마음의 교류를 표현하고 있다. 「산마을」에서 등장하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곳은 분명 지상낙원이라 할 수 있는 도연명의 무릉도원, 선경일 것이다. 더욱 시적화자는 무릉도원을 그냥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꽃잎을 뿌리고 세면서 가고 싶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복숭아꽃 핀 산마을은 시인이 그리는 이상세계가 아닐까. 「나도 별이다」에서는 산마을 저녁에 등불이 켜지면 하늘의 별들이 등불을 켠다는 것은 긍정적 쌍방 호응, 상호 교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과 인간의 따뜻한 교류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필자는 단시조의 종장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박경용 동시문학의 미학 탐구」(《아동문학평론》 2018. 봄호)에서 단시조의 특성은 고도의 응축된 시상을 초장 중장 종장의 절제된 시어로 전개하여 시조의 묘미를 극대화하는 데 있고, 특히 시상의 긴장감을 비약적으로 폭발시키거나 참신한 반전을 제시하는 종장이 시조의 화룡점정이라고 언급하였다. 이 글에서 예로 든 여섯 동시조 모두 종장 처리가 참신하다. 동시조의 직관력 또는 서정성에 목마른 독자들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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