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위로를 건네받다
백민주 동시집 『할머니가 바늘을 꺼내 들었다』 (책내음, 2020)
손인선
“할머니가 바늘을 꺼내 들었다”라는 제목에서 많은 독자가 낚싯바늘에 낚인 물고기처럼 이 동시집 속으로 빨려들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고, 또 누구에게나 있었을 할머니를 그리워하면서. 그래서인지 제목 하나가 마치 이 책의 미늘문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 역시 표지에 등장하는 할머니 모습을 보고 동시집을 읽는 내내 바로 필자의 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총 4부 53편의 동시에는 작가가 교단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과 자식 입장에서 본 부모님의 모습, 부모의 입장에서 본 자녀들의 모습,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친구, 이웃, 동식물 등 다양한 것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냈다.
백민주 선생님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로서 2015년 시와 소금으로 등단했고 그 해 글벗문학상을, 2019년에는 한국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낸 동시집으로 『달 도둑놈』, 『첫눈에 대한 보고서』, 공저 동시집 『구름버스 타기』와 청소년 시집으로 『보름달 편지』가 있다.
다음 시를 보자.
몇 점 받았니?
몇 등 했니?
몇 시간 공부했니?
이런 질문만 하는 우리 엄마
창의적인 엄마가 되기는 다 틀렸다.
- 「좋은 질문」 전문
다섯 줄짜리 짧은 시지만 부모에겐 가슴을 뜨끔거리게 하고도 남는다. 자녀의 성적에 관심이 없는 부모는 없다. 아마도 책을 어른 독자 상당수가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창의적인 엄마에서 낙제를 받기는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마트 계산대 위에
라면 한 묶음, 냉동 만두 한 봉지, 깡통에 든 햄 한 통, 공장에서 만든 김치 한 팩 올려놓았다.
앞 사람의 계산이 끝나간다.
토막 낸 동태 두 마리, 콩나물 한 봉지, 대파 한 단, 두부 한 모, 무, 고추, 마늘 조금
매콤한 동태찌개 끓겠다.
온 식구 둘러 앉아 땀방울 송그르르 흘리겠다.
‘더 먹어’ 하며 국자가 오가겠다.
엄마 있는 집이겠다.
- 「엄마 있는 집」 전문
많은 이유로 현대인들은 가족이 둘러앉아 밥 먹을 여유가 많지 않다. 맞벌이와 한부모와 가정과 조손가정 등의 이유다. 한 가족이 한 끼 밥을 먹는데도 약속을 잡아야 가능할 때가 많다. 동시 속의 아이 역시도 혼자 밥 먹는 경우가 많은가 보다. 앞 사람이 장 보는 것을 보고 어림짐작으로 그 집 메뉴를 생각하고 온 식구 둘러앉아 먹는 모습도 상상한다. 그 끝에는 부러움이 묻어있다. “엄마 있는 집” 엄마가 기다려주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다니는 것이 아이에겐 최고의 집이다. 물질로 충족시킬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들 삼신할미가 누군 줄 아니?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알기나 해?
사람이 태어나는 건 다 그 할머니 소관인데
그분이 어떤 사람을 계획 없이 만들겠니?
30명이나 되는 우리 반 아이들을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겠냐고?
- 「삼신할미 작품」 일부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과 정보가 아이를 올바르게 키운다는 말일 것이다. 동시 속 화자가 들려주는 삼신할미의 말이 곧 반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아닐까? 30명의 아이들이 타고난 자질이 다름을 백민주 시인은 삼신할미에 비유해 이야기하고 있다. 학생 때는 공부가 최고인 줄 아는데 졸업 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때 생각이 틀렸다는 걸을 지금의 아이들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좋은 집 한 채 못 마련했지만
너희들은 좋은 집에 살아라.
아파트 옥상
갈라진 시멘트 틈 사이
그 집에서도 너희들 잘 키워냈지만
너희들은 친구도 없고 외로웠지?
엄마 걱정 말고 멀리 가서 많이 배워라.
양지 바른 풀밭에 좋은 집 마련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재미나게 살아라.
- 「민들레 엄마의 당부」 전문
세상 모든 부모와 선생님, 그리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이 시에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인 문제도 슬쩍 겹친다. 부동산 문제나 교육, 부모 봉양과 같은 문제가 행간에 숨어 있는 시다. 부모는 자식을 분가시킬 때 “너희끼리 잘 살면 된다.”라고들 한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민들레 역시도 힘들게 키워낸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 “엄마 걱정 말고 멀리 가서 많이 배워라.”라고 말한다.
할머니네 동네에 평생학교가 생겼다.
평생, 학교라고는 못 가 볼 줄 알았는데
평생학교에 평생학생이 된 할머니들
평생, 평생학교 결석 안 할 거라고
평생, 안 해 본 약속들을 했다.
- 「평생학교」 전문
교육열이 지구상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우리나라지만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을 지나온 분들은 교육보다 먹고 사는 일이 더 바빴다. 특히 여성에게는 그 기회가 더 돌아오지 않아 문맹인 채로 살아오신 분이 많았다. 교육을 못 받은 분 중에 뒤늦게 평생학교에 등교해 공부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신다. 늦게 공부한다고 꾀부리는 일 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지금이라도 배움의 기회를 갖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늦게 발견한 재능으로 제2의 인생을 사시는 분들도 종종 봐 왔기에 평생학교에서 한 약속이 오래오래 가기를 동시 읽으면서도 응원하게 된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들썩이는 어깨와 등을 쓸었다.
가스러운 그 손이 너무 따듯해서
펑펑 울었다.
니 어릴 적에 심한 장난하다가
바지에 구멍 나고 양말에 구멍 나면
감쪽같이 꿰매 주던 것 기억 안 나나?
할매가 니 구멍 난 마음 하나
못 꿰맬 줄 아나?
걱정 마라.
새것같이 꿰매 줄끼다.
- 「할머니가 바늘을 꺼내 들었다」 전문
표제작이면서 손주를 보듬는 마음이 드러나는 할머니의 결연한 의지가 드러나는 시다. 손주의 영원한 지지자 할머니, 구멍 난 옷과 마음을 다 같이 어루만져 주는 손길에서 많은 독자의 눈이 머물지 않을까. 마지막 4행에서 독자들은 이미 할머니의 품 안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리워할 것이다. 상처 난 마음은 할머니 약손에 의해 말끔하게 낫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게 백민주 시인의 시에는 특별한 기교나 장치 없이도 독자를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는 힘이 있다. 할머니의 품이 그리운 독자나 남모르게 위로 받고 싶은 사람에게 백민주의 동시집 『할머니가 바늘을 꺼내 들었다』를 권한다.
손인선 son2593@naver.com
경북 포항 출생. 2005년 《아동문학평론》 동시 부문 신인상, 2005년 《월간문학》 동화 부문 신인상. 동시집 『힘센 엄마』, 『민달팽이 편지』, 『맹자 흉내는 힘들어요』, 공저 동시집 『구름버스 타기』 출간.